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엔탈리즘(Orientalism)』(1978)이라는 단어는 생각보다 최근에 만들어진 단어인데, 그 어원을 따라가보면 20세기 후반대인 1970년대에 영국령의 팔레스타인 출생인 미국인 문학평론가 "에드워드 사이드"의 책 제목이며 생겨난 단어로 근현대시대 서양인이 바라보는 "동양관(오스만 제국, 중국, 중앙아시아, 아랍, 인도, 한국, 일본 같은 비서구권. 남아메리카, 필리핀은 서양 문화권이므로 제외.)"에 기초한 각종 담론들을 총칭하는 뜻이자 동양에 대한 이국적인 신비로움과 경외심, 두려움 등의 감정을 뜻한다.
하지만 단어 자체만 20세기에 생겨난 것일 뿐, 옛날부터 서양은 동양에 대한 공포, 경외심, 두려움, 시기, 질투, 경쟁의 감정들은 늘상 지니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 오리엔탈리즘이란 대체 무엇일까?
자세히, 그리고 알기 쉽게 알아보도록 하자
1. 중세때까지 세계 1위였던 동양의 군사력, 기술력
고대 ~ 중세시대 때까지 세계 패권은 항상 중국이 가지고 있었다
먼저 "오리엔탈리즘"이란 개념을 자세히 알기 위해서는
고대시대부터 중세시대 때까지는 세계사 무대에서 항상 선두주자였던 동양의 군사력과 기술력이 서양보다 훨씬 더 강했었다는 역사적 사실부터 알아둘 필요가 있다.
왜냐면 이 역사적 사실로 인해 발생한 개념이 바로 "오리엔탈리즘"이란 개념 그 자체니까 말이다.
아까도 말했듯, 오리엔탈리즘이란 동양에 대한 서양의 공포, 경외, 두려움이 총칭된 개념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이 공포, 경외, 두려움의 개념은 언제부터, 그리고 어디서, 어떻게 발생했던 것일까? 그 질문들에 대해 알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고대 ~ 중세시대 까지 동양의 군사력과 기술력이 서양보다 훨씬 강했었다는 역사적 사실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고대시대부터 중세시대까지 동양 세력들이 항상 먼저 서양을 침략하고 정복, 식민지화했다는 점도 알아둬야 된다.
가장 첫 번째는 동양의 페르시아 제국이 서양의 그리스를 침략하면서 발발한 페르시아 전쟁(혹은 학계에 따라 페르시아 vs 그리스 전쟁, 그리스 vs 페르시아 전쟁으로 각각 불리기로 한다)이다.
하지만 이 시기까지 동양의 세력들이 서양을 침략하긴 했어도 절대적인 우위를 차지하지는 못한다. 이 시기에는 아직 동양의 군사력, 기술력, 경제력이 서양보다 다소 앞섰던 것도 사실이지만 "절대적인 우위"를 차지하진 못했기 때문에 서양은 동양을 공포나 경외심, 존경심의 대상이 아닌 "경쟁"의 관계로서 바라봤다.
하지만 이런 경쟁 구도를 완전히 파괴시키고, 동양의 절대적인 군사적 우위가 시작되게 만든 대제국이 등장한다. 바로 "흉노제국(훈제국, 원어로는 훈누제국이라고도 부름)"의 등장이 그것이다.
흉노제국이 로마제국을 침략해서 파괴시키는 내용을 담고 있는 영국의 전쟁 게임 "아틸라 토탈워"
서양이 느꼈던 세계 최초의 공포이자, 동양의 군사력이 서양을 아득히 초월했다는 공포감, 경외심, 존경심의 감정들이 그대로 담겨져 있는 게임, "아틸라 토탈워"는 흉노제국이 로마제국을 침략해서 파괴시키는 내용을 담고 있는 영국의 크리에이티브 어셈블리가 제작한 전쟁 게임이다.
이런 전쟁 게임이 서양에서 개발될 정도로 서양에게 있어 흉노제국의 출현은 공포 그 자체였다.
그 이전까지는 단순히 "경쟁 관계"으로만 동양을 바라봤던 서양에게 있어 페르시아 제국 vs 그리스의 전쟁은 마치 오늘날의 "이스라엘(페르시아 제국) vs 팔레스타인(그리스) 전쟁"과 비슷했다. 힘의 격차는 분명히 존재했지만 아직까지는 자신들이 상대할 만큼의 힘을 가진 적이었기에 잘만 싸우면 이길 수 있을 것이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지역 간의 전쟁에서 갑자기 저 멀리서 "세계 최강의 미국(흉노제국)"이 등장해버린 격이다.
당시 흉노제국의 군사력은 세계적으로도 엄청나게 막강했다. 당시 세계 패권을 가졌다는 중국 한나라와 로마제국을 모두 다 동시에 상대했음은 물론, 두 제국 다 멸망 직전까지 몰고 갔으니 말이다.
흉노제국의 최전성기를 이룩한 묵돌선우는 세계적인 대정복자로서 한나라와의 치열한 세계 패권 전쟁을 개시했고, 한나라의 위대한 전쟁영웅인 1대 황제 한고조 마저도 묵돌선우의 막강한 군대 지휘 능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전열을 재정비한 한나라는 군사비를 계속 강화시키다가 결국 한무제 대에 이르러서 흉노제국과의 치열한 대전쟁을 개시했고, 한무제는 먼저 장건을 파견해서 로마까지 이어지는 무역로인 실크로드를 건설하는 한편 오늘날 "중앙아시아 튀르크메니스탄" 지역에 위치한 대완국을 침략하여 한혈마 전쟁을 일으켜 한혈마(아할테케 종의 말)들을 공수해서 한나라의 군용마로 삼는 등으로 한나라의 군사력을 엄청나게 강화했다. 게다가 한나라는 치밀하게 외교전까지 펼쳐서 흉노제국의 군사 동맹국들을 정복하거나 혹은 회유해서 한나라에 가담하도록 만들었다. 이로써 흉노제국은 자신들의 식민지들을 하나 둘 씩 잃어가면서 팔, 다리들이 잘려나갔고 결국 영향력이 축소되면서 한나라와의 세계 패권 전쟁에서 패배하고 생존을 위해 서쪽으로 진출한 것이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서양사에서 최초의 공포라는 "훈제국(흉노제국의 일파)"이 로마 제국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흉노제국의 잔당 세력들은 생존을 위해 서쪽으로 계속 모험을 떠난 것이고 결국 로마 제국까지 다다른 것이다.
