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제국이 약소국 아이슬란드에게 패배한 "대구 해전"

대영제국이 약소국 "아이슬란드"에게 패배하다.

by 지구본 여행기




이 사건의 근본적인 이유는 아이슬란드라는 국가의 생존 방식과 영국의 오랜 어업 전통이 정면으로 충돌한 데에 있어요. 아이슬란드는 국토의 대부분이 화산 지대와 얼음으로 덮여 있어 농사를 짓기 매우 어려운 환경이었고 국민들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자원은 주변 바다의 수산 자원이었어요. 특히 대구는 아이슬란드 수출액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경제 수출품이었지요.


아이슬란드인들에게 물은 단순히 경제 활동의 장소가 아니라 국가의 생명 그 자체였지요. 반면 영국은 산업 혁명 이후 급격히 인구가 늘어나면서 저렴한 단백질 공급원이 절실했고 약 14세기쯤부터 아이슬란드 근해까지 진출해 대구를 잡아온 역사적 권리를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영국 입장에서는 자기들의 앞마당처럼 여겨온 공해상에서 아이슬란드가 갑자기 주인 행세를 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지요. 이러한 생존권과 기득권의 충돌이 전쟁의 씨앗이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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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해전"은 1958년부터 1976년까지 세 차례에 걸쳐 영국과 아이슬란드 사이에서 벌어진 어업 권리 분쟁을 의미해요. 국제법상 영해의 범위를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가를 두고 벌어진 이 싸움은 겉으로 보기에는 좋은 수군력을 보유한 영국과 제대로 된 선박조차 없던 거의 없던 아이슬란드의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처럼 보였어요.


하지만 결과는 모두의 예상과 달리 아이슬란드의 완승으로 끝났어요. 이 과정에서 양국은 선박과 경비선을 넣어 서로의 선체를 들이받는 충돌 사고를 냈으며 아이슬란드는 영국 저인망 어선의 그물을 끊어버리는 특수 장비를 도입해 실질적인 타격을 입혔어요.




해전의 직접적인 계기는 아이슬란드가 일방적으로 선포한 영해 확장 선언들이었어요. 약 1952년쯤에 아이슬란드는 영해를 3~ 4해리로 확장했고 이에 반발한 영국이 아이슬란드산 어류의 수입을 금지하자 아이슬란드는 소련에 물량을 수출하며 대응했어요. 이후 아이슬란드는 약 1958년쯤에 12해리로 영해를 더 넓히겠다고 선포하며 제1차 대구 해전의 불을 지폈지요. 당시 영국은 이를 국제법 위반으로 간주하고 자국 어선을 보호하기 위해 왕립 해군 군함들을 파견했지요.


아이슬란드는 이에 굴하지 않고 1972년에는 50해리로 그리고 1975년에는 200해리로 영해를 계속해서 확장해 나갔지요. 이런 확장은 아이슬란드 어민들이 남획으로 인해 대구 씨가 마를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신생 독립국으로서의 주권 의식을 고취시키려는 정치적 의도도 포함되어 있었지요. 영국은 대영제국의 자존심을 걸고 모든 해군력을 총동원해 저항했으나 아이슬란드의 단호한 태도와 전략적 카드를 이겨내지 못하고 결국 "패배"했어요.










영국vs아이슬란드 전쟁은 총 3번 이뤄졌는데


제1차 전쟁은 약 1958년쯤에 시작되었으며 영국 해군은 어선단을 보호하고자 프리깃선을 배치했어요. 아이슬란드 해변 경비선은 소형 선박들로 영국 선박의 진로를 방해하며 끈질기게 괴롭혔어요. 결국 영국은 1961년에 아이슬란드의 12해리 영해에서 도망갔지요.


제2차 전쟁은 약 1972년쯤에 아이슬란드가 50해리 구역을 선포하며 발생했지요. 이때 아이슬란드는 그물 절단기라는 획기적인 도구를 선보였지요. 해변 경비선 함선이 영국 어선의 뒤로 접근해 와이어를 절단해버리자 영국 어민들은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입었지요. 영국 해군은 다시 선박을 보냈으나 아이슬란드는 자국 내에 있는 나토 기지를 폐쇄하겠다는 협박 카드를 꺼내 들었지요.


냉전 시기 소련의 잠수함을 감시하던 께플라비크 기지의 중요성 때문에 미국과 나토가 영국을 압박하기 시작했고 영국은 다시 무릎을 꿇었지요.


마지막 제3차 전쟁은 약 1975년쯤에 벌어졌으며 200해리 수역을 두고 양측 함정이 수십 차례 충돌하며 가장 격렬하게 벌어졌지요. 하지만 아이슬란드는 외교 관계 단절이라는 강수를 두며 나토 탈퇴를 다시 언급했고 결국 영국은 1976년에 아이슬란드의 모든 요구 조건을 수용하며 완전히 패배했지요.



결국 대영제국이라는 영국은 아이슬란드와 총 3번을 전쟁했는데 단 1번도 이기지 못해고 "완패"를 해버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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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이 아이슬란드와 같은 약소국에 그것도 3번 연속 죄다 대패한 이유는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들이 작용했지요.


먼저 병법 측면에서 아이슬란드는 지리적 위치를 완벽하게 활용했던 걸로 보여요. 병법적인 면에서도 영국 해군은 거대한 군함을 동원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슬란드의 게릴라식 그물 절단 전술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했어요. 이는 대영제국 해군이 "오합지졸"이라고 조롱거리가 되는 계기가 됐지요.


국제 여론 역시 자국의 생존권을 주장하는 소국 아이슬란드 편으로 기울기 시작했고 해양법의 흐름 자체가 연안국의 권리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지요. 결국 영국은 경제적 이익보다 안보적 가치를 우선시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해 3번 죄다 항복을 하게 된 것이에요.




이 3번의 전쟁 패배 이후 영국의 어업은 죄다 완전히 죽었어요. 영국의 주요 어업 도시였던 헐과 그림즈비 등의 지역 경제가 파산 났으며 수천 명의 어민들이 일자리를 잃었어요.


정반대로 아이슬란드는 200해리 수역을 영국으로부터 가져옴으로써 경제의 기틀을 다졌고 이는 훗날 아이슬란드가 경제 선진국 반열에 오르는 중요한 토대가 되었어요. 오늘날 대구 전쟁은 국제 해양법상 200해리 배타적 경제 수역이 국제 표준으로 자리 잡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한 사건으로 평가받지요. 아이슬란드는 오늘날도 좋은 수산 자원 관리 시스템을 갖춘 나라 중 하나로 꼽히며 대구 전쟁의 승리를 국가적 자부심의 상징으로 여기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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