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상 가장 "평화로웠던 나라"들 TOP

인류 역사상 가장 "평화기"가 길었던 나라들 1~11등까지(조선 아님)

by 지구본 여행기





인류 역사상 가장 긴 평화기를 유지한 국가들에 대한 정보를 정리하여 봤어요. 평화의 기준은 타국과의 전면전이나 대규모 봉기가 발생하지 않은 기간을 중심으로 산정하였어요. 다만 역사적 기록의 한계나 국가의 기록에 따라 순위는 학자마다 약간은 다를 수 있음을 미리 밝힐게요.




Top 1) 산마리노 공화국


평화 기간은 "560년"이지만 사실상 "1700년"동안 평화기라고 볼 수 있지요.


산마리노 공화국은 약 서기 301년쯤에 만들어진 가장 오래된 공화국 가운데 하나에요. 이탈리아 반도 내륙에 위치해 있는 이 작은 나라는 성 마리누스가 박해를 피해 티타노 산에 은거하며 공동체를 세운 것에서 시작되었지요. 로마의 박해를 피해 자유를 찾아 떠난 이들의 의지가 읍내 형성의 근간이 되었지요. 지리적 고립성과 평화 의지로 수세기 동안 독립과 평화를 지켜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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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마리노는 정식적인 전쟁 기록이 거의 없으며 약 1463년쯤 이후 전쟁을 1번도 치르지 않았고 약 560년 이상의 평화기를 유지하고 있는 셈이에요. 하지만 큰 전쟁에 휘말리지 않은 것까지 포함하면 사실상 1700년동안이니 단 1번도 전쟁을 경험해본 적이 없는 공화국인 셈이지요.


산마리노의 역사는 끊임없는 외교의 역사로 평화 유지의 이유는 지형적 고립과 외교적 노력이었지요. 근세~근대 시절에도 이탈리아 내부의 도시 국가들이 사이가 안좋을 때도 산마리노는 어느 편에도 서지 않았어요.


게다가 산악 지대에 위치하여 대규모 군대가 진입하기 어려웠고 근현대 시절의 나폴레옹 전쟁 당시에도 나폴레옹이 이들의 민주적 가치를 좋게 봐서 독립을 보장해준 것이 평화 지속의 핵심이 되었지요.


약 1862년쯤에 이탈리아 통일 과정에서 주세뻬 가리발디를 보호해준 인연으로 이탈리아 왕국과 우호 조약을 체결한 것이 현대적 평화의 계기가 되었지요. 이탈리아는 산마리노 공화국의 독립과 중립을 존중하기로 약속했지요.


2차 대전 시절에 독일군이 잠시 먹고 연합군의 오인 폭격을 받은 적은 있으나 국가 차원의 토벌이나 교전은 없었지요. 산마리노는 항상 피난처로서의 역할을 자처하며 중립을 지켰어요.


오늘날 산마리노는 태국처럼 관광업과 우표 발행 등을 주요 수입원으로 살아가며 이탈리아와의 긴밀한 협력 속에 평화를 계속 만끽하며 살아가고 있지요. 군대는 상징적으로만 존재하기에 없고 실질적인 치안과 국방은 평화로운 상태에요. 산마리노 공화국의 사례는 작은 국가가 어떻게 물리적 힘이 아닌 외교만으로 수천 년의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역사적 전형이 되었어요.















Top 2) 안도라 공화국


평화 기간은 약 700년 동안이에요.


안도라 공화국은 1278년 프랑스 왕국의 푸아 백작과 스페인 왕국의 우르헬 주교 사이의 공동 통치 조약에 합의하면서 평화가 시작되었어요. 이 합의는 이후 700년 넘게 안도라 공화국이 싸움에 휘말리지 않게 하는 방어막이 되었어요. 이렇듯 안도라는 역사적으로 큰 싸움에 참여한 적이 거의 없으며 프랑스 왕국과 스페인 왕국 사이의 중립 지대로서 평화를 유지해왔어요.


1,2차 대전 당시에도 안도라는 지리적 험준함과 중립적 지위 덕분에 전화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내부적으로도 큰 갈등 없이 소박한 농사 생활을 유지하다가 현대에 들어와 관광업과 금융업으로 번성하고 있지요.