훈제국은 그 이전까지 로마제국이나 서양이 상대해본 동양의 페르시아 제국이나 중동 세력들 따위하고는 차원이 달랐다. 페르시아 제국이나 중동 세력들은 비록 군사력이 강하나 정주문명이었기 때문에 서양과 군사력, 경제력, 기술력에서 큰 격차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중앙아시아 ~ 동북아시아계의 북방 유목제국들은 서양의 로마제국이나 동양의 페르시아 제국이나 중동 제국들 따위하고는 비교도 안되게 막강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었다.
흉노제국 같은 북방 유목제국들은 모든 사람들이 군인인 제국이었고, 오로지 전쟁만이 그들의 주 직업이었으며, 타국들을 끊임없이 침략하고 정복하고 식민지화를 시켜야만 자신들이 생존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런 북방 유목제국들은 느긋하고 여유로운 정주문명(로마제국, 유럽, 중동 아랍, 중국, 이란, 인도 등)들 따위하곤 입장부터 아예 달랐다. 북방 유목제국들은 자신들이 생존하기 위해서라도 군사력이 정주문명들보다 훨씬 강해야만 됐다.
왜냐면 압도적인 군사력을 가지고, 정주문명들을 정복하고 침략하는 것만이 직업인 흉노제국과 같은 북방 유목제국들에게 있어서 만약 자신들이 정주문명들보다 군사력에 있어 우위에 서지 못하면 더 이상 정주문명들을 침략하고 정복하고 식민지화하기 불가능하기 때문이며, 그 말은 곧 그들의 생존에 큰 방해물이 되기 때문이다. 북방 유목제국들이 위치한 중앙아시아 ~ 동북아시아의 스텝지역은 무기 제작에 쓸 철광석들과 말(馬)들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지역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세계적으로도 엄청나게 춥고 척박하고 거친 초원의 환경이기 때문에 농사가 아예 불가능했기에 정착 생활도 불가능했다. 따라서 북방 유목민족들은 끊임없이 이동하고 움직이면서 전 세계를 모험해야만 됐다. 오로지 정복전쟁에 나서서 타국들을 끊임없이 정복하고 전리품들을 획득해서 판매하는 것 말고는 경제 활동이 불가능한 지역이었던 탓이다.
즉, 그들은 가난했고, 그 악바리 정신과 헝그리 정신들을 가지고 끊임없이 강해져서 부자들을 공격해서 부자들이 가진 모든 것들을 약탈해갔던 것이다.
그렇기에 흉노제국은 세계 역사상 최초의 정복전쟁 전문가였다. 그들은 어떤 식으로 정주문명(로마제국, 유럽)들을 침략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지, 그리고 어떤 식으로 해야 정주문명들이 가진 모든 재산들을 효과적으로 약탈할 수 있는지 그 방법들을 모두 알고 있었던 전문가들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로마제국에게서 약탈한 약탈품, 전리품들은 모두 흉노제국의 것이었다. 그것만이 그들이 살아가는 유일한 낙이었고 존재의 이유였다.
그래서 이런 흉노제국(서양사의 기록에서는 "훈제국")의 침략과 게르만족의 대이동 앞에 로마제국은 속수무책으로 당했고 그 직후 멸망의 길을 걸었던 것이다. 그 이전까지 서양이 동양의 페르시아 제국이나 중동 세력의 준동을 막기 위해 썼던 방법은 흉노제국 앞에서는 전혀 무력했던 것이다.
물론 이때 로마제국이 명목상으로는 완전히 멸망한 것은 아니지만 세계 역사학계에서는 로마제국이 멸망의 길을 걷게된 기점(起點)을 흉노제국의 로마제국 침략과 게르만족의 대이동이라는 대사건들을 당한 시대부터라고 보고 있다.
어쨌거나 흉노제국이 잘 살던 게르만족을 침략하면서 게르만족이 흉노제국의 침략을 피해서 로마제국까지 밀고 내려오면서 로마제국이 멸망 직전까지 갔으니 말이다.
이 때부터였다.
그나마 버티던 로마제국의 몰락이 가속화되면서 원래부터 서양보다 군사력이 훨씬 더 막강했던 동양의 중앙아시아계 북방 유목제국들(몽골-튀르크계 정복제국들), 고대와 중세 중국 제국들(한나라, 당 제국, 송나라, 명나라), 중동 이란(페르시아 제국), 아랍, 이슬람 제국 등을 더 이상 따라 잡는 게 불가능해져버린 서양 세계는 급속도로 몰락했고, 그러면서 세계는 완벽하게 동양이 지배하는 시대가 되버리니 서양 사학계에서는 이 시대를 "중세의 암흑기"라고도 부른다.
물론 중세의 암흑기란 표현 자체도 서양인들에게 있어서 굴욕적인 시대였기 때문에 중세의 암흑기인 것이지, 동양사의 입장에서 볼 때는 세계 최전성기인 셈이지만 말이다.
그리고 마침내 12세기부터 명실상부한, 유일무이한 세계 패권 제국으로 군림하게 되는 "대몽골제국".
그리고 몽골제국의 일칸국의 식민지로 전락했던 룸 셀주크 제국(셀주크 제국의 후신)과 초기 오스만 제국.
그리고 몽골제국의 계승 국가인 티무르제국의 식민지로 다시 전락한 오스만 제국.
