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시아 역사상 최강의 군사력을 가진 파간(바간)제국

동남아시아 역사상 최강의 군사력을 가진 미얀마의 파간(바간) 제국

by 지구본 여행기





1) 파간 제국이란?


동남아시아 역사상 가장 최강의 군사력을 가진 대제국이 있었습니다. 그 이름하야 바로 "파간 제국(Pagan empire=바간 제국=바간 왕국=바간 왕조=버간 제국 등 다양하게 불림)". 파간 제국은 태국, 캄보디아를 정복함은 물론 막강한 해군 함대를 동원해서 저 멀리 인도네시아의 자바 섬까지 정복하고 서남아시아의 스리랑카 섬까지 군사 지원하는 등 우리가 아는 빈약한 동남아시아의 이미지를 박살낸 그런 대제국인데 하필 시대가 중세시대라..


당시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앞세운 대원제국(원나라)이 파간 제국을 정복하면서 대원제국이 동남아시아 식민지화를 시키는 데 전진기지로 삼는 바람에 그렇게 파간 제국은 무자비하게 멸망당하면서 세계사에서 완전히 사라집니다. 그렇다면 이 파란만장하고도 비운의 대제국, 파간 제국의 흥망성쇠를 같이 알아보겠습니다.


파간 제국이 세워지기 훨씬 이전부터 동남아시아 미얀마 지역에는 여러 문명이 존재했습니다. 기원전부터 이라와디 강 유역에는 "쀼족"이라는 민족이 들어와 마치 고대 그리스처럼 여러 도시 국가들을 세웠습니다. 쀼족 왕국은 인도 문화와 힌두교, 불교를 받아들여 높은 수준의 문화들을 꽃피웠고 중국으로부터 선진적인 철기 문화를 받아들이고 독자적인 수리 시설을 만들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미얀마 남부 지역에는 몬족 왕국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몬족 역시 상좌부 불교를 일찍부터 신봉했으며 바다와 인접한 지리적 이점을 살려 해상 무역으로 부를 축적했습니다. 서부 해안 지역에는 라카인 왕국이 독자적인 정체성을 유지하며 발전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민족 왕국들이 각자의 문화를 발전시키던 중 9세기 무렵에 북쪽에서 티베트 버마어족에 속하는 버마족이 이라와디 강 중류 지역으로 공격해 오기 시작했습니다. 버마족은 건조한 기후와 비옥한 토양을 갖춘 파간 지역에 정착하여 작은 도시들을 건설했고 점차 세력을 키워 나갔는데 이것이 바로 동남아시아 역사상 가장 큰 획을 그은 파간 제국의 출발점이었습니다.










2) 파간 제국의 건국 과정


파간 제국이 본격적으로 거대한 통일 제국으로 성장한 계기는 11세기에 즉위한 아노라타라는 국왕의 등장 덕분이었습니다. 1044년에 왕좌에 오른 아노라타 국왕은 뛰어난 군사적 재능과 정치적 안목을 갖춘 위대한 지도자였습니다. 아노라타 국왕은 먼저 농업 생산력을 획기적으로 높이기 위해 짜욱세 지역에 대규모 관개 수로와 저수지를 건설했고 수많은 코끼리와 인력을 동원하여 댐을 쌓고 물길을 열어 황무지를 비옥한 농토로 바꾸었습니다.


이로 인해 쌀 생산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파간 제국은 든든한 경제적 기반과 식량 자원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풍부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강력한 군대를 양성한 아노라타 국왕은 남쪽 지역들로 영토를 넓히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사건은 1057년에 남쪽의 강력한 몬족 왕국이었던 타톤 왕국을 정복한 일입니다. 아노라타 국왕은 타톤 왕국을 정복하면서 수많은 몬족 학자들과 기술자들, 불교 승려들을 수도 파간(바간)으로 데려왔는데 당시 파간에는 아리 승려라고 불리는 타락한 토착 종교 그룹이 있었기에 아노라타 국왕은 이들을 모두 쫓아내고 몬족으로부터 받아들인 순수한 상좌부 불교를 국교로 삼았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파간 제국은 몬족의 첨단 문화와 문자, 상좌부 불교를 바탕으로 국가의 정신적 통합을 이루었고 왕권은 더욱 강력해졌으며 이후 파간 제국은 미얀마 전역을 아우르는 동남아시아 최초의 버마족 통일 제국으로 우뚝 서게 되었습니다.















