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은 어떻게 경제 패권국인 미국을 상대로 한 치의 밀림도 없이 이렇게 강하게 나갈 수 있을까? 오늘은 이란이 경제 패권국인 미국을 상대로 한치의 밀리지 않는지 그 원동력은 뭔지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날 2026년 이란은 세계 3위권의 원유 매장량과 세계 2위의 천연가스를 보유하고 있는 막강한 자원 강국입니다. 전 세계가 하루에 소비하는 석유의 20%가 이란 앞바다인 호르무즈 해협을 반드시 지나가야만 하는 상황입니다. 이러한 막대한 자원과 물류 길목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이란이 세계 경제에 미치는 파급력은 핵무기만큼이나 파괴적이라고 평가받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패권국은 아니지만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제하고 장악하면서 오늘날 지구상 최고의 절대적인 패권국가처럼 영향력을 투사하고 있습니다.
물론 경제력을 종합해 볼 때 현재 오늘날 패권국가는 여전히 미국입니다. 다만 이란은 중동 지역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차단하고 전 세계 에너지 공급망을 위협할 수 있는 비대칭적인 지정학적 무기를 쥐고 있기 때문에 자신들의 체급을 뛰어넘는 막강한 영향력을 전 세계에 행사하는 중입니다.
이란은 수십 년간 지속된 서방의 강력한 경제 제재 속에서도 탄탄한 이공계 인재들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탄도 미사일과 무인기 기술을 개발해 온 국가이기도 합니다. 이란은 2024년 4월과 10월에 걸쳐 이스라엘 본토와 텔아비브 인근을 향해 수백 발의 탄도 미사일과 자폭 드론을 발사하여 맹렬한 공격을 가한 상황입니다. 이스라엘은 세계 최고 수준의 방공망인 아이언돔과 애로 요격 시스템을 보유하고 있지만 이란의 빠르고 무거운 극초음속 탄도 미사일과 대규모 물량 공세 앞에서는 일부 방어망이 뚫려 주요 군사 기지 등에 타격을 입기도 한 것입니다.
아이언돔은 주로 하마스 같은 팔레스타인 무장 단체가 쏘는 작고 느린 소형 로켓을 막는 데 특화되어 있어서 이란이 쏘아 올리는 크고 빠른 탄도 미사일을 완벽하게 모두 막아내기에는 물리적인 한계가 존재하는 편입니다.
중동 걸프 국가들이 이란에게 쉽게 보복하지 못하는 이유는 지정학적 이유와 공포입니다.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바레인 등 수니파 왕정 국가들이 시아파의 맹주인 이란을 뼛속 깊이 두려워하는 이유는 단순히 이란의 정규군 병력이 많아서가 아닙니다. 시아파는 이슬람교들 중에서도 가장 호전적이고 극단적인 종파인 데다가 그 패권국인 이란의 공격성은 중동, 서아시아의 모든 국가들 중 가장 강력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이란이 보유한 예측 불가능한 비대칭 전력과 중동 전역에 거미줄처럼 퍼져 있는 강력한 대리 세력 무장 단체들의 막강한 네트워크도 있습니다. 이란 혁명수비대는 레바논의 거대 무장 정파 헤즈볼라, 예멘의 후티 반군, 팔레스타인의 하마스, 이라크의 시아파 민병대 등 수많은 국제 무장세력들에게 자금과 무기를 지원하며 이른바 저항의 축을 완성한 상태로 그들을 마치 식민지 용병부대처럼 부리고 있습니다.
만약 걸프 국가들이 미국과 연합하여 이란의 본토를 직접 공격한다면 이란은 즉각 세계 석유 물동량의 대동맥인 호르무즈 해협을 전면 봉쇄할 것입니다. 동시에 예멘의 후티 반군 등을 총동원하여 걸프 국가들의 심장부인 정유 시설과 담수화 시설을 향해 수만 발의 드론과 미사일을 비처럼 쏟아부을 가능성도 높습니다.