몽골제국, 티무르 제국의 식민지배에서 해방된 후 유럽을 공격하면서 유럽인들에게 다시 한 번 몽골제국, 흉노제국급의 공포를 안겨다군 "오스만 투르크".
그리고 명나라 영락제 치세 때 정화 함대의 세계 남해 대원정까지.
동양이 세계를 지배하고 세계 패권을 휘두르는 시대는 계속되어 갔고, 그렇게 동양의 세계 패권은 영원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 세상에 "영원한 건 없다"
그것은 동양의 세계 패권도 마찬가지였다. 고대시대부터 중세시대 때까지 계속되어 오던 동양의 세계 패권은 동양의 오만함으로 인해 금이 가기 시작한다.
2. 동양의 오만함, 서양의 헝그리 정신
명나라 정화의 대함대와 스페인 콜럼버스의 산타마리아 호를 그림으로 굳이 비유하면 오른쪽의 거대한 군함이 정화 함대. 왼쪽의 초라하고 낡은 배가 콜럼버스의 산타마리오 호나 다름없었다
명나라 정화 대함대의 남해 대원정은 아프리카 케냐까지 원정하면서 말그대로 세계 해양 패권도 고대, 중세 중국이 가지고 있었음을 다시 한 번 각인시켜준 대사건이었다.
그리고 실제로도 명나라 정화의 대함대는 당시 전 세계적으로 가장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했었고, 당시로서는 세계사에서 가장 막강한 함대인 정화 함대의 위용을 자랑했던 사건이었다.
이는 명나라 정화 대함대의 남해 대원정의 군사적 목표는 "군사적 과시"였다. 즉, 무슬림 출신의 정화가 이끈 정화 대함대는 "세계 1위는 명나라니까 나머지 국가들은 다 무릎 꿇어!" 이것을 재차 확인하려고 세계 해양을 원정했던 것이다.
그런데 21세기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알고 있다.
당시까지만 해도 세계 1위의 군사력, 해군력, 영향력을 가졌던 명나라가 정화 대함대의 남해 대원정으로 세계에 엄청난 군사적, 외교적 영향력을 준 것도 사실인데 왜 중국은 세계 해양 패권을 계속 유지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 당시까지만 해도 아무런 관심도 못 받고, 그저 미개인 취급받던 유럽인들이 어떻게 21세기 들어 지금은 패권을 가지게 된 것일까?
그 기나긴 여정을 알기 위해서 우리는 1433년까지 명나라 정화 대함대가 남해 대원정으로 세계 해양을 휩쓴 시점에서 한참 후인 먼 미래로 가보도록 하겠다.
스페인 왕국 대항해시대의 첫 시작은 미미(微微)했다.
약 16세기부터 본격적으로 열린 대항해시대는 처음에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고, 주목 받지 못했으니까. 콜럼버스조차도 모국인 이탈리아에서 허황된 망상이라며 버림 받다가 스페인 왕국에서 여왕이 겨우 간신히 배를 대줘서 띄운 것뿐이었으니까.
15세기인 약 1451년쯤에 이탈리아 왕국의 제노바에서 태어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는 지구는 둥글다는 것을 알게 됐고, 서쪽으로 항해하면 인도에 도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모국인 이탈리아를 비롯해 많은 유럽 사회들은 당시까지만 해도 지구는 평평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지구가 둥글다는 그의 주장은 거짓말, 혹은 이단의 혀놀림쯤으로 여겼고 그를 이단, 혹은 이교도라며 배척하고 무시했다.
그렇게 모국해서 박해받고 스페인 왕국으로 가버린 콜럼버스는 거기서 중요한 사람을 만나는데 당시 스페인 왕국을 지배하던 여왕 이사벨 1세였다.
당시까지만 해도 포르투갈 왕국, 스페인 왕국(에스빠냐)은 가장 약소국에 고립된 변방에 불과했다. 사진 출처: 외교부
스페인 왕국이 콜럼버스는 지지해준 이유는 단순히 탐험 때문이 아니었다. 먹고 사는 문제가 달려있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왕국은 그래도 먹을 게 좀 있어서 먹고 사는데 괜찮았는데 당시까지만 해도 스페인 왕국과 포르투갈 왕국은 세계에서 가장 극쪽에 위치해있는 변방에 고립된 왕국들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나약했고 가난했던 정주문명이었다.
게다가 돌궐족이 세운 오스만 투르크는 아나톨리아 반도에 터를 잡고 세를 키우면서 유럽 전역을 위협하고 있었고, 오스만 투르크가 세워짐에 따라서 인도와 유럽의 직접적인 교역길은 막혀버렸다.
중국에서 시작된 실크로드는 중앙아시아, 인도, 오스만 투르크까지는 왔지만 더 이상 과거 로마시대 때와는 달리 유럽은 그 실크로드의 특혜를 보지 못했다. 게다가 당시 유럽 귀족과 귀부인들은 향신료 음식에 매료되어 있었다. 하지만 향신료는 구하기 힘든 값비싼 식재료였고 향신료를 구매하기 위해서는 중간에 길을 가로 막고 있는 오스만 투르크를 통하는 수밖에는 없었기 때문에 유럽은 날이 갈수록 더욱더 고립되어 갔고 피폐해져 갔다.
그들 중에 가장 가난한 왕국들이 바로 가장 극쪽에 위치해 있는 스페인 왕국과 포르투갈 왕국이었다. 지도상으로 봐도 알 수 있듯이 가장 극쪽에 위치해 있기에 육지에서는 더 이상 비벼볼 힘이 없었던 스페인 왕국과 포르투갈 왕국은 강력한 돌궐족들이 세운 오스만 투르크 왕조를 피해 바다쪽으로 도망치기로 한다.
그리고 인도까지 가서 향신료를 직접 구매하는 임무를 가지고 바다에 배를 띄운 것이 바로 콜럼버스였다. 콜럼버스의 목적은 사실상 간단했다. 인도 가서 향신료를 구매해오는 것.
