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만 제국이 흑인들을 인종차별 하지 않았던 이유

오스만 제국은 왜 흑인들을 인종차별하지 않았나?

by 바다의 지정학





시작하면서) 원래 동북아시아인이었던 오스만 제국의 정체성



돌궐족.jpg 오스만 제국의 조상인 동북아시아인인 "튀르크"족의 모습



"오스만 제국(Osmanlı İmparatorluğu)"은 동북아시아에 살았던 튀르크계 민족인 "오우즈 튀르크(Oğuz Turks)"에 의해 건국되었다. 오스만 제국의 직계 조상이 건국한 최초의 대제국인 돌궐제국은 6~8세기 중앙아시아 몽골대초원 스텝 지역의 군사적 패권을 장악했던 고대 튀르크계 제국이었다.


그러다가 당나라와의 전쟁에서 패배한 돌궐제국이 서쪽으로 퇴각하여 아나톨리아 반도에 정착했고 원래의 동북아시아인의 얼굴 생김새를 가지고 있던 튀르크족은 그곳 현지인들과 혼인을 하여 동화되면서 현재의 이국적인 외모로 바뀌게 되었다.


그리고 먼 훗날 세계 군사적 패권제국이었던 몽골제국의 식민지로 전락한 룸 셀주크 제국에서 도망쳐 나온 오스만 가지가 세운 오스만 제국은 13세기 말 아나톨리아 반도에서 발흥하여 20세기 초까지 존속했다. 오스만 제국도 초창기에는 몽골제국 일칸국의 식민지로 전락했다가 독립했다.







ㄱ) 이슬람 율법 샤리아와 오스만 노제의 특수성




ChatGPT Image 2025년 7월 31일 오전 10_04_45.png


오스만 제국에서도 노비제는 분명히 존재했다. 마치 조선시대의 노비제처럼 말이다. 하지만 오스만 제국과 조선시대의 노비제는 비슷한 반면, 그 성격은 아메리카 대륙의 "농장형 동산 노예제(chattel slavery)"와는 본질적으로 달랐다.


오스만 제국은 이슬람를 믿는 돌궐족이 세운 제국이었으며, 이슬람 교리는 모든 인종은 신 앞에 평등하다는 가르침을 기본으로 한다. 따라서 노비도 같은 사람으로 존중받아야 한다는 의식이 강했고, 노비를 해방시키는 것을 종교적 미덕으로 여겼다.



이러한 차이는 이슬람 율법과 꾸란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이슬람법은 노비제를 허용했지만 동시에 그에 대한 엄격한 규율과 인간적 대우, 그리고 해방을 강력히 권장하는 이중적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대서양 노예 교역을 통해 얻은 흑인 노예들에 대한 미국의 인종차별은 피부색에 기반한 생물학적 우열론과 제도화된 차별이었는데, 오스만 제국 사회에서는 이런게 아예 없었다. 물론 이는 오스만 제국이 흑인을 차별하지 않는 "인종적 이상향"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사회를 구성하고 위계를 설정하는 근본 원리가 "인종"이 아닌 "종교"와 "술탄에 대한 예속 관계(kul sistemi)"에 있었기 때문이다.



오스만 제국이나 조선 같은 동양 제국들은 강력한 권위주의를 가지고 있었기에 계급, 신분제 서열이라서 애초에 사회 자체가 신분에 따라 엄격하게 구분되어 있는 상황이라 인종에 따라서 차별을 할 수 있는 틈이 없었다.



가장 근본적인 차이는 노비의 자격 조건이었다. 이슬람 율법에 따르면, 일반 백성인 무슬림은 결코 노비가 될 수 없었다. 노비의 공급원은 주로 전쟁을 통해 획득한 비무슬림 포로 또는 비무슬림 지역에서 구매해 온 이들이었다.



게다가 오스만 제국의 노비는 아프리카 출신 흑인들보다 오히려 서유럽과 남유럽의 스페인인 노비들이나 발칸반도와 캅카스 지역 출신의 백인 슬라브, 체르케스, 조지아인들이 상당수를 차지했다. 이러한 다양한 인종적 배경의 노비 존재는 "노 = 흑인"이라는 등식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중요한 기제였다.



