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그와는 정반대로 중남아메리카와 캐리브 해 열대 섬들, 필리핀, 남태평양의 수많은 열대 섬 민족들은 기원전은커녕 기원 후인 16세기.. 그리고 어떤 열대 지방에서는 현재까지도 알몸의 구석기인 상태로 살아가고 있다.
이런 차이는 어째서 생기는 걸까?
어째서 추운 북반구의 국가들은 기원전 때부터 이미 강력한 제국들을 형성했는데
어째서 무더운 남반구의 열대 섬들은 16세기, 그리고 현재까지도 알몸인 구석기 상태로 살아가는 걸까?
오늘은 그 해답에 대해 거시적인 시각에서 고고학, 인류사, 문명사적 관점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삼성퇴 청동기 마스크"
ㄱ) 농업 혁명과 생물지리학적 불평등
잉카인, 아즈텍인, 브라질 아마존 원주민(왼쪽)은 실제로 알몸으로 생활했었긴 하지만 그걸 그대로 그리면 큰일나니 어쩔 수 없이 고증 오류는 있는 그림이라는 점 감안하고 보자
이 거대한 차이는 결코 특정 민족의 지능, 용맹성, 혹은 문화적 우월성이나 열등함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현대 인류학, 역사학, 지리학이 내놓은 답은 명명백백하다. 이는 수만 년에 걸쳐 작용한 "지리적 운명"과 그로 인해 발생한 연쇄적인 발전 과정의 차이 때문이다.
인류가 복잡한 사회를 이루기 위한 절대적인 전제 조건은 안정적인 식량 공급이다. 식량을 찾아 끊임없이 이동해야 하는 수렵 채집 사회는 많은 인구를 부양할 수 없으며, 대규모 건축물을 짓거나 복잡한 기술을 축적하기 어렵다. 이 굴레를 벗어나게 해준 것이 바로 농업 혁명이다. 그러나 농업 혁명은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 극소수의 지역에서 시작되어 전파되었다. 이는 순전히 각 지역이 가진 "생물지리학적 유산"의 차이 때문이었다.
(1) 작물화, 가축화 가능한 야생종의 편중
농업을 시작하려면 작물로 키울 만한 영양가 높은 식물과, 가축으로 길들일 수 있는 유용한 동물들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후보종들은 지구상에 매우 "불균등"하게 분포했다.
( 2) 유라시아의 축복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곡물들인 밀, 보리, 쌀의 야생 원산지는 모두 유라시아(서아시아, 중국, 동북아시아)에 있었다. 또한, 인류 문명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14종의 대형 포유류 가축들 중 13종(소, 말, 돼지, 양, 염소 등)이 모두 유라시아에 집중되어 있었다.
대표적으로 말과 개는 몽골에서 인류 역사상 최초로 태어났으며, 그 이후 중국, 동북아시아, 서아시아, 중동, 남아시아, 유럽까지 전파, 확산된 것이다. 또한, 인류 역사상 최초의 고양이는 "마눌 고양이"라는 추운 몽골에서만 서식하는 고양이였다.
물론 말과 개를 인류 역사상 가장 먼저 가축화한 것은 몽골족 유목민들이었으나, 고양이는 아니었다. 고양이를 가장 먼저 가축화한 것은 이집트나 북아프리카 지역으로 추정된다.
어쨌든 이 가축들은 고기와 젖, 가죽은 물론, 당시 세계 최강의 전쟁무기이자 "기동력(말)"과 인간의 노동력을 압도하는 "경작 동력(소)"을 제공하면서 기원전부터 중앙아시아, 동북아시아, 서아시아, 중동의 엄청난 발전을 이뤄냈다.
(3) 남반구&열대 지방들의 한계
이와는 정반대로 남아메리카, 남아프리카, 필리핀, 그리고 남태평양의 오세아니아는 가축이란 게 아예 없었으며, 곡물들도 농업 혁명을 일으킬만한 종들이 아니었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경우는 기장, 수수 등이 작물화되었지만 유라시아의 곡물만큼 생산성이 높지 않았고, 무엇보다 가축화할 만한 초식동물이 거의 없었다. 얼룩말은 길들여지지 않았고, 아프리카 버팔로는 너무 위험했다.