하지만 아까도 말했듯 당시 세계에서 군사력, 기술력, 해군력, 그리고 항해 기술력이 가장 발전했던 동양과는 달리 서양은 항해 기술력이 형편 없었다. 그리고 당시 유럽인들이 세계를 바라보는 시야 자체는 매우 좁고 협소했다. 그래서 인도까지 가는 길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냥 "막연히" 배를 띄운 것뿐이었다. 실제로 유럽에서 인도까지 배를 타고 가려면 남쪽으로 내려가면 간단히 해결될 문제였지만 당시 유럽에서는 남쪽 바다를 갈 항해력이 없었기에 멀리 서쪽으로 우회하는 방법을 선택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선택이 바로 서양의 운명 전체를 송두리째 바꿀 결정이 되버릴 줄은 콜럼버스도 몰랐을 것이다.
구글 번역이라 조금 이상한 부분도 있지만 아무튼 남아메리카 지도
바로 "아메리카 대륙"이라는 생전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지역을 발견해버린 것이다.
3. 약소국 서양이 로또 복권에 당첨되다 : 신대륙 발견
사실 신대륙의 존재는 당시 유럽인들이 알던 얕은 지리적 상식, 지식들을 완전히 뒤엎고도 남았다.
왜냐면 동양과 서양은 실크로드를 통해 끊임없이 교류하고, 전쟁하고, 교역과 무역을 했기 때문에 서로에 대해 알고 있었고 그래서 그 이전까지의 동양과 서양의 세계 지도는 전부 다 모두 중국, 중앙아시아 제국들, 페르시아 제국, 중동 아랍, 일본 에도 군부, 인도의 무굴제국, 조선, 오스만 제국, 동남아시아 국가들, 그리고 유럽과 아프리카가 세계 지도였다. 이는 동서고금 할 것 없이 마찬가지였다. 동양의 오스만 제국도 그랬고, 서양 유럽의 그 어떠한 국가들도 모두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이 세계 지도를 보면 알 수 있듯, 그 이전까지 세계 지도에 등장한 국가들은 거의 다 세계적으로도 군사력, 기술력이 강한 세계 강대국들이다.
그래서 콜럼버스도 서쪽으로 쭈~욱 가면 인도에 도착할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했던 것이다.
물론 이는 당시 세계 패권 국가였던 중국 명나라도 마찬가지였다. 중국 명나라는 오히려 세계에서 해군력과 항해 기술력이 가장 강했기 때문에 자신들이 원하는 지역과 국가로 마음껏 원정이 가능했다. 그래서 콜럼버스처럼 "실수"하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까지 아메리카 대륙이라는 이 미지의 공간은 누구에게도 발견된 적이 없으며, 누구도 이런 공간이 있을 것이라는 "예상"조차 하지 않았다.
물론 요새 역사 학계에서는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최초로 발견한게 아니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바이킹족에게 호되게 당했던 유럽인들이 좋아하는(?) 바이킹족의 아메리카 대륙 탐험기를 그린 일본 만화 빈란드 사가.
사실상 러시아의 조상님들로 추측되는 아이슬란드 출신의 바이킹족 탐험가인 "레이프 에릭손"이 콜럼버스보다 500여년 앞선 약 1000년 경에 탐험대들을 대동하고 신대륙 즉, 북아메리카의 캐나다 뉴펄들랜드 근처에 임시 정착지를 마련했다는 기록이 있다. 추운 기후에서 살던 러시아 조상님 바이킹 답게 북아메리카 지역에 떨어진 것은 다행(?)이었을 테다, 만약 지구상에서 가장 덥기로 유명한 남아메리카의 브라질 같은 열대 우림에 갔으면 녹아 죽었을 테니까...
아무튼 유럽에서 "일당백(一當百)"으로 유명해서 혼자서 기사 100명, 1000명도 거뜬히 상대할 정도로 유럽에서 가장 강한 군대, 군사력을 가진 바이킹족이 이끄는 탐험대들은 이상하게도 북미에서는 쪽도 못쓴다. 혼자서 유럽 기사들을 갈아 마실 정도로 강했던 바이킹족이었지만 북미 원주민들의 거센 저항에 부딪혀서 결국 패배하고 철수하면서 북미를 속국으로 만드는데 실패했다. 역시 아무리 군사력이 강해도 죽기 살기로 저항하는 상대에게는 당해낼 수가 없는 법인 것 같다.
하지만 바이킹족은 그 이후 북아메리카 지역에 흥미를 잃었고 바이킹족이 뭐 기록을 잘하는 민족들도 아니었기 때문에 북아메리카에 대한 이야기는 그렇게 묻혀버리고 만다. 그리고 정작 바이킹들도 그 지역이 신대륙인지 모르고 단순히 어느 약한 사람들이 사는 섬이겠거니 생각하고 무시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런데 이 같은 일은 스페인이나 포르투갈 쪽에서는 단순히 가설로 치부되고 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 역사학자들은 이에 대해 기록이 부족하다거나 바이킹족은 처음부터 북미를 가본 적도 없다는 등 주장하며 맞서고 있다. 아무래도 "신대륙에 처음 도착한게 콜럼버스가 아니라 바이킹족"이라면, 최초의 신대륙을 발견자 콜럼버스라는 타이틀은 벗어야 하고, 그러면 결국 스페인 역사상 가장 놀라운 업적으로 칭송받던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에 금이 갈 것 같아서 그러는가 보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
콜럼버스와 산타마리아 호는 그렇게 무식함과 미개함, 그리고 형편없는 항해 기술로 인해 실수로 인도가 아닌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해버리고 만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미개했던 유럽은 자기들이 발견했던 곳이 인도인 줄 착각해버린 것이다.
