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한 남성 중심의 부계 사회와 가부장제를 구축했던 제국과 국가들입니다. 부계 사회란 혈통과 가문의 계승이 오직 남성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친족 체계를 뜻하며 가부장제는 남성이 사회와 가정의 경제적 법적 통제권을 독점하는 구조를 의미합니다. 이러한 체제는 척박한 환경에서의 생존 경쟁과 끊임없는 정복 전쟁 속에서 군사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남성 군인 전사 조직의 결속을 강제하는 과정에서 탄생하고 진화했습니다. 그렇기에 남성 중심의 부계 제국들은 대표적으로 중앙아시아와 동북아시아, 서아시아와 중동, 유럽 같은 북반에서 주로 등장했습니다.
1) 세계 패권국 대원제국(원나라)
1206년 칭기스칸에 의해 건국되어 1368년까지 세계 정복을 한 대몽골제국은 세계 최강의 군사화된 남성우월주의를 기치로 한 황금씨족 제도를 근간으로 한 세계 패권 제국, 병영제국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추운 몽골대초원의 혹한 냉대 기후와 세계 정복전쟁을 목적으로 한 피비린내 나는 강철과 기마 전쟁이 주력인 이러한 사활을 건 세계 정복 전장에서 최강 남성 기병대들을 중심으로 조직하여 끝없이 정복전쟁에 나섰습니다.
대칸의 군 직위와 군대의 최고 지휘권은 오직 세계 정복에 전공을 세운 군인이거나 칭기스칸의 직계 남성 후손인 황금 씨족에게만 독점적으로 부여되었습니다. 남성 군인들이 전 기간 동안 수천 킬로미터 밖의 세계 정복 전쟁선 투입됐으며 세계 정복자 칭기스칸이 제정한 군법령인 자사크는 극도로 엄격한 남성 중심적 사상망을 구축했습니다.
칭기스칸의 세계 정복 전쟁 중 지구 전역에서 정복 포로로 끌려온 전쟁 포로, 피정복민들은 엄청나게 많습니다.
2) 대청제국(청나라)
1368년부터 1912년까지 존속했던 중국의 명나라, 청제국은 고도의 군경 관료제를 갖추었으며 극도의 통제를 가했던 병영 국가적 성격을 띠는 남성우월주의, 부계 사회였습니다.
대청제국의 경우 여진족 정복자들이 주도한 팔기군이라는 거대한 군인 체제로 대제국을 통치했습니다.
3) 가마쿠라 막부~에도 막부시대 일본
1603년부터 1868년까지 이어진 에도 막부 시대는 사무라이 계급이 모든 무력을 독점하고 전 국민을 병영의 하급 병사처럼 통제했던 완벽한 군사 독재 및 부계 중심 사회입니다. 사건의 발단은 무려 100년이 넘게 일본 전역을 피로 물들인 전국시대의 극심한 내전이었습니다. 끊임없는 영주들 간의 혈투를 겪은 후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폭력적인 하극상을 영구히 억제하고 정권의 안보를 지키기 위해 군사 계급인 무사도를 전 사회의 이데올로기로 강제하는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이러한 개요 속에 막부 체제는 집안 전체를 하나의 군사 분대로 간주하는 이에 제도를 확립했습니다.가장인 아버지는 소대장과 같은 권력을 가졌고 모든 군사적 권리와 토지 재산은 오직 칼을 쥘 수 있는 장남 1인에게만 독점적으로 가독 상속되었습니다. 여성은 전쟁터에 나갈 수 없는 비전투 인력으로 폄하되어 완전히 종속되었습니다. 무사 계급의 남성은 자신의 명예를 훼손하는 하층민이나 아내를 합법적으로 베어 죽일 수 있는 기리스테고멘이라는 군사적 특권을 누렸습니다. 여성에게는 남편이 주군과 같은 존재였으며 오직 남성 가장만이 세 줄 반의 글만 적으면 일방적으로 아내를 내쫓을 수 있는 징벌적 이혼권을 지녔습니다.
4) 고대 로마 제국
기원전 8세기 건국부터 기원후 5세기 서로마 제국 멸망까지 이어진 고대 로마는 서양 군사 가부장제의 근본적인 뼈대를 완성한 제국입니다. 고대시대의 세계 1위 군사력을 가진 흉노제국의 침략에서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치는 로마 제국입니다.