2019년에 사우디아라비아의 핵심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의 주요 시설이 공격을 받아 전 세계 석유 공급이 마비될 뻔한 사건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걸프 국가들은 이란과의 전면전이 곧 국가 경제의 완전한 파멸을 의미한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 때문에 이란의 군사적 도발 앞에서도 감히 전면적인 보복을 결심하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는 중입니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연합해 덤벼도 이란이 절대 지지 않는 굳건한 국가적 저력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란은 9천만 명에 달하는 거대한 인구와 한반도의 7배가 넘는 광활한 영토를 가진 국가이며, 국토의 대부분이 험준한 자그로스 산맥과 황량한 사막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외부 세력이 지상군을 대규모로 투입해 영토를 점령하기에는 불가능에 가까운 지형 조건입니다. 아프가니스탄은
아프가니스탄vs미국 전쟁 당시 전쟁 전 기간(20년) 동안 미군 병력의 총합 약 83만 2,000명이 아프가니스탄에 동원됐습니다(미 국방부 통계)만, 결국 미군이 패배하고 철수해버렸습니다.
아프가니스탄에서도 20년 동안 전쟁했지만 그것도 83만명 넘게 동원했음에도 패배한 미국의 지상군인데..
아프가니스탄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군사력, 경제력, 영향력, 영토, 인구수가 막강한데다가 훨씬 더 천혜의 요새, 난공불락의 요새를 가진게 이란입니다.
가장 중요한 이유로는 이란의 고대 대제국 역사와 저력의 기원입니다. 이란의 저력은 기원전 550년 키루스 2세가 건국한 아케메네스 대제국에서 시작됩니다. "투라지 다리아에 저서 사산 왕조 페르시아 2009년"판에 따르면 페르시아 대제국은 인류 역사상 최초의 초강대국으로 불립니다. 이들은 당시 알려진 세계의 40퍼센트 이상을 지배했으며 관용 정책을 통해 피정복 민의 종교와 문화를 존중했습니다.
이러한 통치 방식은 제국이 무너진 후에도 페르시아라는 정체성이 사라지지 않고 유지되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아케메네스 제국을 정복했을 때도 알렉산더 스스로가 페르시아의 의복을 입고 페르시아의 행정 체제를 수용하며 스스로 페르시아의 왕이 되고자 했던 것은 페르시아 문화의 동화력이 그만큼 강력했음을 보여줍니다. 이후 등장한 파르티아와 사산 왕조는 로마 제국과 수백 년간 자웅을 겨루며 로마 제국을 압도하는 군사력을 가졌습니다.
기원전 고대 시대를 호령한 페르시아 아케메네스 제국과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동화 과정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면 이란의 찬란하고 위대한 역사는 무려 5000년 전 엘람 문명 시절부터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는 거대한 발자취입니다. 특히 기원전 6세기에 훌륭한 군주인 키루스 2세 대왕이 건국한 아케메네스 제국은 인류 역사상 최초로 세계 제국이라 불릴 만한 거대하고 경이로운 영토를 개척한 국가입니다. 이 제국은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의 3개 대륙에 걸쳐 있었으며 이집트, 바빌로니아, 아나톨리아 인도의 인더스 강 유역까지 아우르는 엄청난 영토를 자랑한 대제국입니다.
키루스 대왕은 인류 최초의 유엔 인권 선언문이라 불리는 키루스 원통을 남길 정도로 관용 정책을 넓게 펼쳐 피정복민들의 종교와 고유한 문화를 존중해줬습니다. 게다가 신바벨론 제국의 포로가 되어 억압받던 이스라엘 유대인들이 바빌론 유수로 끌려갈 때 페르시아 대제국이 신바벨론 제국을 정복하고 식민지로 삼으면서 그로부터 억압받던 이스라엘 유대인들을 해방시켜 고향인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무너진 성전을 재건할 수 있었게 해준 것도 바로 이 페르시아 제국의 너그러운 관용 덕분입니다. 이후 다리우스 1세는 제국 전역을 거미줄처럼 연결하는 왕의 길을 건설하여 경제와 행정의 효율성을 극대화한 왕조입니다.