그리고 미국 남부의 노예제가 어머니의 신분을 따르는 세대적 세습을 통해 영속화된 반면, 오스만 사회에서는 이러한 구조가 제도적으로 불가능했다. 이슬람 율법에 따르면 남성 주인이 자신의 여성 노비와의 사이에서 낳은 자녀는 자유인 신분을 획득했기 때문이다. 이는 오히려 조선시대보다 훨씬 포용적이며 노비를 차별하지 않는 사회임을 보여준다. 조선시대조차도 남성 주인이 여성 노비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은 노비였는데 오스만 제국은 자유민이 될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이는 노비 신분이 한 세대에서 끝날 수 있음을 의미하며 대규모의 세습 노비 계층 형성을 억제했다. 또한, 노비 해방은 신에 대한 가장 큰 공덕 중 하나로 여겨져, 많은 노비들이 주인의 유언이나 자선 행위를 통해 자유를 얻을 수 있었다.




또한 스페인이나 남아메리카, 미국에서 흑인 노예들이나 남아메리카 원주민들은 거의 모두 "농사 노예"였는데 반해.. 오스만 제국이나 조선시대의 노비는 주로 가사 노동, 행정, 군사 분야에서 복무했다. 대규모 플랜테이션 농업이 부재했던 오스만 제국의 경제 구조상 경제적으로 착취할 이유가 없었을 뿐더러, 이들은 생산 수단으로서의 "재산"이라기보다는 주인의 지위와 부를 상징하는 가내 구성원으로서의 성격이 강했다.



물론 동서고금하고 "노비"들의 삶은 고되고 비참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나, 오스만 제국은 대놓고 노비들을 학대하거나 하지는 않았고 주인과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며 어느 정도의 인간적 관계를 형성하고 사회에 통합될 여지가 있었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차이를 보인다.






ㄴ) 다민족 제국의 포용적인 정책 "밀레트 제도"



ChatGPT Image 2025년 8월 2일 오전 09_52_09.png


무엇보다 오스만 제국은 전통적인 동양의 왕조국가였다. 근대적 의미의 "민족국가"가 아니었다는 말이다.


오스만 제국 내에는 지배층인 몽골-튀르크인을 선두로 피지배층들인 아랍인, 그리스인, 아르메니아인, 슬라브인, 유대인 등 수많은 민족과 종교 집단이 혼재했다. 오스만 제국은 이들을 "오스만인"이라는 단일한 민족 정체성으로 동화시키거나 융합시키려 하지 않았고 포용적이게 각자의 민족들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폭넓게 보장해줬다.


대신, 종교 공동체를 기반으로 한 포용 정책인 "밀레트"를 통해 이들을 통치했다.


동유럽 그리스 정교회 밀레트, 아르메니아 사도교회 밀레트, 유대교 밀레트 등의 각 밀레트들은 자체적인 종교법에 따라 공동체 내부의 교육, 혼인, 상속 등 민사 문제를 자율적으로 처리했다.


이러한 제도 하에서 개인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민족"이나 "피부색"이 아닌 "소속된 종교 공동체"였다. 즉, 오스만 제국의 신민은 "지배층인 황인(튀르크족)"이나 "피지배층인 백인"이나 "똑같이 피지배층인 흑인"으로 분류되기 이전에 "무슬림", "그리스 정교도", "유대인"으로 먼저 인식되었다.


애초에 오스만 제국 자체가 동북아시아인인 튀르크족이 세운 왕조였기 때문에 오스만 제국의 입장에서는 백인이든 흑인이든 둘다 지배하고 다스려야할 피지배층에 불과했다.


이러한 사회 구조 속에서 서구적인 "흑인에 대한 제도적 차별"이 발달할 여지는 극히 제한적이었다. 제국의 위계질서는 1차적으로 "몽골-투르크계의 무슬림 지배층"과 "비무슬림 피지배층(zimmi)"으로 나뉘었고, 무슬림 공동체 내에서는 출신 민족이나 피부색보다 개인의 능력, 술탄과의 관계, 이슬람 교리에 대한 이해도가 사회적 성공의 더 중요한 척도였다.


