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패권국 명나라의 정성공이 가진 아프리카 흑인 노예

세계 패권국 명나라의 해적 정성공이 소유한 아프리카 흑인 노예들

by 바다의 지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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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명나라 해적과 일본 해적의 동남아시아인 노예 무역


동남아시아인 토인의 출신과 노예화 과정


실제로 스페인 왕국, 포르투갈 왕국,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들이 동남아시아 바다에 진출하기 전부터 이미 동남아시아 바다는 중국 송나라 ~ 명나라 한족 해적들, 셀주크 제국의 상인들, 왜구 해적단들, 서아시아 페르시아 무역선, 중동 아랍 무역선의 상인들, 인도 무역선들이 이용하던 국제 항로였으며, 이들 중국 한족 해적들과 왜구와 튀르크 상인들, 인도인들, 서아시아 이란의 노예선, 중동 아랍 무역선들은 저마다 동남아시아 곳곳으로 진출하여 동남아시아 원주민들을 납치하여 노예로 팔았던 노예 무역이 행해졌다.


이는 호주의 역사학자 앤서니 리드(Anthony Reid)가 연구한 것으로 밝혀진 사실인데, 앤서니 리드는 그들이 대항해시대 이전 뿐만 아니라 이후인 16세기 ~ 18세기까지도 중국인 해적들, 오스만 제국 해적들, 인도인 해적들, 일본 왜구 해적들, 서아시아 이란과 중동 아랍 세력들이 가장 활발하게 동남아시아에 진출하여 해상 무역을 하면서 동남아시아 국가들을 수탈하여 동남아시아 원주민들을 납치하여 노예로 사고 팔았던 활발한 노예 무역이 매우 광범위하게 형성됐었다고 한다. 게다가 돈이 되면 뭐든 다 하는 자본주의에 특화된 화교들도 여기에 가담해서 동남아시아 원주민 노예들을 납치하는 데 도와줬다고 하니, 오늘날 동남아시아인들이 왜 그렇게 중국인들을 증오하는 지 이해는 간다.


게다가 중국인 해적들, 오스만 제국 해적들, 인도인 해적들, 일본 왜구 해적들, 서아시아 이란과 중동 아랍 세력들은 동남아시아 바다를 오가는 스페인 왕국과 포르투갈 왕국,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배들도 자주 급습하여 노략질하기를 즐겼다고 하고 많지는 않았지만 스페인인들이나 포르투갈인들, 네덜란드 백인들도 노예로 사고 팔았다고 한다. 실제로 술루 술탄국의 노예 시장에는 필리핀인 노예는 50페소에 거래됐지만, 스페인인 노예들은 300페소에 거래됐고, 스페인인 사제 노예들은 2000페소에 거래되는 등 스페인인 노예들은 희귀하기 때문에 매우 값비싸게 거래됐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앤서니 리드의 연구뿐 아니라, 당대의 기록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실제 16세기 포르투갈인 탐험가 "토메 피레스(Tomé Pires)"의 기록에서도 필리핀 인근의 광범위한 노예 무역이 써있고, 오늘날 태국인 아유타야 왕국도 당시 노동력 확보를 위해 노예 매매에 참여했다고 전한다. 물론 위치상 아유타야 왕국이라곤 하지만 노예 산업을 주도 했던 것은 아유타야 왕국을 장악한 중국 한족 해적들이거나 화교들이지만 말이다.


그렇기에 요컨대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이 "토인"들도 동남아시아 현지 또는 국제 노예상(중국 한족 노예무역상)에 의해 포획·매매된 뒤, 중국 한족 출신의 노예 매매 상단(商團)에 의해 조선으로 이송된 것으로 보인다. 당대 동남아 해안에서는 중국계 해적과 무역업자들, 화교, 포르투갈 상인 등 다국적 세력이 노예 거래에 관여했기 때문이다. 이들이 토인을 포획했을 가능성이 크다.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에 의하면 아유타야 왕국 왕실 공문 없이 비공식적 무역 관계를 타진하려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노예선장이 상인(華商)이었을 것으로도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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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아프리카 흑인 노예들을 소유했던 명나라 해적 정성공


물론 명나라 해적들의 경우는 실제 아프리카 흑인 노예들을 소유했다. 대표적인 인물들 중 1명이 바로 "정성공(鄭成功)". 그는 남명의 마지막 군벌 장군이자, 해적으로도 악명 높은데 그도 역시 사해(海外) 활동을 통해 아프리카 흑인 노예들을 상당히 많이 확보했던 것이다. 물론 오늘날 중국 정부는 이에 대해 극히 부정적인 입장으로 정성공 장군이 아프리카 흑인 사냥을 했다는 것 자체를 인정하고 있지 않다. 아무래도 중국의 선조인 명나라의 마지막 장군이자 해적인 정성공 장군이 아프리카 흑인 노예들을 대량 확보했다는 것을 중국 정부가 인정해 버린다면, 중국의 아프리카 진출과 일대일로 정책과 더 나아가 미중패권경쟁에 크나 큰 방해물이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사는 부정하면 역사 왜곡이 되는 것이다.


실제로 정성공 장군은 네덜란드 항해일지 등에서도 자신의 성(城)에 아프리카 출신 흑인 노예들을 대량으로 확보하여 거느렸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는 당시 명나라를 세계 패권국으로 등극시킨 영락제 사후, 황제들의 해금(海禁) 정책으로 밀무역·해적 활동이 폭증한 결과로, 중국 연안과 남중국해에는 노예 사냥과 무역이 만연했기에, 이처럼 중국 연안의 한족 해적들은 동남아뿐 아니라 희망봉 ~ 대항해 시대의 항로를 따라 유럽계 상인들과도 연결되어 있었고, 아프리카 흑인 노예 무역에도 직, 간접적으로 관여하기도 했다는 결정적 증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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