기원전 4세기에 마케도니아의 젊고 위대한 왕인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쳐들어와 무력으로 다리우스 3세를 꺾고 페르시아 제국을 물리적으로 멸망시키긴 했지만 하지만 무력 토벌에서 승리한 알렉산드로스 왕조차 이란 고원의 찬란하고 세련된 문화와 고도로 발달한 선진적인 행정 시스템에 깊이 매료되고 말았습니다. 그는 다리우스 3세의 딸인 스타테이라와 결혼식을 올렸으며 자신의 그리스 병사 수만 명을 페르시아 여성들과 합동 결혼을 시켰습니다.
또한 그는 일상생활에서 페르시아 전통 의상을 즐겨 입었고 페르시아 출신의 총독과 유능한 관리들을 대거 중용하여 거대한 제국을 효과적으로 통치한 인물입니다. 군사적인 측면에서는 알렉산드로스의 군대가 승리했을지 몰라도 문화적이고 정신적인 측면에서는 오히려 정복당한 페르시아가 거만한 알렉산더 대왕과 그의 왕조를 완벽하게 동화시킨 것입니다. "이러한 뿌리 깊은 역사적 경험은 이란인들에게 일시적인 군사적 패배가 결코 국가 정체성의 영원한 소멸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강력한 자부심을 심어준 것입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사망한 이후 분열기를 거쳐 이란 고원에는 민족 출신의 강력한 전사들이 세운 파르티아 제국이 새롭게 들어섰습니다. 파르티아는 기원전 53년 카르하이 전투에서 로마 제국의 삼두정치 중 한 명인 크라수스가 이끄는 병사들을 파르티안 샷이라는 뒤돌아보며 활을 쏘는 독특한 기마 궁술 전법으로 완전히 전멸시키며 전 세계를 경악하게 만들었습니다.
이후 3세기에 새롭게 등장한 사산 왕조 페르시아 역시 서기 260년 에데사 전투에서 로마 제국의 황제 발레리아누스를 전쟁 포로로 생포하는 굴욕을 안겨주며 로마 제국 및 비잔티움 제국을 상대로 무려 수백 년 동안 지독하고 치열한 전쟁을 벌였습니다. 이 시기 페르시아는 조로아스터교를 흔들림 없는 국교로 삼아 강력한 중앙집권 체제를 견고하게 구축하며 기원전~ 고대 세계의 진정한 초강대국으로 군림했습니다.
중세 시대에는 이란의 절체절명의 최대 위기였습니다. 세계 최강 패권국이었던 대몽골 제국의 세계 정복으로 이슬람 국가 호라즘 제국을 철저하고 무참하게 정복합니다. 몽골제국의 원정대는 모든 이슬람 제국들을 정복해서 폐허로 만들고 수만 권의 지식이 담긴 도서관들을 죄다 불태웠으며 억울한 이란인들은 몽골제국 기병대에 의해 끔찍한 대학살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이는 겉보기에는 문명의 완전하고 영원한 멸망인 줄 알았던 시간입니다. 하지만 기적처럼 수십 년이 채 지나지 않아 서아시아, 중동 전역을 식민 지배한 몽골제국의 일칸국의 새로운 군인 지배자들은 부드럽고 우아한 페르시아의 언어와 이슬람교를 스스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대몽골제국은 세계 최강의 군사력은 가지고 있었지만, 페르시아 같은 수준 높은 문화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보유한 제국은 타국을 정복하고 식민 지배하면서 제국의 뼈대와 성벽을 무너뜨리고 파괴할 수는 있었지만, 수천 년 동안 백성들의 핏속에 축적된 페르시아 문명의 깊은 뿌리와 철학적 정체성은 끝끝내 지워내지 못한 것입니다.
