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르드족: 몽골제국의 학살로 "산의 민족"이 된 민족

쿠르드족의 역사: 몽골제국의 학살로 인해 "산의 민족"이 된 비극적 민족

by 지구본 여행기




고대 시대에 쿠르드 부족의 기원과 초기 역사에 대한 발단과 개요부터 상세히 설명하겠습니다. 쿠르드 부족의 명확한 고대 기원에 대해서는 학계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며 단일한 조상으로 귀결되는지 명확하게 사실인지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관련 고고학적 정보가 부족합니다. 다만 메흐다드 이자디가 1992년에 저술한 "쿠르드 부족 간결한 안내서"에 따르면 "고대 메디아 제국"이나 기원전 4세기경 "그리스의 역사가 크세노폰"이 "아나바시스"에서 언급한 자그로스 산맥 일대의 "카르두키 부족"을 오늘날 쿠르드 부족의 초기 조상군 중 하나로 추정하는 학술적 견해가 존재합니다.


이들은 고대~ 아나톨리아 반도 동부와 자그로스 산맥 일대라는 험준한 산악 지대에 거주하며 "고구려나 발해처럼 목축과 농경을 병행"하는 독자적인 생활 양식을 유지했습니다. 당시 이 지역은 수메르, 아시리아, 바빌로니아, 페르시아 제국 등 고대 동양 패권국들의 각축장이었으며 쿠르드 부족의 조상으로 추정되는 산악 부족들은 이들 거대 대제국들의 변방에서 끊임없이 생존을 위한 투쟁을 벌여야만 했습니다.


이 시기의 구체적인 단일 국가 형성 기록은 정보가 부족하여 명확히 알 수 없으나 산악 지형이라는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외부의 완전한 정복을 피하면서도 동시에 강력한 통일 국가를 이룩하지 못하는 쿠르드족 특유의 역사적 배경이 이때부터 형성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중세 시대 초기의 쿠르드 부족 역사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낸 장수, "살라딘"의 영광이 있습니다. 말콤 카메론 라이언스와 디 이 피 잭슨이 1982년에 공저한 살라딘 성전의 정치학에 따르면 살라딘은 1137년경 오늘날 이라크 북부 티크리트 지역에서 쿠르드 부족 가문의 일원으로 태어났습니다. 당시 중동은 이슬람 세력이 여러 분파로 분열되어 있었고 서유럽에서 온 십자군이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십자군 국가들을 세워 이슬람 세계를 위협하던 시기였습니다.


살라딘은 삼촌 쉬르쿠를 따라 이집트 파티마 왕조로 진출하여 군사적 정치적 역량을 키웠고 1171년 이집트를 순식간에 장악하며 아이유브 왕조를 창건한 "태조(太祖)"입니다. 살라딘은 단순한 쿠르드족의 지도자를 넘어 이슬람 세계 전체의 통합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태조 살라딘 장수는 1187년 하틴 전투에서 십자군 주력 부대를 궤멸시키고 성지 예루살렘을 탈환하는 역사적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그러나 아이유브 왕조는 쿠르드족의 민족 국가라기보다는 마치 대청제국(청나라)처럼 이슬람 보편 제국주의적 성격을 띠었으며 군대와 행정부의 핵심은 아랍인과 돌궐족이 다수를 차지했습니다. 그렇기에 소수의 여진족 군인들이 대다수의 한족들을 지배했던 대청제국이나 소수의 선비족 군인들이 다수의 한족들을 지배했던 당제국(당나라)처럼 살라딘 가문 자체는 쿠르드족 출신이었으나 제국의 통치 이데올로기는 이슬람 신앙이었으므로 이 시기를 쿠르드 민족주의의 발현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살라딘이라는 역사적 인물의 존재는 오늘날 쿠르드족에게 큰 자긍심의 원천이 되고 있습니다. 살라딘 사후 아이유브 왕조는 내분으로 약화되었고 결국 1250년 맘루크들에게 권력을 빼앗기며 멸망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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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중세 시대 말기의 세계 최강의 패권국인 대몽골제국의 세계 정복과 이로 인한 쿠르드족의 학살 및 암흑기로 인해 쿠르드족은 역사상 최대의 비극을 맞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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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단은 13세기 초 세계 정복자인 칭기스칸이 주도한 대몽골제국의 급격한 세계 정복이었습니다. 존 앤드류 보일이 편집하여 1968년에 출판한 케임브리지 이란사 제5권에 따르면 세계 최강 대몽골제국의 원정대가 호라즘 제국을 완전히 정복하고 이란(페르시아), 오스만 제국, 이라크, 시리아, 아르메니아, 요르단 등등까지도 순식간에 정복하면서 중동, 서아시아 전역까지 순식간에 정복하면서 자그로스 산맥과 아나톨리아 동부에 거주하던 쿠르드족은 대몽골제국의 원정대의 직접적인 타격권에 포함됐습니다.


