미얀마는 근세 시절이자 대항해 시절인 16세기, 17세기~19~20세기의 근,현대 시절의 패권국으로 알려져있지요. 미얀마는 오랫동안 태국을 식민지처럼 거느렸으며 크메르 왕국을 무너뜨리는데 일조하고 캄보디아나 라오스를 밟는 등 사실상 군사력으로는 동남아시아에서 원탑이었지요.(그런데 하필 대원제국이 미얀마를 침략해서 멸망시키는 바람에..)
여하튼 이런 미얀마의 주류 민족인 "버마족"의 고향은 저 멀리 중국 대륙의 최남단인 홍콩이나 마카오쪽으로 추정됩니다. 본래 중국 대륙의 최남단인 홍콩, 마카오쪽은 한족이 아니라 동남아시아 인종의 고향이자 탄생지였기 때문이에요. 그러다가 중국 군대가 남하하면서 정복한 것입니다. 이들은 버마 어족에 속하는데 고대 중국 한나라, 당제국 군단들이 남하하면서 중국 최남단까지 모조리 정복하면서 동남아시아 인종들은 모조리 현재의 동남아시아 지역으로 도망쳤습니다. 미얀마인들도 그 중 하나에요.
그러면서 9세기 무렵 이라와디 강의 넓은 평야로 서서히 내려오기 시작했답니다. 마치 거대한 군대처럼 질서 정연하게 말이지요.
버마족은 이라와디 평원에 살고 있던 선주민들은 표족이나 몬족의 앞선 문화를 흡수하며 급격하게 성장했습니다. 빅터 리버만 교수가 2003년에 펴낸 "기묘한 평행선들"이라는 책을 보면 버마족은 매우 강력한 군사 조직력과 독실한 불교 신앙을 결합해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압도적인 국가들을 세웠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1044년에 아노라타라는 왕이 바간 왕국을 건설하면서 미얀마 역사의 황금기가 시작되는데 이 바간 왕국이 미얀마 역사상 최초이자 마지막인 유일한 황금기였어요. 그래서 현재 21세기까지도 미얀마인들은 이 바간 왕국을 가장 최고의 시대로 치고 있어요. 바간 왕국의 시대는 들판 가득 수천 개의 불탑을 세우고 상좌부 불교를 국교로 삼았습니다. 이때 완성된 버마족의 문화와 종교적 정체성의 융성이 현재까지도 미얀마를 지탱하는 힘이 되고 있으며 사실상 미얀마의 정체성이었습니다.
하지만 버마족의 가장 황금기였던 바간 왕국은 시대를 잘못 만났는데.. 당시의 세계 패권국은 대원제국(원나라)였기에 대원제국이 세계 패권 전략을 기치로 하여 동남아시아까지도 정복했습니다. 대원제국의 쿠빌라이 대칸은 미얀마, 베트남, 참파 왕국 등을 식민지화한 후에 이 국가들을 전진기지로 삼아 동남아시아 전체를 식민 지배할 계획이었던 겁니다.
그러면서 대원제국은 바간 왕국(미얀마)을 순식간에 침략한 후에 완전히 정복하여 바간 왕국을 식민 통치할 식민 지배 기구인 "면중행성"을 설치합니다. 면중행성은 식민지 총독부였습니다. 이는 베트남이나 인도네시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많은 분들이 베트남, 인도네시아 섬들이 대원제국 원정대의 침략을 완전히 막았다고 생각하시지만 실제로는 다릅니다. 실제로는 대원제국군(원나라군)이 베트남, 인도네시아 섬들을 1차적으로 정복한 후에 주둔했으나 인도네시아 섬들과 베트남에서 끝없이 저항을 하였고 습하고 무더운 열대 풍토병들 때문에 오래 장기 지배는 하지 않고 철군했던 겁니다.
미얀마도 마찬가지입니다.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생각보다 너무 습하고 무더운 열대 지역인 데다가 "열대 풍토병들"이 너무 만연하여 대원제국에서 파병한 주둔군인들이 동남아시아 기후에 적응하지 못하면서 오랫동안 장기 식민지배하지는 않고 철군한 겁니다.
하지만 대원제국이 주둔하면서 너무나 많은 학살과 파괴, 약탈을 자행했기에 대원제국이 보낸 원정대의 침략에 의해 인도네시아의 싱하사리 왕국은 멸망했으며, 미얀마의 파간 왕국도 멸망했습니다. 어쨌든 그렇게 미얀마는 가장 황금기인 파간(바간) 왕국의 시대가 그렇게 허무하게 멸망하고.. 그 뒤를 이어서 퉁구 왕국, 그리고 꼰바웅 왕국을 거치며 동남아시아의 패권국으로 우뚝섰어요.
