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로마 군대가 오합지졸이었던 이유

동로마 제국 = 비잔틴 왕조, 비잔티움 왕조

by 바다의 지정학


sadddadsafsf.jpg 고대 로마의 남녀 공용 화장실



"로마 제국"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



피사의 사탑, 아름다운 문화를 꽃 피운 문명, 맛있는 음식들의 천국, 매우 개방적인 성 문화, 남녀 공용 목욕탕(혼탕), 콜로세움, 네로, 클레오파트라.


이처럼 수많은 이야기들과 재밌는 에피소드들이 있는 국가가 바로 "로마 제국"이다. 또, 로마 제국은 높은 출산율, 번영하고 아름다운 도시, 미녀들, 발전된 문명, 민주주의 등으로도 유명하며 서양 문명의 태동이 그리스와 로마에서 시작됐다고 보고 있다.


그리고 로마 제국의 또 다른 별명으로는 "천년의 나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무도 "로마 제국"을 연상했을 때 중세시대의 로마를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신성로마제국이야 로마제국이 아니니 그렇다 쳐도, 많은 사람들이 로마 제국이 중세 시기까지 존재했다는 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 시기 정확하게는 중세시대의 로마 제국은 얼마나 처참하게 오합지졸이었길래 아무도 기억을 못하는 것일까?


오늘은 고대시대 때는 번영했으나, 중세시대 때는 "오합지졸"로 몰락해버리는 동로마 군대에 대해 알아보려고 한다.






1. 동로마 제국의 군사 제도 :


둔전제(농민병, 테마 제도) 폐지


sadddadsafsf.jpg 로마시대의 농부들을 묘사한 그림



최전성기 시절 고대 로마는 높은 출산율과 인구수, 그리고 경제력을 바탕으로 번영했으나 그 번영이 오히려 고대 로마에게 독이 됐다. 로마는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초기의 헝그리 정신을 잃어버리고 게을러지기 시작한 것이다. 애초에 로마라는 국가 자체가 처음에는 주변국들에게 맨날 삥 뜯기고, 조공 바치던 동네북에 지나지 않았고 심지어 골족에게 맨날 얻어맞고 하던 민족이었다가 노력해서 번영했는데 막상 경제력이 성장하니까 개구리가 올챙이 시절 모른다고 과거의 힘들었던 시절을 까먹고 방탕한 생활에 빠져든 것이다.


이는 마치 중국 송나라가 초기까지는 세계적으로도 엄청나게 막강한 군대를 유지했으나 너무나 번영한 나머지(송나라의 국가 GDP 전체 규모가 미국보다도 더 높을 정도니 말 다했다), 군사 반란들을 막기 위해 군대를 중앙에만 집중시키고 최대한 군대의 권력을 빼고 감시하는 쪽으로 정책들을 선회하면서 군사력이 약화됨과 동시에 거란제국, 여진제국 같은 중앙아시아계 북방 유목제국들의 군사력들이 세계적으로도 가장 막강해지면서 송나라가 쇠락의 길을 걸었던 것처럼 고대 로마도 비슷했다. 번영했던 로마는 날이 갈수록 그 번영에 심취해서 쾌락에 빠지고 입대를 기피하는 현상이 생기면서 군대의 질이 전체적으로 완전히 떨어진 것이다.


그리고 로마 역사상 가장 암흑기라는 동로마, 서로마로 분열되면서 그 침체기는 더욱더 심해진다.


서로마는 사실상 동로마보다도 훨씬 나약했으니 제외하고, 동로마는 초기에 지방 행정 체계를 나름 갖춰놔서, 현지 농민병들이 세금 대신 군역을 지게하는 "둔전제"를 실시했다. 동로마 초기의 군대는 자영농 즉, 농민 중심의 병사들로 구성 됐던 것이다. 동로마는 이 둔전제를 실시할 때까지는 그래도 나름 질이 괜찮았다. 농민병들이다 보니까 지역 방어에 효과적이었던 것이다.








2. 외인 용병 고용


sadddadsafsf.jpg 영화 300 후속작의 장면


앞서 얘기했듯 동로마가 번영할 수록 점점 병역 기피 현상이 심해지게 되면서 농민병 제도인 둔전제는 취소됐다. 그리고 부자들이 많아지다보니 더 이상 자기들이 직접 싸우는 대신 이민족 용병들을 고용하는 쪽으로 정책들을 선회했던 것이다. 이는 동로마 군대의 전체적인 질적 저하로 이어졌다.


