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역사상 가장 강력한 군사력을 가진 제국들

지구 역사상 가장 강력한 군사력을 자랑한 제국들 1등~19등 리스트

by 지구본 여행기






(1등) 지구 역사상 최강 제국 "대몽골제국(Great Mongol Empire)"


세계 최강 대몽골제국은 13세기 초 칭기스칸이 건국한 세계 역사상 가장 군사력이 강력한 제국이다.


12세기~13세기, 중앙아시아의 몽골 대초원에는 몽골-튀르크계 타타르, 케레이트, 나이만, 메르키트 등 여러 중앙아시아의 유목민족들이 끝없이 전쟁을 하고 있었다. 테무진(훗날의 칭기스칸)은 자신의 세계 최강의 엄격한 군사 편제로 재건하였고 1206년 오논강 발원지에서 열린 쿠릴타이(몽골의 군사 회의)에서 "칭기스칸(세계를 지배하는 황제란 뜻)"으로 추대되면서 지구 역사상 최강 제국 대몽골제국이 세계사에 등장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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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강의 군사력과 기동력을 자랑했던 대몽골제국의 최대 영토는 약 3,300만km²에 달했다. 이는 인류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가장 큰 영토 제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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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역사상 최강 제국 대몽골제국은 세계 최강의 기병대 체계와 십진법 기반의 최강 특수부대 체계인 천호제(千戶制) 조직을 바탕으로 세계를 정복했다. 서하 제국, 금나라를 순식간에 정복하고 서요(카라키타이 제국)들도 정복하면서 중앙아시아 전역을 정복했으며, 1219년에는 이슬람의 패권국 호라즘 제국을 완전히 정복했다. 뿐만 아니라 이라크를 정복한 아바스 제국, 셀주크 제국, 오스만 제국, 남송 대륙, 페르시아 제국, 조지아(그루지야), 아르메니아, 고려, 키예프 루스(러시아)를 전부 다 정복했고 유럽의 폴란드, 헝가리, 아프가니스탄, 북인도, 동남아시아 미얀마 등등등까지 전부 정복하여 대몽골제국이 당시 지구상의 세계 초강대국들을 모조리 정복하면서 지구 최강 군사력의 위용을 떨쳤다.


대몽골제국은 정복 이후 역참제를 전 세계에 설치, 배치하여 지구 전역을 식민 지배하는 "팍스 몽골리카(Pax Mongolica)"를 이룩했고 근대 시대로 빠르게 발전하는 계기가 된다.


출처: Jack Weatherford, 『Genghis Khan and the Making of the Modern World』, Crown, 2004.













(2등) 해양 패권국가 "대영제국(British Empire)"


약 16~ 20세기 중엽까지 잉글랜드(후에 영국)의 해양 패권입니다. 약 1492년쯤에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도달 이후 시작된 유럽 대항해시대 경쟁에서 후발주자였던 잉글랜드는 1588년 스페인의 함대(아르마다)를 깔레 해상 전투에서 격파하면서 본격적으로 제해권을 장악하기 시작했습니다. 약 1600년쯤에는 동인도 회사를 설립하며 교역 팽창의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총면적 약 3,550만km²를 먹으며 바다 면적의 4분의 1을 지배한 나라입니다(비연속 영토 포함). 영어, 영국의 법률, 의원내각제 체제 등을 만들었습니다.


약 18세기쯤에 시작된 영국의 산업혁명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공장에서 쏟아져 나오는 막대한 상품을 팔 시장과 원료 공급지가 필요해짐에 따라, 자본주의적 정책을 취하며 조공국들을 노골적으로 확장하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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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에 북미와 카리브해에 조공국들을 개척하였고, 18~19세기에는 프랑스와의 7년 전쟁 등에서 승리하며 북미와 인도의 패권을 확보했습니다. 19세기 빅토리아 여왕 시대에는 아프리카 분할에 앞장서 종단 정책을 추진하였고, 오스트레일리아 개척 등을 통해 대영제국의 황금기를 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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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는 영토가 그레이트브리튼 및 북아일랜드 연합왕국(United Kingdom)으로 대폭 축소되었습니다. 지브롤터 등 소수의 해외 영토만이 영국의 식민지로 남아있습니다(오늘날까지 영국의 식민지로 남아있는 스페인 본토의 지브롤터가 그 대표적 예시입니다).

제1차,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막대한 전쟁 비용 지출로 국력이 쇠퇴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민족주의의 고양으로 남아프리카, 동남아시아의 조공국이 독립하면서 제국은 사실상 해체되었습니다. 현재는 영연방(Commonwealth of Nations)이라는 국가 간 연합체로 그 명맥만 느슨하게 유지하고 있습니다.


출처: Niall Ferguson, 『Empire: How Britain Made the Modern World』, Allen Lane, 2003.














(3등) 영국의 속국에서 단일 패권으로 "미국(United States of America)"



18세기 후반인 1776년에 영국의 무리한 과세(인지세 등)에 반발하여 영국으로부터 13개 식민지가 독립 선언서를 발표하고 독립 전쟁에서 승리하며 건국된 나라입니다. 경제적, 문화적, 외교적으로 지구를 선도하고 있는 유일 초대강국이자 현대적 패권국 형태를 띠는 국가입니다. 20세기 중반 이후 지구상 유일의 슈퍼파워로 서있는 현대적 형태의 초강대국입니다.

2차 대전 이후 구대륙의 몰락과 핵무기 개발, 브레턴우즈 체제 수립이 세계 패권을 장악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면적 약 980만km²로 영토도 거대하지만, 무엇보다 기축통화(달러) 패권과 11 척의 항공모함 전단 등 압도적 무력투사 능력을 바탕으로 비공식적인 지배력을 행사합니다.