2) 파간 제국이 태국과 캄보디아를 정복하고 인도네시아를 원정한 후 스리랑카와 동맹맺다.


이렇게 강력해진 파간 제국은 동쪽으로는 샨족이 거주하는 산악 지대까지 진출했고 남쪽으로는 말레이 반도의 끄라 지협 근처 테나세림 해안까지 영토를 확장했으며 더 나아가 태국, 캄보디아를 정복했으며 정치적 군사적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캄보디아 지역에는 거대한 앙코르 와트 사원을 지을 정도로 막강한 국력과 군사력을 자랑하던 크메르 제국이 굳건하게 버티고 있을 정도니 대단한 셈입니다.


또한 미얀마의 파간 제국은 이어서 해군력을 동원해 인도네시아 자바 섬까지 해상 원정을 나갔습니다.


게다가 파간 제국은 서남아시아의 스리랑카와 군사적으로 굳건한 동맹을 맺고 막대한 원조를 지원하기도 했습니다. 파간 제국과 스리랑카는 상좌부 불교라는 깊은 종교적 유대감을 바탕으로 오랫동안 특별하고 긴밀한 정치적, 군사적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11세기 중엽 스리랑카는 국가의 존망이 걸린 매우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인도 남부에서 세력을 팽창하며 무자비한 정복 전쟁을 벌이던 촐라 제국이 강력한 해군을 이끌고 스리랑카를 침입했기 때문입니다. 촐라 제국의 잔혹한 공격으로 스리랑카의 유서 깊은 수도 아누라다푸라가 파괴되었고 수많은 불교 사원들이 약탈당하고 불타버렸습니다.


당시 스리랑카의 국왕이었던 비자야바후 1세는 수도를 빼앗기고 남부의 험준한 산악 지대로 쫓겨나 힘겨운 전쟁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이 절체절명의 국가적 위기 속에서 비자야바후 1세는 같은 상좌부 불교 국가이자 강력한 군사력과 엄청난 경제력을 자랑하던 미얀마 파간 제국의 아노라타 국왕에게 긴급히 사신을 보내 간절히 도움을 요청했던 겁니다.


아노라타 국왕은 불교의 진정한 수호자로서 스리랑카의 처참한 위기를 결코 외면하지 않았는데 아노라타 국왕은 이교도인 촐라 제국을 견제하고 상좌부 불교의 본산을 지킨다는 명목 하에 막대한 양의 재물과 보석, 군사 행동에 필요한 귀중한 물자들을 전함에 가득 실어 스리랑카로 보냈습니다. 이러한 미얀마 파간 제국의 전폭적인 경제적, 물질적 원조는 벼랑 끝에 몰려 있던 스리랑카 군대가 새로운 무기를 구입하고, 군사력을 재건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일부 역사적 기록과 정황에서는 미얀마 파간 제국이 촐라 제국을 견제하기 위해 소규모의 직접적인 파병을 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지만 가장 확실하고 검증된 사실은 바간 제국의 거대한 재정적, 외교적 원조가 스리랑카의 독립 전쟁에 엄청난 밑거름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미얀마 파간 제국의 든든하고 강력한 지원을 받은 비자야바후 1세는 오랜 전쟁 끝에 군사력을 다시 회복하여 결국 1070년 무렵 촐라 제국의 군대를 스리랑카 섬에서 완전히 몰아내고 영광스러운 독립을 쟁취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조국의 독립을 이룬 후 비자야바후 1세는 파괴된 불교 질서를 회복하고 사원들을 재건하려 했지만 전쟁의 끔찍한 참화 속에서 올바른 계율을 전수해 줄 정식 고승들이 스리랑카에 거의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불교의 맥이 끊길 위기에 처하자 비자야바후 1세는 다시 한번 굳건한 동맹국인 바간 제국에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습니다. 아노라타 국왕은 이번에도 흔쾌히 요청을 수락하고 수많은 파간의 덕망 높은 고승들과 온전하게 보존된 불교 경전들을 특별히 마련한 배에 태워 스리랑카로 파견했습니다. 파간에서 도착한 고승들은 스리랑카의 젊은 승려들에게 다시 정식으로 수계를 주었고 끊어질 뻔했던 스리랑카의 상좌부 불교는 화려하게 부활하여 오늘날까지 이어질 수 있었던 겁니다.


