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시아의 역사(원시시대~21세기)

동남아시아 전체의 역사를 원시시대~21세기 통합본

by 바다의 역사



동남아시아 역사 개관


1) 선사 시대~고대 시대


동남아시아 지역에는 선사시대부터 호모 사피엔스가 거주했던 흔적이 있습니다. 화석 증거에 따르면 약 4만년 전에 이미 동남아 곳곳에 인류가 살았으며, 이 시기 사냥채집인들의 석기가 지역 전역에서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고 합니다. 기원전 6천년경 해수면 상승으로 섬들이 분리되면서 다양한 환경이 형성되었고 그 결과 지역별로 문화가 차별화되었습니다. 특히 기원전 3천년경까지 동남아 북부(오늘날 태국, 베트남)에서는 청동기 제작과 벼농사가 독자적으로 발달했다는 고고학적 사실이 확인됩니다.


그리고 기원전 1세기 무렵부터 당시 지구상에서 가장 최첨단 제국들이었던 중국과 인도의 신식 문물들이 동남아시아로 유입됩니다. 예를 들어, 기원전 111년부터 중국 한(漢)제국은 현 베트남 북부를 정복하여 식민 통치하였고 그 뒤부터 베트남은 고대 중국의 식민지로 1000년간 식민 지배를 받습니다. 베트남은 고대 중국의 식민지가 되면서 한자의 도입과 관료제 도입 같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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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중국이 동남아시아에 중국 한족 문물을 전파하는 방식은 오로지 군사적 침략이었으며 대표적으로 고대 중국이 베트남을 식민 지배하는 방식이 대표적입니다. 하지만 인도는 중국과는 달리 직접 동남아시아 통치보다는 무역, 종교 교류를 통해 이루어졌는데 대표적으로 힌두교, 불교 신앙과 예술 양식이 동남아 국가들에 수용되었다. 그래서 고대 중국은 동남아시아를 끊임없이 침략해서 자국의 문화를 강제로 전파시켰기에 동남아시아는 중국에 대한 반발 감정이 강했는데 반해서 인도는 오히려 동남아시아를 냅뒀기 때문에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싫어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인도 문화의 영향을 받아서 만들어진 건물들은 7세기 이후 자바 섬의 보로부두르(Borobudur) 사원(빨렌방 마따람 왕국, 중앙 자바)과 미얀마의 파간(蒲甘)의 불탑군, 캄보디아의 앙꼬르 왓뜨 등의 건설 등이 대표적입니다. 이처럼 힌두, 불교적 사원이 7~13세기 사이 동남아 전역에 만들어지면서 당시 지배층의 권위와 불교, 힌두 예술이 융성했습니다.










이 시기에 강, 해안 중심의 고대 왕국들이 속속 등장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1~6세기 사이 메콩강 삼각주의 항구도시 오세오(현 베트남 껌떠우)는 중계 무역 중심지로 번성했고 현재 태국의 방콕을 가로지르는 강물인 짜오쁘라야 강 유역에는 도성 자르아(Jao)와 등 여러 도시 왕국이 세워졌습니다.


깜보디아에서는 802년에 건설된 자야바르만 2세의 앙코르가 대표적이며 이후 9~13세기 앙코르 왕국이 메꽁 강 유역을 다스렸습니다.


그리고 고대 시대부터 동남아시아에서 군사력이 가장 강성했던 미얀마에서는 1044년 파간 왕국이라는 왕국이 발흥하여 인도차이나반도의 해상 무역과 불교문화를 연결했습니다. 이 파간 왕국은 동남아시아 역사상 군사력으로는 1위라고 할 정도로 가장 강력했는데 캄보디아, 라오스, 베트남 등 당시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강력했던 모든 국가들을 다 무릎 꿇리고 동남아시아의 말그대로 최강국으로 등극했기 때문입니다.


베트남에는 기원전부터 건국 신화가 전해지나 1세기 붉은강인 델타 지방에 등장한 오루(Wang Mang의 영향)나 한나라의 식민지 국가 등이 초기 국가적 형태였습니다. 한편 인도네시아 자바, 수마트라 섬들에서는 약 7세기쯤부터 스리위자야(Srivijaya)라는 해상 왕국이 교역을 했으며 8~9세기에는 중앙 자바의 샤일 렌드라라는 왕국이 불교 문화를 꽃피웠습니다.


이렇듯 고대기에 중국, 인도의 영향력을 받아서 동남아시아 곳곳에 국가들이 건설됐으며 중세기에 들어 동남아시아는 여러 왕국들이 경합하던 시대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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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세기인 1238년 무렵에 태국에는 수코타이 왕국과 란타오 지방 왕국이 건설됐고 라오스에는 14세기 초엽인 1353년에 100만 마리 코끼리란 뜻의 "란쌍 왕국"이 건설됐습니다. 베트남에서는 1225년부터 쩐 왕국이 안정적으로 국가를 다스리며 남하 정책을 펼쳤고 남부의 참파 왕국과 대립했습니다.