그리고 급기야 이 습하고 더운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한 스페인 왕국은 이곳 원주민들을 인도인으로 착각하고 "인디언"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콜롬부스의 신대륙 발견을 그린 그림
그런데 곧 이상한 점들을 발견하게 된 유럽이었다. 분명 인도라면 오스만 제국 못지않게 잘 사는 선진국이자 문명국이었고 세계적인 강대국이었다. 그런 세계적인 강대국이.. 강대국은 커녕, 알몸에 벌거 벗고 살고 있다?
뭔가 유럽은 인도와는 전혀 다른 이들의 생활상을 보고 의문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유럽인들이 생각하는 인도의 언어나 인도 문화와도 아예 달랐다. 그렇게 유럽인들은 그곳을 조사하기 시작했고 결국 그곳은 지금까지 세계의 어떤 국가들에게도 알려진 적이 없었던 "미지의 공간" 즉, 신대륙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현재에는 아메리카 인디언이라는 표현을 잘 쓰지 않고, 아메리카 원주민이라는 표현으로 바꿔 불러야한다는 움직임도 있다. 왜냐면 인디언이라는 표현 자체가 "인도인"이란 뜻이니까..
그럼 왜 그동안 신대륙은 전혀 세계에 알려진 적이 없을까? 여러가지 가설들이 있지만 첫 번째는 이 아메리카 대륙에는 어떤 강대국들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게 말하면 "잉카 문명, 아즈텍 문명, 마야 문명이 있잖아."하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잉카 문명, 아즈텍 문명, 마야 문명은 남아메리카 지역에서만 인구수도 많고 그나마 먹히던 문명이었지 세계적으로 보면 당시 동남아시아의 약소국들보다도 군사력이 훨씬 약했다.
전편에서 다뤘던 "스페인 왕국보다 더 강한 필리핀의 술루 술탄국의 역사"를 보면 알 수 있듯 동남아시아 국가들 중에서도 명나라, 일본, 중동 아랍, 인도 무굴제국, 오스만제국 등의 영향을 받아서 총기라던가 이런 화약무기들을 가지고 있던 국가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중 하나인 필리핀에 자리 잡은 술루 술탄국은 스페인 왕국과 전쟁해서 모두 승리하는 괴력을 발휘해낸다.
그런데 잉카 문명, 아즈텍 문명, 마야 문명은 지구상 그 어떤 곳들과는 다른 그 특유의 이상함과 고립됨, 그리고 스페인 왕국에게 먹히는 과정과 인신 공양, 인육, 식인, 알몸으로 살았던 잉카인, 아즈텍인, 마야인이라는 여러 서사들이 겹치면서 유명해진 것뿐이지 세계적으로 보면 동남아시아나 아프리카의 약한 민족들보다도 훨씬 약했다.
비단 잉카 문명, 아즈텍 문명, 마야 문명의 무기부터 보면 그들의 무기는 "돌멩이"다. 농담이 아니고 진짜다. 잉카, 아즈텍, 마야는 과학, 의학, 건축술은 발달했는데 이상하게 군사력과 기술력만 발전을 하나도 하지 못한채 석기시대 수준에 머물렀었다. 그래서 기원후 16세기 때까지도 철기는 커녕 청동기 무기조차 만들지 못했다. 흑요석이라는 돌멩이가 그들의 유일한 무기인데 그조차도 원거리 무기가 아니라서 멀리서 총이나 석궁, 활을 쏴대는 원거리 무기들을 주로 썼던 스페인군들과 탐험대들에게 당해낼 수가 없었다.
게다가 잉카 문명, 아즈텍 문명, 마야 문명은 모두 께짤꼬아뜰(Quetzalcoatl)이라는 태양의 여신이자 뱀의 여신을 숭상했는데 이 여신의 가호를 받는 낮에만 전쟁해야 하는 그들만의 특이한 룰(?) 같은게 있었다. 왜냐면 밤이 되면 께짤꼬아뜰은 숨기 때문이라나 뭐라나 아무튼 그래서 전쟁을 하다가도 밤이 되면 자러 간다. 그러니 밤에 스페인인들이 급습을 해도 반항한번 못해보고 죽었다.
게다가 잉카, 아즈텍, 마야의 전쟁 방식은 "꽃 전쟁"이라는 특이한 전쟁인데 이들은 전쟁할때도 절대 상대방을 "죽이면 안됐다" 왜냐면 잉카, 아즈텍, 마야가 전쟁하는 이유는 영토 팽창이 아니라 인신공양에 쓸 산 제물들과 인육들을 확보하기 위함이었으니까. 그래서 스페인인들과 전쟁할때도 절대 스페인인들을 죽이려고 하지 않고 그냥 패서 기절만 시키려고 했다.
게다가 잉카, 아즈텍, 마야에는 가축이 존재하지 않았다. 개, 말, 양, 고양이, 염소, 소, 닭, 돼지 등이 전혀 없었다. 동물이래봤자 아마존 정글의 아나콘다 같은 존재들 뿐인데 아나콘다는 먹을 수도 없고 잡으러 갔다간 오히려 잡아먹힐 뿐이다.. 이러니 단백질 보충을 위해서라도 잉카, 아즈텍, 마야인들은 같은 인간을 잡아먹는 식인 행위를 해야했고, 그러면서 면연력이 떨어져서 전염병이 잘 걸리는 몸이 된데다가 스페인인들이 돼지, 닭 같은 가축을 데리고 오자 거기서 생겨난 전염병들이 아메리카 대륙을 휩쓰니까 전쟁도 하기 전에 다 떼죽음 당한 것이다.
이렇게 군사력으로 치면 지구상에서 가장 약한 오합지졸에 최약체 국가 1, 2, 3등이 잉카, 아즈텍, 마야 문명이었다. 심지어 역사학계나 고고학계에서는 기원전에 존재했던 고조선이 기원후 16세기에 존재한 잉카, 아즈텍, 마야 문명들을 침략해도 고조선이 잉카, 아즈텍, 마야 문명들을 전부다 고조선의 식민지로 만들었을 것이라고 100% 확답했다. 이는 나 역시도 동감한다. 아니 비단 고조선뿐 아니라 기원전에 존재했던 그 어떤 국가들, 부여, 옥저, 동예, 이집트, 일본 그 어떤 국가들이 기원후 16세기의 잉카, 아즈텍, 마야 문명들을 전부 다 식민지로 만드는 게 가능했을 것이다.