특히 1250년대 훌라구 칸이 지휘하는 몽골제국의 중동, 서아시아 원정대의 서아시아, 중동 원정은 중동 역사상 유례없는 파괴를 동반했습니다. 훌라구의 원정대는 1258년 아바스 제국의 수도 바그다드를 완전히 파괴, 정복하고 수십만 명의 아랍인들을 대량 학살했으며 이 과정에서 바그다드 주변과 북부 이라크 및 페르시아 서부 일대에 거주하던 쿠르드족 거주지 역시 초토화되었습니다.


몽골 제국군은 자신들에게 저항하는 제국들에게는 무자비한 보복을 가하는 군사 전술을 사용했는데 쿠르드족 산악 유목민들 역시 대몽골제국의 식민 지배에 순응하지 않고 게릴라 전술로 저항하다가 대규모 학살을 당했습니다. 아르빌, 무술, 디야르바키르 등 쿠르드족이 다수 거주하던 주요 대도시들이 대몽골제국의 원정대들의 대규모 포위 공격을 받아 순식간에 완전히 함락당했고 수많은 쿠르드족들이 학살당하거나 전쟁 노예로 끌려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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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기 학살당한 쿠르드족에 대한 대규모 학살과 파괴의 역사는 쿠르드족의 인구학적 경제적 기반을 완전히 완전히 붕괴시켰고 살아남은 이들은 대몽골제국의 기병대가 접근하기 힘든 더욱 높고 험준한 산악 지대 깊숙한 곳으로 숨어들어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것이 그 전까지 살라딘의 후예였던 위대한 쿠르드족이 오늘날까지 "산의 민족"으로 불리게 된 가장 결정적 계기가 됩니다.


이는 쿠르드족이 평야 지대의 비옥한 영토를 상실하고 산악 민족으로 더욱 고립되는 결과를 도출시켰고 일칸국의 식민 치하에서도 쿠르드족은 가혹한 세금 수탈과 식민 탄압을 받았으며 이들의 문화적 발전은 완전히 정체되는 흑역사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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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세 시기에 접어들어 세계 정복자 칭기스칸의 후예인 티무르 제국의 정복 전쟁과 이로 인한 쿠르드족의 연쇄적인 비극 및 대량 학살로 인해 쿠르드족은 또다시 파괴당합니다. 발단은 14세기 후반 트란스옥시아나에서 발흥한 티무르가 과거 세계 최강국 대몽골제국의 영광을 재현하겠다며 세계로 정복 전쟁을 일으킨 것입니다. 저스틴 마로지가 2004년에 저술한 "타메를란 이슬람의 검"에 따르면 티무르는 이란(페르시아), 이라크, 시리아, 오스만 제국 그리고 이집트의 맘루크 제국을 향해 파괴적인 군사 원정을 단행하여 모조리 다 파괴하고 정복합니다.


티무르 제국의 군대는 과거 훌라구 칸의 기병대를 계승하여 잔혹한 방식으로 대량 학살을 자행했습니다. 티무르 제국이 이란 서부와 아나톨리아 동부를 대규모 공격했을 때 이 지역의 주요 거주민이었던 쿠르드족은 흑양조, 백양조 등 튀르크계 유목 국가들과 복잡하게 얽혀 있었고 티무르 제국의 진군 경로에 있던 쿠르드족 도시와 부락들은 철저히 파괴당했습니다.