이렇게 연대를 강화해간 두 해상강국의 군사적, 종교적 동맹은 파간 제국의 전성기 내내 매우 활발한 문화 교류로까지 이어졌습니다. 물론 12세기 후반 스리랑카의 파라크라마바후 1세 시절에 귀중한 자원이었던 코끼리 무역의 이권 문제와 사신 대우 문제로 양국 간에 심각한 마찰이 발생하여 스리랑카의 막강한 함대가 파간 남부의 항구 도시들을 기습 공격하는 일시적이고 폭력적인 갈등도 있긴 했습니다만.. 하지만 두 국가는 기본적으로 불교라는 뗄 수 없는 강력한 공통 분모 덕분에 곧 이성을 되찾고 평화 협정을 맺어 종교적 교류를 다시금 평화롭게 이어나갔습니다. 이러한 파간 제국과 스리랑카의 상호 원조 역사는 동남아시아와 서남아시아를 잇는 가장 모범적이고 역사적으로 널리 증명된 중요한 외교 동맹 사례로 굳게 평가받고 있습니다.


시간이 흘러 파간 제국은 짠시타 국왕과 알라웅시뚜 국왕 등 현명하고 강력한 명군들의 통치를 거치며 12~ 13세기에 걸쳐 찬란하고 눈부신 황금기를 누렸습니다. 이라와디 강변의 넓고 비옥한 평야에는 아난다 사원이나 담마양지 사원 같은 웅장하고 정교한 불교 사원과 거대한 탑들이 국가적 역량을 총동원하여 끊임없이 세워졌던 겁니다. 21세기까지도 파간 지역에는 붉은 벽돌로 정교하게 지어진 수천 개의 사원들이 경이로운 모습으로 남아 있어 과거 파간 대제국의 웅장한 영광을 지구상에 보여주고 있습니다.













2) 세계 최강 제국 대원제국(원나라)의 미얀마 정복


파간 제국의 백성들은 잘 정비된 짜욱세와 민부 지역에서 대량으로 생산되는 풍부한 쌀과 곡물을 바탕으로 굶주림 없는 풍요로운 생활을 누렸고 이웃 국가들과의 활발한 육로 및 해로 무역을 통해 찬란한 다문화 시대를 꽃피웠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동남아시아 역사상 가장 아름답고 강성했던 패권국이었던 파간 제국의 번영도 영원할 수는 없었습니다. 12세기 세계 역사상 최강의 제국이 순식간에 세계를 정복하고 동남아시아까지 식민 지배하기 위해 파간 제국까지 침략하기 시작하면서 파간 제국 역시 그 식민지화의 날카로운 강철 칼날을 도저히 피할 수 없었습니다. 바로 지구 역사상 세계 최강 패권제국 대원제국(원나라)의 동남아시아 식민지화의 시작이었습니다.


세계 최강 패권제국 대원제국은 1253년 대리국을 무자비하게 정복한 후 마침내 미얀마의 미얀마 파간 제국과 직접적으로 국경을 맞닿게 되었습니다. 중국 최남단 광역을 완전히 정복하고 남송 대륙 전역마저 정복한 후 식민지화한 쿠빌라이 대칸의 세계 최강 패권제국 대원제국은 끝없는 정복욕을 불태우며 시선을 동남아시아 전역으로 돌려, 무더운 동남아시아 정글 지역을 식민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1271년 쿠빌라이 대칸은 파간 제국에 고압적이고 강력한 사신단을 파견했습니다.


사신단의 목적은 파간 제국이 스스로 무기를 내려놓고 항복한 후에 세계 최강 패권제국 대원제국의 식민지가 될 것을 협박하는 최후통첩을 전달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파간 제국의 국왕은 나라티하파떼였습니다. 나라티하파떼 국왕은 아무리 침략자들이 세계 최강 제국이라 하더라도 싸우지도 않고 먼저 우리(미얀마)가 식민지로 자처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1277년 세계 최강 패권제국 대원제국이 보낸 험준한 윈난성 국경을 돌파해 순식간에 미얀마 영토로 진격했습니다. 나라티하파떼 국왕은 모든 병력을 총동원해 수만 명의 병력에 달하는 보병대와 수천 마리의 거대한 전쟁 코끼리 부대로 웅장하게 무장한 파간 제국의 대군(大軍)을 국경 지대인 응아사웅잔 지역으로 총집결했습니다.