"남태평양의 오세아니아(호주, 뉴질랜드, 여러 열대 섬들)"등은 가히 최악이었다. 작물화, 가축화할 만한 토착 동식물이 아예 완전히 전무했다. 이 1가지 사실만으로도 남태평양의 모든 열대 섬 원주민들이 왜 수만 년 동안 농업 사회로 전환하지 못하고 바다 생활을 유지했는지가 설명된다.
"아메리카"도 남태평양과 마찬가지로 최악이었다. 작물화된 옥수수는 영양학적으로나 재배의 용이성 면에서 밀이나 쌀보다 훨씬 더 불리했다. 결정적으로 가축화할 만한 유일한 초식동물이 잉카 문명의 알파카(라마)라는 단 1종에 불과했는데, 심지어 이조차도 쟁기를 끌지도, 사람이 타고 이동 수단으로 쓸 수조차도 없었다.
이 "초기 패"의 차이는 이후 수만 년의 역사를 결정지은 가장 근본적인 출발점의 불평등이었다. 우리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살면서 항상 인간은 평등하다고 하지만, 이렇게 인류의 역사 출발은 신이 어떤 지역들만 특별히 강하게 만들어 준 것처럼 불평등하게 시작됐다.
ㄴ) 잉여, 인구, 그리고 국가 발전의 선순환 구조
풍부한 농업 생산력은 잉여 식량들을 낳았고, 이는 도미노처럼 사회 전체를 변화시켰다. 같은 면적의 땅에서 구석기 생활보다 농업이 수십, 수백 배 많은 인구를 부양할 수 있다. 인구 증가는 더 많은 노동력을 의미했고, 이는 다시 생산력 증대로 이어졌다.
한곳에 정착하면서 무거운 도구(토기, 맷돌 등)를 만들고, 집과 창고, 성벽을 지으며 기술을 축적할 수 있게 되었다. 지식은 세대를 거쳐 전수되고 개량되었다.
동북아시아, 중앙아시아, 중동, 서아시아는 가장 먼저 국가 사회적 분업과 전문가 집단들이 탄생했다. 모두가 식량 생산에 매달릴 필요가 없어지자, 잉여 식량은 농사를 짓지 않는 사람들을 먹여 살렸다. 이로써 임금님, 관료, 사제, 장인, 그리고 직업 군인이라는 전문가 집단들이 탄생했다. 기술 전문가인 장인들은 오로지 기술 개발에만 전념했다. 이는 고대, 중세 일본의 장인정신만 봐도 알 수 있다. 일본은 이러한 장인정신을 바탕으로 "세계 최강의 검"인 일본도를 만들어 냈다. 흙을 구워 토기를 만들던 기술은 금속을 녹이는 야금술로 발전했고, 이는 구리(청동기)를 거쳐 마침내 "강철(철기)"을 대량 생산하는 단계로 나아갔다. 이는 고대시대 때부터는 중국이 가장 앞섰다.
그리고 정치, 군사 전문가(임금, 관료, 군인)들은 자원을 효율적으로 징수하고 분배하며, 대규모 노동력을 동원하여 관개 시설이나 성벽을 건설하고, 잘 훈련된 군대를 조직하여 영토를 지키고 확장하는 "국가"라는 체계를 만들어 냈다.