19세기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을 내세운 서부 개척과, 제1,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본토의 피해 없이 막대한 전시 특수를 누린 것이 초강대국 등극의 결정적 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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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vs미국 전쟁, 미서전쟁을 통해 텍사스, 캘리포니아 등을 획득하고 필리핀을 속국화했습니다. 냉전 시기 소련과 대립하다 1991년 소련 붕괴 후 "단극 체제"를 확립했습니다.(처음에는 소련의 군사력이 미국을 앞섰지만 결국 최후에는 미국이 압도적인 경제력으로 소련을 추월하여 달 착륙 등 우주 경쟁에서도 승리했습니다. 외계인 기술 활용설 등은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과장이며 정보가 부족합니다).


현재 AI 기술과 첨단 무기를 바탕으로 국제 질서를 주도하고 있으며 최대의 경제 대국(GDP 1위)이자 혁신(실리콘밸리)의 중심지로 남아있으나, 다극화의 거센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출처: Niall Ferguson, 『Colossus: The Rise and Fall of the American Empire』, Penguin Books, 2004.













(4등) 대몽골제국을 가장 확실하게 계승한 진정한 직계 후예 "티무르 제국(Timurid Empire)"


14세기 말 세계 최강 제국이었던 대몽골제국의 재건을 기치로 내걸고 세계 정복자 칭기스칸의 후예였던 티무르가 건국한 중앙아시아의 강력한 군사 대제국이다.

칭기스칸의 후예인 아미르 티무르 칸이 1370년 사마르칸트를 군사적 수도로 삼아 정복 사업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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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더스 강에서 아나톨리아(터키)에 이르는 광대한 영토를 정복했으며, 당대 오스만 제국을 침략하여 앙카라 전투에서 오스만 제국군들을 완전히 격파했을 정도로 티무르 제국은 오스만 제국보다 압도적으로 막강한 당대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보유했다.


티무르는 자신의 선조인 칭기스칸의 세계 정복 작전을 그대로 배우면서 세계 최강의 군사 전술과 몽골군의 기동력, 정주 문명의 화력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군사 체계로 인해 다시 한번 세계 최강 제국으로 군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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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2년 앙카라 전투에서 당시 동로마 제국과 신성로마제국을 공포에 떨게 하던 오스만 제국의 바예지드 1세를 전쟁 포로로 생포하며 오스만 제국을 멸망 직전까지 몰아넣었을 정도로 막강했다. 이는 티무르 제국의 군사력이 오스만을 훨씬 상회했음을 물론 당시 세계 최강이었음을 보여준다. 제국의 중심지였던 사마르칸트는 현재 우즈베키스탄의 대표적 역사 도시로 보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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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늑대나 다름 없는 몽골족에게 있어 중국 한족은 개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항상 늑대vs개는 전쟁을 해야 됐다. 그래서 티무르도 오스만 제국과 맘루크 제국, 중앙아시아와 서아시아, 중동, 아프가니스탄과 북인도들을을 정복하고 마지막으로 명나라 원정에 나섰다. 참고로 그 시대의 명나라 황제는 그 악명 높은 영락제였다. 그래서 만약 티무르가 명나라를 침략했다면 그야말로 최전성기에 그것도 세계 최강 황제들 간의 대전이 발발했을 것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신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아서 추운 원정길에 티무르가 과로사한다.


그렇기에 오늘날까지 전 세계 수많은 밀리터리 전쟁 학자들이 가장 열광하는 소재가 바로 티무르vs영락제 대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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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이렇게 티무르 사후 후계자들의 내전으로 쇠퇴했으나, 그 마지막 황제(칸)인 바부르가 인도를 정복해 무굴 제국을 건국했다.


출처: Justin Marozzi, 『Tamerlane: Sword of Islam, Conqueror of the World』, 2004.














(5등) 대몽골제국의 식민지에서 세계 패권 경쟁국으로, "러시아 제국(Russian Empire)"


1721년 대몽골제국의 240년간의 식민 지배에서 해방된 러시아는 표트르 1세가 차르(Tsar)에서 임페라토르(황제)로 칭호를 바꾸며 공식 선포한 대제국으로, 동유럽에서 북아시아, 북아메리카에 걸쳐 존재했다. 참고로 표트르 1세도 러시아를 식민 지배하면서 주둔했던 몽골제국 주둔군인의 혈통을 물려 받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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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제국은 1721년 표트르 대제부터 1917년 러시아 혁명까지 존속한 동유럽과 북아시아, 북아메리카까지 영토 정복한 대제국이다.


루스 차르국 시대부터 시베리아로 동진하던 러시아는 17세기 후반 등극하여 근대화 정책을 강력히 추진한 표트르 대제(표트르 1세)가 1700년부터 1721년까지 벌어진 대북방 전쟁에서 스웨덴 제국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면서 발트해의 패권을 장악한 직후, 표트르 대제가 공식적으로 제국을 선포했던 것이다.


알래스카까지 포함해 영토 면적이 2,280만km²에 달했으며, 동유럽~ 아시아, 신대륙의 알래스카 문명이 혼합된 다민족 국가였다. 차르 중심의 강력한 중앙집권제를 유지했던 대제국이었다. 19세기 말 기준 인구가 1억 2천만 명이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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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력 하나만큼은 엄청나게 막강해서 대영제국과 세계 패권 경쟁(그레이트 워)을 할 정도였으나 치명적인 단점이 "내륙국"이었기 때문에 러시아는 지리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부동항(얼지 않는 항구)"을 확보하려는 제국적 열망이 지속적인 영토 제국주의, 팽창주의의 동력이 되었다. 발트해, 흑해, 태평양 연안으로 진출하기 위한 끝없는 남하 및 동진 정책이 추진되었다.


표트르 대제의 근대화 정책을 통해 근대 국가의 기틀을 마련했고, 특히 예카테리나 대제 시대 때에는 폴란드 분할, 크림 반도 병합 등을 통해 영토를 크게 넓히며 흑해까지 진출했다. 19세기 초 스페인 제국, 포르투갈 제국을 프랑스의 식민지로 만들어버린 나폴레옹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러시아 제국은 그야말로 유럽 최강의 강대국들 중 하나로 완전히 등극했으며 유럽 정치의 결정적 중재자로 떠오르면서 유럽 제일의 육군 강국으로 부상했다.


