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웨이트는 지리적으로 인류 최초의 문명인 수메르 문명과 무척 가깝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수메르 문명이 번성하던 고대 시기에 현재의 쿠웨이트 영토 대부분은 바다 밑에 잠겨 있었습니다.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페르시아만 일대에 퇴적물이 쌓여 육지가 형성되었고 이것이 바로 오늘날 쿠웨이트 땅의 발단이 되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의 정벌 이후 셀레우코스 제국과 파르티아 제국 그리고 사산 왕조를 거쳐 이슬람 제국 시대인 우마이야 왕조와 아바스 제국, 대몽골제국의 세계 정복의 영향 등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따라서 현대 국가 중에서 쿠웨이트 지역을 가장 오래 지배했던 국가는 페르시아 제국의 후예인 이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기 쿠웨이트에는 정주민이 거의 없었습니다.
전 국토가 사막과 다름없어 농사를 짓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이웃한 이라크가 비옥한 초승달 지대를 바탕으로 수백만 헥타르의 농경지를 가졌던 것과는 크게 비교되는 부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쿠웨이트 수비야 지역에서 7천 년 전 인간의 손가락 유물이 출토되고 파일라카 섬에서 4천 년 전 마을 유적지가 발견된 것을 보면 사람의 발길이 전혀 닿지 않았던 것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중세 시기인 1435년부터 1736년 사이에는 후제스탄 지역을 중심으로 무사샤 후국이라는 아랍계 시아파 왕조가 존재했다는 역사적 사실이 있습니다.
오늘날 쿠웨이트인들의 기원은 17세기 이후 이주해 온 아니자족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유목민족 연합체인 이들은 원래 고대 로마 제국 시절부터 향신료 등을 거래하며 동서 교역에 종사하던 상인들이었습니다.
중세 시대에는 세계 정복자 칭기스칸의 손자인 훌라구 칸이 이끄는 세계 최강 몽골제국의 원정대가 당시 중동과 아랍 지역을 지배하고 있던 이슬람 제국들을 향해 칼날을 돌렸습니다. 이슬람 세계는 몽골제국 강철기병대의 침략으로 인해 크나큰 시련을 겪게 되었습니다. 몽골제국 원정대는 진격로에 있던 아사신 파의 요새를 순식간에 함락시키고 1258년 이슬람 세계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바그다드까지 정복했습니다. 바그다드는 당시 아바스 제국의 수도이자 전 세계 학문과 예술 그리고 상업이 교류하는 최고의 중심지였습니다. 하지만 훌라구 칸은 바그다드를 무자비하게 포위하고 공격하여 빠르게 함락시켰습니다. 이 아바스 제국이 쿠웨이트인들을 식민 지배하던 대제국이었으며 호라즘 제국과 함께 이슬람 세계의 패권국이었습니다.
바그다드의 함락은 이슬람 세계에 있어 역사상 최대의 대사건이자 대재앙이었습니다. 몽골제국 기병대는 며칠 동안 아바스 제국의 모든 도시들을 약탈하고 수십만 명에 달하는 주민들을 대량 학살했습니다. 이때 이슬람교의 교황이었던 칼리파들 역시 잔인하게 처형당하며 500년 넘게 이어져 온 아바스 제국이 멸망당하게 됩니다. 게다가 몽골제국 군인들은 이전까지 세계적인 지식의 보고였던 지혜의 집과 수많은 이슬람 도서관을 파괴했고 학자들은 죽음을 면치 못했으며 귀중한 장서들을 티그리스 강물에 던져져 강물이 먹물처럼 검게 변했다는 기록이 전해집니다.
이슬람의 황금기는 이 사건을 계기로 비극적인 종말을 맞이하게 됩니다. 하지만 몽골제국 군인들이 무조건적인 파괴만 일삼은 것은 아닙니다. 훌라구 칸은 바그다드를 파괴할 때 기독교인이나 일부 소수 종파 사람들은 살려두기도 했는데 이는 몽골제국이 완전히 종교적으로 맹목적인 학살만을 일삼기만 한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목적과 복종 여부에 따라 태도를 달리했음을 보여줍니다. 이후 훌라구 칸은 서아시아, 중동 전역에 일 칸국이라는 새로운 몽골제국의 식민 제국을 세워 식민 지배를 이어갔습니다.
16세기에 이르러서는 대항해시대가 열리면서 포르투갈 왕국이 아라비아 반도의 무역항으로 진출하고 무슬림들을 몰아내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이 과정에서 고향을 잃은 많은 아랍인들이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쿠웨이트 역시 한때 포르투갈의 세력권에 있었으나 17세기 이란의 사파비 제국이 러시아 제국과 영국과 손잡고 그 유명한 호르무즈 해협을 점령하면서 포르투갈 세력은 완전히 물러나게 됩니다. 이후 공백지가 된 쿠웨이트 일대에 수니파 계열의 아니자족이 정착하기 시작했고 당시 수니파 종주국을 자처하던 대몽골제국의 식민지였다가 해방된 오스만 제국이 이들을 지원했습니다.