그리고 말레이반도 일대에서는 말라카 해협을 둘러싼 무역경쟁과 소국들의 갈등이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최약체이자 약소국, 그리고 신석기 석기 수준이었던 필리핀은 국가의 개념은 커녕 잉카 문명, 아즈텍 문명보다는 문명, 기술력 수준은 나았지만 그래도 신석기 수준으로 생활하다가 간신히 청동기 문화로 발달하는 단계였습니다. 이처럼 중세까지 동남아시아는 고대 중국의 식민지, 인도의 영향을 받은 왕국들과 다양한 토착 왕국과 외래문화가 뒤섞여 발전하는 양상을 보였고 각 지역이 서로 다른 정치, 문화적 궤적을 그리며 쪼개지고 번성하는 걸 반복하였습니다.






2) 세계 최강 패권제국 대원제국(원나라)의 동남아시아 정복 및 식민지화


13세기 후반, 세계를 정복한 대몽골제국을 계승한 대원제국(원나라)이 동남아시아에 군사 원정을 단행하였습니다. 대원제국은 당시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갖춘 제국이었습니다. 1257년부터 쿠빌라이 대칸의 황명으로 시작된 군사적 원정은 동남아 주요 국가들을 겨냥했습니다. 그리고 대원제국에서 출병한 원정대는 1283년 미얀마(당시 바간 제국)의 북부 샨 고원 지대를 침공했고, 1287년에 대원제국이 보낸 원정대는 벌써 동남아시아 미얀마의 수도 바간을 함락해서 정복했습니다.


기스.jpg 세계 최강 패권국이었던 대원제국(원나라) 기병대가 동남아시아 미얀마, 베트남 코끼리 군대들을 학살하는 장면입니다.


바간 왕국은 결국 대원제국군의 침략으로 멸망했고, 대원제국은 이 지역을 ‘缅中行省’(면중행성)이라는 이름의 식민지 통치기구(특수 군사 행정구역)으로 편제하여 미얀마 전역을 식민 통치했습니다. 실제로 학자 Htin Aung도 1287년부터 약 3년간(1287~1290년) 대원제국이 보낸 군인들이 동남아시아 타곤(古城군) 지역에 주둔해서 식민 통치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로써 대원제국은 바간 왕을 그 직할 식민지 총독(총관)으로 삼으면서도, 실질적으로 미얀마 전역에 자국 병력을 상주시켜 식민 통치를 이어나갔습니다.


베트남에서는 쩐 왕국이 1258년 대원제국이 보낸 원정대의 침략에 의해 순식간에 수도 하노이가 함락되면서 대원제국의 군인들이 베트남에 식민지 통치 기구를 설치하고 주둔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결국 일제강점기때 조선 독립군들처럼 베트남과 참파 독립군들이 베트남을 식민 통치하던 대원제국의 군인들로부터 끊임 없이 독립운동을 하였고 결국 이후 1285년과 1287년 두 차례에 걸친 대원제국군의 진압, 탄압에도 끝까지 저항한 베트남과 참파 독립군들은 결국 버텨내면서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동남아의 열대 기후와 풍토병들로 인해 대원제국군은 베트남을 장기 주둔하는 것에 비해 얻는 이득이 별로 없다고 판단하여 결국 철군을 결정합니다.


하지만 결국 1400년까지 독립 존속한 베트남의 쩐 왕국은 최종적으로는 중국 명(明)나라의 영락제가 침략하면서 멸망합니다.


사실상 동남아시아에 강력한 군사적 영향력을 행사하던 황제 쿠빌라이 대칸은 당초 자바의 싱하사리 왕국을 처벌하려 하려고 해상 원정대를 파견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세계 최강 군대인 대원제국의 군대가 싱하사리 왕국을 침략한다는 소식이 싱하사리 왕국 내부에 퍼지면서 결국 싱하사리 왕국 내에는 내부 쿠데타가 발발하면서 싱하사리 왕국이 완전히 몰락하는 계기가 됩니다. 그러면서 싱하사리 왕국은 대원제국군이 도착하기도 전에 내부 쿠데타로 인해 자멸해버렸고 결국 마자파힛 왕국이 들어서버린 것입니다. 그러면서 대원제국은 결국 목표가 사라져버린 이 황당한 사건 때문에 원정군을 다시 철군시켜야 됐습니다.


어쨌든 이렇게 세계 최강 대원제국의 자바 침략은 오히려 싱하사리를 몰락시키고 마자파힛 왕국이 부흥하는 계기가 되었다. 마자파힛 왕국은 이후 수십 년간 인도네시아 군도의 해상세력으로 군림했습니다.