5) 고대 인도 마누 법전 시대
기원전 2세기에서 기원후 2세기 사이에 정립된 고대 인도의 부계 중심 사회는 아리아인의 침공과 정벌이라는 철저한 군사적 배경을 지니고 있습니다. 사건의 발단은 기원전 1500년경부터 서북쪽에서 전차와 청동 무기를 앞세워 인도 아대륙으로 침략해 온 아리아인 전사 집단이 원주민들을 무력으로 굴복시키고 지배층으로 군림한 것입니다. 지배 계급인 크샤트리야 무사 계급과 브라만 사제 계급이 피정복민의 반란을 막고 자신들의 소수 정예 군사력과 혈통의 순수성을 영구히 유지하기 위해 종교적 율법을 무기화한 것이 그 계기이자 개요입니다.
역사적인 관점에서 패트릭 올리벨의 2005년 저서 마누 법전의 번역 및 분석에 따르면 이 시기에 완성된 법전은 군사 계급의 혈통에 천민이나 타 민족의 피가 섞이는 것을 가장 끔찍한 군사적 안보 위협으로 간주했습니다. 따라서 여성은 어릴 때는 아버지의 통제를 결혼해서는 남편의 통제를 남편이 전사하면 아들의 통제를 받아야만 하는 평생의 예속 상태로 규정되었습니다. 특히 적군에게 포로로 잡히거나 순결을 의심받을 수 있는 상황을 원천 봉쇄하기 위해 남편이 전쟁이나 질병으로 사망할 경우 과부를 남편의 화장 불길에 강제로 뛰어들어 산 채로 타 죽게 만드는 사티 풍습이 군사적 명예와 종교적 의무의 결합이라는 명목하에 정당화되었습니다.
당시 하층민 원주민 여성들이 아리아인 정복자들에게 구체적으로 얼마나 살육당했는지에 대한 정확한 고고학적 수치는 확인되지 않아 정보가 부족합니다. 그 이후 인도는 이슬람 제국과 영국 제국주의의 지속적인 군사적 침략을 받으면서도 이 고대 군사 율법에 기원을 둔 카스트와 가부장적 관습을 사회 기저에 유지해 왔습니다.
6) 기원전의 아시리아 제국
기원전 14세기부터 기원전 11세기까지 번성했던 중기 아시리아 제국은 인류 역사상 가장 이른 시기에 국가 주도의 극단적 중앙집권 사회를 확립한 국가입니다. 사건의 발단은 지리적 환경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사방이 개방된 메소포타미아 북부의 척박한 영토에 위치한 아시리아는 주변 이민족들의 끊임없는 침입을 방어하고 역으로 정복 전쟁을 수행해야만 생존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군사적 계기를 바탕으로 아시리아는 전 국민을 상비군 체제로 재편하는 개요를 지닙니다.
역사적으로 아시리아의 남성들은 1년의 대부분을 원정과 전투에 투입되었으며 국가는 전쟁으로 인한 막대한 인명 손실을 보충하기 위해 새로운 병력을 끊임없이 생산해야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여성은 철저히 국가의 군사력 유지를 위한 병사 생산의 도구로 전락했습니다. 마사 로스의 1995년 저서 메소포타미아와 소아시아의 법률 전집에 기록된 중기 아시리아 법전에 따르면 여성의 신체와 정조는 오직 남성 가장과 국가의 군사 자산으로 간주되었습니다. 역사상 최초로 여성의 베일 착용을 법으로 강제하여 남성의 소유물임을 시각적으로 증명하게 했고 전시 상황에서 적군에게 포로로 잡히거나 탈영병과 연루된 여성에 대해서는 코와 귀를 자르는 가혹한 신체 훼손 형벌을 내렸습니다.
당시 아시리아의 일반 평민 여성들이 후방의 군수 물자 생산에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의 비율로 동원되었는지에 대한 명확한 통계 수치는 고대 사료의 한계로 인해 명확하게 사실인지 확신이 서지 않으며 정보가 부족합니다. 그 이후 아시리아 제국은 기원전 612년 신바빌로니아 연합군과의 전쟁에서 패배하여 군사적으로 완전히 멸망하였고 지도상에서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아시리아 제국은 페르시아 제국의 식민지가 됩니다.