인구수도 많았고 모든 병력을 총집결시킨 파간 제국이 분명 숫적으로 훨씬 더 많았지만, 세계 최강 패권제국 대원제국의 노련한 원정대들은 곧바로 군용마에서 내려 빽빽한 숲속으로 재빠르게 몸을 은신했고 매복 기습전을 가해 거대한 미얀마 전쟁 코끼리 부대들을 향해 비 오듯이 엄청난 양의 화살을 쏘아댔습니다. 눈과 피부에 날카로운 강철 화살들을 맞은 전쟁 코끼리 군단들은 끔찍한 고통과 극도의 공포에 질려 통제를 잃고 미쳐 날뛰기 시작했고 오히려 뒤따라오던 아군인 바간 제국의 수많은 보병대들을 잔인하게 짓밟으며 자신들의 진영을 완전한 아수라장으로 만들었습니다. 순식간에 대열이 무너지고 극심한 혼란에 빠진 파간 제국 대군(大軍)은 전쟁 코끼리 군단들이 패닉에 빠진 틈을 타 몰아치듯 공격해들어오는 세계 최강 패권제국 대원제국 원정대의 무자비한 기병 돌격과 강철 칼날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며 그 자리에서 대학살을 당하며 대패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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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과 결국 미얀마는 완전히 함락당하고 정복당하고 맙니다. 이 응아사웅잔 전투에서 미얀마 파간 제국이 참혹한 참패를 당한 이후 파간 제국의 국력과 군사력은 완전히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급격히 파괴당하기 시작합니다. 동남아시아 전역은 패닉에 빠지기 시작했고 특히나 가장 큰 충격은 인도차이나 반도였습니다.


고대시대부터 동남아시아 역사상 최강의 군사력으로 베트남보다 강했으며 태국, 캄보디아, 인도네시아를 정복하였고 더 나아가 스리랑카까지 영향력을 끼쳤던 미얀마 파간 제국이 제대로 막지도 못한 채 허무하게 대패를 당한 겁니다.


기세를 탄 세계 최강 패권제국 대원제국이 보낸 원정대는 1283년에 다시 한번 압도적인 대규모 침략을 개시하여 미얀마의 캬웅세와 바모라는 핵심 요충지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남은 파간 제국의 대군들을 완전히 대량 학살해버립니다. 기록에 따르면 이건 "전투"가 아니라 파간 제국의 대군이 일방적으로 "학살당한 학살극"이었습니다.


파간 제국을 오랫동안 지켜주던 이라와디 강 유역의 핵심 방어선까지 죄다 모두 처참하게 파괴당하자 화려했던 파간 제국의 수도 파간은 거센 폭풍 앞의 가녀린 등불 신세가 되었습니다. 침략군이 턱밑까지 다가오자 한때 결사항전을 외친 나라티하파떼 국왕이었으나 도저히 막아내는 건 불가능하다며 백성들과 수도까지 매정하게 죄다 버리고 몸만 저 멀리 남쪽 델타 지역인 저지대 미얀마의 바세인 지역으로 비겁하고 처량하게 도망쳐 버렸습니다.


이 끔찍한 비겁함 때문에 그는 훗날 미얀마 역사에서 대원제국군이 보낸 원정군의 침략을 피해 끝까지 항전하지 않고 도망친 국왕이라는 뜻의 "떠요우삐에 민"이라는 칭호로 동남아시아에서 영영 불리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파간 제국 국왕이 백성들을 죄다 버리고 도망간 사이, 1287년에 세계 최강 대원제국의 원정대장인 "에센 테무르 장군"은 파간 제국의 수도 파간에 순식간에 입성했습니다.
