기원전부터 이미 고조선이 위만조선 시기부터 철제 무기를 생산할 수 있었던 배경은, 물론 당시 지구상에서 가장 발전한 철제 무기 제작 기술을 가지고 있던 중국 한나라에서 위만이 고조선을 침략한 후 정복하여 위만조선을 건설한 것이 가장 크지만 바로 이러한 농업 기반의 잉여 생산과 사회적 분업이라는 선순환 구조가 작동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반면, 라틴 아메리카의 잉카 문명이나 아즈텍 문명은 가축이 아예 없어 농업 생산성에 한계가 있었기에 기원후인 16세기까지도 그 많은 인구수를 낳았음에도 불구하고 알몸이나 반라 상태로 살면서 구~신석기 상태로 살면서 청동기 무기 조차 발명하지 못했다. 이는 사회가 지탱할 수 있는 전문가 집단의 규모와 기술 발전의 수준에 제약을 가하면서 석기시대에서 멈춰버린 것이다.
ㄷ) 경쟁과 융합의 용광로였던 유라시아 대륙(구대륙)
16세기까지 석기시대였던 남아메리카(왼쪽)와 기원전부터 강력한 철제 무기, 갑옷을 발명한 고대 중국, 동북아, 중앙아시아 몽골과 튀르크, 중동, 서아시아, 남아시아, 유럽(오른쪽)
유라시아 대륙은 단순히 여러 강력한 제국 문명들이 존재했을 뿐만 아니라, 이 제국 문명들이 서로 끊임없이 무역, 교류, 전쟁하는 등 상호작용했다는 결정적인 특징이 있다.
(1) 동-서 축의 지리적 이점이 크다.유라시아 대륙은 동-서로 길게 뻗어 있어 비슷한 위도대를 따라 기후가 유사하다. 이 덕분에 한 지역에서 발명된 기술(바퀴, 문자, 야금술), 작물, 가축, 사상 등이 마치 고속도로를달리듯 대륙 전체로 빠르게 전파될 수 있었다.
장강 문명의 유적지의 하나로 중국 쓰촨성 청두시에서 발견된 "삼성퇴 청동기 마스크"는 기원전부터 중국 대륙의 문명이 북아프리카의 이집트와 무역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기원전 2000년에 중국 대륙의 문명들은 이미 북아프리카의 이집트와 무역, 교류를 했다. 이는 중국 쓰촨성에서 1986년에 발견된 "삼성퇴 청동기 마스크"로 완벽히 입증이 되었으며, 그 금박은 북아프리카의 이집트의 것으로 추정되며 또한, 이때 같이 발견된 것이 북아프리카의 코끼리 상아였다. 즉, 이런 유물들로 봐서 고고학적으로 이미 중국은 기원 전 2000년도 전부터 북아프리카의 이집트와 굉장히 신속하게 무역과 교류를 하면서 기술들을 발전해왔음을 보여준다.
(2) 치열한 경쟁과 군사 혁신이 가장 중요하다. 중국, 중앙아시아 몽골과 튀르크, 페르시아, 아랍과 인도, 로마 등 고대시대부터 세계를 주도했던 대제국들은 수천 년간 서로 국경을 맞대고 끊임없이 경쟁하고 전쟁을 벌였다. 이 치열한 생존 경쟁들은 군사 기술의 혁신을 끊임없이 추동했다. 한쪽에서 더 강력한 강철검이나 강철 갑옷, 전술들을 개발하면, 다른 쪽은 그것을 모방하고 개량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었다.
특히 고대시대부터 중앙아시아계의 몽골-튀르크의 유목 기마 군단들과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가진 대원제국(원나라)의 세계 패권은 이러한 흐름적 역사의 역동성을 가장 최고조로 증폭시키는 역할을 했다. 그들이 개발한 세계 최강의 기마술, 복합궁, 그리고 몽골과 튀르크, 고구려가 인류 역사상 최초로 발명한 기병대 군단에게 가장 중요한 도구인 "등자"는 농경 제국에 엄청난 위협이었고, 농경 제국들을 모조리 정복하며 세계 패권을 차지했다.
하지만 이러한 세계 패권의 시대가 지나자, 이에 맞서기 위해 농경 제국들은 이런 막강한 중앙아시아 몽골-튀르크 군사제국들의 침략에서 버티기 위해 더 높고 견고한 성벽, 더 강력한 쇠뇌 같은 강철무기들, 더 발전된 방어 전술들을 개발해야만 했다. 이러한 끊임없는 경쟁 과정에서 유라시아 대륙 전체의 군사 기술 수준은 지속적으로 상향 평준화되었다.