현재 안도라는 조세 회피처로 유명하며 여전히 병사 없이 프랑스가 국방을 책임져주는 평화로운 상태를 지속하고 있으며 유럽 내에서도 범죄율이 가장 낮은 평화로운 지역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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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p 3) 기원전 이집트의 "고왕국 시대"


평화 기간은 약 500년이에요.


기원전 이집트 고왕국의 평화 기간은 기원전 2686~ 기원전 2181년까지 약 500년 동안 지속되었어요. 이 시기는 피라미드 건설의 황금기이자 외부의 침입 없이 독자적인 문명을 만들었던 꽃 같은 시기에요.


평화의 결정적 이유는 상이집트와 하이집트의 통일이었어요. 나르메르 국왕 이후 중앙 집권 체제가 확립되면서 이집트 왕국은 나일 강 유역의 비옥한 토지를 바탕으로 안정을 찾았지요.


이런 이집트 왕국의 평화는 지리적 고립성에 기인한 바가 커요. 동쪽과 서쪽은 사막으로 막혀 있고 북쪽은 지중해, 남쪽은 나일 강의 폭포들로 가로막혀 있어 외부인의 접근이 매우 어려웠지요. 이런 천혜의 요새 환경이 평화를 보장했지요.


고왕국 시대의 파라오(왕, 여왕)들은 신적 권위를 가진 존재로 살아갔지요. 전쟁보다는 평화.. 대규모 건축 사업에 왕국 역량을 집중했어요. 평화의 상징인 "기자의 이집트 대피라미드" 등이 이 시기에 건설되었으며 행정 체계와 종교적 체계가 완성되었답니다.


하지만 이런 좋은 고왕국은 기후 변화로 인해 가뭄과 지방관들의 신권이 높아지면서 부정부패로 죽었고 제1중간기로 접어들었어요. 그러나 이 시기 형성된 이집트의 문화적 원형은 이후 중왕국과 신왕국 시기에도 물려받아 수천 년 이집트 문명의 근간이 되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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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p 3) 베네치아 공화국


평화 기간은 약 500년이에요.


베네치아 공화국은 서기 697년부터 1797년까지 약 1100년 동안 독립을 유지했으며 특히 르네상스 시기 내부적으로 매우 안정된 정치 체제를 유지했습니다.


베네치아 공화국의 평화는 역설적으로 동양의 흉노제국과 게르만족이 로마제국 이탈리아 본토를 침략하면서 이 침략을 피해 아드리아해의 척박한 늪지대로 숨어든 피난민들에 의해 세운 도시 국가가 발단이었습니다. 서기 697년 초대 "도제 파올로 루치오 아나페스토"가 선출되면서 공화국의 기틀이 마련되었는데 지리적 특성 덕분에 외부 침략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습니다.


image.png 동양의 흉노제국이 로마제국을 침략하는 장면을 Ai 로 그렸습니다.


대외적인 전쟁을 제외하고 내부적인 정치적 안정이 극에 달했던 평화기는 대략 1297년 대평의회 폐쇄 조치 이후부터 1797년 멸망 전까지인 약 500년으로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평화의 계기는 1297년에 이뤄진 세라타.. 즉 대평의회 폐쇄로 인해 만들어진 정교한 과두제 정치 시스템이었습니다. 특정 개인이 독재를 하지 못하도록 감시 체제를 만들었고 상업적 이익을 공유하는 귀족 계급의 합의 정치가 이루어졌어요. 이는 특정 집안들이 권력을 독점하되 그들 사이에서 철저한 견제와 균형을 이루게 한 법적 장치였지요. 이 시스템은 개인의 야심이 국가의 이익을 앞서지 못하게 차단했던 거에요.


베네치 공화국은 지중해 교역을 통해 돈을 벌었어요. 전쟁보다는 외교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전통을 가졌어요. 내부적인 봉기나 폭동이 거의 없었던 것으로 유명한 나라지요. 베네치아는 상업적 이익을 최우선으로 했기에 불필요한 전쟁을 피했어요. 비록 경제력이나 국방력은 그리 강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평화로워서 살기 좋았다고 해요.