동로마는 그 풍부한 경제적 자원들을 바탕으로 자기들(로마인들) 대신에 로마를 지켜줄 이민족 출신의 외인 용병들을 고용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야만인들이 로마의 땅에 마구잡이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민족들은 로마인들이 아니다. 그들은 "돈"을 받고 대신 싸워주는 사람일뿐 로마에 대한 애국심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자기들보다 더 강한 부족이나 세력이 로마를 쳐들어오면 도망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문제는 이민족들이 대신 싸워줄 동안 로마인들은 실전 경험이 아예 전혀 전무해졌기 때문에 이민족들이 도망쳤을때 급하게 자기들이 어떻게 해보려고 해도 할 수가 없었다. 이미 로마인들로 로마군들을 구성해봤자 로마군들은 전부 다 훈련도 부족하고, 전투 경험도 아예 없는 엉성한 오합지졸 병사들뿐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오합지졸들이라도 숫자만 많으면 어떻게 해볼 수 있지만 입대 기피 현상까지 계속 더더욱 심해져서 병력 숫자까지 터무니 없이 작았기에 "동로마 제국"은 더 이상 자신의 몸 하나도 스스로 지킬 힘조차 없는 나약한 국가가 되버린 것이다.







3. 동로마 제국의 멸망 과정들





이슬람 세력이 로마 제국을 침략하다 :


sadddadsafsf.jpg 이슬람 삽화


사실상 로마 제국은 이미 7세기부터 오합지졸이 되기 시작했으며, 그로 인해 멸망이 카운트 다운에 들어갔다.


로마 제국의 중, 후기 역사를 보면 "동네북의 역사"라고 할 정도로 로마 제국은 항상 주변 부족들이나 주변국들에게 얻어맞는 게 일상이었다. 걸핏하면 돈 욕심이나 땅 욕심, 심지어 맛있는 음식이나 여자 욕심 등등등의 이유로 로마 제국을 침입해서 그런 욕구들을 해결하는 이민족들로 넘쳐났던 셈이다.


그럴 때마다 로마는 돈으로 해결했다. 그리고 돈을 받고 돌아가면 또 다른 부족이나 국가가 자기들도 돈 욕심이 동해서 로마를 침입하는 것의 반복인 셈이었다.


6세기부터 7세기까지 무서운 기세로 이슬람 세력이 확장하면서 동로마 제국을 자주 침입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이슬람이 동로마 제국의 이집트, 시리아, 팔레스타인 지방들을 빼앗으면서 동로마 제국의 팔, 다리를 절단하는 일이 생겼다. 이는 경제력 감소, 인구 감소로 이어지면서 곧 국방력에도 치명타를 가해 국방력 약화로 이어졌다.






돌궐족이 세운 셀주크 투르크의 로마 침입 (만지케르트 전투) :



sadddadsafsf.jpg 고구려의 동맹국 돌궐제국이 등장하는 KBS 사극 대조영


또, 11세기인 1071년 경에는 서쪽에서 온 돌궐족들이 건국한 셀주크 투르크의 장수 아르슬란이 동로마 제국을 침입해서 만지케르트 전투가 발생하는데 여기서도 동로마 제국이 대패한다. 이쯤되면 동로마 제국은 패배하기 위해 태어난 국가 같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전투 후에 동로마는 소아시아(현재의 터키 지방)의 대부분을 돌궐족인 셀주크 투르크에게 빼앗겼고, 이 때문에 또 경제력, 국방력 전반이 급격하게 약화됐다.


그리고 셀주크 투르크는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소아시아 지역에 터를 잡고 살기 시작했다.


동로마 제국의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몽골제국의 세계 지배 :



세계 정복자 칭기스칸



때는 바야흐로 1204년 세계 1위의 패권 제국으로 명성을 떨쳤던 몽골제국의 세계 지배가 시작되는 시대이기도 하다.


이때 제4차 십자군 전쟁이 발생해서 십자군들이 동로마 제국(비잔틴 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폴리스를 노략질하면서 동로마는 역사상 가장 큰 위기를 맞이한다.


