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카오의 역사, 위치, 면적

마카오의 역사

by 바다의 지정학


"마카오" "중국령"에 포함되면서도,



위치로만 보면 중국 본국(본토)과는 가장 멀리 떨어진 가장 남쪽에서도 최남단의 맨 끝자락에 위치해 있는 "섬처럼 생긴 반도"입니다.



그래서 마카오만 따로 놓고 보면 "동남아시아"에 들어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마카오는 총 면적이 약 32.8 km²로, 엄청나게 매우 매우 작은 코딱지보다 작은 동네입니다.



한반도에서도 절반인 대한민국(남한)에서도 가장 작은 도시 중 하나가 구리시가 약 33㎢인데



마카오의 면적은 한반도에서도 절반 면적인 대한민국(남한)에서도 가장 작은 도시인 구리시보다도 작은 매우 매우 작은 코딱지 면적입니다.





마카오의 역사 :




옛날 15세기 ~ 16세기 때에도 세계 패권국가는 명나라였고, 명나라의 군사력은 스페인, 포르투갈, 네덜란드보다 훨씬 더 막강했습니다.



마카오는 사실상 중국 본국과는 거리가 멀었던 지역이었습니다.



명나라는 중앙아시아 북방 유목제국들과 전쟁에 집중하느라 항상 전력이 북방에 배치되어 있었기 때문에 물론 마카오 같은 남쪽 해안가도 지배 하에 두긴 했지만, 그렇게까지 강하게 지배하진 않았습니다.



특히 명나라 건국 초기에는 마카오 지역을 공식 행정 구역으로 편입하지는 않았지만, 중국의 무역 도시로서 활용하곤 했었습니다.



그러다가 명나라가 북방의 중앙아시아 유목제국들과 치열하게 전쟁하던 틈을 타서 명나라인 출신 해적 세력들(진조의, 이단, 왕직, 임봉-리마홍- 등등등)이 마카오 같은 남쪽 해안 도시들을 해적기지로 삼기 시작했고, 여기에 명나라 내의 반군 세력들과 왜구들까지 합세(合勢)하면서 마카오 및 해안 도시들은 그야말로 해적들의 해적 거점지가 되버렸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우연히 동남아시아를 항해하던 포르투갈 군함대들이 침몰되어 난파하면서 지금의 마카오 쪽에 표류하게 됩니다. 포르투갈 해군들은 이곳이 중국령인지 몰랐고 겁대가리 없기 나댔다가 그곳에 주둔해있던 명나라 관군들의 대포 공격에 의해 곧바로 진압당합니다.



아무래도 당시는 명나라의 군사력과 화력이 스페인, 포르투갈보다 훨씬 더 강했기 때문에 포르투갈 해군들로서는 이길 수가 없던 것이죠.



실제로 명나라 군함대들 vs 포르투갈 군함대들, 스페인 군함대들이 치열하게 해전들을 치뤘던 "둔문 해전(타마오 해전, 1521년 발발, 명나라군의 승리)"이나 "첸카오완 해전(시사오완 해전, 1522년 발발, 명나라군의 승리)"에서도 모두 명나라가 연전연승까지 했던 전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포르투갈 해군들은 막대한 양의 "은(銀)"들을 가지고 있었고, 이는 명나라에 꼭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에 명나라는 포르투갈 왕국에게 딜에 제시합니다.



ChatGPT Image 2025년 7월 30일 오후 10_59_28.png 포르투갈인들이 명나라 군인들에게 막대한 세금을 바치는 세계사적 장면을 그린 Ai 작품



왜 명나라가 포르투갈과 전쟁해서 완벽하게 승리한 명나라는 포르투갈의 은(銀)을 보자마자 갑자기 딜을 한 것인가?




여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당시 명나라의 국가 화폐는 "은(銀)"이었습니다.



세계적으로도 중국 대륙은 철제 무기 제작에 꼭 필요한 "철광석(鐵鑛石)"들은 엄청나게 많은 지역이었지만, 정작 금이나 은 같은 광물들이 매장된 금광(金鑛), 은광(銀鑛)들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래서 명나라가 국가 화폐로 "금(金)"이 아니라 "은(銀)"으로 결정한 이유도 그것입니다. 은도 귀하긴 하지만, 황금은 훨씬 더 귀했기 때문이며, 그 은조차도 거의 고갈되어 가는 상황이라 아예 은이 아니라 "동(銅, 구리)"로 국가 화폐를 대체해야 되지 않냐는 건의까지 있을 정도였죠.


