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7년 세계 패권국으로 부상한 명나라는 베트남의 쩐 왕국을 무너뜨린 호 왕국의 찬탈을 구실로 삼아 베트남을 대대적으로 침략했다. 명나라의 영락제는 쩐 왕국의 복권을 명분으로 내세웠으나 실제로는 베트남을 다시 중국의 영토로 편입시켜 식민지 지배하에 전락시키려는 야욕을 품고 있었다. 명나라 군대는 압도적인 군대 병력들을 투입시켜 호 왕국의 군대를 각개격파하고 베트남을 완전히 순식간에 정복했다. 이를 세계 역사적으로 "제4차 중국의 베트남 지배" 혹은 "명나라의 제4차 베트남 복속기"라고 부른다.
오사련이 1479년에 편찬한 베트남의 공식 역사서 "대월사기전서"에 따르면 명나라의 베트남 식민 지배는 이전의 어떤 중국 역대 제국들보다도 훨씬 더 잔인하고 가혹했다. 중세 시대의 세계 최강의 군대를 보유한 대원제국(원나라)가 중국 대륙을 완전히 폭력적으로 식민 지배했기 때문에 중국의 국가 재정(財政)은 파산 직전인 데다가 몽골족 군인 지배층들이 한족 피지배층들을 어마어마하게 학살했기 때문에 100년이 넘는 식민 지배기 때 어마어마하게 대량 학살당한 한족들의 분노는 최고조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다시 대제국을 수립한 명나라는 이런 분노의 광기가 극을 달리면서 화풀이로 동남아시아 침략을 개시했던 것이다. 물론 명나라로서도 나름 침략의 명분은 있었는데, 동남아시아나 베트남은 미개한 미개인이었기 때문에 베트남인들을 철저히 문명화 즉 중국화하기 위해 고유의 풍습을 금지하고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중국식 복장과 머리 모양(명나라의 남성 머리모양은 긴 장발머리였다.)과 중국식 남성우월주의 부계 사회를 철저히 베트남에 강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베트남의 민족의식을 말살하기 위해 고유의 역사서와 문학 작품 등 수많은 책을 불태우거나 명나라가 빼앗았으며, 훌륭한 인재와 기술자들을 중국으로 압송해 노동력을 착취했다. 경제적인 수탈도 극에 달하여 엄청난 양의 금과 은 그리고 향료와 코뿔소 뿔 상아 등을 공물로 바치게 했고 가혹한 세금을 매겨 백성들의 삶을 도탄에 빠뜨렸다. 농민들은 혹사당했고 소금 조세조차 가혹하게 매겨져 일상생활을 영위하기조차 힘들었다. 이러한 억압과 무자비한 학살 속에서 베트남인들의 분노는 끓어오르고 있었다.
이러한 암흑기 속에서 1385년 타인호아성 람선 지역에서 영웅 레러이가 태어났다. 응우옌짜이가 1431년에 집필한 람선실록에 의하면 레러이는 지역의 유력한 지방 군벌 가문 출신으로 태어날 때부터 남다른 기골과 비범한 인상을 지녔다고 전해진다. 전설에 따르면 그의 탄생 시기에는 신비한 빛이 집안을 감돌고 기이한 향기가 났으며 성장하면서 호랑이의 걸음걸이와 용의 눈매를 지녀 장차 큰 인물이 될 것이라는 예언이 돌았다고 한다.
그는 부유한 지주였음에도 불구하고 명나라 군인들의 횡포와 가혹한 식민 지배 아래서 고통받는 동포들의 참상을 보며 깊은 슬픔과 분노를 느꼈다. 명나라 군인들은 레러이의 명성을 듣고 그를 관직에 임명하여 회유하려 했으나 레러이는 대장부가 어찌 남의 노예가 되어 비굴하게 살겠는가 라며 이를 단호히 거절하고 자신의 재산을 털어 유랑민들을 구제하고 영웅호걸들을 모으며 비밀리에 독립을 위한 힘을 기르기 시작했다.
1418년 레러이는 마침내 람선 지역에서 평정왕이라는 칭호를 내걸고 명나라의 식민 압제에 맞서 무장 봉기를 일으켰다. 이것이 바로 역사적으로 유명한 람선 봉기입니다. 그러나 당시 세계 최강의 패권국이었던 명나라의 정규군은 무기와 병력 면에서 람선 의병을 철저히 압도했다. 레러이의 군대는 훈련받지 않은 농민과 지역 향족들이 주축이었기에 초반에는 계속해서 밀리고 처참한 패배를 겪어야만 됐다. 명나라의 진압군과 주둔군은 레러이의 근거지를 겹겹이 포위하고 잔인한 소탕 작전을 펼쳤다. 레러이 장군과 그의 부하들은 베트남에 주둔한 명나라 군인들의 맹렬한 추격을 피해 깊은 산속과 험준한 정글로 숨어들어야 됐고 식량이 떨어져 나무뿌리와 야생초로 연명하며 굶주림과 풍토병에 시달렸다.