(3) 이와는 정반대로 습하고 무더운 남반구와 열대 지방들의 한계는 명확했다. 특히 가장 심한 건 아메리카 대륙으로 남~북으로 길어 기술 전파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고, 두 대륙(북미~중남미)이 좁은 파나마 지협으로 연결되어 있어 문명 간 교류가 매우 제한적이었다. 그렇기에 심지어 잉카 문명, 아즈텍 문명, 마야 문명은 자기들이 망할 때까지도 서로의 "존재"조차 몰랐다고 하니 얘기 다 했다. 즉, 잉카 문명, 아즈텍 문명, 마야 문명이 동시기에 있었어도 서로 싸움은커녕 존재조차 몰랐으며 당연히 교류도 안 되었기에 경쟁이 일어날 리도 없었고, 혁신이나 발전이 일어나는 건 꿈도 못 꿨다.
영화 모아나2의 장면이지만 고증 오류는 있다. 실제 폴리네시아 원주민 여자들은 알몸으로 생활했다. 물론 아동용 애니메이션이라 어쩔 수 없긴 하다.
이런 사정들은 남아메리카뿐 아니라 남태평양의 여러 열대 섬들도 마찬가지였는데 대표적으로 호주와 뉴질랜드, 타히티 같은 여러 남태평양의 섬들은 글자 그대로 "망망대해"에 고립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북반구의 "유라시아"라는 거대한 "기술 혁신 용광로"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한 채, 제한된 자원만으로 독자적으로 발전해야 했다.
ㄹ) 팽창하는 유목&농경 사회와 구석기 상태에서 멈춰버린 바다 민족들의 운명
중앙아시아, 동북아시아, 서아시아, 중동, 남아시아, 유럽을 선두로 하는 유목 제국(중앙아시아 몽골과 튀르크)들과 농경 사회는 본질적으로 끊임없이 팽창하는 속성을 가진다. 몽골과 튀르크 유목제국들의 경우는 원래부터 제국주의적 성향이 강해서 끊임없이 정복을 해야만 하는 숙명을 지녔고, 이와는 정반대지만 유라시아의 농경 사회의 경우들은 인구 밀도가 훨씬 높기 때문에,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 많은 경작지를 찾아 주변으로 퍼져나갈 수밖에 없다. 서로 다른 정치 체제였으나 두 문화권의 공통점이라면 "팽창한다"는 것이다. 중앙아시아 몽골과 튀르크 유목제국들은 군사적으로, 농경 사회들은 사상이나 문화, 종교적으로.
이때 이들은 필연적으로 기존에 그 땅에서 살던 원주민들과 마주치게 된다. 이 만남의 결과는 역사적으로 거의 재앙과도 같이 정해져 있었다.
유라시아의 압도적인 군사력을 가진 몽골과 튀르크 유목제국들과 압도적인 수적 우위를 가진 농경 제국들은 이미 기원전 때부터 남아메리카나 남태평양, 혹은 필리핀 같은 습하고 무더운 열대 지방의 원주민들보다 훨씬 더 막강한 군사력과 수십, 수백 배 많은 전력을 동원할 수 있었다.
유라시아의 몽골과 튀르크 유목제국들과 농경 제국들의 기술적, 조직적 우위도 빼놓을 수 없다. 각 제국들은 체계적으로 군대를 조직하고, 금속 무기를 대량 생산하여 무장시켰다.
보이지 않는 무기인 병원균도 있다. 유라시아의 유목민, 농경민들은 가축과 함께 살며 얻게 된 각종 질병(천연두, 홍역 등)에 대한 면역력을 가지고 있었고, 끝없이 전염병에 시달리면서 면역력들을 강화해 갔다. 대표적으로 몽골제국이 유럽 정복할 때 전염시킨 "흑사병"은 당시 수억명의 인구를 죽여 유럽에겐 치명적인 대재앙이었지만 이후 유럽의 근대화를 촉진시킨 효과도 발생했다.