잉카 문명, 아즈텍 문명, 마야 문명의 유일한 무기였던 돌멩이와 아쿠아후이틀(Macuahuitl)
아까도 말했듯 그만큼 잉카, 아즈텍, 마야 문명은 기원후인 16세기까지도 청동기 무기조차 만들지 못했던 "신석기 시대"였기 때문이다.
잉카, 아즈텍, 마야 문명은 원거리 무기가 아예 없었기 때문에 활조차 없었다. 그들의 유일한 무기는 오로지 "돌멩이"와 "아쿠아후이틀(Macuahuitl, 마쿠아후이틀이라고도 불림)"이라는 흑요석을 박아넣은 돌망치 형태의 무기뿐이었다.
근데 잉카, 아즈텍, 마야의 유일한 무기인 아쿠아후이틀(Macuahuitl, 마쿠아후이틀)은 골때리는게 끝이 뾰족하지 않아 찌르는게 불가능하고, 옆에 날이 없어서 베는 것도 아예 불가능했다. 그냥 줘패는 것만이 가능했는데 잉카, 아즈텍, 마야가 있는 중남미 대륙 자체가 지구상에서 가장 습도가 많은 열대 우림들이 많은 지역들이라 나무도 물기를 머금어서 금방 썩고 튼튼하지 않아 잘 부러진다.
한마디로 중남미의 잉카, 아즈텍, 마야 문명은 태어날 때부터 지구상에서 가장 약한 민족이 될 운명으로 태어난 씁쓸한 존재들인 것이다..
왜냐면 중남미 대륙에는 철제 무기를 만들 "철광석"이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군사력 측면에서는 지구상에서 가장 약했던 잉카, 아즈텍, 마야 문명은 먹고 사는 데서만큼은 가장 축복 받은 지역에서 태어난 것이다.
지구 전체를 뒤져봐도 황금이나 온갖 보석들이 가장 많은 곳이 바로 아메리카 대륙이다. 뿐만 아니다. 열대 우림이나 습하고 더운 기후 탓에 온갖 맛있는 열대 과일들이 가장 많은 곳도 남아메리카 지역이다. 그래서 지금도 남아메리카를 여행하면 생전 보지도, 듣지도 못한 온갖 열대 과일들과 바나나들을 다 구경할 수 있다. 남아메리카 여행을 하기 전까지는 바나나의 종류가 그렇게 많다는 것을 몰랐던 일반인들도 엄청나게 많다.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열대 과일들의 생산지인 남아메리카 지역. 바나나 종류만 해도 어마어마하게 많다.
게다가 우리 같은 추운 북반구인 대한민국에 서식하는 사람들이 먹는 바나나는 썩지 않게 품종 개량된 바나나 1종만을 수입해온 것이라서 바나나들 가운데서는 가장 맛이 없는 바나나라고 한다. 그래서 "진짜" 맛있는 바나나나 열대 과일들을 먹으려면 남아메리카로 가야 한다.
게다가 지구상에서 가장 음식 문화가 발달했던 곳도 남아메리카라서 지금까지도 세계에서 가장 음식이 맛있는 국가 1등하면 항상 남아메리카의 "페루"가 손꼽힌다. 이렇듯 온갖 맛있는 음식들과 지구상에서 가장 개방적인 성 문화를 가진 브라질의 쌈바 페스티벌. 습하고 더워서 살기 좋은 지역. 이런 요소들이 합쳐져서 남아메리카는 "치안"만 빼면 현재도 천국과도 같은 곳이라는 것.
이렇게 먹고 살기도 좋은 더운 기후, 맛있는 음식들도 많고, 여러 금과 보석과 자원들은 풍부하게 많은데 또 세계에서 가장 군사력이 약한 잉카, 아즈텍, 마야를 본 스페인인들은 어떻게 보면 "로또 복권"에 당첨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나약한 약소국에 불과했던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너도 나도 잉카, 아즈텍, 마야를 먹고 남아메리카에 빨대를 꽂은 후 마치 모기가 피를 빨아먹듯 남아메리카의 영양분들을 흡수해서 체격을 키우고 경제력을 키워갔다. 그리고 훗날 스페인(에스빠냐) 왕국과 포르투갈 왕국은 경제 선진국으로 급부상한다.
4. 근대시대의 서양, 마침내 동양을 추월하다.
물론 스페인 왕국과 포르투갈 왕국이 급성장을 하긴 했어도 아직 초반 단계라서 미숙한게 많았다. 무엇보다 당시는 아직까지 명나라, 오스만 제국, 무굴제국 같은 세계적인 초강대국들이 존재했기 때문에 세계 패권은 아직 동양이 가지고 있었다. 세계 패권 국가는 명나라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페인 왕국이 7번 넘게 파산을 한 후에 포르투갈 왕국,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를 거쳐서 마침내 "서양 역사상 최초의 패권 국가"인 대영제국이 탄생하게 된다.
영국은 유럽에서 가장 경제력이 높았던 스페인 왕국의 무적함대를 격파한 후에 지중해의 해상권을 장악하고 아메리카 대륙, 호주, 뉴질랜드로 진출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유명한 산업혁명이라는 잭 팟(jackpot)을 터뜨리며 근대시대가 열리고 이는 곧 서양이 항상 앞서가던 동양을 추월하게 되면서 서양의 황금시대가 시작됐음을 알리게 된다.
5. 타자화(Othering) : 오리엔탈리즘의 바뀐 개념
동양을 대표하는 제국들 중 하나인 오스만 제국의 최전성기 술탄 쉴레이만 1세
그리고 이 시기부터 오리엔탈리즘이라는 개념 자체가 바뀌게 된다.