여러 차례 전멸의 위기에 처했으며 가장 절망적인 순간에는 베트남 찌린산에서 명나라 군인들에게 완전히 포위되어 꼼짝없이 죽을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이때 레러이의 충성스러운 부하인 레라이가 레러이의 황금 갑옷을 입고 코끼리를 탄 채 적진으로 뛰어들어 자신이 레러이인 것처럼 위장하여 명나라 군인의 시선을 유인한 끝에 장렬히 전사하는 숭고한 희생을 치렀다.
이 희생 덕분에 레러이는 틈을 타 포위망을 뚫고 간신히 목숨을 건질 수 있었으나 상황은 여전히 절망적이었다. 베트남인들이 완전히 희망을 잃어버릴 즈음, 구전 설화에 따르면 하늘과 물의 신령들이 이들의 비참한 운명을 굽어살피기 시작했다.
바로 여기까지가 역사적 실화인데... 이때 베트남의 민간 전설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지는 "대왕자라"와 "마법의 강철검 투언티엔의 전설"이 등장한다. 명확한 역사적 사실과 신화적 요소가 혼재되어 있으나 영남척괴 등 여러 구전문학의 기록에 따르면 베트남 군인, 부하, 백성들의 희생과 레러이의 꺾이지 않는 의지에 감복한 바다의 용왕이 명나라의 식민 지배에서 베트남이 해방될 수 있도록 지원을 하기 위해 신검을 내려주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그리하야 어느 날 레러이 장군의 의용군에 합류하기 전이었던 레턴이라는 어민이 밤에 강에서 그물을 던졌는데 묵직하고 단단한 쇳덩어리가 걸려 올라왔다. 처음에는 무심코 강물에 다시 던져버렸으나 다른 장소에서 그물을 세 번이나 던져도 연속으로 똑같은 쇳덩어리가 올라오자 기이하게 여겨 불빛에 비추어 보았다. 그것은 녹이 슬었지만 예사롭지 않은 기운을 뿜어내는 검의 칼날이었다.
이후 레턴은 이 칼날을 간직한 채 레러이 장군의 의용군에 합류했다. 어느 날 레러이가 레턴의 집을 방문했을 때 어두운 방구석에서 그 칼날이 스스로 찬란한 빛을 발산하는 것을 목격했다. 레러이가 칼날을 집어 들고 자세히 살펴보니 거기에는 하늘의 뜻을 따른다 혹은 하늘에 순응한다는 의미의 "투언티엔"이라는 두 글자가 신비로운 빛을 내며 깊게 새겨져 있었다.
이후 레러이는 계속된 패배의 아픔을 딛고 숲속을 정찰하던 중 거대한 반얀트리 나뭇가지 위에서 기이한 빛이 뿜어져 나오는 것을 발견했다. 나무 위로 올라가 보니 그것은 화려하게 장식된 칼자루였다. 레러이 장군이 이 칼자루를 챙겨 돌아와 레턴이 가지고 있던 칼날과 맞추어 보니 마치 원래부터 하나였던 것처럼 빈틈없이 완벽하게 들어맞았다. 전설에 따르면 이 마법의 강철검 투언티엔은 완성되는 순간 하늘을 찌를 듯한 거대한 빛기둥을 뿜어냈으며 검신에서는 신성하고도 영험한 기운이 소용돌이쳤다고 한다.
이 마법의 강철검의 외형은 칠흑처럼 어두운 신성한 강철로 이루어져 있으나 전투 시에는 푸른 불꽃이나 눈부신 오라를 뿜어냈으며 칼자루에는 용의 문양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어 쥐는 자에게 초자연적인 마력을 부여했다고 전한다. 투언티엔 검의 신통력과 위력은 실로 엄청났다. 레러이가 이 검을 뽑아 들면 그의 키와 체구가 거인처럼 거대하게 변모하여 압도적인 위압감을 뿜어냈고 검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수십 명의 적군이 휩쓸려 쓰러졌다고 묘사된다.
또한 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신성한 광체는 마치 드래곤볼의 크리링이 구사하는 기술인 "태양권"처럼 명나라 군인들의 눈을 멀게 하고 전쟁마들을 놀라게 하여 적진을 혼비백산하게 만들었으며, 반대로 베트남 의용군인들에게는 어떤 두려움도 느끼지 않게 하는 강인한 용기와 무한한 체력을 불어넣어 주었다.