나폴레옹에 의해 멸망하기 전까지 1000년을 버틴 이 공화국은 오늘날 민주주의의 견제와 균형 원리에 영감을 주었기에 그들의 행정 기록과 문서는 오늘날 정치학의 중요한 연구 대상이에요. 현재는 태국이나 베트남처럼 관광지로서 그 명맥을 잇고 있지요.


베네치아는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처럼 자체적으로 수군력을 보유했음에도 이를 주로 교역로 보호와 방어에만 사용했으며 분쟁은 최대한 외교로만 해결했어요. 베네치아는 귀족들의 합의체 제도를 통해 내부 불만을 제도적으로 흡수했어요.




















Top 4) 스웨덴


평화 기간 "약 212년쯤"이에요.


스웨덴은 17~ 18세기 초반까지 북유럽의 부국으로 성장하며 수많은 전쟁을 치렀어요. 하지만 1814년 나폴레옹 전쟁의 여파로 일어난 스웨덴 노르웨이 전쟁을 끝으로 더 이상 외부와의 전쟁에 참여하지 않게 되었어요.


그렇기에 스웨덴은 1814년 이후 오늘날까지 약 212년 동안 평화를 유지하고 있으며 이는 근현대 국가 중 가장 긴 평화 기록 중 하나에요. 1, 2차 대전 중에도 중립을 고수하며 사실상 자국 영토는 평화로웠지요.


평화의 결정적인 계기는 1814년 킬 조약과 그 이후 이어진 노르웨이와의 연합 형성이에요. 당시 스웨덴 국왕 베르나도뜨는 전쟁의 피로감을 절감하고 국가의 생존을 위해 중립 정책을 선택했어요. 전쟁의 참혹함을 겪은 뒤 평화주의로 선회했던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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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중엽쯤 스웨덴은 산업화를 진행하며 내부 안정을 꾀했어요. 1, 2차 대전 당시 주변국들이 모두 전쟁에 휘말렸으나 스웨덴은 외교적 줄타기를 통해 중립을 유지했어요. 냉전 시절에도 나토에 가입하지 않고 비동맹 정책을 고수하며 무력 충돌을 회피했지요.


오늘날 스웨덴은 지구상에서 가장 안정적인 복지 국가 가운데 하나로 꼽혀요. 최근 나토 가입으로 중립국 지위는 변했으나 여전히 자국 영토 내에서의 평화는 계속되고 있지요. 스웨덴의 장기 평화는 인적 자원 개발과 산업 혁신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며 북유럽 모델의 성공을 이끌었지요.


이런 스웨덴의 평화는 국방력이 강해져야 평화가 찾아온다는 얘기가 있듯이 강력한 자국 국방력과 외교적 중립이 결합된 결과였어요. 스웨덴은 서구열강 가운데서도 국방력이 가장 강한 편에 속하니까요.


그.러.나..


세계 열강인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입으로 인해 수백 년간 유지해온 중립국 지위를 포기하고 나토에 가입하는 역사적인 변화를 맞이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자국 내에서는 전쟁이 발생하지 않는 평화로운 상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나토 회원국으로서 집단 안보 체제에 편입됨에 따라 순수한 의미의 중립 평화 시대는 저물고 새로운 안보 국면을 맞이할 것으로 보입니다. (푸틴의 제국주의 때문에 북유럽 전체가 쑥대밭이 된 사례..)


























Top 5) 고대 시대의 로마 제국의 평화기 "팍스 로마나"


평화 기간은 "200년"이 넘어요.


팍스 로마나는 기원전 27년 아우구스투스가 내분과 봉기를 종식시키고 군주로 옹립되며 평화의 시대가 열렸고 서기 180년 마르꾸스 아우렐리우스의 사망까지 약 200년 동안 이어진 로마 제국의 최전성기이자 평화기, 황금기를 뜻해요.. 이 시절은 지중해가 로마의 평화 아래 통합되어 전쟁의 공포에서 벗어났던 평화의 시기로 기록되지요.


부유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한 변경 안정과 효율적인 관료제가 평화의 계기가 되었지요. 이 시절 로마는 관료제를 정비하고 법치를 확립했으며 정치적 혼란 없는 안정을 구가했고 교역이 활발해져 경제적 풍요를 누리면서 수많은 로마인들이 살쪘다고 해요. 문학과 예술이 장려되었으며 거대 건축물들이 이 시기에 건설되었지요.