중세 시대까지 세계 최강 제국 대몽골제국의 세계 식민지, 정복지들이었던 시베리아와 중앙아시아를 대몽골제국의 식민지였던 러시아가 먼 미래 훗날에 해방되면서 19세기에 러시아가 병합하며 대영제국과 "그레이트 게임"을 벌였다. 단, 내부의 농노제 모순은 극심했다.


현재의 국가는 러시아 연방(Russian Federation)이다. 현재 21세기 기준으로 세계에서 가장 영토가 넓은 러시아 연방(Russian Federation)이 계승하고 있다.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여 엄청난 인명 피해를 입은 후, 내부의 극심한 경제난과 정치적 억압에 불만을 품은 노동자, 군인들이 주도한 1917년 2월 혁명과 10월 혁명(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나면서 로마노프 왕조가 멸망했다. 이후 세계 최초의 공산주의 국가인 소련이 수립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참전으로 인한 경제 파탄과 식량 부족으로 1917년 러시아 혁명(2월/10월)이 발생, 로마노프 왕조가 붕괴하고 소비에트 연방(소련)이 수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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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의 주인공이라는 소련군vs나치 독일은 "악vs악"의 대전이라는 악인전 "독소전쟁"으로 서로 병력들을 갈아 넣았으며 이 전쟁에서 최종 승리하면서 소련군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나치 독일군을 완전히 이기고, 연합군이 승리하는데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출처: Nancy Shields Kollmann, 『The Russian Empire 1450–1801』, Oxford University Press, 2017.















(6등) 가장 마지막 중앙아시아의 유목 대제국, "대청제국(Qing Dynasty)"


1636년 아이신기오르 누르하치 장군 휘하의 만주족(여진족) 기마군단들이 건국한 중앙아시아의 마지막 유목 대제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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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후반 건주여진의 아이신기오르 누르하치가 여진족 기마군단들을 통일하고 팔기(八旗)군 제도를 창설하여 군사력을 강화한 후, 1616년 후금(後金)제국을 건국하고 스스로 카한에 오른 것이 대제국의 출범이다.


최대 정복 영토는 1,470만km²에 달했으며 이는 현 21세기 중국 영토의 2배 이상이다. 소수의 여진족 군인들이 다수의 피지배층인 한족들을 철저히 식민 지배한 다민족 군사제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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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 말기, 가혹한 세금과 가뭄과 기근으로 이자성의 반란군 등이 발발하고 권력 공백이 발생했을 때, 이자성의 반란군이 베이징을 함락시키자, 명나라의 오삼계 장군이 산해관 성문을 열어 대청제국 군대의 침투를 막지 않은 것이 중국 본토를 지배하게 된 직접적 결정적 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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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4년 대청제국 군인들은 수도 베이징에 입성하여 중국 본토를 정복한 이후, 강희제~옹정제~건륭제에 이르는 130여 년의 이른바 "강건성세" 동안 군사력이 절정에 달하면서 대청제국(청나라)의 군사력은 세계 1위의 기병 군사력을 자랑했다. 특히 건륭제 치세 대에는 신장 위구르 제국, 준가르 제국, 북시베리아와 만주, 티베트, 베트남, 미얀마, 네팔, 대만 섬, 조선 까지 동북아시아와 중앙아시아와 북시베리아와 만주, 동남아시아를 죄다 정복하여 거대한 영토를 정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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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제국의 광활한 영토 대부분은 현재 중화인민공화국(China)과 중앙아시아, 대만(Republic of China), 시베리아 등으로 이어져 있다.


출처: William T. Rowe, 『China's Last Empire: The Great Qing』, Harvard University Press, 2009.
















(7등) 대몽골제국의 인도 정복 후 건국한 "무굴 제국(Mughal Empire)"


1526년 몽골제국의 후예인 티무르의 후손 바부르 칸이 인도를 정복한 후에 건국한 대제국으로, "무굴"은 "몽골"의 페르시아어 발음에서 유래했다. 중앙아시아에서 밀려난 바부르가 1526년 파니파트 전투에서 델리 술탄국을 정복하며 건국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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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굴제국은 인도 역사상 최초로 인도 아대륙 전역을 정복했으며, 인도 역사상 가장 강력한 군사력을 가진 군사대국이었다. 특히 악바르 대제와 아우랑제브는 무굴제국 역사상 최대의 전쟁광으로 엄청나게 영토를 확장하면서 아프가니스탄까지 정복했다.

중앙아시아(몽골)의 기마 전술과 화약 무기(대포)를 결합한 선진적 군사 기술이 건국의 기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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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바르 대제 시대의 종교적 포용 정책을 통해 제국을 안정시켰고, 샤 자한 시대의 타지마할을 건설했다. 제국의 경제력은 17세기 당시 세계 GDP의 약 25%를 차지했던 것으로 추정되며 이는 동시대의 중국을 앞섰다고 할 정도다.


무굴 제국의 영향력들은 오늘날 인도와 파키스탄, 방글라데시에 식민 잔재로 남아있다. 아우랑제브 사후 국력이 약화되었으며, 끝없는 내전으로 인해 몰락했으며 결국 마라타 연맹의 반란으로 인해 인도에 대한 패권을 상실하면서 결국 인도의 패권국은 마라타 연맹에게로 넘어간다.


출처: John F. Richards, 『The Mughal Empire』, 1993.


















(8등) 국제적인 대도시와 튀르크, 고선지 원정대로 유명한 "당 제국(Tang Dynasty)"


618년 건국되어 907년까지 존속한 중국의 통일 제국으로, 실크로드를 통해 동서 교류를 극대화한 국제적 다민족 제국이다. 군사·기술·외교·경제·문화적으로 가장 번영했던 중국의 황금기 제국이다. 21세기 중국 시진핑의 중국이 세계 패권국이 되는 "중국몽"의 이상향, 롤모델이 바로 이 "당(唐)나라"다.