하지만 근대 시절인 19세기에 접어들면서 세계 패권국인 대원제국이 바간 왕국을 정복해서 멸망시킨 것처럼 미얀마 역사에 또 다시 엄청난 재앙에 다가오고 있었으니 바로 "해양 패권국인 영국"이었어요. 미얀마는 영국과의 세 차례 싸움에서 패하면서(재밌는 건 미얀마가 영국을 먼저 선제 공격했다는 것.. 정확히는 영국령 인도..) 결국 속국이 되는 아픔을 겪었지요.
1948년 독립 이후 미얀마는 참으로 험난한 길을 걸어왔습니다. 장기간의 군사 독재와 최근 2021년 쿠데타 이후의 혼란까지 말입니다. 버마족 중심의 정부와 다른 소수 민족들 사이의 갈등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아픈 손가락입니다.
미얀마의 미래는 주류인 버마족이 다른 130여 개의 소수 민족과 어떻게 손을 잡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총칼이 아닌 대화와 화합으로 진정한 연방 국가를 만드는 것 그것이 이라와디 강이 간절히 바라는 꿈일 겁니다.
2) 태국인
아주 먼 옛날 기원전의 중국 대륙의 최남부 지역의 광시 좡족 자치구 일대와 홍콩, 마카오 쪽에는 벼농사를 아주 잘 짓던 사람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크라다이어족이라는 언어를 쓰며 물길을 따라 마을을 이루고 살았습니다. 이들은 단순히 떠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아니라 수로를 관리하고 벼를 재배하는 고도의 농경 기술을 가진 집단이었다고 합니다. 그들이 바로 "태국인"의 조상이 되는 "따이인"이라는 민족입니다.
따이인의 가장 큰 특징은 "므앙"이라는 정치 공동체예요. 므앙은 단순히 마을을 넘어 수로를 함께 관리하는 사람들의 네트워크를 뜻하지요. 이들은 저지대 평야에 자리를 잡고 물을 다스리며 강력한 결속력을 다졌어요. 부드러우면서도 끈질긴 그들의 성격은 이 므앙 문화에서 시작되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랍니다.
평화롭던 타이인들에게 역사상 가장 최악의 대재앙이 찾아온 건 13세기였습니다. 세계 최강 제국인 대원제국(원나라)의 기병대들이 빛의 속도로 남진했습니다. 1253년 쿠빌라이 대칸이 윈난 지역의 대리국을 정복하자 타이족(태국인의 조상)은 대원제국군의 대학살에서 살아남기 위해 안전하고 비옥한 땅을 찾아 남쪽으로, 남쪽으로, 더 남쪽으로 계속해서 대규모 이주를 떠나기 시작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추운 혹한의 냉대 기후를 가진 대원제국이다 보니까, 무더운 남쪽으로 숨어 들면 추격해오지 않을 것이라는 계산도 그 당시의 태국인들에게 있었지 않았을까 하고 감히 추측해 봅니다.
기원전 중국 춘추전국시대에 진시황제의 군인들이 동남아시아를 침략하는 장면 Ai 그림입니다.
어쨌든 마치 강물이 둑을 넘어 흐르듯 이들은 태국인들은 짜오프라야 강 유역으로 쏟아져 들어오면서 1238년 무렵 타이족 피난민들은 압도적인 수로 당시 이 동남아시아 지역을 가장 먼저 지배하던 크메르 제국을 완전히 멸망시키고 수코타이 왕국을 세웠습니다. 캄보디아 역사상 가장 눈부신 문명을 이룩한 크메르 제국은 그렇게 타이족 피난민들에 의해 허무하게 멸망했습니다. 그로 인해 먼 훗날 캄보디아인들은 이 때의 크메르 제국을 다시 부활시키기 위한 공산 운동을 "크메르 루주"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조선시대 군인의 쌍검 그림입니다. Ai 그림입니다.
어쨌든 태국판 세종대왕이라고 불리는 람캄행 대왕은 이때 자체적으로 타이 문자도 만들고(하지만 세종대왕의 훈민정음처럼 과학적이고 정교한 문자는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시기적으로는 더 먼저 만든 것은 사실입니다.) 상좌부 불교를 받아들여 왕국의 기틀을 잡았습니다. 1350년에는 더 남쪽에 아유타야 왕국이 건설됐는데 이곳은 해양 루트를 통해 전 세계와 교류하는 국제적인 도시로 성장했습니다. 18세기에는 아유타야 왕국은 툭하면 미얀마나 베트남 등에게 침입을 받으면서 무너지는 아픔도 겪었지만 탁신 장군과 지금의 짜끄리 왕국이 방콕을 중심으로 다시 왕국을 일으켜 세웠습니다.