제이 제이 손더스의 몽골제국의 정복사 1971년 기록에 따르면 세계 최강국 대몽골제국의 침략으로 호라즘 제국은 정복, 멸망당하고 페르시아 인구의 상당수가 학살당하고 관개 시설이 파괴되는 등 문명의 위기를 맞이했습니다. 그러나 대몽골제국이 세운 일칸국은 시간이 흐를수록 페르시아화되었습니다. 대몽골제국 군인 지배층은 페르시아의 행정 관료들을 대거 기용했고 결국 이슬람교로 개종하며 페르시아의 언어와 예술을 수용했습니다. 이는 군사적 정복이 반드시 문화적 소멸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이며 이란인들이 가진 문화적 자부심의 근거가 됩니다.
1258년 훌라구 칸이 이끄는 몽골제국의 원정대가 이슬람 세계의 눈부신 심장인 바그다드를 정복하고 함락시키며 거대한 이슬람 제국들을 완벽하게 정복하자 몽골제국의 군인 지배자들은 전세계의 모든 무슬림 인구를 효과적으로 식민 지배하기 위해 오히려 이슬람교도가 아닌 유대인과 기독교인들을 제국의 고위 관료와 세금 징수원으로 파격적으로 위임하는 정책을 펼쳤습니다.
하지만 1260년과 1300년경에 대몽골제국의 키트부카 장군의 원정대가 맘루크 제국을 침략 및 초토화시키기 위해 팔레스타인과 시리아 지역으로 거침없이 진군하여 침략전쟁을 개시했을 때 예루살렘을 비롯한 유대인 거주 지역도 군대의 진격로에 놓여 무자비한 약탈과 파괴를 피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이 혼란스러운 시기에 중동 전체의 경제 네트워크와 이슬람 황금시대의 찬란했던 학문적 중심지들도 모조리 산산조각이 나면서 그 지역에 대대로 살아가던 유대인들의 상업적 삶의 기반도 완전히 초토화가 됐습니다. 결국 이는 훗날 수많은 유대인 랍비(רַבִּי)들과 대상인들과 지식인들이 이 끔찍한 대학살을 피해 유럽이나 아프리카 등 다른 낯선 지역으로 뿔뿔이 이주하게 되는 아주 중요한 세계사적 디아스포라의 결정적 배경이 됩니다.
이렇듯 대몽골제국의 세계 정복은 당시 이슬람 칼리프 체제를 완전히 파괴했습니다.
근대 이란계 사파비 제국과 무굴 제국 그리고 오스만 제국과의 숨 막히는 패권 경쟁입니다.
먼 훗날에 몽골제국의 식민지에서 해방된 이란은 16세기에 접어들며 혼란기를 극복하면서 이스마일 1세 대왕이 건국한 화려한 사파비 제국이 건국됩니다. 사파비 제국은 시아파 이슬람교를 확고한 국교로 채택하여 수니파 국가들과 명확하게 구분되는 이란만의 아주 독특하고 강인한 국가 정체성을 확립한 국가입니다. 이들은 서쪽으로는 아랍과 아프리카 그리고 발칸 반도까지 지배하던 초강대국 오스만 제국과 찰디란 전투 등을 치르며 피 튀기고 잔혹한 영토 분쟁을 벌였습니다.
오스만 제국도 이란처럼 몽골제국의 식민지였다가 독립 후에 초강대국으로 급부상한 제국이었습니다. 게다가 오스만 제국이나 사파비 제국은 동시에 동쪽으로는 대몽골제국의 후예들이 거대한 인도를 정복하고 세운 막강하고 부유한 무굴제국과 아프가니스탄 칸다하르 지역의 지정학적 패권을 두고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치열하게 대립도 하고 있었습니다.
이 3개의 거대한 이슬람 제국들은 근대 중동과 서아시아 전체의 역사를 형성하고 질서를 형성하면서 오늘날까지 중동, 서아시아 세계를 형성하는 가장 중요한 핵심 축들입니다. 오늘날 이란의 정체성을 강하게 형성시킨 국가도 팔라비 왕조가 아니라 사파비 제국이니까요. 이란은 양쪽에서 적을 맞이해야 하는 양면 전선이라는 극도로 불리한 국방 조건 속에서도 강인한 민족성과 시아파라는 끈끈한 결속력을 통해 결코 자신들의 영토와 독립된 정체성을 잃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이란이 굳이 "시아파"를 고수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만약 수니파를 고수했다면 이란은 무굴제국이나 오스만 제국에 흡수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에 이란의 사파비 제국은 차별성을 둬서 흡수, 동화되지 않고자 했던 겁니다.