마법의 강철검 투언티엔을 획득했다는 소문과 함께 레러이의 람선 의용군대는 완전히 다른 군대로 탈바꿈했다. 신이 자신들을 지원하고 있다는 절대적인 명분과 믿음은 의용군인들의 사기를 하늘 높이 치솟게 했고 흩어졌던 백성들이 레러이의 깃발 아래 구름처럼 몰려들어 대군을 이루었다. 레러이 장군의 게릴라 전술(먼 훗날 미군을 물리쳤던)을 극대화하여 험준한 지형을 이용한 은엄폐와 기습으로 베트남에 주둔한 명나라 군인들의 보급로를 끊고 각개격파해 나갔다.
1426년 똣동과 쭉동 전투에서는 베트남 군대는 명나라의 진압군인들을 상대로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베트남의 사상 첫 번째 승리에 명나라는 당황하여 류승 장군에게 10만 명의 진압군을 지휘권을 위임해서 베트남으로 파병했으나 레러이는 찌랑 협곡과 쓰엉장 지역에서 치밀한 유인 작전과 맹렬한 매복 공격을 펼쳐 명나라 진압군들을 철저하게 궤멸시켰고 적장 류승마저 전사하게 만들었다.
결국 베트남 북부의 핵심 거점인 동관 현 하노이성에 주둔한 명나라의 총사령관 왕통 장군은 식량 고갈로 인해 1427년 레러이에게 베트남의 독립을 승인했다. 이때 레러이 장군은 여태까지 명나라 군인들이 베트남인들을 잔인하게 학살했지만, 받은대로 돌려주듯이 잔인하게 학살로 복수하는 대신 명나라 군인들에게 군량미와 전함들, 수천 마리의 말과 마차들을 제공하여 그들이 무사히 중국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거대한 관용을 베풀면서 과연 누가 문명국인지 의아하게 했다.
자신들만이 문명국이라면서 지금까지 베트남을 식민 지배하면서 학살하며 수탈한 명나라가 문명국인지, 아니면 비록 자신들은 문명국은 아니라는 걸 알지만 명나라 군인들이 독립을 윤허해주자 그들이 무사히 식민제국 본국으로 되돌아갈 수 있도록 전함과 말과 마차들까지 지원해준 베트남이 문명국인지 말이다.
이는 불필요한 살상들을 멈추고 정의를 정착시키며 명나라와의 향후 외교적 관계까지 고려한 탁월한 레러이 장군의 정치적 결단이었습니다. 마침내 1428년 레러이는 식민주의자들을 모두 몰아내고 베트남을 완전히 해방시키는 위업을 달성했다. 그는 하노이에서 황제에 즉위하여 묘호를 태조로 삼고 국호를 "대월"로 정하여 훗날 수백 년을 이어갈 후레 제국을 성공적으로 건설했다. 이 후레(대월) 제국이 바로 베트남 역사상 쩐흥다오의 쩐 제국 다음으로 황금기를 구가한 대국이었다. 여하튼 이로써 길고 혹독했던 제4차 명나라의 베트남 식민 지배기가 끝나는 순간이었다.
레 제국 건설 이후 국가에 평화가 찾아온 1428년 초의 일이다. 베트남 역사상 최초로 황제가 된 레러이 장군은 하노이 중심부에 있는 맑고 아름다운 룩투이 호수 위에서 화려한 용선을 타고 뱃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잔잔하던 호수 수면이 거세게 소용돌이치더니 집채만큼 거대한 양쯔강대왕자라가 물 밖으로 웅장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전설에서는 이 신비로운 자라를 신성한 황금 거북의 신 즉 "낌꾸이"라고 부른다. 이 대왕자라는 황금빛 비늘을 번쩍이며 선박을 향해 헤엄쳐 오더니 놀랍게도 인간의 목소리로 뚜렷하게 말했습니다.
"전하. 이제 베트남에 정의와 평화가 찾아왔고 백성들이 안식을 얻었으니 우리 용왕님께 빌려 가셨던 신검 투언티엔을 돌려주실 때가 되었습니다."라고 말입니다. 그 순간 레러이의 허리춤에 차고 있던 "투언티엔 검"이 스스로 맹렬하게 떨리며 칼집에서 빠져나와 공중으로 떠올랐다. 레러이 장군은 조국의 독립과 해방이 이루어졌음에 하늘과 바다에 깊이 감사하며 공손하게 마법의 강철검을 두 손으로 받들어 거북의 입을 향해 내밀었다.
대왕자라는 "고맙소."라고 대답하여 번쩍이는 마법의 강철검을 입에 꽉 물고 호숫가 속으로 깊이 잠수하여 사라졌고 호수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거울처럼 잔잔해졌다. 레러이 장군은 강철검을 돌려주었다는 숭고한 의미를 기리기 위해 이 룩투이 호수의 이름을 호안끼엠 즉 한자로 "환검호"라는 이름으로 영구히 바꾸도록 명했다.