당시 당나라가 세계 패권국이었던 것은 사실이나, 당나라를 순수한 한족 제국으로만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는 것이 이세민 자체가 중앙아시아의 유목민족인 "선비족" 출신이었기 때문에 완벽하게 100% 한족 대제국이라고 지칭하기 힘들다는 것이 학계의 해석이다.


수양제의 무리한 고구려 대원정과 대운하 토목공사로 인해 군사 반란들이 격화되자, 군인 귀족 출신인 이연(당 고조)과 이세민(당 태종)이 군사 반란을 일으켜 618년 장안에서 건국한 대제국이 당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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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시아의 아랄해까지 영토를 확장했으며, "당풍(唐風)"이라 불리는 세계적 문명을 발전시켰다.


제2대 황제인 당 태종(이세민)의 "정관의 치"를 통한 내부 체제를 재정비하고, 서역 무역로(실크로드) 정복과 조용조, 부병제의 탄탄한 율령 제도를 확립한 것이 제국의 국력 팽창의 기반과 대제국 번영의 계기였다.


당나라는 한족 대제국임과 동시에 튀르크계 대제국이었는데, 이는 당 태종이 북방 중앙아시아의 튀르크 제국을 정복하고 "천가한(초원의 황제)"의 칭호를 얻었기 때문이다. 고구려, 백제를 정복하고 나당전쟁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 시대 당나라는 개방적인 대외 정책으로 중앙아시아와 동북아시아, 서아시아, 중동 아랍과 이란 등 전 세계의 수많은 외국인들이 빈공과를 통해서 군사 직책, 관직에 진출했다. 그래서 당나라의 원정대장인 고구려 유민 고선지 장군은 72개 국가들을 정복했으며 안록산의 반란을 발발한 안록산은 이란인(이란계 소그드인)이었으며, 이태백은 중앙아시아의 키르기스스탄인이었는 등 당나라는 수많은 군인, 장군, 관료들이 거의 다 외국들이 많았을 정도로 세계적인 대제국이었다.


심지어 당나라의 당태도(唐太刀) 조차도 중국식 강철 기술+페르시아+중동 아랍+인도의 최첨단 기술들을 총집결시켜서 만든 당시 세계 최고의 강철검이었다.


당시 수도였던 장안(현재 시안)과 뤄양 등에는 당나라의 융성함을 보여주는 유적들이 다수 남아있으며 현대 중국의 정체성 중 하나다. 이렇게 중국 역사상 가장 번영했던 대제국이었던 당나라는 군인들의 권력이 너무 막강했기에 내전과 군부 쿠데타가 빈번했고 결국 "안사의 군부 반란"을 기점으로 세금 제도가 붕괴하고 절도사(군부)들이 할거하면서 자멸했다. 결국 907년 절도사 주전충에게 황위를 선양하며 멸망했다.


출처: Mark Edward Lewis, 『China's Cosmopolitan Empire: The Tang Dynasty』, Harvard University Press, 2009.













(9등) 고대 최강 군사력을 가진 몽골-튀르크, 선비계 "유연 제국(Rouran Khaganate)"


고대 시대의 4~6세기 몽골 대초원의 패권국인 선비족계 유목 대제국으로, 유목 황제 칭호로 "카간(Khagan)"을 인류 최초로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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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계의 일파인 탁발부가 중국 화북으로 남진하여 북위 제국을 건국할 무렵, 몽골 대초원에서 남아있던 군벌 세력들 중 군벌 세력들이 규합하여 고비 사막 북쪽을 장악하며 군벌 세력을 강화하여 사륜 시대에 대제국을 확립했다.


고비 사막 이북을 완전히 정복하고, 척박하고 추운 기후를 이겨내며 중국 북조(북위) 제국들과 장기간 치열하게 전쟁하여 북방의 패권을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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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시아의 수많은 여러 소규모 유목 민들을 정복해 군벌 연합제국으로 재편성하고, 실크로드 북방 루트를 통제하여 군사력을 강화, 확보한 것이 제국 패권 강화의 결정적 계기가 됐다.


몽골-선비계 대제국인 유연 제국은 무려 먼 훗날 오스만 제국을 건국하게 되는 돌궐제국을 정복하여 식민지로 부렸다. 유연제국의 식민지였던 돌궐 제국을 강철검, 강철 갑옷과 강철 투구, 강철 등자, 강철 안장들을 대량 제작, 생산하는 예속민(대장장이 부족)으로 식민 지배했다. 그러나 막강했던 중앙아시아의 몽골-선비계 대제국인 유연 제국은 내전으로 분열했고 그 기회를 포착하여 552년 일릭 카간의 군부 세력들이 대규모 무장반란을 일으켰고 결국 진압에 실패하면서 유연제국군은 몰락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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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 제국의 멸망 후 이들 중 일부가 유럽으로 이주하여 아바르족(Pannonian Avars)이 되었다. 이후 원래 몽골-선비계가 차지했던 몽골 대초원의 패권은 한동안 완전히 튀르크계로 넘어갔다.


출처: Nikolay Kradin, 『Nomadic Empires』, Comparative Studies in Society and History, 1992.


출처: Kradin, N. N. (2005). From Tribal Confederation to Empire: The Evolution of the Rouran Society. Acta Orientalia Academiae Scientiarum Hungaricae.











(10등) 몽골계 유연제국의 식민지에서 오스만 제국의 선조로, "돌궐 제국(Gokturk Khaganate)"


6세기에 중앙아시아의 몽골대초원에서 일어나 만주에 아우르는 방대한 영토를 차지한 초원 제국을 세운 튀르크계 유목 대제국이다.


돌궐제국은 오스만 제국(오토만 제국)의 조상으로 먼 훗날 그들이 바로 오스만 제국을 세우게 된다. 그러나 그 당시까지만 해도 돌궐제국은 몽골계 유연제국의 식민지였다.