7) 기원전의 이스라엘 왕국
기원전 10세기부터 기원전 6세기 무렵까지 팔레스타인 지역에 존재했던 고대 이스라엘 왕국은 고대 근동의 치열한 영토 전쟁 속에서 족장 중심의 굳건한 부계 군사 동맹체로 기능했습니다. 발단은 이집트에서 탈출한 히브리 민족이 가나안 땅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철기를 앞세운 블레셋 등 선주민들과 벌인 무자비한 생존 전쟁이었습니다. 전쟁의 일상화라는 계기 속에서 강력한 체력과 전투력을 지닌 남성 연장자인 족장에게 군사 지휘권과 생사여탈권이 집중되는 개요를 보입니다.
역사적으로 이들의 군사 전술은 각 지파별 남성들의 혈통적 연대를 기반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캐롤 마이어스의 1988년 저서 이브의 발견 문맥 속의 고대 이스라엘 여성들에 따르면 전쟁에서 성인 남성 전사가 사망할 경우 그 가문의 영지와 예비 병력 생산 의무를 보존하기 위해 과부를 죽은 남편의 형제와 강제로 결혼시키는 형사취수제가 군사적 율법으로 고착화되었습니다. 이는 개별 여성의 선택을 배제하고 오직 부계 가문의 군사력과 재산을 방어하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전쟁터에서 획득한 전리품 분배 역시 전투에 참여한 남성들 사이에서만 이루어졌으며 십계명의 율법 속에서 아내는 남편의 군사적 자산이자 소유물의 일부로 규정되었습니다. 고대 이스라엘 시대의 전투에서 여성들이 직접 무기를 들고 정규전에 참전한 사례가 일반적이었는지에 대해서는 교차 검증된 발굴 자료가 없어 명확하게 사실인지 확신이 서지 않으며 이에 대한 정보가 부족합니다. 그 이후 기원전 586년 남유다 왕국이 바빌론 제국에 의해 군사적으로 점령당하고 성전이 파괴되면서 국가는 멸망했습니다. 근황으로는 1948년 건국된 현대 이스라엘 국가가 남녀 모두에게 징병제를 적용하며 군사적 성평등을 법제화하였으나 일부 극정통파 유대교 집단 내부에서는 여전히 고대의 가부장적 병역 면제와 남성 중심주의가 강하게 남아 이스라엘 내부의 큰 정치적 군사적 갈등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8) 조선시대
조선시대는 한반도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남성 적장자 중심의 종법제가 폭력적으로 뿌리내린 군사적 충격의 결과물입니다. 발단은 1592년 발발한 임진왜란과 1636년에 터진 병자호란이라는 두 차례의 참혹한 국제 전쟁이었습니다. 수백만 명의 백성이 학살당하고 전 국토가 불타면서 조선의 정규 군사 체제는 완전히 붕괴하였고 지배 계층인 사대부들의 권위는 땅에 떨어졌습니다. 이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지배층이 선택한 생존 전략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군대식 위계질서처럼 가족 제도를 상명하복의 적장자 우대 시스템으로 개조하는 무리수를 둔 것이 끔찍한 가부장제 확립의 계기이자 개요입니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전쟁의 트라우마는 사회의 극단적인 보수화로 이어졌습니다. 임진왜란, 병자호란을 거치며 민간에까지 장남에게 모든 재산을 몰아주는 형태로 상속법이 철저하게 개조되었습니다. 전쟁 중 적군인 일본군이나 청나라군에게 끌려갔다 돌아온 여성들을 환향녀라 부르며 지배 계층 남성들이 자신의 군사적 무능함을 여성의 정조 문제로 책임을 전가하는 비겁한 사상적 통제가 자행되었습니다. 또한 여성의 재혼을 법적으로 엄격히 금지하여 남성 중심의 가계 방어선을 구축했습니다.