이렇듯 대원제국이 보낸 원정대의 동남아시아 정복, 침략, 식민 지배는 완전히 동남아시아 세계를 재편하는 가장 결정적 대사건이 됐는데 그로 인해 미얀마의 파간 왕국은 대원제국의 식민지로 전락했고, 베트남과 참파 왕국, 자바에서는 저항 세력이 일어나서 독립운동이 계속해서 일어났으며, 참파 왕국도 14세기 초 베트남에 흡수되면서 동남아시아 세계가 완전히 뒤바뀌게 됩니다.










3) 스페인 왕국, 포르투갈 왕국,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 일본제국의 동남아 침입


이렇듯 중세 시대의 세계 최강대국이었던 대원제국의 동남아시아 침략, 정복, 식민지화 이후 먼 훗날에 흘러 근현대 시대에 이르자 동남아시아는 다시금 외세의 침략을 받게되는데 그들은 바로 "유럽 열강(서구 열강)"이었습니다.


약 15~16세기쯤부터 포르투갈 왕국, 스페인 왕국,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들 같은 유럽 왕국들이 해양부(도서부) 동남아시아 지역에 진출했으며, 영국, 프랑스 같은 유럽 나라들은 약 19세기부터 잇따라 동남아시아 지역에 진출했으며 일본 제국은 제2차 세계대전부터 동남아시아를 식민지로 만듭니다.


정확히는 약 1511년쯤 뽀르뚜갈 왕국이 말라까를 먹고 약 1560년대쯤에는 스페인 왕국이 필리핀 섬을 먹어 수도 마닐라를 만들었습니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약 17세기쯤부터 자바, 수마트라 등의 향료 교역을 다스렸고 영국은 약 19세기쯤부터 미얀마와 말레이반도를 먹으며 프랑스 왕국은 약 19세기 후엽쯤에 캄보디아를 합병해 인도차이나 연방을 세웠으며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일본군이 빠르게 동남아시아 전역과 남태평양을 공격하여 그곳에 있던 네덜란드, 영국군, 미군들을 죄다 죽이고 태국을 제외한 모든 동남아시아 지역들을 식민 지배합니다.(하지만 태국도 사실상 겉모습만 아닐뿐 실질적으로는 일본의 식민지나 다름 없었습니다. 이에 관해서는 추후 자세 다루겠습니다.)



image (3).jpg 스페인 왕국, 포르투갈 왕국, 해양 패권국 영국이 동남아 여자들을 괴롭히는 장면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동남아시아 각국은 빠른 속도로 독립을 쟁취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직후, 일본군이 퇴각하면서 현지 독립세력들이 곧바로 통치권을 장악했습니다. 특히 일본군이 물러나자 독립운동이 가장 활발했던 베트남은 고대 중국의 식민지로 1000년을 살았던 경력 답게 독기와 악바리 정신이 워낙 강해서 프랑스군을 상대로 완전히 압승을 거뒀으며 인도네시아에서도 네덜란드를 상대로 무장투쟁을 벌여 승리했습니다. 인도네시아 혁명은 1945년에 시작되어 4년 만에 성공적으로 독립을 일궜으며 베트남도 1954년 디엔비엔푸 전투에서 프랑스를 격파하고 독립을 얻었습니다. 나머지 동남아 국가들도 비교적 짧은 기간 내에 독립했습니다.


말레이시아, 미얀마(버마) 등은 "비상사태"나 짧은 무장분쟁을 거쳐 1950년대까지 독립했고, 역사적으로 동남아시아에서도 가장 약소국이었던 "필리핀"은 자국이 스스로 독립을 쟁취하진 못하고 사실상 미국이 스스로 내려오면서 독립이 되었습니다. 이렇듯 동남아시아의 신생 국가들은 자유롭고 개방된 민주주의 체제를 지향했습니다.


오늘날 동남아시아는 각국의 독립 이후 아세안(ASEAN) 등의 지역 협력을 통해 경제, 문화 교류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옛날 고대 국가의 형성과 외세의 식민 지배(세계 최강 대원제국의 동남아시아 식민 지배, 스페인과 포르투갈과 영국과 일본 제국의 동남아시아 침략 등)의 역사를 딛고, 동남아 각국은 자신만의 정치, 경제 체제를 발전시켜 왔습니다.


동남아시아를 오랫동안 식민 지배했던 중세시대의 세계 최강국인 대원제국(원나라)과 근대기의 해양 패권국인 대영제국(영국)은 이미 세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그들이 동남아시아를 정복, 지배하면서 남긴 흔적들은 동남아 정치사에서 큰 전환점으로 기록됩니다.


동남아 역사는 선사시대의 원주민 사회 형성에서 시작하여 여러 왕국들과 외세의 침략을 거치며 중첩적으로 발전해 왔습니다. 이후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다채로운 역사의 흐름은 이 동남아시아 지역이 해양 무역의 교차점이자 수많은 역사가 겹쳐진 공간임을 보여 줍니다.


image (3).jpg 스페인 왕국, 포르투갈 왕국, 해양 패권국 영국, 일본 제국이 동남아 여자들을 끌고가는 장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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