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신라인과 페르시아 제국 황태자 영웅담 "쿠쉬나메"

고대 신라 공주와 페르시아 제국 황태자 사이에 태어난 위대한 영웅

by 지구본 여행기




쿠쉬나메는 11세기경 페르시아의 구전 서사시인 하킴 이란샤 이븐 아비 알 카이르가 집필한 대서사시입니다. 집필한 것은 11세기이지만 이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그보다 훨씬 먼 과거인 7세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 문헌은 2009년경 한양대학교 문화인류학과 이희수 교수에 의해 대영박물관에서 발견되어 한국에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쿠쉬나메라는 제목은 이빨 난 쿠쉬라는 인물의 이름을 딴 것으로 총 1만 개 이상의 절로 구성된 방대한 분량입니다.


이 서사시는 고대 페르시아의 신화적 역사와 실제 역사가 혼재된 형태를 띠고 있으며 그중 상당 부분인 약 20퍼센트 정도가 신라 왕국에 대한 묘사로 채워져 있습니다. 이 문헌은 페르시아 사산 왕조가 이슬람 세력인 아랍 군대과 전쟁한 "고대 시대인 7세기" 중반 이후의 혼란기를 배경으로 삼고 있습니다.


이야기의 발단은 고대 페르시아 사산 제국의 멸망과 관련이 깊습니다. 아랍 군대의 침입으로 제국이 위기에 처하자 페르시아의 황족인 아브틴은 추종자들을 이끌고 동쪽으로 피신하게 됩니다. 아브틴은 전설적인 영웅인 잠시드의 후손으로 설정되어 있으며 폭군 자하크의 박해를 피해 유랑하는 인물입니다.


그는 아랍 세력의 추격과 주변의 위협이 계속되자 더 안전하고 평화로운 땅을 찾기로 결심합니다. 이때 아브틴은 중국의 동쪽에 바다 건너 매우 풍요롭고 황금이 가득하며 인심이 후한 "바실라(신라로 추정)"라는 왕국이 있다는 소문을 듣게 됩니다. 여기서 바실라는 오늘날의 신라 왕국을 지칭하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아브틴은 남은 일행을 이끌고 험난한 바닷길을 거쳐 마침내 신라 왕국의 해안에 도착하게 되는데 이것이 대서사시의 본격적인 시작입니다.


이야기의 중심 개요는 페르시아 제국의 황태자인 아브틴이 신라 왕국에서 겪는 칼싸움과 복수와 전쟁, 환대와 사랑이라는 마치 임경업전이나 홍길동전 같은 전형적인 액션 활극의 형태를 띄고 있습니다.













이 소설의 주요 인물로는 페르시아의 황태자 아브틴과 그를 따르는 망명객들 그리고 신라 왕국의 국왕인 타이후르가 등장합니다. 타이후르라는 이름은 신라인의 이름이라기보단 북방 중앙아시아계들인 여진족이나 튀르크족, 시베리아인이나 서아시아나 중동쪽의 페르시아인, 중동 아랍인의 이름에 가깝지만 이는 아무래도 고대 시대부터 전 세계를 군사적으로 파괴하고 침략하고 다닌 군사 제국들이 북방 유목민족들이었기에 북방 유목민족들의 이름의 영향력이 그만큼 막강했기에 신라도 아무래도 그런 북방 유목민족들의 이름에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던 당시 페르시아의 시각이 담겨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어쨌든 타이후르는 매우 현명하고 위대한 지도자로 묘사되며 아브틴 일행을 환대합니다. 또한 이야기의 핵심 인물인 타이후르의 자식인 파라란 공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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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틴은 신라 왕국에 머물며 뛰어난 무예와 지략을 선보여 타이후르 왕의 신임을 얻습니다. 특히 신라 왕국을 침략하던 왜구 같은 주변 적들을 물리치는 데 큰 공을 세우게 됩니다. 이에 감동한 타이후르 왕은 자신의 자식인 파라란 공주를 아브틴과 혼인시키기로 결정합니다. 이들의 결합은 단순한 연을 넘어 페르시아의 왕통과 신라의 혈통이 연맹하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다루어집니다. 파라란 공주는 매우 지혜로운 여장부로 묘사되며 아브틴과의 사이에서 아들 페리둔을 두게 됩니다.


아브틴이 신라 왕국으로 향하게 된 구체적인 계기는 생존을 위한 절박함과 새로운 기반 마련이었습니다. 쿠쉬나메의 기록에 의면 아브틴은 적들의 기습을 받아 위기에 처했을 때 신라 왕국이 보낸 사절단의 도움을 받게 됩니다. 신라 왕국은 당시 페르시아와 자주 무역을 하던 국가였습니다.


