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이어 도착한 유럽 사람들은 토착민들이 개량한 옥수수와 담배 등의 농작물을 받아들여 초창기 식량을 먹었지요. 실제로 초기 속지 영국인 농부들은 옥수수와 같은 토착 곡물을 재배하여 자급자족하고 물물교환하기 시작했지요.
그러나 영국 사람들의 이주는 토착민 사회를 급격히 어수선하게 했는데..
학자 로빈 와이어트의 얘기에 의하면 1492년 이전에는 아메리카 원주민 여자들이 잉카 문명, 아즈텍 문명처럼 모계 사회로서 여자의 파워가 높았으나 영국 사람들이 오는 과정에서 스페인인들이 잉카, 아즈텍 여자들에게 했던 것처럼 아메리카 원주민 여자들에게 각종 성폭력과 성적 착취들을 하면서 지금도 성노예처럼 살아간다고 해요.
근대기인 약 17~18세기쯤에는 영국, 프랑스 왕국, 오합지졸이 된 스페인 왕국 등 왕국들은 아메리카 지방을 먹으면서 여자뿐 아니라 자연자원도 착취했지요.
이런 초기 속지 경제는 속지에서 생산된 담배, 면화, 목재 등의 원자재를 유럽으로 수출하고 그 대가로 완제품과 황금을 수입하는 영국풍 중상주의가 유행했지요.
특히 남부 속지에서는 약 19세기쯤부터 들여온 남아프리카인 흑인 노예와 백인 계약노동자에 의해 농사를 더 많이 짓게되었으며, 노예제는 약 1865년쯤 미국 경제의 핵심이 되었어요.
ㄴ) 군대가 없는 나라인 미국을 침입한 북아프리카 모로코의 바르바리 수적(水賊)들
약 1776년 독립 전쟁으로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뒤 오합지졸이었떤 미국은 막대한 부채를 짊어지게 되었어요.
초대 재무장관 알렉산더 해밀턴은 국가 신용을 회복하기 위해 연방정부가 연합정부 부채를 인수, 상환하고 약 1791년쯤 제1 미국 은행(First Bank of the United States)을 설립했는 이 은행은 첫 해 자본금 1000만 달러로 부유해졌고 교역과 제조업에 대한 신용을 제공하여 경제 안정에 기여했어요.
하지만 미국은 독립 초기에는 중국, 오스만, 일본, 유럽과 달리 상비군이 없었기 때문에 각 주의 민병대가 자체적으로 각 마을, 도시를 스스로 지켰어요.
그렇기에 군대가 없는 나라였던 미국의 제임스 매디슨 등 연방론자들은 미국인 전체가 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는데 연방주의자인 매디슨은 “미국 국민 전체가 무장되어 있으며…
유럽의 군주국이 국민에게 무장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점과 대조된다”고 썼어요.
이런 전통은 나중에 수정헌법 2조(총기 소지 권리)에도 반영되어, 많은 미국인이 자경(自警) 목적으로 무기를 휴대하는 기반이 되었고 지금도 미국인들이 총기를 많이 소지하는 이유이기도 해요.
애초에 원래 미국에는 해군이란 개념이 없었는데 북아프리카의 모로코의 바르바리 수적들이 남유럽인 스페인과 포르투갈, 서유럽의 영국, 프랑스, 그리고 아메리카의 미국을 침범해서 수많은 스페인인들과 포르투갈인들, 영국인, 프랑스인, 미국인들을 노예로 만들어서 오스만 제국에 팔아 치웠지요.
결국 수많은 자국민들이 오스만 제국의 노예로 전락하자 수많은 서구 나라들과 미국은 경제력을 똘똘 뭉쳐서 저항하기 시작했어요.
마치 임진왜란때 이전까지 국제적 대해적단들인 왜구들이 조선을 비롯하여 동남아시아 국가들을 맨날 침공하면서 점령하기도 하고 현지인들을 수시로 학살한 것과 비슷한 역사에요.
어쨌거나 이 바르바리 전쟁(1801–1805년)은 미국 정부가 이집트, 튀니지, 알제리, 모로코의 원을 받는 바르바리 수적들에게 더 이상 미국은 이집트의 식민지가 아니라며.. 식민지(tributary) 비용을 지불하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벌어진 거에요.