유연 제국의 식민지 강철 무기를 다루던 대장장이 부족인 아사나 씨족의 부민 카간이 552년 반란을 일으켜 유연 제국으로부터 대규모 무장반란을 일으켜 독립하여 건국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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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궐제국은 중앙아시아의 동서양 실크로드의 대무역로를 완전히 장악, 통제했으며, 비잔티움 제국과 사산조 페르시아보다 훨씬 더 막강한 군사력으로 군사적, 외교적 우위를 확실히 차지했으며 중앙아시아의 유목 제국 최초로 고유 문자(오르혼 돌궐 문자)를 창제하여 기록을 남겼다.


당시 로마나 유럽, 중동보다도 훨씬 우월한 세계 최고 수준의 강철 무기 제조 야금술의 우위와 뛰어난 기갑 기병 조직, 군사 전술, 그리고 주변국들의 내분을 이용한 탁월한 군사 외교술이 팽창의 바탕이 되었다.


돌궐제국은 너무나 광대한 영토를 정복한 탓에 동돌궐제국과 서돌궐제국으로 나뉘어 통치되었으며, 고구려와 동맹을 맺어 연합군을 형성하여 당시 초강대국인 수, 당나라에 맞서 연합 전설을 펼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멀리 서쪽의 사산조 페르시아 제국과 동맹을 맺고 에프탈 제국을 정복했으며 튀르크 문자를 최초로 사용하여 기록을 기술했다.

돌궐제국은 오늘날 튀르키예를 비롯한 아제르바이잔은 물론 오스만 제국, 셀주크 제국의 직접적인 역사적 직계 선조(뿌리)가 된다. "튀르크(Turk)"라는 이름은 바로 이 "돌궐"제국에서 부터 최초로 등장했기 대문이며, 돌궐제국 이후로 돌궐제국을 계승한 셀주크 제국, 오스만 제국, 오늘날 튀르키예에 이르기까지 비롯한 수많은 튀르크계 국가 민족들의 기원이 되었다.


그 이후 대당제국(당나라) 태종의 침공(대공세)로 동돌궐제국과 서돌궐제국이 차례대로 정복당했으며 이이제이 전략(내부 분열=이간책)로 멸망했으나, 이후 후돌궐이 부흥했으나 8세기 중반 위구르 제국에 의해 최종 멸망하면서 위구르 제국과 셀주크 튀르크 등으로 그 맥이 이어졌다.


출처: Carter Vaughn Findley, 『The Turks in World History』, Oxford University Press, 2005.


출처: Golden, P. B. (1992). An Introduction to the History of the Turkic Peoples. Otto Harrassowitz.













(11등) 지구상의 모든 몽골, 튀르크, 거란, 여진의 선조 "흉노 제국(Xiongnu Empire)"


기원전 3세기에 중앙아시아의 몽골 초원을 중심으로 발흥한 세계 역사상 최초의 유목 제국으로 중국의 한나라와 군사 패권 전쟁을 했으며 저 멀리 서양까지 침략하여 로마제국을 멸망 직전까지 몰아넣었떤 인류 최초의 거대 초원 유목 대제국이다.


묵돌 선우가 선대 선우를 암살하고 선우직에 즉위해 몽골 초원을 완전히 규합하면서 본격적인 대제국을 건국했다. 이 흉노 제국의 건국일은 오늘날 튀르키예의 육군창설일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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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노제국의 군사력 만큼은 세계 1위였는데, 중국의 한나라를 군사적으로 압도하며 조공을 받았던 강력한 기마 군단을 보유했을 정도였으며 로마 제국까지 침략하여 멸망 직전까지 몰아 넣을 정도로 막강한 군대를 보유한 흉노 제국은 북아시아 유목 문명의 틀을 확립했으며, 한무제 이전까지 중국의 제국들로부터 막대한 조공들을 받아내며 초원의 절대적 패자로 군림했다.


흉노 제국은 엄격한 군사 훈련과 "명적(매의 울음소리 화살)"을 이용한 절대 복종 체계, 기마 궁술에 특화된 유목민의 생활 양식이 세계 1위 군사력의 기반이 되었다. 세계 1위 기동성뿐 아니라 흉노 제국은 한나라의 내부분열을 이용한 외교 전술까지 구사할 정도로 외교력도 엄청나게 뛰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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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돌선우는 초패왕 항우를 이긴 한 고조 유방을 "백등산의 포위"에서 굴복시켰을 정도로 전쟁의 신이었다. 이후 흉노 제국은 한 무제와의 장기 전쟁을 벌였으며, 이 과정에서 서역의 여러 제국들에 군사적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러나 그 이후 한나라 최고의 최전성기 황제인 "한무제"의 지속적인 대공세와 기후 변화, 초원 내부의 분열로 인해 남흉노, 북흉노로 분열되었고, 점차 자멸해갔다. 참고로 한무제는 고조선을 침략하여 한사군을 설치하여 식민지로 삼았고 동남아시아의 베트남도 침략하여 한9군을 설치하여 베트남을 1000년간 식민지배할 정도로 막강한 황제였다.



출처: Thomas J. Barfield, 『The Perilous Frontier: Nomadic Empires and China』, Blackwell, 1989.


출처: Di Cosmo, N. (2002). Ancient China and Its Enemies: The Rise of Nomadic Power in East Asian History. Cambridge University Press.












(12등) 대몽골제국의 식민지에서 근대 최강국으로, 오스만 제국(Ottoman Empire)


초기까지는 대몽골제국의 식민지였던 오스만 제국은 13세기 말~ 1922년까지 존속한 오스만 제국은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의 3개 대륙에 걸쳐 600년 이상 존속했던 이슬람-튀르크계 대제국이다.


소아시아(아나톨리아) 북서부의 국경지대에서 튀르크계 족장 오스만 1세가 주변의 튀르크 유목민과 이슬람 전사(가지)들을 규합하여 대몽골제국의 셀주크 제국 식민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해 도망쳐서 1299년 비잔티움 제국의 영토를 공격하며 영토를 빼앗고 건국한 소국이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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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대몽골제국이 식민지배한 셀주크 제국에서 도망친 오스만 가지가 세운 대제국이 오스만 제국이지만, 오스만 제국도 초기까지는 대몽골제국의 식민지였다.