로마 제국의 평화 시절에 만들어진 법률과 언어들은 오늘날 유럽 문명의 뿌리가 되었고 로마의 평화 정신은 훗날 평화의 이상적 모델로 언급되기도 해요.


물론 이후 로마 제국은 내부 권력 투쟁과 로마 제국보다 군사력이 훨씬 더 강력한 흉노제국이 서구를 침략하면서 쇠퇴의 길을 걷게 되지만 팍스 로마나 시기의 평화는 서구 문명의 근간이 되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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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p 5) 스위스


평화 기간은 "209년"이 넘어요.


근현대 시절의 나폴레옹 사건 당시 스위스는 프랑스의 침입을 받아 헬베띠아 공화국이라는 괴뢰 정부가 들어서는 등 큰 혼란을 겪었지만 나폴레옹이 패배한 이후 유럽 국가들은 스위스를 완충지대로 삼기로 합의했어요.


그래서 스위스는 1815년 빈 회의를 통해 영구 중립국으로 승인받았습니다. 약 1847년쯤 존더분뜨 싸움이라는 짧은 봉기가 있었으나 이를 제외하면 대외적으로 약 209년이 넘는 기간 동안 평화를 유지하고 있어요.


스위스는 약 209년 동안 외부 침입을 받지 않은 평화의 상징이고 클라이브 처치의 "(스위스 간사, 2013)"라는 책에 평화 유지 과정이 기록되어 있어요.


약 1815년쯤 파리 조약에서 유럽 나라들이 스위스의 영구 중립을 보장한 것이 가장 큰 계기입니다. 스위스인들 스스로도 다인종 다언어 국가로서 내분을 막고자 외부 전쟁에 관여하지 않는 것이 최선임을 깨달았던 거에요.


다만 스위스는 평화를 원하되 침입 시에는 강력히 응징한다는 원칙을 세워 주변국이 감히 침략할 엄두를 내지 못하게 했어요. 이는 역사적으로 베트남이나 조선이 했던 정책과도 비슷하지요. 스위스는 2차 대전 시절에 나치 독일과 이탈리아에 둘러싸인 고립된 상태에서도 무장 중립을 통해 침입을 저지했어요. 베트남이 미국과 전쟁할 때 모든 국민들이 전쟁에 보급을 하거나 참전해서 싸웠듯 스위스도 모든 국민들이 주요 터널과 다리에 폭발물을 설치하는 등 철저한 방어 준비가 평화를 뒷받침했어요.


근세 시절에 스위스 용병은 유럽에서 가장 용맹했으나 자국은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비껴갔습니다. 현재 스위스는 국제기구의 중심지로서 평화의 상징과 같은 국가입니다. 유엔 회원국이지만 여전히 군사 동맹에는 가입하지 않고 있으며 국제 분쟁의 중재자 역할을 수행하고 있지요.

현재 세계의 수많은 국제기구가 스위스에 본부를 두고 있으며 국제 분쟁의 중재자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스위스의 평화 모델은 지형적 이점과 좋은 민병대 제도 그리고 금융업을 통한 경제적 이해관계가 얽혀 만들어진 독특한 사례에요. 향후에도 이러한 중립 노선은 지속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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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p 6) 아시아의 "오스만 제국"


평화 기간은 약 200년 동안이에요.


세계 최강 제국이었던 몽골제국의 식민지였던 오스만 제국은 식민 지배에서 해방된 후, 또다시 몽골제국을 계승한 티무르 제국의 반식민지 지배를 받았다가 해방되는 등 갖은 비극을 겪었으나 이런 고난들에서 해방된 후 오스만 제국은 발칸 반도와 중동, 북아프리카를 지배하던 16~ 17세기 사이를 "팍스 오토마니카"라고도 할 수 있는 최전성기를 구가하게 된다. 동로마 제국마저 멸망시킨 후에 유럽 열강들보다 막강한 군사력을 과시한 오스만 제국은 이 시기 오스만 제국 지배하의 수많은 다양한 인종, 민족과 종교 조직들은 상대적인 안정과 질서를 인정받았습니다.