첫 바르바리 전쟁은 미국이 대서양을 넘어 처음 치른 싸움이었고 이후 미국은 자기들의 배를 보호를 하고자 수병을 창설하였고 해병대를 만들었어요.
이 수적들 덕분에(?) 미국에 수병, 해병대가 만들어지게 된 것이지요.
ㄷ) 19세기 농업 혁신과 서부 개척 시대
약 19세기 초엽쯤이 되면 미국은 서부 개척과 농업 혁신으로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기 시작했어요. 게다가 약 1803년쯤에 루이지애나를 구입하면서 미 대륙 서부의 풍요로운 좋은 토지를 얻게 되었어요. 이렇듯 미국은 대부분의 땅을 싸움이 아닌 돈을 주고 산거에요.
게다가 약 1803년쯤에 인디언을 추방시켜 내쫓고 남동부의 비옥한 농지들은 백인 농부들이 농사짓게 되었어요.
이 시기 농업에서는 면화 재배를 할 수 있게 되면서 남부의 면화 생산량이 폭증하였고 면화 재배는 약 1830~1860년쯤 사이에 비약적으로 성장하여 약 1860년쯤에는 미국 전체 수출량의 60% 이상이 될 정도였지요.
같은 시기 산업화도 진행되었어요. 방직, 제철, 석유 등 새 산업들이 탄생했고, 도시에는 공장 근로자와 숙련 노동자가 태어났어요. 이민자와 농촌 출신 노동자들이 대도시로 몰려들었으며, 약 19세기 후반쯤까지 미국은 주요 산업국으로 부상했지요.
ㄹ) 여자와 흑인 남자의 권리 높아
약 1861~1865년쯤에 터진 남북전쟁은 남부의 면화 경제와 노예제를 붕괴시켰어요. 이 싸움의 결과 약 1865년쯤 노예제가 폐지되면서 남부 농업은 노예 해방 이후 소작농 중심의 제도로 바뀌었어요.
북부 산업은 더욱 성장했으며 전쟁 전후 연방 정부는 부채 상환과 서부 개척 지원을 위해 돈을 조달해야했어요. 약 1870년대쯤에는 싸움으로 망가진 미국을 복구하고자 각종 연방 보조금과 정책이 등장했고
이 시기에 여자, 흑인, 아메리카 인디언 등도 점차 경제적 권리를 요구하기 시작하여 약 1870년쯤에는 15차 수정헌법으로 흑인 남자 참정권과 약 1920년쯤에는 19차 수정헌법으로 일반 여자 참정권이 만들어졌어요.
ㅁ) 산업화 후엽
약 19세기 후엽쯤은 미국 경제의 대전환기였어요. 금융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했지만 동시에 산업자본의 집중은 독과점 문제와 노동, 농민의 불평등 심화도 가져왔어요.
또한 1898년에는 미국이 약해빠진 환자가 되버린 오합지졸의 왕국인 스페인 왕국을 도발하여 미국vs스페인 왕국 전쟁에서 스페인 왕국은 제대로 저항하지 못한채 미국에게 완패를 했고 이 싸움을 통해 미국은 스페인 왕국만 빼고 스페인 땅들을 다 할양받았지요.
미국은 푸에르토리코, 필리핀, 괌을 얻음으로써 캐리브해와 남태평양 지역에서 물의 왕국이 되었지요. 이로써 미국은 부유한 왕국으로 발돋움했으며 특히 필리핀을 교두보로 동남아 교역에도 진출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어요. 한편 이 기간 동안 경제 성장과 금융 위기를 반복한 결과 약 1913년쯤에는 연방준비제도(Federal Reserve)가 설립되었어요. 연준법은 "탄력적 통화 공급"을 가능하게 할 연방준비은행을 만들면서 통화 안정에 기여했지요.