하지만 이런 질병들에 면역력이 아예 없었던 남아메리카, 남태평양에게는 이 질병들이 치명적인 대량 살상 무기였다. 결과적으로, 그런 남아메리카나 남태평양의 열대 지방의 원주민들은 3가지 운명을 맞았다.
(1) 대체되거나 절멸되었다.전쟁이나 질병으로 인해 사라졌다. 이에 대표적 사례들이 바로 대청제국(청나라)의 대만 섬 정복과 스페인 왕국과 포르투갈 왕국의 남아메리카 점령이었다. 대청제국(청나라)가 타이완 섬을 정복하면서 그곳 원주민들을 완전히 학살하여 지금은 그 숫자가 거의 남아있질 않고, 스페인 왕국과 포르투갈 왕국이 남아메리카에 들어가서 잉카 문명, 아즈텍 문명, 브라질 아마존 구석기 사회를 점령하면서 혼혈화가 되거나 거의 순수 잉카인이나 아즈텍인, 아마존 원주민들은 거의 사라졌다.
(2) 축출의 경우는 농경에 적합하지 않은 척박한 땅(깊은 열대림)으로 밀려난 경우다. 이에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영국인 청교도들이 아메리카 땅에 진출한 사건이다. 본래 아메리카에 들어왔을 시절에는 소수였던 영국인 청교도들은 그 지역에서 어떻게 농사 짓는 지도 알지 못했기에 많이 죽었으나 그때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도와주면서 먹을 것도 주고 농사짓는 법도 알려준 것이다. 그로 인해 폭발적으로 인구수가 늘어난 영국인 청교도들은 많은 인구수로 아메리카 인디언들을 밀어내거나 속여서 헐값이 땅을 사기도 하면서 인디언들을 쫓아냈다.
(3) 혼혈 정책도 있다. 이는 대표적으로 스페인 왕국과 포르투갈 왕국이 그런데 스페인인과 포르투갈인 탐험자들은 잉카인, 아즈텍인, 브라질 아마존 원주민 여자들을 마구잡이로 강간하면서 혼혈인들이 태어나 지금의 메스티쏘.. 즉, 사실상 "남아메리카 인종"이라는 본래는 존재해서는 안 될 돌연변이 인종을 탄생시켰다.
중국, 중앙아시아 몽골과 튀르크, 동북아시아, 서아시아, 중동, 남아시아, 유럽 등 유라시아의 주요 목초지, 농경 지역에서는 이 과정이 기원 전에 이미 완료되었다. 강력한 고대 제국들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그 영토 내의 수렵 채집민들은 이미 오래전에 사라지거나 동화되었다. 강력한 중앙집권 제국이 수천 년에 걸쳐 내부의 다양한 집단을 하나의 문화적, 언어적 정체성으로 통합시켜 온 결과다.
반면에 남아메리카의 아즈텍 문명, 잉카 문명, 아마존 정글, 남태평양의 여러 열대 섬들,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는 농업이 확산되기 어려운 환경이었기 때문에 구석기 사회가 근대까지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살아있는 화석"이 아니라, 단지 농경 사회의 팽창 압력이 미치지 않는 지리적 피난처에 머물렀을 뿐이다.
ㅁ) 환경과 기술의 상호작용으로 "옷"에서 "갑옷"까지
그렇다면 마지막 의문이 있다. 왜 중국, 중앙아시아 몽골과 튀르크, 동북아시아, 서아시아, 중동, 남아시아, 유럽은 기원전부터 옷은 물론 "갑옷"까지 발명하여 착용하고 다녔는데, 남아메리카의 잉카 문명과 아즈텍 문명, 브라질과 페루의 아마존 구석기 사회, 필리핀, 남태평양의 폴리네시아 원주민들이 사는 열대 섬들, 사하라 이남의 남아프리카 등은 기원후인 16세기나 현재까지도 갑옷은 커녕 "알몸"이나 "반라"에 가까운 알몸으로 살아가는 걸까? 단순히 "열대 지방이라서?"