3) 세계 최강 제국 대원제국(원나라)의 미얀마 식민 통치의 역사


황금빛으로 화려하게 빛나던 종교 사원들은 무참히 파괴와 약탈당했고 수백 년 동안 찬란한 힌두교와 불교 역사와 동남아시아 최강의 패권적 역사를 자랑하던 황금의 제국 "파간 제국"은 이 날을 기점으로 식민 지배기와 멸망의 어두운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도망쳤던 나라티하파떼 국왕의 최후 역시 비참했습니다. 남쪽으로 도망쳤던 그는 권력에 눈이 먼 자신의 친아들인 띠하뚜에게 독살당했기 때문입니다. 동남아시아 역사상 가장 강하고 위대했던 제국이 무자비한 세계 최강 패권제국 대원제국의 말발굽 아래 처참하게 짓밟히고 날카롭게 베어나간 폭력적인 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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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간 제국을 군사적으로 완전히 정복한 세계 최강 대원제국은 자원이 풍부한 미얀마를 단순히 정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들의 제국 영토로 영구히 병합하여 체계적으로 식민 통치하기 위한 치밀한 계획을 세웠습니다. 조지 그로트가 1992년에 저술한 "대원제국의 통치 기구 연구"라는 학술 서적과 고려대학교 동북아역사넷의 행중서성 및 영북행성 관련 검증된 사료들을 깊이 참고하여 이 잔혹한 식민 통치 과정을 아주 자세히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세계 최강 패권제국 대원제국은 1287년에 자신들이 완전히 정복한 미얀마 파간 제국에 직할 식민 통치 최고 기구인 "행중서성"을 전격적으로 주둔 배치했습니다. 미얀마에 설치된 이 무시무시한 행중서성의 이름이 바로 "면중행성"이었습니다. 행중서성은 줄여서 "행성"이라고도 부르는데, 동시대 고려를 식민 지배하기 위해 설치되었던 정동행성이나 중국 대륙 전역을 식민 통치하던 운남행성처럼 세계 최강 패권제국 대원제국이 정복한 정복지들이나 전 세계를 효과적으로 식민 통치하기위해 중앙에서 직접 파견한 최고위 군사 행정 기구가 바로 "행성"입니다. 이 행성이 설치되면 대원제국이 파견한 주둔군인들이 식민지에 영구히 주둔하면서 식민지에 군사적, 정치적으로 개입하게 됩니다. 쉽게 말하면 총독부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면중행성은 미얀마를 뜻하는 "면중"이라는 지역에 설치된 "행중서성"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기에 "면중행성"이라고도 불립니다. 이는 세계 최강 패권제국 대원제국이 미얀마를 자신들의 공식적인 영토로 완전히 선포하고 강력하고 가혹한 식민 지배를 본격적으로 시작했음을 뚜렷하게 보여주는 뼈아픈 동남아시아 식민지배의 잔재입니다. 면중행성은 초기에는 식민 통치가 쉬운 버마 북부의 태궁 지역에 중심부를 두었다가 군사 작전이 진행됨에 따라 식민 통치 직할지를 넓혀 파간 제국의 원래 수도인 파간 지역 깊숙한 곳까지 그 식민 통치 영향력을 넓히며 파간 제국 전역에 주둔했습니다.


하지만 대원제국(원나라)의 군사적 목표는 단순히 동남아시아에서 미얀마 하나 정복하고 식민 통치하는 것으로 끝나는게 아니라 오히려 시작이었기 때문에 미얀마를 동남아시아 식민지화의 "전진기지"로 삼고 이 지역을 발판 삼아서 베트남 원정, 인도네시아 자바 섬 원정 때에 사용했던 겁니다.


세계 최강 패권제국 대원제국은 이 거대한 면중행성을 매우 폭력적이면서도 수탈적이고 체계적이고 억압적, 효율적으로 식민 통치하기 위해 자신들의 식민 통치 제도인 바스카크와 다루가치 제도를 미얀마 전역에 그물망처럼 배치했습니다.


먼저 바스카크는 원래 몽골어나 튀르크어 계통의 단어로 주로 저 멀리 러시아의 킵차크 칸국 등 유라시아 대륙 서부 정복지에서 가혹한 군대 세금 징수관이나 식민지 반란을 진압하는 주둔군인들을 부를 때 많이 쓰였던 끔찍한 용어입니다. 즉, 다루가치가 민정 총독이라면 바스카크는 철저한 군정 총독입니다. 몽골제국과 대원제국(원나라)는 정복한 식민지에 행정을 주둔 배치한 후 주둔군인을 주둔시킨 후에 군정 총독이자 행동대장인 "바스카크"와 민정 총독인 "다루가치"를 배치시켜놨는데 바스카크의 주 목적은 주둔군인들을 이끌고 식민지에서 세금을 징수하는 임무와 식민지의 군인들을 강제 징병하는 임무를 맡았습니다.


즉, 몽골제국은 어디 국가를 새롭게 정복하려고 할 때 화살받이가 필요하다 싶으면 미리 사전에 자신들이 정복해서 식민지로 만들어버린 식민지 국가들에서 강제 징병을 해서 화살받이로 사용했는데 그 강제 징병을 하는 임무를 담당했던 게 바로 바스카크였던 겁니다. 세계 최강대국이었던 몽골제국이 분열했지만 그 몽골제국을 계승한 세계 최강 패권제국 대원제국 역시도 바스카크 체계를 사용했던 겁니다.