19세기에 접어들면서 이란을 다스리던 카자르 왕조는 러시아 제국 등의 세계 열강의 거세고 탐욕스러운 제국주의적 침략 파도에 직면하게 됩니다. 꽁꽁 언 바다를 벗어나 따뜻한 바다로 진출하기 위해 부동항을 간절히 찾아 끊임없이 남하하려는 거대한 러시아 제국과 자신들의 가장 소중하고 값비싼 조공국, 속국인 인도를 안전하게 지키고자 동남아시아로 세력을 공세적으로 진출하던 대영제국(영국) 사이에서 이란은 이른바 그레이트 게임이라는 잔혹한 지정학적 장기판이 놓인 상황이 된 것입니다.
특히 러시아 제국은 이란의 영토를 야금야금 지속적으로 잠식해 들어왔고 러시아는 비옥한 캅카스 지역의 영토를 무력으로 강탈했으며, 영국은 무력으로는 이란에 진출하기 힘들었기에 할 수 없이 가치가 있는 석유 이권과 철도 부설권 등 경제적 거래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란은 자신들의 독특한 지리적 이점과 두 앙숙 강대국 간의 팽팽한 세력 균형을 교묘하고 현명하게 이용하는 지능적인 외교적 줄타기 작전을 구사했습니다.
20세기에 들어서 전 세계를 휩쓴 제1차,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다급해진 연합군인 소련과 영국은 이란의 석유 자원을 구매하고 적국인 독일로 향하는 물자 보급로를 철저하게 차단하기 위해 중립국이던 이란을 급습합니다. 이들은 당시 친독일 성향을 보이던 레자 샤 팔레비 국가 원수를 무력으로 강제 유배시키고 아직 어렸던 그의 아들 모하마드 레자 팔레비를 허수아비 왕좌에 옹립시켰습니다. 마치 영화 "왕과 사는 남자"에서 세조 수양대군은 러시아가, 영국은 한명회의 역할을 한 것이나 다름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전쟁이 끝난 후 1953년에는 이란의 민족주의자 모사데크 총리가 이란의 석유 산업을 독점하기 위해 국유화를 선언합니다.
이에 뒤통수를 맞고 경제적 타격을 쌔게 입은 영국 정보부와 미국 중앙정보국은 막대한 자금을 살포하며 은밀하게 아약스 작전이라는 봉기를 지원합니다.
결국 이 사건은 이란 국민들의 깊은 가슴 속에 서방 세계 즉 미국과 영국에 대한 절대 지울 수 없는 깊은 배신감과 활활 타오르는 적대감을 심어준 이유가 됩니다. 오랫동안 억눌렸던 군중의 분노는 결국 "1979년 아야톨라 호메이니"라는 성직자가 이끄는 이슬람 혁명으로 거대하고 맹렬하게 폭발했고 친미 성향의 부패한 팔레비 왕정을 완전히 붕괴시키면서 주이란 미국 대사관을 인질로 삼았습니다. 바로 이 굵직한 사건을 기점으로 과거 절친한 우방이었던 이란과 미국의 관계는 서로를 향해 총을 겨누는 돌이킬 수 없는 최악의 적대 관계로 돌변하였고 이는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기나긴 반미 이슬람 공화국 역사의 시작이 됩니다
고대 페르시아 제국(왼)과 미군(오른쪽)
현재 이렇게 쌓여온 불굴의 저력으로 이란은 서방이 의심하는 핵무기 개발 의혹과 이슬람 혁명을 주변국에 전파하려는 수출 정책으로 인해 초강대국 미국과 이스라엘 극도로 강력한 군사적 전면전을 하고 있습니다. 이란은 굴복하지 않고 오히려 시리아, 레바논, 이라크, 예멘으로 끈끈하게 이어지는 이른바 시아파 초승달 벨트라는 군사 지리적 포위망을 단단하게 구축하며 적국 이스라엘을 견제하기도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최첨단 스텔스 전투기를 동원하여 이란의 비밀 핵 시설과 군사 기지를 수시로 폭격하고 있으며 이란은 이에 맞서 하늘을 뒤덮는 탄도 미사일과 드론 부대로 이스라엘 본토를 직접 타격하며 매일같이 무력 충돌의 수위를 아슬아슬하게 높여가는 상황입니다. 수천 년이라는 까마득한 시간 동안 숱하게 많은 이민족과 제국의 잔혹한 침략 속에서도 세계 최강대국 대몽골제국의 식민지로 전락한 이란이었지만 페르시아의 언어, 문화, 그리고 확고한 종교적 정체성을 끝끝내 살아남은 이 놀랍고 경이로운 회복력이 바로 이란이 세계 강국인 미국과 맞서 절대 지지 않고 끈질기게 버틸 수 있는 근본적인 원동력입니다.