1393년과 1401년 두 차례에 걸친 바그다드 침공과 파괴 과정 그리고 시리아의 다마스쿠스와 알레포로 향하는 길목인 쿠르디스탄 지역에서 티무르 군대는 저항하는 쿠르드 부족들을 학살하고 그들의 두개골로 탑을 쌓는 등의 극도의 공포 전술을 사용했습니다. 이 시대에 쿠르드족은 티무르 제국과 맘루크조 사이의 완충 지대에 위치했다는 지정학적 이유만으로도 양측의 군대에 의해 번갈아 약탈당하는 처참한 상황에 놓였습니다.


티무르 사후 제국이 내전과 분열된 이후에도 쿠르드족 거주 지역은 오스만 제국과 이란의 사파비 제국이라는 두 거대 이슬람 제국의 최전방 국경 분쟁 지역으로 전락했습니다. 1514년 찰디란 전투에서 오스만 제국이 이란의 사파비 제국을 격파한 이후 다수의 쿠르드족은 순니파라는 종교적 공통점을 이유로 오스만 제국의 편에 섰으나 오스만 제국 역시 쿠르드족을 국경 방어를 위한 방패막이로만 이용했을 뿐 진정한 자치나 번영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중세부터 근세에 이르는 수백 년의 시간 동안 쿠르드족은 세계 최강 대몽골제국과 몽골제국을 계승한 티무르 제국의 정복과 대량 학살이라는 파괴적인 외세의 대침략과 식민 지배, 정복과 그 이후에도 끝없는 대제국(대표적 예 "오스만 제국vs사파비 제국")들의 각축전 속에서 대량 학살과 거주지 파괴를 반복적으로 겪으며 정치적 주체성을 상실하는 암흑기를 보냈습니다.













근현대 시기에 이르러서는 19세기부터 러시아 제국은 남하 정책을 펼치며 캅카스 지역과 동부 아나톨리아로 세력을 확장했고 이는 필연적으로 오스만 제국 및 카자르 왕조와의 잦은 전쟁으로 이어졌습니다. 데이비드 맥도월이 2004년에 저술한 "쿠르드족의 현대사"에 따르면 이 과정에서 러시아 제국은 오스만 제국 내의 쿠르드족을 분열시키고 자국의 이익을 위해 이용하려는 전략을 구사했습니다. 오스만 제국은 러시아의 남하를 저지하기 위해 쿠르드족 기마대인 "하미디예 연대"를 창설하여 러시아군과 싸우게 했으나 동시에 러시아는 일부 쿠르드 부족장들을 매수하거나 무기를 지원하며 오스만 제국에 대항하는 무장 봉기를 부추기기도 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러시아군은 아나톨리아 동부의 쿠르디스탄 지역으로 진격했고 이 과정에서 쿠르드족은 러시아군에 맞서 싸우거나 혹은 오스만 제국의 가혹한 징집과 수탈을 피해 러시아 편으로 돌아서는 등 극도의 혼란을 겪었습니다. 전쟁 중 일어난 전투, 기아와 역병 등으로 인해 이 지역의 쿠르드 인구는 엄청난 피해를 입고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들었습니다.


1917년 러시아 혁명으로 러시아 제국이 붕괴하고 소비에트 연방(소련)이 들어선 이후에도 쿠르드족을 향한 지정학적 이용은 계속되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6년 소련의 지원을 받은 이란 지역의 쿠르드족은 마하바드 공화국이라는 독립 국가를 수립했는데 이는 "쿠르드족 역사상 최초의 근대적 형태의 독립 국가" 수립 시도였습니다. 그러나 냉전 구도가 형성되고 소련이 서구와의 협상 끝에 이란에서 군대를 철수시키자 마하바드 공화국은 이란 팔레비 왕조의 군대에 의해 불과 11개월 만에 무력으로 진압되었고 지도자인 카지 무함마드는 교수형에 처해졌습니다.


소련은 자신들의 중동 진출 교두보로 쿠르드족을 철저히 이용한 후 국익에 따라 가차 없이 버렸으며 이는 쿠르드족이 강대국들의 이권 다툼에 희생양으로 이용당하고 철저히 버려진 근현대사의 대표적인 비극적 사건입니다.













오늘날 제1차 세계대전 패전으로 오스만 제국이 해체되는 과정에서 1920년 세브르 조약은 쿠르드족의 독립 국가 건설 가능성을 열어두었으나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가 이끄는 터키 공화국 독립 전쟁의 승리로 1923년 체결된 로잔 조약에서는 쿠르드족의 권리가 철저히 무시되고 독립의 약속은 백지화되었습니다.


