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나라, 최첨단 무기와 과학기술력은 세계 1위인 대제국

인류 역사상 가장 완벽한 대제국, 송나라

by 바다의 지정학



고대 시대의 실크로드를 장악했던 군인 제국이었던 대당제국(당나라)의 무장 군벌들 중 하나인 조광윤이 건설한 중세 시대의 "송(宋)나라"는 사실 군사력만 빼면 어마어마한 글로벌 대제국이었다.


ChatGPT Image 2025년 7월 31일 오전 10_04_45.png 송나라의 보병 군인 갑옷은 충실히 재현한 Ai 그림이다.


송나라는 10세기 전 세계를 대표하는 대제국으로, 기술, 과학, 무기 발전, 법과 체계, 건축술, 문명 측면에서 당시 세계를 선도했다. 송나라는 동시대 지구상에서 가장 번영한 제국 체제를 갖추었으며, 12세기 중기까지 송나라의 국민소득은 동시기 유럽의 약 3배에 달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게다가 대운하와 양자강 유역을 통한 활발한 해상 무역, 방대한 인구 기반의 민간, 관영 산업이 송나라 경제의 핵심 동력들 중 하나였다.


실제로 송나라는 국가 재정(財政)의 대부분을 국방비에 투자했음에도 상업 전반에 부과된 세금이 빠르게 국고를 보충하여 통화경제가 발달했고, 당시 중국의 연간 철강 생산량은 약 10만 톤에 이르는 세계 최대 규모였다. 이러한 발전으로 일부 학자들은 송나라 시대 중국 경제를 17~18세기 영국의 산업혁명 이전에 해당하는 "초기 근대 경제"로 부르기도 하며, 일정 부분에서는 영국의 산업혁명의 과학 기술보다 훨씬 뛰어난 점을 가진 게 이 당시 10세기의 송나라였으니 정말 어마어마하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정치 체계도 엄청나게 깨끗해서 북송~남송 시대의 황제들 중 90% 이상의 황제들이 거의 다 성군으로, 폭군이나 무능한 암군이 거의 배출되지 않는 정말 먼치킨 같은 제국이 아닐 수 없었다.


이뿐만 아니라, 송나라의 국가 GDP는 현재 미국이나 중국을 능가할 정도로 당시 전 세계의 40~50% 이상의 국가 GDP를 가졌던 게 송나라였다. 이는 미국, 중국, 대영제국도 달성하지 못한 어마어마한 수치였다.


하지만 이런 대단한 송나라는 당시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가진 몽골제국이 송나라를 정복하면서 세계 역사 속으로 사라지면서 상대적으로 저평가되어 왔다. 하지만 송나라를 침략한 제국들이 "아시아 초강대국들인 거란제국, 금나라"나, "세계 최강의 패권제국 몽골제국"이어서 그렇지 송나라의 군사력은 다른 지역에서는 그 지역 패권국으로 군림할 만큼의 군사력은 가지고 있었다. 즉, 송나라의 군사력은 중국의 역대 제국들 중 가장 약하긴 했지만 동북아시아나 중앙아시아, 서아시아, 중동, 남아시아, 유럽의 패권국으로 군림할 정도는 못 되더라도 그 지역들의 2~3인자는 될 수 있을 정도는 보유하고 있던 셈이다.


그럼 송나라의 군사, 과학, 외교, 해상 무역, 수학, 법, 문명 수준 등을 각 분야별로 설명 드리겠다.



(1) 송나라의 군사 기술력과 무기 체계, 병력 구성, 실전 경험



송나라 해군함대의 모습. 노를 젓는 대신 수레바퀴를 돌리며 자동적으로 군함을 움직이는 장치가 설계되어 있었다.


송나라는 인류 역사상 현재까지도 1위에 빛나는 경제력과 과학 기술력과 기술 혁신력에도 불구하고 국방력 면에서는 중국 역대 제국들 중 가장 약했으며 항상 거란제국, 금나라, 세계 최강의 몽골제국 같은 중앙아시아계 북방 유목제국들의 침략을 받으며 연전연패했다. 그럼에도 무기 기술 면에서는 세계적 수준의 발전을 이루었는데, 1044년 편찬된 군사 전쟁서 "무경총요"에는 세계 최초의 화약 제조 공정의 과정들이 공식 기록되어 있으며, 인류 역사상 최초이자 초기 수준의 대포, 로켓, 발화탄, 지뢰, 화포 등이 발명되어 실전으로 사용되었다. 군대 자체가 중국 역대 제국들 중 가장 약해서 그렇지, "무기" 자체로는 당시 세계 1위 수준의 송나라 무기였다. 애초에 당시 지구상에서 화약무기를 쓸 수 있던 것은 오로지 화약을 최초로 발명한 송나라뿐이었으니 말이다.