팍스 오토마니카는 주로 술레이만 1세의 통치기를 의미하는데 이 시기 오스만 제국 지배하의 발칸 반도와 중동 지역은 이전에 겪었던 극심한 종교 갈등과 전쟁에서 벗어나 엄청난 평화기를 누렸습니다. 정확한 평화 기간은 학설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대체적으로 "약 150년~ 200년" 정도로 추산됩니다.


1453년 콘스탄티노폴리스 정벌 이후 오스만 제국은 동로마 제국을 정벌한 거대 강국으로 부상했습니다. 술레이만 대제 시대에 영토 확장이 정점에 달하며 내부적인 질서가 확립되었습니다.


평화의 핵심 동력은 밀레트 제도였습니다 피정복민의 종교적 자치권을 인정해주는 이 정책은 피정복민들의 종교와 관습을 존중하면서 세금을 걷는 효율적인 통치 방식은 반란을 억제했습니다. 또한 예니체리라는 강력한 보병 상비군이 내부 치안을 완벽하게 통제했습니다. 오죽하면 당시 세계 1위의 기병대는 대청제국(청나라)의 팔기군이며 세계 1위의 보병대는 오스만 제국의 예니체리라고 합니다.

오스만 제국은 이슬람을 국교로 하면서도 기독교와 유대교 공동체에 넓은 관용을 베풀었습니다.


이 시기 실크로드를 통한 동서 교역은 오스만의 보호 아래 가장 안전하게 이루어지면서 명나라나 대청제국에서부터 출발한 육상 세계 무역은 무굴제국이나 북원제국이나 준가르 제국, 오이라트 제국, 러시아 제국, 그리고 사파비 제국을 거쳐 오스만 제국까지 이어지면서 그야말로 유라시아 전를 관통하면서 이슬람 예술과 건축이 비잔틴 양식과 결합하여 독특한 문화를 형성했습니다. 지중해와 홍해 무역권이 오스만 제국의 보호 아래 안정적으로 운영되었습니다.


다만 이 평화기는 강력한 중앙 정부의 군사적 위엄 아래 유지된 것이었습니다. 오스만은 법전인 카눈을 제정하여 제국 전체에 일관된 질서를 부여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세계 패권을 구가했던 초강대국들이었던 명나라, 오스만 제국, 대청제국의 시대는 17세기 후반부터 점차 쇠퇴의 길을 걸으며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오스만 제국은 해체되었고 오늘날 터키 공화국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구축했던 군 행정 체계는 오늘날 중동 국가들의 국경과 사회 구조에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현재 터키는 이 시기의 영광을 국가 정체성의 중요한 축으로 삼으며 오스만 제국 시대의 다문화적 유산을 바탕으로 지역 내 영향력을 강화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팍스 오토마니카는 다민족, 다인종, 다종교 사회가 어떻게 하나의 통치 체제 아래서 조화를 이룰 수 있는지에 대한 포용적 역사적 모티브를 제시했습니다. 비록 제국은 17세기 후반부터 쇠퇴하며 갈등이 재점화되었으나 그 안정기는 중동과 발칸 역사의 화려한 최전성기이자 평화기로 기억됩니다.
































Top 7) 비잔틴 왕국의 마케도니아 왕조


평화 기간은 "189년"이 넘어요.


약 서기 867~ 1056년쯤까지의 마케도니아 왕조 시기는 비잔틴 왕국의 가장 최전성기이자 황금기이자 평화기였어요. 바실리우스 1세가 옥좌에 옹립되며 평화가 찾아왔어요. 이전 시절의 성상 논쟁을 잠재우고 국가 기틀을 다시 세웠어요.


평화의 계기는 행정 개혁과 국방 안보 재정비에 있어요. 주변국들과의 외교적 노력을 통하여 변경을 안정시켰고 법률을 재정비하여 중앙 집권을 다졌지요.


뿐만 아니라 이 시절 비잔틴 왕국은 예술과 교육이 부활했고 경제적으로는 화폐 가치가 안정되어 교역의 중심지가 활발해졌어요.


마케도니아 왕조가 끝난 후 비잔틴 왕국은 다시 쇠퇴하기 시작하면서 비잔틴은 그야말로 여러 이민족들에게 끊임없이 쳐맞는 "동네북" 신세로 전락했으나.. 이 평화기에 보존된 고대 그리스 로마의 지식은 훗날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밑거름이 되었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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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p 8) 리히텐슈타인


평화 기간은 "약 150년" 동안이에요.