마이클 건터가 1990년에 저술한 터키의 쿠르드족 정치적 딜레마에 따르면 튀르키예 정부는 "쿠르드족"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완전히 돌궐족(튀르크족)과 쿠르드족은 인종, 민족적으로 완전히 다른데도 불구하고 이 쿠르드족들을 "산악 돌궐족"으로 부르며 언어 문화 복장 등 모든 면에서 가혹한 튀르크화 동화 정책을 강제했습니다. 이는 마치 오늘날 중국이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튀르크족들이 한족이라고 동화 정책을 강제하는 것과 동일한 작업입니다.


이에 반발하여 1925년 셰이크 사이드 반란 등 여러 차례 쿠르드족의 봉기가 있었으나 튀르키예 군대에 의해 무자비하게 진압되었고 수만 명이 숙청당했습니다. 1970년대 후반 압둘라 오잘란이 마르크스 레닌주의에 기반한 쿠르드 노동자당을 창설하면서 튀르키예 정부를 상대로 무장 투쟁을 시작했습니다. 이 무장 투쟁은 1980년대와 1990년대를 거치며 전면적인 내전 양상으로 치달았고 튀르키예 군의 숙청 작전으로 수천 개의 쿠르드족 고을들이 파괴되고 수백만 명의 난민이 발생했습니다.


21세기 오늘날의 튀르키예 내 쿠르드족은 합법적인 정당 활동을 통해 정치권에 진출하려 노력하고 있으나 튀르키예 정부는 이들 정당을 쿠르드 노동자당의 연계 세력으로 규정하고 탄압을 지속하고 있으며 시리아 북부의 쿠르드 자치 지역인 로자바에 대해서도 안보 위협이라는 이유로 여러 차례 군사 개입을 단행하여 현재까지도 군사적 긴장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란령 쿠르디스탄의 역사와 근황 또한 비극의 연속입니다. 데니스 나탈리가 2005년에 저술한 쿠르드족과 국가에 따르면 1979년 이란 이슬람 혁명 당시 다수의 쿠르드족은 팔레비 왕조의 독재에 맞서 혁명에 동참하여 자치권을 얻어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아야톨라 호메이니"가 이끄는 시아파 신정 정권이 들어선 후 순니파가 다수인 쿠르드족의 자치구 요구는 국가 분열 행위로 규정되었고 이란 군대와 혁명 수비대가 쿠르디스탄 지역으로 진격하여 쿠르드 민주당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쿠르드족 민간인과 전사들이 숙청당했습니다. 이란vs이라크 전쟁 기간 동안 이란 정부는 자국 내 쿠르드족을 억압하면서도 이라크 내 쿠르드족은 사담 후세인 정권을 약화시키기 위해 지원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취했습니다.


21세기에 들어서도 이란 정부는 쿠르드족 거주 지역에 대한 경제적 차별과 정치적 억압을 지속하고 있으며 자유 생활당과 같은 쿠르드 무장 단체들과 산발적인 교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란 당국은 쿠르드족 정치 활동가 교사 언론인들을 국가 안보 위협 혐의로 체포하고 비밀리에 처형하는 등 극심한 인권 유린을 자행하고 있습니다. 이는 마치 오늘날 중국이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튀르크족들과 중앙아시아면서 서남아시아인 티베트인들에게 행하는 인권 유린과 비슷합니다.


이처럼 이란과 튀르키예는 각기 다른 정치 체제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국 영토 내의 쿠르드족 자치 요구를 분리주의로 규정하고 무력으로 탄압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한 입장을 취하고 있으며 이는 오늘날 쿠르드족이 국경 없는 세계 최대의 유랑 민족이자 "산의 민족"이라는 슬픈 별호를 안고 지속적인 억압 속에 살아가게 만드는 근본적인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정보가 방대하고 복잡하게 얽혀 있으나 모든 서술은 현재까지 검증된 역사적 사실과 학술 서적을 기반으로 작성되었습니다. 특정한 사건의 내밀한 배경 중 기록이 소실되어 명확하게 사실인지 확신이 서지 않는 부분은 더 이상 추측하여 답변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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