이동 과정은 육로와 해로를 병행한 것으로 보이며 특히 남중국해를 거쳐 한반도 남동부로 이어지는 해상 실크로드를 이용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문헌 속에서 신라 왕국은 산이 화려하고 물이 맑으며 땅에는 황금이 흔해 개 목걸이조차 금으로 만든다는 극도로 미화된 표현이 등장합니다. 이는 당시 서역인들이 가졌던 신라 왕국에 대한 전형적인 인식을 반영합니다. 아브틴 일행이 신라 왕국에 도착했을 때 타이후르 왕은 그들을 위해 성대한 연회를 베풀고 거처를 마련해주며 오랜 기간 머물 수 있도록 배려합니다.










쿠쉬나메는 역사서가 아닌 서사시이기에 문학적 상상력이 가미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완전히 허구라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세계사적으로 651년 사산 제국 페르시아의 마지막 왕 야즈데게르드 3세가 전사한 후 그의 아들 페로즈 3세는 대당제국(당나라)로 망명하여 당 고종으로부터 우무위장군이라는 관직을 하사받으며 전쟁터에 참전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페르시아 제국 황실 일가가 동쪽으로 대피난한 것은 명백한 역사적 사실입니다. 따라서 아브틴이라는 인물은 당시 동방으로 망명했던 페르시아 황족들의 행적을 투영한 모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신라 공주와의 결혼 역시 당시 신라 왕국에 거주하던 서역인들의 존재나 국제 혼인의 양상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모티브라고 볼 수 있습니다. 즉 역사적 사실이라는 뼈대 위에 서사시라는 살을 붙인 형태입니다.


신라 왕국이 페르시아나 아랍 지역에 알려진 경로는 주로 해상 무역로를 통해서였습니다. 9세기 중반 이슬람 지리학자 이븐 쿠르다드비가 쓴 도로와 왕국 총람에는 신라를 뜻하는 알 실라가 언급됩니다. 그는 신라 왕국을 세계의 중심국인 중국 너머에 있는 국가로 묘사하며 공기가 깨끗하고 물이 좋아 일단 들어가면 나오고 싶어 하지 않는 곳이라고 기록했습니다.


신라 왕국은 당대 동아시아의 주요 해상 거점 중 하나였으며 장보고의 청해진 설치 이후에는 중계 무역의 중심지로 기능했기에 세계 무역에서 활약하고 있는 국가였습니다. 신라 왕국은 서역의 유리기나 보검, 카펫 등을 수입하고 금이나 인삼 등을 수출하며 활발한 국제 무역을 이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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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시의 배경이 왜 하필 신라 왕국이었는지에 대해서는 몇 가지 이유가 추측됩니다. 포용적인 문화때문일 것으로 보입니다. 신라 왕국은 외래 종교나 문화에 대해 비교적 관대했으며 경주 괘릉의 무인석이나 처용가 설화 등에서 보이듯 서역인들의 정착을 허용하는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아브틴과 파라랑의 실제 모델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기록이 없어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유사한 사례들은 역사 속에 존재합니다. 7세기경 당나라 장안에는 페르시아인 집단 거주지들이 매우 많이 있었으며, 실제로 당나라에는 페르시아인들이 당나라의 군인과 장군, 관료들로 많이 승급하곤 했습니다.


이들이 신라 왕국까지 건너와 해상 무역에 종사하거나 관직을 얻었을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경주 원성왕릉 앞의 무인석은 눈이 깊고 코가 높은 서역인의 외모를 하고 있는데 이는 당시 신라 왕국에 서역인이 살았음을 보여주는 강력한 물증입니다. 또한 신라 왕국 보물 제 635호로 지정된 경주 계림로 보검은 페르시아는 아니고 중앙아시아(몽골과 카자흐스탄)쪽이지만, 페르시아 양식의 유물인 것을 보니 중앙아시아 유목민들이 이런 페르시아 양식의 보검들을 약탈했거나 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고고학적 증거들은 쿠쉬나메 속의 이야기가 단순히 터무니없는 창작이 아니라 실제적인 교류와 인적 왕래를 바탕으로 형성되었음을 뒷받침합니다.


그렇기에 최근에는 쿠쉬나메를 바탕으로 한 다양한 문화 콘텐츠가 제작되고 있습니다. 경상북도와 경주시는 이 이야기를 활용하여 애니메이션이나 뮤지컬을 제작하기도 했습니다. 학계에서는 이희수 교수를 중심으로 쿠쉬나메의 페르시아어 원전 번역 및 정밀 분석 작업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 문헌의 가치는 고대 고구려, 백제, 신라가 단순히 멀리 페르시아와 아랍까지 연결된 광범위한 세계적 네트워크 속에 있었음을 증명한다는 데 있습니다. 서사시의 결말에서 아브틴과 파라란의 아들 페리둔은 결국 페르시아 제국으로 귀국하여 폭군 자하크를 몰아내고 제국을 재건하며 위대한 영웅이 됩니다. 이는 신라 왕국의 혈통이 페르시아 제국의 중흥에 기여했다는 서사적 구조를 완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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