오스만 제국은 최대 영토 약 520만km²를 지배했으며, 동로마 제국을 멸망시키고 이슬람 세계의 맹주(칼리프 국가)로 군림한 제국입니다. 중동 질서의 근간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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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잔티움 제국의 내부 분열과 약화, 그리고 이슬람 신앙을 바탕으로 기독교 세계로 영토를 확장하려는 강력한 "가자(Gaza, 성전)" 이데올로기가 군사적 팽창의 핵심 계기가 되었다. 또한 포병과 보병 부대인 "예니체리"라는 정예 창설이 파죽지세 팽창의 군사적 계기가 됐다. 비록 대몽골제국의 식민지에서 해방된 제국이었으나 오스만 제국은 국제적이면서도 관용적인 대제국이기 때문에 칭기스 일족이 오스만 제국 내에 절대적인 지배층으로 군림했다. 게다가 몽골제국의 후예들 중 하나인 크림칸국은 오스만 제국의 핵심 동맹국이었는데 이 크림칸국의 기병대가 오스만 제국의 최강 기병대로 군림했다.


1453년 메흐메트 2세가 천혜의 요새인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함락시켜 전 유럽을 충격에 빠뜨렸다. 16세기 쉴레이만 1세 시대에 헝가리를 정복하고 빈을 포위하는 등 군사적, 문화적, 기술적 최전성기를 누렸다. 비물슬림에게도 세금(지즈야)만 내면 자치 공동체인 "밀레트"를 인정하는 관용 통치인 "밀레트 제도"를 통해 종교적 소수자들에게 폭넓은 자치를 부여하는 관용을 베풀었다. 그래서 오스만 제국은 동시대의 중국이나 유럽보다 차별이 훨씬 없는 대제국이었다.



소아시아 반도를 중심으로 한 핵심 영토는 현재 튀르키예 공화국(Türkiye)이 되었다.


18세기 이후 서구의 산업화에 뒤처지며 국력이 쇠약해졌고, 제1차 세계대전에 동맹국으로 참전했다가 패배한 후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가 이끄는 독립 전쟁의 결과 1922년 술탄제가 폐지되고 제국은 공식적으로 해체되었다.


출처: Finkel, C. (2005). Osman's Dream: The History of the Ottoman Empire. Basic Books.


출처: Caroline Finkel, 『Osman's Dream: The History of the Ottoman Empire』, Basic Books, 2005.















(13등) 대몽골제국의 식민지였던 이슬람의 패권국, "아바스 제국(Abbasid Caliphate)"


아바스 제국은 711~1492년까지 약 800년간 스페인, 포르투갈을 식민지배한 우마이야 왕조를 정복하고 멸망시킨 대제국으로, 750년에 세워져 1258년 세계 최강 대몽골제국이 아바스 제국을 정복할 때까지 이슬람 세계의 최전성기를 이끈 이슬람 세계에서 가장 군사력이 막강했던 패권국이다.


우마이야 왕조의 아랍 제일주의에 불만을 품은 페르시아계 무슬림(마왈리)과 시아파가 연합하여 아바스 가문을 중심으로 대규모 무장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탈취했던 것이다.


image.png 대몽골제국의 장창 기병대가 아바스 제국 기병대를 학살하는 Ai 그림이라고 생각해주시면 편합니다.


수도를 바그다드로 옮기고, 세계 전역의 학문과 문화를 융합시킨 이슬람 황금시대(Islamic Golden Age)를 개척했다. 아랍 제국에서 진정한 "이슬람 제국"으로 탈바꿈했다.


아바스 제국은 민족에 상관없이 이슬람교로 개종하면 각종 세금 혜택들을 주고 평등하게 대우하는 정책이 사회 안정과 학문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다. 중국 역사상 가장 최전성기의 시대를 "당나라"라고 한다면, 이슬람 역사상 가장 발전된 최전성기 시대를 "아바스 제국" 시대라고 할 정도다.


바그다드는 인구 100만 명에 육박하는 세계 최대의 도시 중 하나로 성장했다. "지혜의 집(바이트 알 히크마)"을 세워 인도 수학 등을 아랍어로 번역했습니다. 알 콰리즈미 등의 학자가 대수학을 발전시켰습니다. 751년 탈라스 전투에서 당나라군의 침략을 막고 서아시아 패권을 확보했다. (이 과정에서 제지술이 이슬람으로 전파되었습니다).


제국의 중심이었던 바그다드는 현재 이라크의 수도로 남아있다.


그 이후 10세기 이후 지방 총독들(아미르)의 독립과 투르크계 용병의 발호를 했고, 1258년 세계 최강 몽골제국이 보낸 훌라구 원정대의 침략으로 바그다드가 철저히 파괴되며 정복당했다.


출처: Bennison, A. K. (2009). The Great Caliphs: The Golden Age of the 'Abbasid Empire. Yale University Press.











(14등) 대몽골제국이 정복하면서 멸망당한, 호라즘 제국(Khwarazmian Empire)


11세기 말 중앙아시아의 호라즘 지역을 근거지로 성장한 튀르크-페르시아계 이슬람 대제국으로 거란계 서요(카라키타이) 제국의 식민지에서 독립해서 나온 대제국이다.


셀주크 제국의 총독(전쟁 노예 출신)으로 임명되었던 호라즘 샤 가문이 셀주크 제국의 쇠퇴기를 틈타 11세기 후반부터 점차 독립적인 권력을 구축하며 시작되었다.


13세기 초 무함마드 2세 시대에 이란 전체와 서아시아 대부분을 지배하는 이슬람 세계 최고의 강대국으로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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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 무역로의 요충지에 위치하여 상업적 이익을 독점하고, 주변의 약해진 튀르크계 국가들을 무력으로 병합한 것이 팽창의 계기였다.