아프리카에서 온 흑인 노비가 이슬람으로 개종하는 순간, 그는 종교적으로는 지배 집단인 무슬림 공동체의 일원이 될 수 있었다. 비록 그의 피부색과 노비 출신이라는 굴레가 사회적 편견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었겠지만, 이는 법적, 제도적으로 그의 사회적 상승 경로를 원천 봉쇄하는 서방식 인종차별과는 질적으로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ㄷ) 권력의 중심에 선 흑인 환관과 술탄의 친위 세력




ChatGPT Image 2025년 8월 1일 오후 07_04_16.png



오스만 제국에서는 노비가 꼭 천대받는 존재는 아니었고, 교육을 받고 관직에 오르거나 궁궐에서 높은 지위에 이르기도 했다.


특히 흑인 환관이 제국 신분 구조 내에서 차지했던 독특하고 강력한 제도적 역할도 한몫했다.


오스만 제국은 아무래도 동양의 왕조국가였기에 고대 중국처럼 "환관"이 존재했다. 따라서 세계사에서 환관으로 가장 유명한 제국들하면 고대 중국 한 제국이나 명 제국, 오스만 제국, 페르시아 제국, 그 외의 이슬람 제국들이다.


오스만 제국이나 명나라에서 흑인은 서구 사회와는 현저히 다른 위상을 가졌음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는 바로 "흑인 환관"의 존재다. 명나라를 비롯해 중세 중국 송나라에서도 "곤륜노"라는 흑인 노예가 존재했었는데, 이런 곤륜노보다도 오스만 제국의 흑인 노가 훨씬 더 대우가 좋았다.


특히, 술탄의 후궁들인 하렘을 총괄하고 황실의 재정을 관리하는 "크즐라르 아가(Kızlar Ağası, Chief Black Eunuch)"는 왕조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자 중 한 명이었는데 흑인들이 많이 뽑혔다.



크즐라르 아가들은 주로 나일강 상류나 중앙 아프리카 지역 출신이었다. 거세되어 이스탄불로 보내진 흑인 환관들은 술탄의 사적인 공간인 하렘을 관리했다. 이들은 술탄의 어머니인 "발리데 술탄"과 함께 하렘의 실질적인 지배자였다. 조선시대로 따지면 내명부의 담당자가 왕비인 중전이었던 것처럼 오스만 제국은 발리데 술탄이 하렘의 담당자였는데 흑인 환관들도 든든한 도우미들이었던 셈이다.


이렇듯 아프리카계 흑인 환관들은 궁궐에서 중요한 역할(후궁, 왕자의 보호 등)을 맡으며 신뢰를 받았던 것이다.


또, 이슬람의 양대 성지인 메카와 메디나를 포함한 오스만 제국 전역의 막대한 종교적 내탕금을 관리하며 제국의 재정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그리고 흑인 환관들은 고대 중국 한나라 말기 시대의 어린 소년 황제의 측근이었다가 칼을 빼들고 독재했던 십상시처럼 오스만 제국 술탄의 사생활을 가장 가까이서 보좌했기에 그는 술탄에게 직접 정책을 건의하고 정보를 전달하는 핵심적인 소통 창구였다. 이는 재상조차 쉽게 가질 수 없는 특권이었다.



ChatGPT Image 2025년 8월 4일 오후 01_25_56.png


그렇기에 흑인 환관들의 추천과 지지는 고위 관직 임명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으며, 때로는 재상을 실각시킬 정도의 정치적 힘을 발휘했다. 단순히 피부색이 검다는 이유로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던 서방의 흑인 노예vs제국의 심장부에서 술탄 다음가는 권력을 휘둘렀던 동양의 오스만 제국의 흑인 환관의 모습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이렇게 오스만 제국은 흑인 환관들을 일부러 권력담당자로 육성했으며, 흑인은 하렘 등 중요한 권력기관에서 필수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오스만 제국은 이슬람 규범과 정치적 현실의 교차점에서 흑인 환관을 실용적으로 등용했다.