(1) 의복은 유라시아 대륙에서는 생존의 필수품이었으나, 남반구의 열대 지방들에서는 아니었다.
유라시아 대륙의 북반구 국가들은 죄다 온대~한대~냉대 기후를 가지고 있었다. 1년 내내 추운 혹한의 겨울이거나(몽골), 또 1년 내내 겨울까지는 아니더라도 겨울이 춥고 혹독한 유라시아 대부분의 북반구 지역에서 의복은 기원전부터 "생존의 필수품"이었다. 이는 동서고금 막론하고 추위를 막기 위해 동물의 가죽을 무두질하고, 식물 섬유나 양털로 실을 뽑아 직물을 짜는 기술은 생존과 직결된 중요한 기술이었다. 이는 자연스럽게 복잡한 섬유 및 피혁 가공 기술의 발달로 이어졌다.
반면, 연중 덥고 습한 남반구의 남아메리카나 적도 부근(브라질과 페루의 아마존, 뉴질랜드, 필리핀, 남태평양의 열대 섬들, 남아프리카) 등에서는 의복이 생존에 필수적이지 않다. 오히려 거추장스럽고 비위생적이었다. 이곳에서의 "의복(혹은 장신구)"은 체온 유지보다는 단순히 종교적 의미, 혹은 장식의 목적뿐이었는데, 문제는 이 연중 덥고 습한 남반구의 남아메리카나 적도 부근(브라질과 페루의 아마존, 뉴질랜드, 필리핀, 남태평양의 열대 섬들, 남아프리카) 등에서는 옷을 입으면 더워서 열사병에 걸리거나 각종 질병에 걸리기가 쉽다. 그래서 오히려 남반구의 남아메리카나 남태평양 같은 지역에서는 정반대로 "생존을 위해서 알몸"이 되야 했다. 그 대신, 옷은 못 입지만 일종의 옷의 기능처럼 "타투"를 몸에 새겨서 바디 페인팅처럼 하고 다녔던 것이다.
그래서 남아메리카의 잉카 문명, 아즈텍 문명, 남태평양의 폴리네시아 원주민, 필리핀 원주민, 뉴질랜드 원주민, 남아프리카 원주민들은 알몸이지만 온 몸에 바디 페인팅을 해서 타투를 그리는 게 발달했다는 공통점이 있는 것이다. 아무리 습한 열대 지방이라지만 몇 천 년간 항상 알몸 상태였기에 그런 거라도 했던 것이다.
따라서 남아메리카의 잉카 문명, 아즈텍 문명, 남태평양의 폴리네시아 원주민, 필리핀 원주민, 뉴질랜드 원주민, 남아프리카 원주민 사회는 "복잡한 의복 기술들을 발전시켰던 유라시아 대륙"과는 다르게 그런 동기나 환경적 이유가 전혀 없었다.
(2) 갑옷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갑옷은 국가의 관료제나 중앙집권제 같은 국가 제도의 최종 산물이었다. 철갑옷은 단순히 철을 다룰 줄 안다고 만들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갑옷 한 벌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사회적 제도들을 분해해 보면 그 이유가 명확해진다.
먼저, 자원과 채굴을 해야한다. 중앙아시아의 몽골처럼 철광석이 세계적으로 많은 철광석에서 대규모로 채굴할 광산과 광부가 필요하다. 그리고 잉여 생산력도 필요하다. 이 광부들과, 이어질 모든 과정의 전문가들을 먹여 살릴 막대한 양의 잉여 식량이 필요하다. 고도의 전문 기술도 물론 있어야 한다. 철광석을 녹여 강철을 만들고, 그것을 수백, 수천 번 두드려 인체의 굴곡에 맞게 판금으로 만들고, 각 부분을 경첩과 가죽끈으로 연결할 고도로 숙련된 대장장이와 갑옷 장인이 필요하다. 이런 강철이나 강철검, 강철 갑옷 제작 기술에서 가장 발전했던 건 "고대 중국 한나라"였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비용들을 감당하고 갑옷을 주문할 부유한 전사 계급(무사)과 그들을 뒷받침하는 국가 또는 사회가 있어야 한다.