이 바스카크 주둔군의 광대한 체계 안에서는 식민지들에 따라 다루가치와 역할이 일부 겹치기도 했지만 주로 다루가치의 산하에 소속되어 철저하게 세금과 공물을 걷어 들이는 혹독한 하급 실무 군인이기도 했습니다. 파간 제국을 정복한 후 미얀마 지역 곳곳에 배치된 바스카크들은 주로 식민지인들의 고혈을 짜내는 세금 수탈에 앞장섰던 겁니다. 이들은 식민지인들이 숨겨둔 재산까지 찾아내기 위해 가구 수를 철저히 조사하는 "호구 조사"까지 강제로 실시했고 이를 바탕으로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양의 세금을 매겼습니다.


참고로 이 호구 조사 체계는 대몽골제국이 동유럽을 식민지배할 때도 강력하게 시행됐는데 오히려 이런 식민지배를 240년간이나 경험한 러시아가 해방된 후에 러시아 제국으로 부상하면서 식민지배를 당할 때 배웠던 호구 조사 제도를 자신들도 강력하게 실시하면서 광대한 시베리아 대륙을 지배하는 데 일조한 것을 생각해보면 식민지배를 당했을 때는 비극이지만, 그 식민지배를 당했을 때의 경험으로 대제국을 건국할 수도 있기도 합니다.


다음으로 식민 통치의 또 다른 축을 담당했던 "다루가치"는 몽골어로 "학살하는 자"혹은 "군사 문건에 도장을 찍고 승인하는 자"라는 뜻에서 유래한 "굉장히 살벌한 군사적 단어"로 식민지의 최고 총독이자 모든 권한을 쥔 총지휘부를 의미합니다. 세계 최강 패권제국 대원제국은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식민지 미얀마인들의 독립 운동을 사전에 진압하고 식민지를 완벽하게 통치하기 위해 미얀마의 주요 군사 거점과 핵심 도시들마다 다루가치를 파견하여 강력한 주둔 군인들과 함께 주둔시켰습니다. 다루가치라는 군직은 주로 몽골제국에 절대 충성하는 몽골인 최고위 군인 귀족들이나 유능한 중동 페르시아인들이나 아랍인들로 구성되었습니다.


이 대원제국(원나라)가 미얀마에 파견한 바스카크, 다루가치와 주둔 군인들은 파간 제국의 멸망 이후 뿔뿔이 흩어진 버마족 귀족들과 산악 지대의 샨족 지도자들까지도 독립 운동을 하지 못하도록 일거수일투족을 밤낮없이 철저하게 감시했습니다. 게다가 뿐만아니라 미얀마 현지의 왕족이나 귀족을 명목상의 꼭두각시 통치자로 내세우면서도 그 뒤에는 항상 칼을 찬 다루가치가 시퍼렇게 눈을 뜨고 버티고 서서 중요한 군사 행정권과 재판을 관장하는 군법권, 사법권 그리고 가장 중요한 군권, 군사 지휘권들을 실질적으로 몽골인들이 전부 다 독점했습니다.


만약 이런 식민 통치에 지친 식민지인들이 조금이라도 세계 최강 패권제국 대원제국에 불만을 품거나 반항하는 기미를 조금이라도 보이면 다루가치는 즉각 가혹한 주둔군인들을 동원하여 도시나 성들을 파괴하고 무자비하게 진압했습니다. 다루가치는 면중행성의 가장 핵심적인 하부 조직으로서 미얀마라는 제국 전체를 세계 최강 패권제국 대원제국의 식민지로 영원히 전락시키면서 수탈과 폭력을 일삼는 총독이었습니다.


파간 제국 시대부터 비옥하기로 소문난 짜욱세 지역의 풍요로운 목장, 영토들과 수많은 농산물 그리고 정글에서 채취한 귀중한 보석과 질 좋은 목재들과 광물들이 바스카크들의 철저하고 강압스러운 계산 하에 모조리 징수되어 면중행성의 창고를 거쳐 저 멀리 세계 최강 패권제국 대원제국의 강력한 군사 수도인 대도(칸빌리크) 즉 현재의 베이징 까지 수많은 마차들과 무역선에 실려 강제 수송되었습니다.