송나라 군기 고문에 따르면 송나라 군대는 작은 화살에 화약을 부착하여 화살탄과 폭탄을 만들었고, "철탄구(무거운 쇠구슬)"와 "철갑탄"을 장착한 "화포(초기 대포)"를 운용하여 실전에 사용했다. 이른바 "화포"의 첫 기록 중 하나인 완벽 주조 "화포(무위 청동포"가 13세기 초까지 실전에 사용되었음을 1980년 둥베이에서 발굴되어 확인됐는데, 길이 100cm에 무게 108kg으로 당시 세계 최대 수준이었다. 이러한 화약 무기들 덕분에 송나라 군대는 거란제국(요遼나라), 서하 제국, 금(金)나라 등의 침략에 맞서 수십 년간 저항할 수 있었지만, 결국 세계 최강의 군사력과 전술을 가진 몽골제국의 침략에 의해 멸망했다.


원래 고대시대 때부터 세계 최강의 기병대가 중앙아시아 몽골의 유목기병대들이란 건 누구나 다 아는 기본상식이다. 그런데 중국이나 다른 동아시아의 국가들도 고대시대 때부터 주 병종은 기병이었다. 선비족인 이세민이 건국한 대제국이라는 점도 있지만 대당제국(당나라)의 주력 병종도 기병이었고, 고구려의 대표 병종이 개마무사인 것도 그렇다. 하지만 동아시아에서 기병이 아닌 보병이 주력 병종으로 등장한 국가가 딱 2개가 있으니, 하나는 일본 에도 막부시대였고 또 하나는 송나라 군대였다.


ChatGPT Image 2025년 8월 2일 오후 03_36_53.png 송나라의 보병 갑옷은 충실히 완벽하게 재현했으나 화력 무기 그림은 Ai라서 어쩔 수 없다.


송나라 군대는 중국 역사상 거의 유일하게 기병이 아닌, 보병(검과 장창, 방패로 중무장한 장창보병대였던 도창 부대, 석궁병, 조창 부대)를 양성하였으며, 비늘갑(札甲), 판갑(板甲)등의 무겁고 튼튼한 강철갑옷들을 사용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송나라 군대는 다른 동아시아 군대들이나 중국 역대 제국들의 군대들보단 약간 "중세 유럽의 기사" 같은 느낌이 더 강했다. 방어력을 중시한 갑옷, 기병보다는 보병 위주의 군대라는 점에서 영락없이 중세 유럽 군대와 비슷했다.


이러한 송나라 군대는 중앙아시아의 막강한 유목제국들의 강력한 기병대에 저항하기 위해 아교와 연기를 사용하는 화염병과 지뢰, 다연발 로켓포 화살(비화), 비화창 등 전쟁 무기에서도 엄청난 혁신을 선보였다. 하지만 이렇게 최첨단의 막강한 무기들을 가지고 있었지만 송나라를 침략한 제국들은 다 거란제국, 금나라, 대몽골제국 같은 세계 최강의 유목기병대들이었던 지라 송나라는 연전연패할 수밖에 없었다.


송나라는 1127년 여진(金)제국이 북송의 수도 개봉(開封)을 침략하여 점령하고 금나라를 세우면서 남쪽으로 퇴각했다가, 1279년에는 세계 최강의 몽골제국이 금나라, 거란, 서하 제국, 남송 등등등을 모두 침략하면서 남송마저 정복당하고 멸망했다. 그러나 송나라 군대의 화약무기 발명과 강철 보병은 인류 역사상 최고의 군사 혁신을 가져왔다. 근대시대의 대영제국, 제2차 세계대전의 모든 전쟁터들, 현재 미국이나 러시아, 중국 등 모든 열강들은 전부 다 송나라가 발명한 화약으로 인해 총, 대포를 발명하여 현재까지도 이런 화약무기들을 쓰고 있으며 이런 화약 무기들로 인해 생겨난 전투기, 잠수함 등등도 한몫한다.


송나라는 1044년에 세계 최초 무기용 화약무기를 실전용으로 도입했다고 공식 기록되어 있고, 인류 역사상 최초의 대포(화포) 발명했는데


유럽은 실질적 대포는 14~15세기에나 도입했다.



(2) 과학, 기술 혁신


송나라 시대의 관학자, 공학자들은 천문, 지리, 기계 등 다방면에서 혁신을 이뤘다. 예컨대 심희(沈括)는 나침반의 자북(磁北) 편차와 천구(天球) 개념을 정립하여 당대 가장 최첨단의 해양 항해 기술을 획기적으로 발전시켰다. 그는 비성(畢昇)의 활자 인쇄 기술을 11세기에 기록으로 기술했는데, 비성의 혁신적 활자 인쇄술은 15세기의 서양 최초의 구텐베르크의 금속 활자 인쇄보다 400여 년 앞섰다. 뿐만 아니라 송나라의 공학자 "소송(蘇頌)"은 거대한 수력 "시계탑"과 "천문 관측 기기"를 발명하여 인류 역사상 기계 공학의 정수를 등장시켰으며, "해로 운송"을 위해 무역선에 격벽 및 분리키를 도입해 무역선의 안전성과 항해 능력을 비약적으로 높였다. 또한 치수, 제방 공사로 농업 생산력도 최고 수준으로 증대되었다.