중세시대 때까지는 동양 문명이 서양 문명보다 군사력, 기술력, 경제력에서 월등히 앞서 있었기 때문에 이 시기의 오리엔탈리즘을 굳이 정의하자면 "경외심", "존경심", "공포" 등의 감정들이 공존했던 시기였다.
그러다가 근대시대에 접어들면서 서구 열강은 산업혁명과 제국주의를 통해 급속한 발전을 이루었고, 원래 서양보다 모든 면에서 앞서 나갔던 동양 제국들은 하필 그 시기가 동양 제국들의 몰락기인 상태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쇠퇴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 변화는 서구의 동양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켰다. 과거의 "경외심"은 점차 "분노, 증오, 환멸, 멸시, 조롱, 비하"의 감정으로 바뀌었고, 오리엔탈리즘은 이제 근대시대부터는 서구가 더 우월하다는 정당성을 내세우는 이데올로기로 기능하게 되었다.
특히 타자화의 비교 대상이 바로 동양의 오스만 제국과 중국이었다.
오랫 동안 동양의 오스만 제국과 중국은 자신들의 군사력, 기술력, 경제력이 유럽보다 더 강하다는 사실에 안주하면서 발전에 속도를 내지 않았고 그때도 계속해서 발전하던 서양에 추월당한다.
정확하게는 초기 유럽은 중세시대 때부터 상대적으로 쇠퇴된 상태에서 부흥을 모색하는 과정 속에서, 동양 제국들(예, 중국의 군사 기술과 오스만의 군사·행정 체제)을 이상적 모범 혹은 미지의 대상(때로는 공포의 대상)으로 인식하게 된다.
이러한 인식은 고대 ~ 중세시대의 동양이 가진 군사적, 기술적 우월성에 대한 어느 정도의 "경외감"이나 "존경"의 요소들의 감정들을 느꼈고 이로 인해 오리엔탈리즘 같은 개념이 싹트기 시작한 것이다.
동양의 오스만제국과 중국은 오랜 역사와 강력한 군사력과 기술력, 복잡한 문명체로서 서구에 대해 이국적이고 때로는 위협적인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서양은 동양의 오스만 제국과 중국을 옛날에는 막강했으나 옛날의 영광에 취해서 현실에 안주하고 발전하지 않은 정체된 사회로 매도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이런 오리엔탈리즘적 사고들이 근대시대부터 팽배했다.
오스만 제국 : "병자"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비효율적인 정치 시스템과 종교적인 광신에 사로잡혀 미신(이슬람교)에 빠진 제국으로 묘사.
중국 : "잠자는 호랑이"으로 불리며, 한때는 세계 1위의 군사력, 기술력을 가졌으나 "이제는 잠에 빠진 채로" 옛 영광에만 사로잡혀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 제국으로 묘사.
이런 식으로 근대시대부터 서양은 서양만의 자아 정체성을 부각하는 정치적 목적으로 오리엔탈리즘을 쓰기 시작했다. 이를 "타자화"라고도 부른다. 서양에서 볼때 동양의 오스만제국과 중국은 서구의 역사와 문명 발전에 있어 복잡한 대조군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동시에 “동양(대표적 예 : 오스만 제국, 중국)은 옛날에는 서양보다 군사력과 기술력이 훨씬 더 강했지만, 변하지 않고 정체되어 있었기에 망했다”는 이미지로 규정해 서구의 근대화 및 산업화와의 대비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도구로 전환되었던 것이다. 이를 통해 서구는 자신들이 결국 근대시대에 성공했다는 정치적 합리성과 근대성을 강조할 수 있었다.
6. 문제점 : 동양에 대한 역사 왜곡들
영화 300에서 페르시아 제국의 암살자 부대는 일본도 일종인 시코미카타나를 쓰고 쌍검술을 구사하는 일본 닌자부대로 묘사
근대시대부터 발생한 오리엔탈리즘적인 "타자화"가 가져오는 대표적인 안 좋은 사례들이 바로 "동양에 대한 역사 왜곡"들이다.
대표적인 예들이 바로 동양을 동양 그 자체로 바라보지 않고 무조건 서양과 달라야 한다는 시각으로 보는 것이다. 즉, 서양은 오랫동안 인권을 사랑하고 평화적이며 남녀평등적인 사회를 가지고 민주주의를 이룩했던 반면에, 동양의 중국, 오스만 제국, 이슬람, 아랍 등을 인권은 개나 줘버리고 남성우월주의가 강한 부계사회이며 항상 타국들을 침략하는 제국주의자 같은 모습으로 많이 묘사하는 것이다.
특히 페르시아 제국 vs 그리스 간의 전쟁을 다룬 영화 300의 경우 스파르타 군인들은 정의롭고 의협심 높은 협객처럼 묘사하는 반면에, 페르시아 군대는 완전히 제국주의자, 식민주의자, 야만인으로 묘사했다. 이에 격분한 이란은 영화 300에 대해 역사왜곡이라고 항의하는 일들도 많았다.
이뿐만 아니다. 21세기인 현재까지도 서양이 중동 아랍, 이란, 이슬람, 중국, 튀르키예 같은 동양 국가들의 전통적인 모습을 묘사할때 중동 아랍, 이란, 이슬람을 무조건 남성우월적이고, 여성 억압적이고, 과학 발전에는 등한시했으며 폭력적인 종교에 미쳐있는 광신적은 모습으로, 중국을 묘사할때는 제국주의자 같은 모습으로, 튀르키예를 묘사할때는 잔인하고 폭력적인 군사 통치를 일삼는 돌궐족이나 오스만 제국을 야만인처럼 묘사하고 있다.