약 1866년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전쟁 당시 리히텐슈타인은 오스트리아 편에 서서 80명의 졸병들을 파견했어요. 하지만 단 1명의 사상자도 없이 오히려 이탈리아 친구 1명을 데리고 돌아왔다는 일화가 유명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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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후 약 1868년쯤에 군대를 완전히 해산한 리히텐슈타인은 150년이 넘는 기간 동안 평화를 유지해오고 있어요. 군대가 아예 없는 국가로서 외부 침입을 받지 않은 드문 사례에요. 경제적 이유와 군대 무용론으로 인해 군대를 폐지한 것이 역설적으로 평화의 계기가 되었던 것이지요. 주변국인 스위스와 오스트리아 사이에서 어느 쪽에도 위협이 되지 않는 존재가 됨으로써 평화를 보장받았어요. (서구는 은근히 군대 없는 나라가 많다보니..)


1차 대전 이후 오스트리아의 패배로 경제적 위기에 처하자 스위스와 관세 동맹을 맺고 화폐를 스위스 프랑으로 변경했지요. 2차 대전 중에도 스위스의 보호 아래 중립을 유지하며 전화를 피했어요.


그런데 오늘날 리히텐슈타인은 가장 부유한 국가 가운데 하나로 군대 없이 경찰력만으로 사회 안정을 유지하고 있는 국가라 여러 국가에게 부러움의 대상이 되곤 하지요. 스위스가 안보와 외교의 일부를 대행하며 평화로운 환경을 제공하고 있어요.


리히텐슈타인은 좋은 경제력과 중립국과의 연대를 통해 평화를 유지하는 독특한 생존 전략을 보여줘요. 앞으로도 스위스와의 밀접한 관계 속에서 평화가 지속될 것으로 보여요.














Top 9) 조선(후기의 평화기)


평화 기간은 "약 91년" 동안이에요.


의외로 조선 시대는 처음부터 평화로운 건 아니었는데 조선 시대가 외세의 대규모 침략은 크게 삼포왜란, 임진왜란, 정유재란, 정묘호란, 병자호란 등이 있지만 대규모 침략을 제외한 소규모 침략과 내부 쿠데타마저 없던 그야말로 "완벽한 평화기"는 조선 후기에 한정됩니다.


1637년 당시 세계 1위 기병대인 팔기군이 조선을 침략한 후 초토화시킨 병자호란의 종전 이후부터 이인좌의 난(무신란, 1728년)까지 조선 후기에 약 91년 동안 외부 세력과의 대규모 전쟁이 없었던 긴 평화기를 가졌습니다. 하지만 이는 동아시아 역사에서도 보기 드문 굉장히 장기적인 평화기(안정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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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단은 16세기 후엽~ 17세기 초엽에 겪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라는 사실상 조선이 멸망당한 것이나 다름 없을 정도로 조선 역사상 최대 규모의 비상사태였습니다. 2차례의 대규모 군사력 외침 이후 조선은 국방 체제를 재정비하고 대외 정책을 안정시키며 오로지 내부 평화 유지에만 집중했습니다.


평화의 계기는 대청제국(청나라)가 조선의 북방을 완전히 정복한 후에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 대만 등 정복에 집중하면서 의도치 않게 북방에서 조선을 침략할 중앙아시아계 북방 유목 군단들이 사라져버렸고, 동쪽에서는 일본 에도 막부와의 통신사 파견을 통한 외교 강화의 성공으로 조선 역사상 유래를 찾기 힘든 안정기를 구가하게 됐습니다. 그리하여 내부적으로는 대동법 실시와 탕평책을 통해 당쟁을 억제하고 국가를 안정화시키려는 국왕들의 노력이 뒷받침되었습니다.


특히 18세기 영조와 정조 시기에 안정기는 최정점에 달했습니다. 이는 조선 역사뿐 아니라 대한민국 5000년 역사상 사실상 유일한 평화기이기도 했습니다. 그리하여 이 조선 후기를 조선의 르네상스라고 부르기도 하며 실학이 발달하고 상업이 융성을 가져옵니다. 비록 세도 정치 시기로 접어들며 내부적인 부패와 대규모 군란이나 민란의 계기가 쌓여갔지만 외세의 침략이 없는 상태는 19세기 중엽까지 지속되었습니다.