그런데 재밌게도, 포르투갈 왕국은 남아메리카나 브라질을 먹으면서 막대한 양의 은을 보유하고 있었고, 스페인 왕국과도 교류하면서 은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명나라는 포르투갈이 명나라에게 꼭 필요한 "은(銀)"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포르투갈은 매년 막대한 양의 "은(銀)"을 명나라 황제에게 세금으로 바치는 조건으로, 현재의 마카오 지역을 임대 계약한 것입니다.


즉, 명나라는 매년 막대한 양의 세금을 포르투갈에게서 받는 조건으로 현재의 마카오 땅을 포르투갈 상인들에게 "임대"했던 것입니다.



게다가 당시 명나라가 임대한 땅은 크기도 엄청 작은 한반도 크기의 절반인 대한민국(남한) 내에서도 가장 작은 도시라는 구리시(약 33㎢)보다도 훨씬 작은 영토인 마카오(32.8 km²)만을 임대한 것이며 게다가 마카오 자체가 사실 중국 본국에서 엄청나게 멀리 떨어진 사실상 "섬"이나 다름 없는 남쪽 해안가의 반도인데다가, 해적들의 소굴이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명나라는 쓸모 없는 해적 소굴을 임대한 것입니다.


요새 21세기로 치면 포르투갈 상인들은 코딱지보다 작지만 좋은 동네인 줄 알고 매년 거액의 돈을 명나라 황제에게 바치는 조건으로 그 동네를 임대 계약해서 받았는데, 알고보니 사기당해서 최악의 땅이었던 셈이죠.



어쨌든 이렇게 명나라는 포르투갈 왕국으로부터 막대한 양의 "은(銀)"들을 챙겼지만, 이조차도 모자라서 일본, 스페인 왕국과도 교류하면서 막대한 양의 은을 챙깁니다.


일본이 이와미 은광산을 발견해서 세계적인 선진국으로 성장한 이유도 은이 필요한 명나라와의 무역 때문이며, 스페인 왕국도 현재 남아메리카의 볼리비아 지역에서 폰토시 은광산을 발견해서 명나라와 교류하면서 이때 남아메리카의 거의 모든 은들은 명나라가 전부 다 흡수합니다.


그래서 당시 스페인 국왕은 전 세계의 모든 은들은 명나라 황제가 다 가져간다면서 한탄했다는 말도 있습니다.


어쨌든 그 후 사실상 명나라는 스페인 왕국, 포르투갈 왕국, 일본과는 외교적으로 굉장히 친밀했던 동맹관계나 다름없었습니다.


왜냐면 명나라는 은이 꼭 필요했고, 스페인 왕국, 포르투갈 왕국, 일본은 명나라가 꼭 필요한 은을 가지고 있었으며, 일본과 스페인 왕국, 포르투갈 왕국은 명나라와의 교류로 서로 상부상조하면서 상생했기 때문에 서로가 가깝게 지냈던 사실상 경제적으로도 동맹관계였던 것이죠.



어쨌든 그렇게 막대한 돈으로 마카오 땅을 임대 받은 포르투갈 왕국은 마카오를 무역 항구도시로 꾸미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단순히 무역 항구에 불과했다가 무역 항구가 되니까 부가 쌓이면서 카지노의 도시로 발전하기 시작하면서 마카오의 영화가 시작되는가 싶더니...



하지만 명나라가 세계 최강의 기병대인 팔기군을 앞세운 대청제국과의 총력전에서 몰락하면서, 덩달아 스페인 왕국도 7번이나 파산하고 영국과의 경쟁에서 망하고 거기다가 포르투갈 왕국도 망하면서 결국 마카오는 포르투갈 왕국이 임대받기 이전처럼 완전히 방치된 유령도시처럼 되버리면서 방치되기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한참 후 먼 미래... 20세기인 1987년에 중국과 포르투갈이 협정을 체결하면서 중국이 다시 마카오를 중국령으로 가져가버립니다.



그 후 "일국양제(一國兩制)" 원칙에 따라 중국령 마카오는 50년간(2049년까지) 자치권을 보장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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