9) 나치 독일 제3제국
1933년 아돌프 히틀러의 집권부터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패망까지 존재했던 나치 독일은 국가 권력과 총력전 체제 우생학이 결합하여 현대 문명 사회에 가장 기형적이고 폭력적인 가부장제를 강제로 이식한 국가입니다. 사건의 발단은 제1차 세계대전 패전으로 인한 군사적 굴욕감과 베르사유 조약의 막대한 배상금 대공황으로 인한 경제 붕괴였습니다. 이 절망 속에서 나치당은 무너진 독일 남성들의 군사적 자존심을 자극하고 복수전을 위한 거대한 군대 재건을 목표로 여성을 철저히 병력 생산의 도구로 전락시키는 정책을 폈던 것이 계기이자 개요입니다.
역사적으로 무장친위대와 국방군을 중심으로 움직이던 나치 독일에서 여성의 역할은 어린이 부엌 교회라는 세 단어로 철저히 격하되었습니다. 클라우디아 쿤츠의 1987년 저서 조국 안의 어머니들 여성 가족 그리고 나치 정치에 따르면 히틀러는 우수한 아리아인 군대를 대량으로 만들어내기 위해 수많은 여성들을 교사나 의사 같은 직장에서 강제 해고하고 집으로 쫓아냈습니다. 순수 혈통의 게르만족 아이를 4명 이상 낳은 여성에게는 전쟁 영웅에게 주어지는 철십자 훈장을 모방한 모성 십자훈장을 수여하며 그들을 국가 통제의 출산 기계로 전락시켰습니다. 전장의 남성들에게 위안을 주고 더 많은 병사를 낳는 것만이 여성의 유일한 군사적 애국으로 포장되었습니다.
당시 징병된 남성들을 대신해 군수 공장에 투입된 여성 노동자들 중 과로사하거나 연합군의 융단 폭격으로 사망한 민간 여성의 구체적 사망자 수를 남성과 완벽하게 분리하여 산출한 명확한 통계는 전쟁 말기 행정 붕괴로 인해 사실 확인이 어려워 정보가 부족합니다. 그 이후 나치 독일은 1945년 소련군과 미영 연합군의 압도적인 군사력에 의해 수도 베를린이 함락당하며 완전히 지도상에서 소멸했습니다. 근황을 보면 과거사를 철저히 반성한 현대의 독일 연방공화국은 헌법인 기본법을 통해 성별과 인종에 따른 모든 차별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으며 현재 독일 연방군은 유럽에서 가장 성평등한 군사 제도를 운영하는 국가 중 하나로 자리 잡았습니다.
10) 기원전의 그리스 아테네
기원전 5세기를 전후하여 전성기를 누린 고대 아테네는 민주주의의 발상지로 알려져 있으나 성인 남성만이 모든 권력을 독점한 극단적인 남성 연대 사회였습니다. 발단은 기원전 490년부터 기원전 479년까지 이어진 페르시아 제국이 그리스를 침입한 거대한 침입 전쟁과 뒤이은 펠로폰네소스 전쟁이었습니다. 이 시기 아테네 육군의 핵심인 팔랑크스 밀집 진형은 병사들 간의 극도로 긴밀한 육체적 연대와 상명하복을 요구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1) 근현대 시기의 해양 패권국인 대영제국(영국)의 빅토리아 시대
근현대 시기인 19세기 대영 제국은 4분의 1을 장악한 거대한 해양 국가였으나 중심부인 영국 본토의 여성 인권은 억압된 이중적인 부계 국가였습니다. 사건의 발단은 산업혁명으로 촉발된 막강한 자본력과 압도적인 수군력을 바탕으로 팽창을 벌이던 자본주의였습니다. 영국의 남자들은 아프리카 등지에서 총을 들고 속국을 넓히는 개척자로 숭배받았으며 상대적으로 여자들은 관료를 길러내기 위해 집안의 순결한 천사로 남아야 한다는 이데올로기가 세뇌된 것이 통제의 계기입니다.
12) 근세 시기인 대항해시대의 스페인 왕국
근세 시기인 16~ 17세기까지 아메리카 대륙과 필리핀 등지를 토벌, 정벌했던 대항해시대의 스페인 왕국도 부계사회였습니다. 이베리아 반도에서 거의 800년 가까이 지속되었던 스페인 왕국, 포르투갈 왕국을 식민 지배하던 이슬람 세력을 몰아내는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과도 같은 레꽁끼스따(국토 회복 운동)이 1492년에 완료됐습니다. 그리고 독립된 후에 스페인 왕국, 포르투갈 왕국은 부계사회로 발달하기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