이는 오스만 사회에서 피부색이 권력 획득의 절대적인 장애물이 아니었음을 증명하는 가장 강력한 증거다.




이런 흑인 환관들인 크즐라르 아가의 존재는 오스만 제국의 독특한 신분 충원 제도인 "쿨 제도"의 연장선에서 이해할 수 있다. "쿨"은 "노비" 또는 조선시대같은 "종"을 의미하지만, 이는 술탄에게 절대적으로 예속된 신하라는 의미도 가진다.



오스만 제국의 조정은 오스만 제국의 가장 막강한 군인 지배층들인 몽골계 귀족 일족들이나 튀르크 귀족 가문들의 폭주와 독재를 막기 위해, 발칸반도의 기독교인 소년들을 징집하여 이슬람으로 강제 개종시킨 후 철저히 훈련시켜 재상이나 예니체리 군단장 등 최고위직에 임명했다. 이들은 가족이나 지역적 기반이 없었기에 오직 술탄에게만 충성할 수 있었다.


그런데 신비한 점은 흑인 환관 역시 이러한 "쿨" 제도의 일부였다는 점이다. 그들은 생식 능력까지 거세당했기에 그들의 유일한 충성의 대상은 술탄과 황실뿐이었다. 그렇기에 이러한 절대적 충성심을 알고 있던 오스만 제국의 술탄들은 출신이나 피부색과 무관하게 제국의 가장 내밀하고 중요한 비밀스런 역할들을 흑인 환관들에게 맡길 수 있었던 것이다.


ChatGPT Image 2025년 8월 4일 오후 02_41_35.png


결론적으로, 근대 오스만 제국이 흑인에 대해 서구와 같은 제도적 인종차별을 시행하지 않은 것은 제국이 오늘날 의미의 "인종 평등" 사상을 가졌기 때문은 아니다. 오히려 그 이유는 오스만 제국의 신분질서를 "인종"이라는 관점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요약하자면 오스만 사회의 위계질서를 결정한 핵심 변수는 다음과 같다.



1) 무슬림과 비무슬림 간의 명확한 법적, 사회적 구분이 가장 근본적인 차별의 기준이었다는 점.

2) 일반 백성과 노비, 그리고 술탄에게 예속된 "쿨"과 일반 신민 사이에는 분명한 경계가 존재했다.

3) 술탄과 황실에 얼마나 가까운가, 그리고 국가 제도 내에서 어떤 기능을 수행하는가가 개인의 사회적 지위를 결정했다.


이러한 복합적인 신분 구조 속에서 아프리카 출신 흑인은 노비로서 비참한 삶을 살기도 했지만 이슬람으로 개종하고 환관으로서 궁정에 진출하는 등 특정 경로를 통해 제국의 최상층부까지 오를 수 있는 제도적 통로가 존재했다. 크즐라르 아가의 사례는 피부색이 사회적 상승의 절대적 한계로 작용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예인 것이다.


즉, 서방은 흑인을 "열등한 인종"으로 보고 제도적 인종차별과 식민지 착취를 정당화했지만, 오스만 제국은 피부색보다는 종교적, 신분적 배경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는 차이점이 대표적으로 서방은 흑인 차별이 심하고 오스만 제국은 흑인 차별이 없었던 이유다.


그래서 오스만 제국은 오히려 조선시대보다도 노비에 대한 대우가 좋았던 그런 제국이었다. 이는 앞서 말했듯 오스만 제국이 단순히 착해서가 아니라 다민족제국으로 수많은 다민족, 다인종들을 효과적으로 다스리기 위해서 하는 통치 정책이었던 점이다.


물론.. 단점이 아예 없는건 아니었다. 오스만 제국에서 온갖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었고 인종적으로 차별은 받지 않았던 흑인들이었지만 딱 하나.. 고대 중국 한나라의 환관들처럼 오스만 제국의 흑인 환관도 거세당한 환관인지라 "종족 번식"이 아예 불가능해서 자손을 남길 수가 없었고 그 탓에 오늘날 이슬람을 믿는 국가들에는 흑인들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송나라, 최첨단 무기와 과학기술력은 세계 1위인 대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