이렇듯 살펴봤는데
우리가 목격하는 인류 문명의 거대한 격차는 인종적, 문화적 우열의 문제가 아니라, 각 사회가 출발선에서 손에 쥐었던 지리적, 생물학적 카드의 차이에서 비롯된 장대한 역사의 결과물이다.
이러한 점에 있어 중앙아시아, 동북아시아, 서아시아, 중동, 남아시아, 유럽을 선두로 하는 유라시아 대륙(구대륙)은 농업에 유리한 동식물과 기술 전파에 유리한 지리적 축을 바탕으로 농업 혁명을 세계적으로 선도했다. 어떻게 보면 신이 중앙아시아, 동북아시아, 서아시아, 중동, 남아시아, 유럽을 선두로 하는 유라시아 세력들이 세계를 지배하라고 지구를 만들었을 때부터 결정내린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이는 잉여 생산~인구 증가~사회 분업~국가 형성~기술 발전이라는 강력한 선순환을 만들어냈다. 유라시아 대륙 내부의 치열한 경쟁은 이 발전의 속도를 더욱 가속화시켰다. 이 과정에서 유라시아의 몽골과 튀르크 유목제국들은 강력한 군사 정복들을 통해, 농경 국가들은 영토 내의 수렵 채집민들을 오래전에 통합하거나 대체했다. 경쟁을 위한 환경적 압력과 국가 제도의 발전은 복잡한 의복과 궁극적으로 강철 검(고대 중국 한나라)과 갑옷까지도 탄생시켰다.
따라서 대표적으로 중앙아시아에 철갑옷을 입은 몽골과 튀르크 기병대들이 달리고, 고구려에 철갑 기마대(개마무사)가 존재했던 것은 그들만이 처음부터 특별히 우월해서라기보단, 그들이 속한 유라시아 대륙이라는 거대한 세계 무대가 수만 년에 걸쳐 그러한 사회 시스템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는 지리적, 환경적 조건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인류 역사의 거대한 흐름을 움직인 보이지 않는 힘의 실체"이다.
하지만 신에게서 버림 받은 것 같은 불행하고 불쌍한 라틴 아메리카, 남아프리카, 남태평양의 오세아니아 열대 섬들은 인류 출발 때부터 즉, 처음부터 불리한 생물지리학적 조건으로 인해 농업의 시작이 늦거나 제한적이었고, 설사 기적적으로 농사를 지었어도 그게 혁신으로 이뤄지지도 못했다. 이는 발달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내는 데 근본적인 한계로 작용했다. 이런 라틴 아메리카, 남아프리카, 남태평양의 오세아니아 열대 섬들의 지리적 고립은 외부의 선진 기술과 제도를 받아들일 기회를 차단했다.
그 결과, 이곳 남반구의 사회는 구석기 단계에 머물렀으며, 그런 생활 방식이 근대까지 유지될 수 있었다. 혹은 현재도 구석기 상태로 알몸으로 살아가는 페루와 브라질 원주민들도 많다.
그러니 어떻게 보면 중앙아시아, 동북아시아, 서아시아, 중동, 남아시아, 유럽을 선두로 하는 유라시아 대륙은 처음 태어날 때부터 강해질 운명을 타고난 것이고, 라틴 아메리카(잉카, 아즈텍, 마야 문명과 페루와 브라질 아마존 사회), 필리핀, 남아프리카, 남태평양의 오세아니아 열대 섬들은 태어날 때부터 약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불운한 숙명을 받은 것이나 다름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