이 긴 평화는 유교적 가치관이 한국 사회의 심층부에 깊게 뿌리내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 발해시대부터 고려, 조선시대까지 집권층들은 항상 유교적 가치관이 강해서 성을 억압하고 폐쇄적인 금욕주의적인 보수적인 정체성을 가졌는데 이 긴 안정기로 인해서 그런 "성리학의 보수적인 금욕주의 사상"이 민간에까지 퍼져서 전국가적으로 완전히 뿌리내리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하지만 치명적인 단점도 존재합니다. 사회가 경직되면서 조선 초기까지 역동적이던 사회가 동적으로 바뀌고, 이미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며 국고가 완전히 바닥을 쳤고 신분제가 붕괴된 상태인 조선은 말그대로 "수명이 끝난 국가"였기에 국가를 완전히 새롭게 출발시키던가 근대화를 하지 않으면 더이상 가능성이 없는 상태였다. 말그대로 후기의 조선은 "지옥도" 그 자체라 멀쩡하게 살아가는 백성이 없고 거의 모든 백성의 대부분이 해적이나 산적, 도적질을 하지 않으면 생활하는 게 불가능했고 아니면 "노예"로 전락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런 지옥 같은 조선은 만약 청제국의 식민지로 계속 갔거나, 아니면 러시아 제국의 식민지가 됐거나 혹은 일제강점기가 되지 않았더라도 언젠가는 결국 스스로 쿠데타가 발생해서 끝장났을 가능성이 대단히 높은 마치 "북한"과도 같은 상태였다. 그렇기에 조선의 골든타임이었던 철종 시기나 영조나 정조 시기에 어떻게든 근대화를 끝마쳤어야 했는데 조선은 그 시기에 고려나 신라처럼 상업이나 공업을 발전하긴 커녕 오히려 내부 정쟁으로 인해서 더욱더 퇴보하고 보수적인 사회로 추락해만 갔고 왕권은 완전히 신하들에게로 넘어간 "국가라고 볼 수 없는 상태"가 되버린다.


그렇기에 이미 일본이 쳐들어왔을 때 조선은 제대로 국가적으로 대응하거나 막긴커녕 "툭하면 터질" 상태였던 것이다. 그 탓에 조선은 대한민국 역사상 거의 유일하게 외세가 침략했음에도 국가적으로 제대로 된 군사적 대응 1번 못해보고 일본의 속국이 되는 신세로 전락해버린다.



















Top 10) 아이슬란드


평화 기간은 "약 82년" 동안이에요.


아이슬란드는 지리적으로 북대서양 한복판에 고립되어 있어 오랫동안 외부의 대규모 침략으로부터 자유로웠어요. 1944년 덴마크로부터 완전히 독립한 이후 평화로운 국가 건설에 매진했지요.


아이슬란드는 상비군이 없는 국가로 유명하며 세계 평화 지수에서 항상 1위를 차지하는 국가에요. 냉전기 기지 문제로 갈등은 있었으나 실질적인 전쟁은 없었지요.


바이킹족의 후손들이 정착한 땅임에도 불구하고 폭력적인 해결 방식보다는 협치와 법치, 의회를 통한 해결을 중시하는 전통이 평화의 뿌리가 되었지요. 930년에 세워진 알팅그 의회는 이러한 평화의 상징이에요.


아이슬란드는 바이킹의 후손들이 세웠으나 점차 평화로운 농경과 어업 공동체로 변모했던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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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아이슬란드는 약소국임에도 불구하고 1958년 9월 1일~1976년 6월 1일까지 했던 1, 2, 3차 대구전쟁 때 영국과 전쟁해서 승리했지요. 영국은 아이슬란드와 전쟁해서 완전히 패배를 하면서 끝장이 났다는 걸 알리는 사건이었어요.


아이슬란드는 나토 회원국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군대를 보유하지 않고 해안경비대만 운영하고 있어요. 사회적 신뢰도가 매우 높고 범죄율이 낮아 내부적인 평화도 대한민국보다도 치안이 높은 세계 최고 수준이에요. 군대가 없는 국가라는 정체성이 평화의 가장 큰 계기에요.