정착 초기 쿠웨이트는 가난한 어촌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에서 흘러온 영양분 덕분에 새우를 비롯한 어패류가 풍부하여 어업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어요. 그러던 중 18세기 중반 근대 시기에 영국과 네덜란드가 포르투갈 왕국의 교역항들을 무너뜨리고 영국 동인도 회사가 인도의 교역량을 크게 늘리면서 새로운 계기가 마련됩니다. 상업에 능했던 쿠웨이트인들은 이를 기회로 삼아 교역에 적극 나섰고 18세기 무렵 쿠웨이트는 중동의 핵심 교역 중심지로 탈바꿈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쿠웨이트를 통치하는 사바 집안 역시 이 아니자족의 지도자 집안에서 유래했습니다. 1752년 쿠웨이트시의 지도자였던 사바 1세가 오스만 돌궐 제국의 바스라 총독을 찾아가 충성을 맹세하고 정당한 지배자로 인정받으면서 쿠웨이트의 기틀이 다져집니다.
오스만 돌궐 제국의 자치령으로 지내던 쿠웨이트는 19세기 후반 오스만 돌궐 제국이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바스라 빌라예트라는 행정구역에 편입됩니다. 자신들만의 자치 문화를 이어오던 쿠웨이트인들은 이에 불만을 품게 되었습니다. 이때 등장한 인물이 오늘날 쿠웨이트의 국부로 추앙받는 무바라크 알사바입니다. 1896년 무바라크는 이복형을 제거하고 통치자 자리에 올랐습니다. 이후 1899년 이란에 주재하던 영국 대령을 찾아가 영국의 보호령이 되는 조건으로 독립을 보장해 달라는 비밀 협정을 맺게 됩니다. 외국의 간섭을 막아주는 대신 쿠웨이트의 외교권과 영토 처분권을 영국에 넘긴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이 협정이 비밀이었으나 곧 오스만 돌궐 제국도 이를 알아차렸습니다. 하지만 당시 내부 문제로 골치가 아팠던 오스만 돌궐 제국은 쿠웨이트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습니다. 결국 1913년 오스만 돌궐 제국과 영국 그리고 무바라크가 참여한 3자 회담을 통해 쿠웨이트는 명목상 오스만 돌궐 제국의 영토이면서도 실질적인 자치 지역으로 인정받았고 이때 획정된 국경선이 오늘날 이라크와 쿠웨이트의 국경이 되었습니다.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영국은 아랍인들의 독립을 약속하며 오스만 돌궐 제국에 대항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쿠웨이트도 영국의 바스라 정벌을 도우며 적극 협력했고 그 공로로 영국 보호하의 독립국으로 인정받으며 막대한 지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1920년에는 오늘날의 사우디아라비아인 네지드 하사 토후국과 영유권 분쟁으로 전쟁이 일어났으나 영국의 장비와 선박 지원 덕분에 나라를 지켜낼 수 있었습니다.
1961년 영국이 쿠웨이트의 완전한 독립을 승인하면서 마침내 현대적인 쿠웨이트 국가가 탄생하게 됩니다. 다음 해에는 아랍연맹과 국제연합의 승인을 받아 국제법적으로도 합당한 독립국이 되었어요. 하지만 북쪽의 이웃인 이라크는 오스만 돌궐 제국 시절 바스라 주에 속했던 역사를 근거로 쿠웨이트가 자신들의 영토라고 줄기차게 주장했습니다. 독립 직후 이라크가 군대를 보내려 했을 때 영국이 항공모함을 파견해 막아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 갈등의 씨앗은 결국 "1990년 걸프 전쟁"이라는 거대한 참사로 이어지게 됩니다. 당시 이라크의 대통령이었던 "사담 후세인"은 8년간 이어진 이란vs이라크 전쟁으로 인해 막대한 국가 부채를 안고 있었습니다. 그는 풍부한 석유 자원을 가진 쿠웨이트를 병합하여 이 경제적 위기를 타개하려 했습니다.
1990년 8월 2일 이라크군은 기습적으로 쿠웨이트를 침입했습니다. 실전 경험이 풍부했던 이라크군 앞에 소국 쿠웨이트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졌고 왕과 왕실은 이웃 사우디아라비아로 황급히 도주해야만 했습니다. 그렇게 이라크는 잠시 괴뢰국을 세웠다가 곧바로 자국의 19번째 주로 편입시켜 버립니다. 하지만 국제사회는 이를 결코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미국의 주도 아래 형성된 다국적군이 "사막의 폭풍 작전"을 전개하여 1991년 쿠웨이트를 이라크의 정벌로부터 해방시켰습니다.
걸프 전쟁 이후 쿠웨이트는 국가 부활에 총력을 기울였습니다. 파괴된 유정과 인프라를 복구하며 다시금 경제적 안정을 되찾았어요. 2003년 미국이 이라크 전쟁을 일으켰을 때 쿠웨이트는 아랍 국가 중 유일하게 미국을 지지하며 다국적군의 전진기지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과거 자신들을 침공했던 사담 후세인 정권이 무너지는 것을 지지했던 것입니다. 다만 후세인 정권이 붕괴된 이후 이라크가 겪은 극심한 혼란 속에서는 발을 빼고 이라크의 정치적 안정을 기원하는 입장을 취했습니다.
오늘날 쿠웨이트는 막대한 석유 자원을 바탕으로 높은 1인당 국민소득을 자랑하는 복지 국가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그리고 2026년 이후에는 쿠웨이트가 이란vs이스라엘, 미국 전쟁에서 폭격을 당하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