거란제국(요나라)의 후신이었던 거란계 서요(카라키타이)의 식민지였던 호라즘 제국은 식민지배 하에서 독립하여 아프가니스탄 지역까지 영토를 넓혔다. 제국의 중심부였던 지역은 현재 이란, 서아시아, 아제르바이잔, 중동 전역 등에 걸쳐 있다. 그러다가 외교적 오판으로 인해 지구 역사상 최강의 군사력을 자랑하던 지구 역사상 최강 제국 대몽골제국의 침략을 받아, 1220년대 초 칭기스칸에게 도시들이 철저히 파괴당하고 정복당하고 술탄은 도주하다 병사(病死)하며 완전히 지도상에서 삭제됐다.


출처: Manz, B. F. (1989). The Rise and Rule of Tamerlane. (호라즘과 몽골 침공의 역사적 배경 포함). Cambridge University Press.














(15등) 고대 로마 제국의 라이벌, "페르시아 제국"



기원전 550년 키루스 2세가 메디아 왕국을 정복하고 건국한 고대 오리엔트 세계 최초의 동양의 거대 통일 제국이다.


이란 고원 남서부 페르시스 지역의 작은 소국이었던 페르시아의 군주 키루스 2세(키루스 대제)가 기원전 550년 메디아 제국을 상대로 승리한 것이 제국의 시발점이다.


당시 세계 인구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을 정도로 거대했으며(영토 약 550만km²), 동양과 서양의 문화가 교류하는 오리엔트 문명을 완성한 제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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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의 아시리아 제국이나 바빌로니아 제국이 피정복민에게 잔혹하고 억압적인 통치를 했던 것과 달리, 키루스 대제는 포용과 관용의 정책을 폈다. 바빌론 유수 상태에 있던 유대인들을 해방시켜주는 등 피정복민의 종교와 문화를 존중한 것이 수많은 국가들을 피 흘리지 않고 흡수할 수 있었던 성공의 계기였다. 그리고 페르시아 제국은 아시리아 제국이나 바빌로니아 제국, 이집트 왕국들을 쳐들어가서 식민지들로 삼았다.


다리우스 1세 시대에 황금기를 맞이하여 행정 구역을 20여 개의 "사트라피(고대 중국의 도호부 같은 식민 통치 기구)"로 나누고 총독(사트랍)을 파견했다. "왕의 눈", "왕의 귀"라 불리는 감찰관을 파견하고 "왕의 길"이라는 거대한 도로망을 건설하여 제국을 효율적으로 통치했다. 제국의 심장부였던 페르시아는 현재 중동의 주요 국가인 이란(Islamic Republic of Iran)이다.


출처: Matt Waters,『Ancient Persia: A Concise History of the Achaemenid Empir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4.












(16등) 스페인, 포르투갈을 800년간 식민 지배한 "우마이야 제국(Umayyad Caliphate)"


넓은 영토를 지배한 세습 왕조이다. 우마이야 가문이 통치하였다.


정통 칼리프 시대의 마지막 칼리프인 알리와 시리아 총독 무아위야 사이에 내란(제1차 피트나)이 발생했다. 알리가 암살당한 후 661년 무아위야가 칼리프 자리에 오르면서 세습 우마이야 왕조가 창건되었다.


수도를 다마스쿠스로 정하고 적극적인 정복 활동을 펼쳐 아라비아 반도를 넘어 북아프리카, 이베리아 반도(스페인 지역), 남아시아 인도 인더스 강 유역까지 아우르는 거대한 왕조다. 영토는 약 1,110만km²였다.


이슬람교의 교세를 확장하려는 종교적 "지하드(성전)" 의식과, 당시 비잔티움 제국과 사산조 페르시아의 오랜 전쟁으로 인한 권력의 공백기가 팽창의 훌륭한 계기를 제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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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인을 우대하고 비아랍인 무슬림(마왈리)을 차별하는 아랍 제일주의 정책을 펼쳤다. 스페인의 서고트 왕국을 멸망시켰고, 중국 당나라와 국경을 맞대었다. 단, 투르 푸아티에 전투(732년)에서 프랑크 왕국에 패배하여 서유럽으로의 진출은 좌절되었다.(해당 전투의 양측 정확한 병력 숫자는 사료마다 엇갈려 명확한 사실을 확신할 수 없기에 잘 모르겠다).


오늘날 이 영토는 시리아, 이라크,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모로코, 스페인 등 수많은 북아프리카, 남유럽 국가들로 나뉘어 있다.


마왈리와 시아파의 불만이 누적되면서, 결국 750년 아부 알 아바스가 이끄는 봉기군에 의해 우마이야 왕실은 숙청 뒤에 망했다. 살아남은 우마이야 집안은 이베리아 반도로 탈출하여 코르도바에 후기 우마이야 왕조를 세웠으며 그들이 800년간 스페인, 포르투갈을 800년간 식민 지배했다.


출처: Hugh Kennedy, 『The Great Arab Conquests: How the Spread of Islam Changed the World We Live In』, Da Capo Press, 2007.













(17등) 서구의 조상님, "로마 제국(Roman Empire)"


기원전 27년 아우구스투스가 원수정을 수립하면서 지중해 사회를 통합한 서구 문명의 근간이 되는 국가입니다.


로마 공화정 후기,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갈리아를 토벌하고 내란에서 우승하고 종신 독재관이 되었습니다. 카이사르가 살해된 후 그의 양자 옥타비아누스(아우구스투스)가 안토니우스를 악티움 해전에서 꺾고 공화정을 사실상 폐지하며 제정을 출범시켰습니다.


영토 면적은 상대적으로 작을 수 있으나(약 500만km²), 서양의 법률, 언어(라틴어), 건축, 종교(기독교) 등 아름다운 제국입니다.