현재의 태국은 동남아시아에서 경제와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하면서 패권국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특히 일본의 식민 지배를 단 한 번도 받지 않았다는 점은 태국인들에게 엄청난 자부심을 심어주었습니다. 현대적인 고층 빌딩과 종교 사원이 공존하는 독특한 풍경은 그들이 지켜온 유연한 정체성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물론 고민도 있습니다. 현대 사회로 접어들면서 정치적인 갈등이나 소수 민족과의 화합, 특히 남부 이슬람교와의 갈등 같은 문제들이 숙제로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캄보디아와의 국경 분쟁과 중국인들이 캄보디아에 해군 기지를 설치하고 태국까지 잠식하면서 동남아시아 전체를 중국의 식민지처럼 만들면서 특히 동남아시아 곳곳에 범죄단지가 설치되고 있다는 점.. 태국이 물가가 올라가면서 관광국으로서 명성을 잃고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는 점은 결국 태국이 죽어가는 증거입니다. 그렇기에 차기 동남아시아 패권국은 베트남이 잡을 것으로 보입니다.
3) 라오스인
사실 라오스인은 뿌리만 놓고 보면 태국인과 형제나 다름없습니다. 언어도 비슷한 같은 크라 다이 어족의 언어를 쓰니까요. 또 고대 중국과 세계 최강국이던 대원제국의 침략과 정복을 당했다는 역사도 비슷합니다.
라오스인은 메콩강의 거센 물살보다는 잔잔한 흐름을 닮았다고나 할 수 있습니다. 마틴 스튜어트 폭스 교수가 1997년에 쓴 라오스의 역사라는 책을 보면 이들은 고립된 지형 덕분에 자신들만의 순수한 전통과 불교 문화를 더 깊게 보존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흩어져 살던 라오인들을 하나로 묶은 위인은 약 1353년쯤의 "빠 응움"라는 왕이었어요. 그는 란쌍이라는 왕국을 건설했는데 코끼리들이 많이 서식하는 동남아시아 아열대 기후답게 그 이름의 뜻은 100만 마리의 코끼리라는 뜻이랍니다. 이때부터 라오스라는 민족의 정체성이 확실하게 각인되었고 메콩강 전역에 그들의 문화가 꽃피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18세기 근대 시절에 접어들면서 란쌍 왕국은 3개의 작은 소국으로 쪼개지는 아픔을 겪었으며 주변 강대국들의 눈치를 보며 속국이 되기도 했고 19세기 후엽에는 프랑스 왕국의 속국이 되서 조공을 바치는 신세가 되고, 일본제국의 식민지도 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라오스인들은 1954년 마침내 독립을 쟁취하며 자기들만의 깃발을 다시 만들었습니다.
지금의 라오스는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도 경제 개방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특히 메콩강의 풍부한 수자원을 이용해 전기를 생산해서 이웃 국가에 팔고 있는데 그래서 동남아의 배터리라는 별명도 얻게 되었습니다.
라오스는 여러 가지 한계점이 분명한 국가입니다. 국가에 이렇다할 특성같은 것도 없고.. 뭔가 빛의 순간이랄까 역사에 발전된 순간도 없고.. 항상 고대 중국에게 정복당하거나 지배를 당하거나 고대 중국이 침략한 미얀마, 베트남, 태국이 화풀이로 라오스로 침략하거나.. 세계 최강국이던 몽골제국이 중국 대륙을 침략하면서 미얀마, 베트남, 태국까지 침략하면서 라오스까지 덩달아 멸망당하거나 영향력을 강하게 받는 등.. 근현대 시절에는 프랑스 왕국에게 조공을 바치고 일본제국의 식민지가 되고..
그저 뭔가 바다에 떠다니는 해파리처럼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이리 흘러가고 저리 흘러가는 스스로 뭔가를 하지 못하고 그냥 흘러가는대로 살았던 신세에 불과했어요.
하지만 소똥 냄새나는 수수한 매력을 가진 왕국이라고 볼 순 있지요. 그리고 동남아에서 가장 구석기적인 최약소국인 필리핀보다는 훨씬 강했던 문명이었어요.
4) 묘족
중국 청나라 시대 청나라 군인들이 묘족을 학살, 탄압하면서 묘족의 봉기라고 불리는 큰 탄압이 있었어요. 이때 몽족은 목숨을 걸고 더 험한 남쪽으로 내려왔습니다. 그렇게 해서 지금의 베트남 북부와 라오스 그리고 태국 북부의 산악 지대에 자리를 잡게 된 것입니다.
20세기 냉전 시절 그들은 현대사의 거친 파도에 휩쓸렸어요. 라오스 내전 당시 미국 CIA의 지원을 받아 공산 세력과 싸우는 비밀 전쟁의 주역이 되었거든요. 하지만 전쟁이 끝나고 공산화가 진행되자 이들은 배신감과 두려움 속에 정든 산을 떠나 태국 난민캠프를 거쳐 미국이나 프랑스로 흩어지는 비극을 겪기도 했어요.
지금 그들은 동남아시아뿐만 아니라 미국 미네소타나 캘리포니아에도 큰 공동체를 이루고 삽니다.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가 하나로 연결되어 자기들의 언어와 문화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요. 라오스에 남은 그들은 여전히 사회적 차별이라는 어려운 숙제와 싸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