중국 허베이 성 상당산(湘棠山) 남굴에 건설된 송나라 시대의 탑에는 그 옛날 송나라 시대의 석탑 및 대규모 건축물 건설의 체계적 설계와 뛰어난 건축 기술을 보여준다. 송나라는 과학 기술, 토목, 건축 기술이 세계에서 가장 발전하여 높은 석탑과 거대한 수리 시설을 건설했으며, 이는 당시 세계 1위의 과학 기술력이 송나라가 가지고 있음을 반영한다.




(3) 해상 무역과 항해 기술


10세기 송나라는 해상 무역도 엄청나게 활발하게 진행했다. 당시 세계에서 가장 활발하게 해상 무역을 진행한 제국은 송나라뿐이었다. 애초에 서구가 해상 교역을 시작한 대항해시대는 이로부터 먼 미래인 15~16세기에 가서나 시작됐을 정도니, 송나라는 서구보다 5세기나 앞서서 국제 해상 무역을 혼자서 주도한 것이었다. 송나라의 강남(江南) 지역과 연해 도시는 항구 상업의 중심지로 성장하여 송나라 무역선은 동남아와 인도양을 거쳐 동아프리카까지 진출했다. 이 과정에서 항해술도 크게 발달했다. 송나라 시대에 자석 나침반이 해상 무역에 널리 적용되어 바다에서도 방향을 잡을 수 있게 되었고, 적도 부근에서의 긴 항해에도 성공했다. 11세기에 제작된 송나라 해상 무역선에는 방수 격벽과 탈부착 가능한 키(돛 키) 등 혁신적인 설계가 적용되었는데, 이는 앞서 말했던 5세기 후의 대항해시대의 향해술보다 훨씬 발전되기도 한 데다가 한발 앞서 고안한 것이다.


물론 자침 나침반은 송나라 전대부터 고대 중국에서 발명하여 육지에서 널리 이용되었으나, 송나라는 이러한 자침 나침반을 1119년에 해상 항해에 최초로 사용하였다. 작은 자침을 유리 상자에 넣어 무역선 위에 설치하여 해류와 안개 속에서도 항로를 유지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이에 비해 서구는 먼 미래인 15세기에 나침반, 격벽 도입을 막 시작했다.


이렇게 전 세계의 해상 무역을 주도한 송나라는 아라비아, 인도 등지의 상품과 문물들을 수입하고, 송나라산의 비단, 도자기들을 수출하면서 막대한 이득을 가져왔다. 이슬람 세계와 무역 거래를 위한 송나라 무역선(商船)이 해상 실크로드를 개척하였으며, 국제 외교 사절단도 수시로 교류하여 외교력까지 향상되었다. 수출증권, 어음, 합자회사 등 금융제도도 발전하여 상품 무역이 전문적으로 이루어졌다.




(4) 산업 생산


송나라는 수도인 카이펑(개봉)과 영주 등에서 광범위한 대규모 제철소를 건설, 운영하면서 연간 약 100,000톤 이상의 철강을 생산했으며, 이는 동시대 유럽 등 다른 지역의 생산량을 훨씬 능가하는 수치였다. 목판, 금속 활자가 이용된 대량 인쇄술도 발달하여 책, 문서가 대량 생산되어 송나라 시대에는 각종 무협지와 영웅소설들도 활발하게 출간되었다. 특히 송나라 말기의 수학자 "양회(楊輝)"는 "구장산법(九章算法)"에 "파스칼의 삼각형(百驗圖)"을 도입하였는데, 이는 17세기 유럽의 파스칼 삼각형 도입보다 수세기 앞선 것이었다. 양회는 음수 개념과 "0"의 기호 도입 등 중국 수학 발전에도 기여했다.




(5) 대규모 경제력


송나라는 전국적으로 시장이 급성장하여 대규모 상업활동이 전개되었고, 인구 1인당 소득이 지속 증가했다. 물자 유통을 혁신한 "종이 화폐(교자)"를 1024년 세계 최초로 발행하여 무거운 동전 대신 어음, 종이 화폐로 21세기 현대시대의 자본주의 같은 시장 경제 체계를 형성시켰다. 이로 인해 서구보다 수세기 앞서 화폐 경제가 활성화되었다. 유럽의 은행권(지폐) 도입은 17세기 스웨덴에서 최초로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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