공화정 체제로는 광대한 지중해 전역을 효율적으로 통치할 수 없었기 때문에, 100년에 걸친 끔찍한 내란을 끝내고 평화와 안정을 원했던 로마 시민들의 열망이 1인 지배 체제인 제국의 수립을 허용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아우구스투스부터 오현제 시대에 이르는 약 200년간 로마는 "팍스 로마나(로마의 평화)"를 구가했습니다. 도로망, 수도교 등 아름다운 인프라를 구축했습니다. 이후 3세기 위기를 겪고 디오클레티아누스와 콘스탄티누스 1세에 의해 제국이 재건되었으나, 넓어진 변경을 방어하기 어려워 제국은 동로마와 서로마로 분열되었습니다


과거 로마 제국의 심장부였던 이탈리아 반도는 현재 이탈리아 공화국(Italy)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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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서로마 제국은 당시 고대의 세계 1위 군사력을 가진 흉노제국의 침략을 받은 게르만족의 대이동을 버티지 못하고 476년 멸망했습니다. 로마 제국의 후계를 자처한 비잔티움 제국(동로마 제국)은 1000년을 간신히 더 버티다가 1453년 돌궐족이 오스만 제국에 의해 콘스탄티노폴리스가 함락되면서 망했습니다.


출처: Edward Gibbon, 『The History of the Decline and Fall of the Roman Empire』, 1776(초판 발행 기준).


















(18등) 대항해시대의 개척자 "스페인 왕국(Spanish kingdom)"



16~ 19세기까지 "해양 왕국"이었지요. 약 1492년쯤에 800년간 이슬람 우마이야 왕조의 식민지였던 스페인은 이베리아 반도의 이슬람 세력을 몰아낸 "레꽁끼쓰따(국토 회복 운동)"으로 독립 운동을 하고, 아라곤 왕국의 페르난도 2세 왕자와 까스띠야 왕국의 이사벨 1세 공주가 결혼해서 콜럼버스의 항해를 후원하여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것이 왕국 탄생의 서막이었지요.


약 16~ 17세기쯤에 아메리카 대륙에서 노략질하고 채굴한 막대한 황금과 은을 바탕으로 경제를 성장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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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난 꼬르떼쓰와 쁘란씨쓰꼬 삐사로 같은 탐험자들이 라틴 아메리카의 구석기인들이었던 아즈텍 문명과 잉카 문명을 먹었지요. 약 16세기쯤에 뻴리뻬 2세 시절 포르투갈 왕국과 동군 연합을 이뤘지요. 다만 스페인 왕국은 전쟁에서 패배한 적도 매우 많지요. 예를 들어, 대항해시대의 스페인과 전쟁해서 절대 지지 않았고 스페인의 식민지가 되지 않았던 필리핀의 술루 술탄 왕국이 명백히 존재해요.


게다가 필리핀 원주민들은 1521년 막탄 전투 등을 포함해 대항해시대의 스페인과 전쟁해서 7번이나 승리하며 스페인을 패배시킨 객관적 사실이 있지요. 게다가 흥미롭게도 스페인 탐험가 가운데 "곤살로 게레로(Gonzalo Guerrero)"처럼 마야 원주민들에게 패배해서 납치되어 붙잡혔으나, 오히려 마야 알몸 원주민 여자들과 결혼하고 그녀들의 생활 양식을 받아들여 추장이 된 탐험자도 있습니다. 스페인인들의 문화는 남미에 뿌리내렸으며, 현재 스페인인들이나 라틴 아메리카인들은 하루에 밥을 6끼씩 먹는 대식가 문화이기도 해요.(메리엔다 문화).


네덜란드 역시 대항해시대 과거에 스페인령 네덜란드(1556~ 1713년)로 식민지였으나 독립 전쟁을 벌여 스페인에 맞섰지요. 그리고 스페인은 영국의 식민지(지브롤터)였지요.


그러나 왕실의 파산, 스페인 함대의 패배(1588),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 등으로 17세기부터 순식간에 망하면서 불나방처럼 망했지요. 19세기 초 나폴레옹에게 패배해서 스페인은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었지요.


출처: Henry Kamen, 『Empire: How Spain Became a World Power, 1492-1763』, HarperCollins, 2003.
















(19등) 튀르크계 대제국 흉노제국과의 패권 전쟁, "고대 중국 한나라(Han Dynasty)"


기원전 202년 유방이 건국한 중국의 고대 제국으로, 현재 중국의 다수 민족인 "한족(漢族)"과 언어 "한자(漢字)"의 어원이 된 제국이다.


진나라 시황제가 죽은 후, 가혹한 법가 통치에 반발하여 진승, 오광의 반란 등 전국적인 대규모 반란이 발발했다. 이후 초패왕 항우와 한나라의 유방이 제국의 패권을 두고 초한전쟁을 벌였고, 해하 전투에서 유방이 최종 승리하면서 한나라가 통일 제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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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제국과 동시대에 패권을 쥐고 있던 초강대국이다. 실크로드(비단길)를 개척하여 서역 및 로마 세계와 교류의 물꼬를 텄다.


초창기 세계 1위의 군사력을 가진 흉노제국에 조공을 바치던 군사적으로 굴욕적인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국력을 꾸준히 축적한 한 무제(무제 유철) 시대에 강력한 중앙집권화와 군사 양성을 실시한 것이 적극적인 대외 정복의 계기가 되었다.


한무제는 유교를 국가의 이데올로기로 삼았고(동중서의 건의), 장건을 서역에 파견하여 로마제국까지 진출하면서 동서 교역로를 개척했다. 위만조선을 멸망시키고 한사군을 설치하며 고조선을 식민지화하고, 동남아시아의 베트남을 정복하여 한9군을 설치하여 식민화 지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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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시아의 북쪽의 초강대국 흉노제국과의 전쟁에서 밀리지 않았고. 중간에 왕망이 신나라를 세워 단절되기도 했으나 후한으로 부흥했다.


한 제국의 영토는 오늘날 중국(중화인민공화국)의 뼈대가 되었으며, 주변국인 중앙아시아, 시베리아와 만주, 한국, 일본, 동남아시아 베트남과 대만 섬 등에도 문화적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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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한 말기 외척과 환관의 발호, 황건적의 반란 등으로 제국이 통제력을 상실하면서 각지에서 군벌이 할거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위, 촉, 오의 삼국 시대로 제국이 분열하며 멸망(220년)하였다.


출처: Mark Edward Lewis,『The Early Chinese Empires: Qin and Han』, Harvard University Press,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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