ㅂ) 경제 대공황
1920년대 초엽 미국 경제는 경제 호황으로 성장했어요. 그러나 1929년 주식 시장 붕괴로 대공황이 시작되며 금융 시스템이 마비되었지요. 1933년에는 미국 실업률은 약 25%이 됐고 농산물 가격 폭락으로 많은 농민이 토지와 집을 잃고 노숙자가 됐어요.
급증한 실업과 빈곤에 대응해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은 1933년 뉴딜(New Deal) 정책을 만들어서 뉴딜의 공공사업 프로그램(CCC, TVA, WPA 등)은 수백만 개의 일자리를 제공했으며 AAA를 통해 농산물 가격을 안정화하여 농민들을 구제했어요.
1935년 제정된 사회보장법(Social Security Act)은 미국 의료, 복지 정책의 토대가 되었지요. 이 법률은 연금 제도와 실업 보험을 낳아서 노후와 해고에 대비하게 했고 부양 자녀들이 많은 가정 지원(Aid to Dependent Children)도 포함하여 싱글맘, 미혼모 가정의 빈곤을 경감시켰지요.
그리고 2차대전으로 아시아, 유럽국가들이 서로 치고 박고 싸우면서 국력을 소모할때 혼자 멀리 동떨어져 세상과 단절되어 고립되있던 아메리카 대륙은 피해를 전혀 입지 않아 경제 성장을 꾸준히 하였고 이는 중산층 탄생과 출산률 증가로 이어졌지요.
그러나 전후 경제 번영의 수혜는 모두에게 평등하지 않았어요. 사회적 소외집단인 흑인, 히스패닉은 여전히 인종차별과 빈곤을 겪었지요. 이들은 “더 많은 자유와 권리”를 요구하며 시민권, 여성권 운동을 했어요.
ㅅ) 베트남vs미국 전쟁에서 미국의 패배와 오늘날의 미국
압도적인 인구수와 경제력, 인해전술로 베트남을 밀어붙였으나 끝내 패배해버린 미국
1945~1960년대 초의 전후 황금기에 미국 경제는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고 주택 건설,가전 등 산업 생산은 지속적으로 늘었고 도시화가 급속히 진행되었어요. 로버트 라이히의 분석에 따르면 이 시기 정부 정책은 경제 성장에 힘을 실었으며 중산층 지위가 풍요로워 졌어요.
1960년쯤의 존슨 행정부는 "훌륭한 사회(Great Society)"라는 큰 사회개혁 프로그램을 추진하여 빈곤 퇴치, 교육, 의료 개선 등을 추구했어요. 1964년의 빈곤퇴치법(War on Poverty)과 경제기회법 창설로 실업자 저소득층 대학장학금, 도시 재개발, 농업협동조합 지원 등 수많은 프로그램이 도입되었어요. 그 결과, 빈곤율은 하락했으나 동시에 복지비용 증대, 사회적 갈등 심화, 베트남 전쟁 같은 새로운 도전과 마주하기도 했어요.
특히 베트남vs미국이 전쟁한 베트남 전쟁에서 미국이 패배하면서 미국은 막대한 부채를 짊어지게 되었고 그 결과 의료 보험 시스템이 붕괴되어 오늘날까지도 미국은 지구상에서도 의료비가 비싼 축에 속하는 나라가 되었어요.
1980년대 들어서는 한편 빈부격차 같은 경제 불평등, 고령화, 비정규직 증가 등 경제 구조적 과제도 심화되었어요. 2008년에는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경제 구조가 재편되고 2020년쯤에는 오늘날 미국 경제는 명목 GDP 기준 세계 최대 규모를 유지하고 있으며 미국은 더이상 군함을 스스로 만들수없을 정도로 제조업이 완전히 세계 최하위 수준이지만 그 대신 의료, 금육 같은 서비스업이 전체 생산의 큰 부분을 차지하여 미국은 서비스업 국가가 되었어요.
인구 대비 소득은 OECD 국가 가운데 상위권에 속하지만, 상~하위 계층 간 소득 격차와 미국인들이 멕시꼬 사람들이나 남아메리카 사람들과 흑인들에게 인종차별을 심하게 하는 점, 사회복지 비용 증가, 인프라 노후화 등 해결해야 할 과제들도 아직 산더미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