피도 눈물도 없는 무자비한 바스카크들이 세금을 정해진 기한 내에 지불하지 못하는 가난한 미얀마 농부들을 가혹하게 학살하거나 심지어 멀리 떨어진 노예 시장에 팔아버리는 일은 비일비재 했으며 이로 인해 미얀마 백성들은 극심한 굶주림과 극도의 공포에 시달려야 됐습니다. 결과적으로 다루가치가 압도적인 군사 정치력으로 미얀마 백성들의 숨통을 날카로운 강철검으로 베어버렸다면, 바스카크는 미얀마 백성들이 소유한 전재산까지 전부 다 수탈하는 등 매우 악랄한 식민 수탈자 역할을 계속했던 겁니다.
















4) 식민 지배기 이후에도 그 잔재들은 영원히 미얀마에 남아있다...


하지만 미얀마는 뜻 밖에 14세기에 식민 지배에서 해방됐는데, 그건 바로 "열대 정글"이라는 점 때문이었습니다.


아무리 세계를 정복한 세계 최강 패권제국 대원제국이라 할지라도 질병이 창궐하는 험준한 열대 정글과 질척이는 늪지대, 그로 인해 발생하는 풍토병과 계속되는 식민지인들의 독립 운동들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19세기까지 영국인들도 아프리카 내륙 깊숙이 진입하지 못했던 것도 열대 기후인 탓이고 마찬가지로 18~19세기 근대 시기까지 스페인인들이 아마존에 진출하지 못했던 것도 열대 기후인 것만 해도 답이 나옵니다.


게다가 대원제국의 경우 영국이나 스페인보다도 훨씬 추운, 세계에서 가장 춥고 건조한 영하 70도까지도 내려가는 몽골대설원에서 발원한 유목민족인데, 이와는 정반대로 습하고 무더운 열대 기후는 주둔하는 것만으로도 체력을 뺏기는 것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세계 최강 패권제국 대원제국의 주둔 군대와 면중행성의 다루가치들이 미얀마에 너무 오랫동안 주둔하면서 식민 통치를 하다 보니 파간 제국 전역에 지나치게 수탈을 많이 해서 더 이상 수탈할 게 남아있지 않았다는 게 가장 컸습니다. 수탈할 게 더 이상 없는데 주둔만 계속 하다보니 미얀마에서 수탈할 게 더 이상 없는데 경제적으로 손해만 보는 상황인 것입니다. 결국 대원제국은 미얀마인들을 아무리 쥐어짜내도 징수하는 세금의 양들은 대폭 줄어드는데, 주둔 비용만 막대하다보니 경제적 손해가 이만저만 아니었던 겁니다.


결국 대원제국은 14세기 초반 무렵에 경제적 소모 때문에 면중행성의 주둔 규모를 대폭 축소했지만 그럼에도 주둔 비용이 생각보다 크자 면중행성을 폐지하고 미얀마 지역에서 공식적으로 군대를 철수하기로 결정합니다. 마치 21세기에 아프가니스탄에 주둔하던 미군들이 너무나 천문학적인 경제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바이든 대통령 때 철수한 것처럼요.


그렇다면 이제 미얀마를 오랫동안 식민지배한 식민제국인 대원제국이 철수했으니 미얀마는 해방됐고, 자유가 찾아왔으니 드디어 미얀마는 곧바로 다시 부활했을까? 그건 아닙니다. 대원제국의 미얀마 식민지배기에서 해방됐지만 이미 파간 제국은 오랜 침탈과 식민지배, 수탈이 휩쓸고 지나갔기에 미얀마 전역은 이미 철저히 파괴된 상태였습니다.


수백 년을 이어온 동남아시아 역사상 최강의 패권국이었던 파간 제국의 찬란했던 영광과 평화는 온데간데 없이 산산조각이 났고 미얀마 지역은 샨족이 잉와 지역에 건설한 잉와 왕국과 몬족이 남부에 건설한 바고 왕국 등 여러 소왕국들로 산산이 쪼개져 이후 수백 년 동안 서로 죽고 죽이는 치열한 내전과 분열의 시대를 겪게 됩니다. 이 비극적인 멸망과 길고 긴 분열은 훗날 미얀마 역사상 파간 제국 다음으로 강력한 "따웅우 왕국"이 나타나 미얀마를 다시 통일할 때까지 미얀마 역사에 치유하기 힘든 깊은 상처로 남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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