기후 변화와 북극항로 개척으로 인해 지정학적 중요성이 커지고 있어 평화 유지에 새로운 도전이 예상되며 중국, 러시아, 미국의 영향력이 아이슬란드와 그린란드에 뻗치고 있어요. 재밌는 사실은 아이슬란드와 그린란드라는 이름은 서로 상반되는데.. 아이슬란드는 얼음이 없는 따뜻한 땅이며.. 그린란드는 이름과는 달리 얼음이 많은 땅이에요.


이는 아이슬란드를 처음 발견한 바이킹족들이 다른 사람들은 못 오게 이곳은 얼음뿐인 거지같은 땅이니까 오지말라고 헛소문을 퍼트려서 아이슬란드가 됐고.. 오히려 얼음으로 된 그린란드가 날씨가 습하고 무덥고 열대 기후 섬처럼 살기 좋은 곳이니 저기서 살라고 얘기했다는 얘기가 있어요.
















Top 11) 꼬스따리까(Costa Rica)


평화 기간은 "약 75년" 동안이에요.


약 1948년쯤에 라틴 아메리카에 살던 꼬스따리까(Costa Rica)는 짧은 봉기를 겪었다고 해요. 봉기에서 "호쎄 삐께레쓰 뻬렐르"라는 사람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봉기를 일으켜 민주주의를 정착시키지 못하게 하는 걸 막고자 파격적인 결정을 내렸어요. 바로 약 1948년쯤에 군대를 완전히 폐지하기로 결정한 거지요.


그후 약 1949년쯤 헌법으로 군대를 영구히 폐지한 코스타리카는 이후 75년 넘게 중남미에서도 평화의 섬으로 불리고 있어요. 75년 넘게 평화와 민주주의를 유지해오고 있지요.


군대 폐지는 국방 예산을 교육과 복지 그리고 환경 보호에 투입할 수 있게 한 결정적 계기였어요. 이는 국민의 삶의 질을 높여 내부적인 갈등 요소를 사전에 차단했어요.

안보 예산을 오롯이 교육과 복지에 투자하기로 해버린 정부의 결단이 평화의 핵심 계기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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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국인 니까라과나 엘쌀바도르가 부정부패, 탐관오리, 독재로 현재 고통받고 있지만 꼬스따리까는 중립을 선언하고 평화 협상을 중재했지요. 오쓰까 아리아쓰 대통령은 이런 공으로 1987년 노벨 평화상을 받기도 했지요. 꼬쓰따리까는 평화적 민주주의 문화를 정착시켰던 거에요.


현재 꼬쓰따리까는 생태 관광과 지속 가능한 개발로 노력하며 라틴 아메리카에서도 드물게 "선진국" 같은 느낌을 주고 있어요. 군대가 없어도 국제법과 미주 기구의 보호 아래 안보를 유지하며 평화를 만끽하고 있어요. 생태 관광과 평화 산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어요.


꼬스따리까의 사례는 안보 없이도 정부의 안보와 평화를 지킬 수 있다는 증거가 되요. 물론 라틴 아메리카 특유의 개방된 성문화, 성매매 관광 등으로 인해 유입되는 마약과 그로 인해 마약 카르텔 등이 탄생할 환경이 마련되곤 있으나 꾸준히 대응하고 있어요.










물론 위의 국가들이 부러울 따름이긴 해요.


전쟁이 없다니.. 평화롭다니..


하지만 지금 현재 대한민국은 절대로 위의 국가들과 같을 순 없고 같아서도 안 됩니다.


대한민국은 일제강점기 이래로 가장 위험한 국제사회를 경험하고 있기에 그 어느 때보다도 국방력을 강화해야 하고


세계 패권이 다시금 동북아시아로 이동하면서 그것에 따라서 동북아시아에 긴장 관계... 중국의 대만 침공이 점점 가시화되는 분위기, 그리고 중국과 바로 옆나라인 이란vs미국 전쟁의 가능성이 커지면서 대한민국도 혹시나 전쟁의 소용돌이에 빠져들진 않을지 항상 긴장을 해야하며


중국이 이런 상황에서 대한민국을 침공하거나 이용하진 않게끔 항상 중국 공산당의 침입으로부터도 예의주시하면서 국방력을 강화해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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