어쨌든 십자군이 콘스탄티노폴리스 점령 및 약탈하면서 거기다가 라틴 왕국이라는 국가를 하나 떡 하니 세웠다. 동로마 제국은 니케아 왕국, 에페이로스 공국, 트라페준타 왕국 등 여러 왕국들로 사분오열하면서 분열됐고 그 중에 다행히 니케아 왕국이 1261년에 콘스탄티노플을 다시 되찾으면서 동로마를 부분적으로 회복했으나 원래부터 약했던 동로마 제국의 경제, 땅, 국방력 등은 훨씬 더 약해졌고 내분은 더욱더 심화됐다.


그리고 동로마 제국을 멸망시킨 주범이 마침내 15세기에 모습을 드러내게 되는데 바로 "오스만 투르크"다.


사실 원래대로라면 훨씬 더 전에 오스만 투르크가 동로마 제국을 멸망시켰어야 됐는데 시기가 다소 늦어진 셈이다. 바로 몽골제국과 티무르 제국 때문이다.


12세기부터 세계를 지배한 몽골제국은 셀주크 제국의 후신인 룸 셀주크 제국까지 침략해서 자신들의 식민지로 만들어버렸고, 룸 셀주크 제국에서 독립한 오스만 제국도 초기에는 몽골제국의 식민지로 전락해버렸다. 이후에는 칭기스칸의 후예가 건국한 티무르 제국이 다시 한 번 오스만 제국을 침략해서 술탄 바예지드 1세를 전쟁 포로로 끌고 가는 등 오스만제국은 티무르 제국의 식민지나 다름없는 신세로 전락해버렸다.







14세기 오스만 투르크의 동로마 침입과 멸망 :


sadddadsafsf.jpg 오스만 투르크의 바실리카 화포. 헝가리 출신의 우르반이 제작해서 우르반 화포라고도 불림


이런 비극들을 연달아 겪었기에 동로마 제국을 침공할 군사력이나 여유가 없었던 오스만 제국은 다행히도 티무르 사후에 티무르 제국이 몰락하자 티무르 제국의 식민 통치에서 해방되면서 다시 목표했던 동로마 제국 침략에 박차를 가할 수 있었다.


그렇게 운명의 1453년 오스만 투르크가 동로마 제국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물론 1453년 이전부터도 오스만 투르크는 세르비아, 볼가리아 같은 발칸반도 지방들을 오스만에 편입시키는 등 동로마 제국을 점차 앞, 뒤로 조여가고 있었다.


어쨌든 그렇게 운명의 1453년 그 유명한 콘스탄티노폴리스 공방전이 시작되는데 당시 오스만의 술탄 메흐메트 2세는 대군을 이끌고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포위했다.


당시 오스만 투르크는 동유럽 헝가리 출신의 우르반이 만든 청동 화포인 "바실리카 화포(동유럽 헝가리 출신의 기술자인 "우르반"이 설계한 구경 745mm 바실리카 화포는 옮기는 데만 400명 이상의 병사들과 60마리의 황소들이 동원되었을 정도로 컸으며 금이 가는 것을 막기 위해 하루에 3발 이상 발포할 수 없었다는 한계점도 있지만 포의 위력은 견고하다는 비잔틴의 성벽을 두부처럼 무너뜨릴 정도)" 같은 최신 화포들을 써서 장장 53일간의 공방전 끝에 도시를 함락시켰고 그렇게 동로마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가 무너지면서 로마 제국은 영원히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그리고 동로마 제국의 마지막 군주인 콘스탄티누스 11세는 전투 중에 사망하게 된다.


추가로 동로마가 오스만 제국에 멸망당한 이유 중 하나로, 일부 동로마 병사들이 겁에 질려 성문을 열어 오스만 투르크 군대의 입성을 도왔다는 주장이 여러 고고학계들과 여러 역사학계들에서 제기되기도 하고 있다.


어쨌거나 그렇게 아름다운 문화들을 꽃 피웠고, 긴 역사를 가졌고, 그만큼 여러 사건사고들도 많으며 흥망성쇠와 우여곡절을 겪었던 로마 제국은 번영한 지 얼마 안되서 오합지졸로 전락해버렸고, 그렇게 긴 생명을 이어가다가 너무나도 허무하게 망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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