이란은 축복받은 에너지 자원과 폭발적인 젊은 인구 그리고 깊고 찬란한 역사적 자부심으로 굳게 무장한 채 중동의 진정한 패권을 놓고 서방 세계와 끝없는 지정학적 장기 게임을 숨 막히게 이어가는 중입니다. 앞으로의 국제 정세는 이란이라는 거대하고 무거운 잠재력이 어떤 방식으로 폭발하고 깨어나느냐에 따라 전 세계의 정치 경제적 판도가 완전히 뒤바뀔 것입니다.
이란이 미국이나 이스라엘과 같은 강대국을 상대로 버틸 수 있는 원동력은 크게 세 가지로 분석됩니다. 첫 번째는 지정학적 위치입니다. 이란은 세계 원유 수송의 동맥인 호르무즈 해협을 끼고 있습니다. 전략 국제 문제 연구소의 앤서니 코드먼 보고서에 따르면 이란은 수천 발의 지대함 미사일과 기뢰 그리고 소형 고속정 군단을 통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할 수 있는 비대칭 능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 에너지 공급망을 인질로 잡을 수 있다는 점이 이란의 강력한 외교적 무기입니다. 두 번째는 탄도 미사일 기술입니다. 이란은 중동 최대 규모의 미사일 전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는 이스라엘 전역을 사정권에 둡니다. 세 번째는 대리 세력을 통한 저항의 축 전략입니다. 레바논의 헤즈볼라와 예멘의 후티 반군 등을 통해 직접적인 전면전을 피하면서도 적대국에게 지속적인 타격을 줄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습니다.
이란인들은 자신들을 단순한 국가가 아닌 하나의 문명권으로 인식합니다. 5000년의 역사 속에서 세계 최강의 패권제국 대몽골제국이나 아랍 제국 그리고 서구 열강의 침략, 정복, 식민 지배를 겪으면서도 끝내 페르시아라는 정체성을 복원해낸 역사적 경험이 그들의 저항 정신을 지탱합니다. 외부의 압력이 강해질수록 내부적으로 단결하는 민족주의적 성향과 시아파 특유의 순교 정신은 군사적 수치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강력한 방어 기제가 됩니다. 미국이나 이스라엘이 이란과의 지상전을 주저하는 이유는 단순한 지정학적 문제 때문이 아니라 만약 이란을 점령하는데 운 좋게 성공했어도 그후에도 끝없이 겪게 될 끝없는 테러와 게릴라전들과 지정학적 대혼란을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이란은 고대부터 이어져 온 행정 및 문화적 역량과 중세의 혹독한 시련을 견뎌낸 끈기 그리고 현대의 비대칭 군사 전략을 결합하여 자신들만의 생존 방식을 구축했습니다. 세계 최강 대몽골제국조차 감화시켰던 페르시아의 문화적 힘은 오늘날에도 이란이 국제 사회에서 독자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근원적인 힘이 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