물론 이에 대해 어느 정도 역사적 사실들이 있긴 하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건 이들 국가들이 결코 정의롭지는 않다는 것이다. 중동 아랍, 이란, 이슬람이 광적이고 극단적인 종교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고, 중국도 제국주의자 같은 모습으로 많은 국가들을 정복하고 식민 지배하면서 조공을 받아낸 것도 사실이며, 돌궐족이나 오스만 제국 역시 유럽을 침략하거나 하는 침략전쟁들을 일삼았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서양과 무조건 달라야 한다는 오리엔탈리즘적인 타자화로 인해서 발생한 "역사 왜곡"들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바로 영화 300이나 클레오파트라처럼 말이다.
클레오파트라의 경우는 서양의 페미니즘과 PC 운동으로 인해서 클레오파트라를 흑인처럼 묘사하는 것도 있긴 하지만, 글쓴이가 생각할때는 이집트에 대한 오리엔탈리즘적인 모습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집트인들은 피부가 까맣다. 까만 건 흑인이다. 고로, 클레오파트라는 흑인(?)이다. 이런 의식의 연결이 서구의 역사 학계에 아직도 남아있는 문제점도 무시할 수 없다.
물론 고대 이집트 문명은 동양이 아니니까 오리엔탈리즘은 아니지 않냐고 되물을 수도 있지만 이집트 문명도 오리엔탈리즘에 포함된 적도 있다. 그니까 오리엔탈리즘은 서양보다 군사력, 기술력, 경제력이 발전한 문명들에 대한 경외심, 공포감, 존경심, 증오, 신비로움 이런 여러 감정들이 섞인 개념이라고 보면 된다. 그렇다 보니 이집트 문명도 지리적으로는 동양권은 아니지만 오리엔탈리즘에 포함된 적도 있다. 이런 것만 봐도 오리엔탈리즘이란 개념 자체가 엄청나게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개념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고, 정확하게는 서구인들의 가슴 속에 깊게 내재되어 있는 그런 동양에 대한 공포, 경외심, 존경감 같은 감정들의 혼합 같은 것이라고 보면 되는 부분이다.
여튼 문제는 고대 ~ 중세시대까지 동서양은 생각보다 비슷한 점들이 굉장히 많다. 한무제의 주도 하에 건설된 세계의 무역로인 실크로드로 인해서 중국에서 로마까지 동서양은 상당히 오랫동안 서로 교류하고 교역하고 무역하고 때로는 전쟁까지 해왔다. 그러면서 동일한 점들이 꽤 많아졌다. 그런데 무조건 다른 점들만 짚어내니 거기서 발생하는 오류들과 역사 왜곡들과 편견들이 자주 발생하는 것이다.
20세기부터 발생한 오리엔탈리즘적 사고는 아직 21세기에도 서구인들에게 깊게 남아있다.
클레오파트라는 흑인이라고 주장하는 서구의 백인과 흑인, 그리고 넷플릭스의 선 넘는 역사왜곡
그래서 서양인들이 동양(주로 중동 아랍, 튀르키예, 대한민국, 일본)를 바라볼때는 아직도 편견된 시각을 갖는 경우가 많고
우리는 이를 단순히 "인종차별"이라 잘못 오해해서 생각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이건 "인종차별" 같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 20세기부터 발생한 오리엔탈리즘적인 타자화 사고가 원인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서구와는 다른 동양에 대한 공포, 경외심, 존경심, 그리고 증오, 분노, 환멸감, 이질감, 거부감인 것이다. 이런 극본적인 구조들을 알아야 서구의 왜곡된 시선과 역사왜곡에 대한 것을 이해할수있다.
그래서 가끔 사람들이 미국에서는 흑인보다 아시아인(터키인, 중동의 아랍인, 이란인, 대한민국인, 일본인, 인도인 등)이 더 아래처럼 보인다고 말하거나 그렇게 착각하는 경우들이 왕왕 발생하는 이유도 위의 문제 때문이다.
왜냐면 미국 사회에서 이미 "흑인"이나 히스패닉 같은 라틴 아메리카 출생자들은 서양 사회에 완벽히 녹아들었기에 어느정도 서구인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터키인, 중동의 아랍인, 이란인, 대한민국인, 일본인, 인도인 같은 아시아인들은 아직도 오리엔탈리즘적인 사고로 볼때 이들의 존재는 미국에서 매우 "이질적"이다.
왜냐면 동양은 오랫동안 서양과 교류도 하고 교역, 무역도 했지만 때로는 전쟁도 하고 대립도 했으니 말이다.
7. 의문점 : 왜 오리엔탈리즘은 "동양권"일까?
아까도 말했듯 오리엔탈리즘이란 서양과 경쟁했거나, 서양보다 강했던 군사력, 기술력, 경제력을 가진 동양에 대한 서양의 공포, 경외심, 존경심에서 비롯된 개념이라고 했다.
그런데 오리엔탈리즘에 포함되지 않는 지역들이 있다.
바로 남아메리카, 남아프리카, 동남아시아의 필리핀, 호주와 뉴질랜드 원주민, 폴리네시아 원주민 사회가 그것이다.
아쉽게도 이 지역들은 서양보다 뛰어난 적이 없고 경쟁을 해본 적도 없다. 처음부터 이들은 무기력하게 서양 문화의 지배를 받아왔던 지역들이었다. 그래서 서양은 이들에게 있어 공포나 경외심, 존경심 같은 감정을 가질 필요가 없었고 그저 착취의 대상으로만 바라봤다.
쉽게 말해서 전교 1등(동양)을 시기, 질투, 존경, 경외했던 전교 2등(서양)이 전교 꼴등(남아메리카, 남아프리카, 필리핀)에게 그런 감정을 느끼는가?
애초에 전교 꼴등은 전교 2등에게 있어 관심의 대상조차 아니다.
무엇보다 사실상 남아메리카와 필리핀은 이미 서양 문화권에 속해서 서양 취급 받고 있고, 남아프리카는 동양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서양도 아닌 애매한 취급 받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서양인들이 남아메리카나 남아프리카, 필리핀, 호주, 뉴질랜드, 폴리네시아 등에 대해서는 딱히 그런 감정을 느끼지 않는 것도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