오늘날까지도 수도 하노이의 한복판에 자리 잡은 "호안끼엠 호수"는 이 장엄한 전설을 품고 베트남 국혼의 성지로 사랑받고 있다. 흥미롭게도 호안끼엠 호수에 실제로 서식했던 거대한 "맹꽁이거북류 자라"들은 2016년 마지막 개체가 폐사할 때까지 하노이 시민들에게 살아있는 신성한 영물로 여겨졌으며, 동물학자들은 이 거대 자라의 학명을 명명할 때 "레러이 황제"의 이름을 직접 따서 "라페투스 레로이이"라고 공식적으로 학계에 등재하기도 했다.
이 거대하고 극적인 전설은 현대에 이르러서도 전 세계 수많은 대중매체와 문화 예술 작품의 강력한 영감이 되고 있다.
비디오 게임 분야를 살펴보면 가장 널리 알려진 공식 대형 상업 게임으로 마이크로소프트의 앙상블 스튜디오가 개발한 명작 전략 게임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2 라자의 부흥 확장팩"을 꼽을 수 있습니다. 이 게임에서는 레러이가 주인공인 웅장한 공식 캠페인이 등장한다. 플레이어는 명나라의 잔인한 베트남 식민 지배에 맞서 싸우는 람선 봉기의 험난한 과정과 굶주림 속에서 숲에 숨어 지내는 고난의 시기, 그리고 똣동과 찌랑 협곡에서 전술로 명나라의 식민군들을 몰아내서 마침내 조국 베트남을 독립, 해방시키는 역사적 과정을 각각의 디테일한 시나리오 미션으로 직접 플레이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전 세계 게임 유저들에게 베트남의 치열한 독립 해방사가 널리 알려졌다.
또한 서브컬처 시장에서는 일본의 타입문이 제작한 유명한 페이트 시리즈의 세계관을 다루는 공식 라이트 노벨 소설 페이트 레퀴엠에서 "레러이"가 "세이버 클래스의 영령"으로 등장합니다. 흥미롭게도 이 소설에서 레러이는 원작의 웅장한 남성 장군이 아닌 여성의 모습으로 각색된 이른바 세이버 페이스 캐릭터로 묘사되며 그녀가 사용하는 필살기인 보구는 "톈 키엠 약속된 먼 호수의 검"이라는 이름으로 투언티엔 전설을 직관적으로 차용하여 적에게 압도적이고 강력한 마력의 빛기둥을 쏘아내는 신화적 무기로 등장한다.
방송 및 영상 매체에서는 한국의 인기 예능 프로그램인 에스비에스 런닝맨 아시아 레이스 베트남 편에서 이 호안끼엠 전설을 방송의 핵심 모티브로 전면 차용했다. 출연자들이 베트남 전역을 돌며 아홉 개의 흩어진 검을 찾아 최종적으로 하노이의 호안끼엠 호수에 띄워진 거북 조형물에 검을 반환하는 미션을 수행하는 모습은 람선 봉기와 대왕자라의 신검 반환 전설을 대중적이고 흥미진진하게 풀어낸 매우 훌륭한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베트남 현지의 영화와 텔레비전 드라마 산업에서도 이 위대한 역사는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탕롱의 열망"등과 같은 베트남 자국의 역사 영화 및 전쟁 사극 대하 드라마들이 명나라의 베트남 식민 지배기의 어두운 시대상과 레러이 장군을 비롯한 레라이 등 독립 영웅들의 처절한 투쟁을 웅장한 영상미와 막대한 제작비로 그려내고 있다.
또한 베트남 내에서 출판되는 수많은 역사 소설과 아동용 영웅위인전 만화 민담 그림책 등에서 레러이와 황금 거북의 이야기는 반드시 첫 페이지를 장식하는 핵심적인 건국 서사로 텍스트화되어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애국심과 불굴의 민족적 자긍심을 심어주는 필수적인 교육 지침서로 활용되고 있다.
이처럼 레러이 장군의 탄생과 뼈를 깎는 독립투쟁적 고난, 투언티엔 강철검의 신비로운 획득과 마법의 힘, 그리고 압도적인 독립 해방과 호안끼엠 호수 자라의 전설은 단순한 과거의 활자 기록을 넘어 수백 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베트남인들의 일상적인 삶과 예술 문화 속에 깊이 뿌리내려 찬란하게 살아 숨 쉬고 있는 불멸의 대서사시이자 대논문적 가치를 지닌 인류의 유산이다. 이 저항의 역사는 먼 훗날 근대 시대로 이어져서 프랑스, 일본 제국, 미국을 물리치는 베트남의 구국정신으로까지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