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가장 목욕을 안했던 민족 vs 잘했던 민족

인류의 목욕, 청결로 알아보는 금욕주의, 종교, 기후의 세계, 인류사

by 바다의 지정학



인류 역사에서 "청결"의 기준은 절대적이지 않았다. 현대인의 관점에서는 비위생적으로 보일 수 있는 삶의 방식이 어떤 시대와 문화권에서는 생존을 위한 최선의 지혜이자 신념의 표현이기도 했다. 목욕을 증오했던 대표적인 민족들은 주로 종교적, 사상적, 기후적, 의학적 또는 혹독한 자연환경이라는 거대한 장벽에 직면해 있었다.


현대의 관점에서 "위생"은 세균 이론에 기반한 과학적 개념이지만, 인류사 속에서 "청결"은 종교, 철학, 환경, 그리고 사회적 정체성과 복잡하게 얽힌 상대적인 개념이었다.


오늘은 다소 가벼운 주제인 인류 역사상 가장 목욕을 안했던 민족과 목욕을 가장 잘했던 민족은 누구일까, 그리고 왜 그런 결과가 도출됐는 지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목욕을 적게 한 문화권들)



1) 중세 유럽인: 신앙과 질병의 대한 공포가 낳은 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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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시절 유럽인들은 평생 단 3번 목욕했다"는 말은 과장이 섞여 있지만, 당시 목욕 문화가 현대와는 극명하게 달랐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표현입니다. 그들이 목욕을 멀리한 데에는 복합적인 이유들이 존재했다.


(1) 로마 목욕 문화의 붕괴와 기술적 단절


중세 유럽이 목욕을 기피하게 된 것은 고대 로마의 붕괴로부터 시작된 거대한 사회·문화적 변동의 결과였습니다.


고대 로마는 많은 인구수, 풍부한 향신료와 먹거리, 아름다운 문화들을 꽃피우고 향유했던 "문명국"이었다. 그 가운데서는 큰 수도교(Aqueduct)를 통해 도심에 물을 끌어왔고, 이를 바탕으로 "테르마이(Thermae)"라는 화려한 공중목욕탕, 남녀혼욕탕(남녀혼탕) 등을 운영했다. 물론 이런 고대 로마의 남녀혼욕탕에서 워낙 성매매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서 가뜩이나 성문화가 개방됐던 고대 로마가 성적으로 더더욱 더 문란해졌고 이게 고대 로마의 타락과 붕괴의 이유들 가운데 하나라고 이야기하는 학자들까지 있지만 말이다.


여하튼 이렇게 발달한 고대 로마였으나, 로마제국보다 훨씬 군사력이 막강한 흉노제국의 일파인 훈족의 아틸라가 서구를 침략하고 정복하자, 막강한 훈족의 침략을 피해 도망친 게르만족이 로마제국을 침입하면서 5세기에 서로마 제국이 멸망했다는 건 세계사 교과서에서 워낙 자주 나오는 이야기라 누구나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로마제국의 멸망은 비단 나라 하나가 사라진 사건이 아니었다. 로마제국이 망하면서 유럽을 하나로 묶었던 중앙 집권제와 관료제가 사라졌고 로마가 그동안 만들어 놓은 난방 시스템이나 목욕탕들은 유실되었다. 테르마이는 참혹하게 파괴되었고, 거대한 목욕 시설을 유지하고 보수할 능력도, 의지도 사라졌다. 백성들이 쉽게 접근 가능했던 풍요로운 목욕 문화는 과거의 유산으로 사라져버린 것이다.


(2) 기독교적 금욕주의와 신체에 대한 부정적 인식


앞서 얘기했듯이, 고대 로마의 공중혼욕탕은 성매매 유흥업소의 온상이었다. 여러 커플, 부부, 그리고 불륜 남녀들이 함께 벌거벗고 성행위를 하는 공중혼욕탕은 성적으로 음탕했던 로마 시대의 대표적인 퇴폐적인 장소들 가운데 하나이자 성적 유혹과 문란의 장소로 간주되었다.


이렇게 로마 시대의 공중혼욕탕이 성적인 문란함과 연결되었던 기억 때문에, 로마가 사라지면서 후대의 유럽인들의 마음 속에는 로마하면 성적으로 굉장히 음탕했던 국가이고, 로마의 성적 음탕이 일어나는 장소는 남녀들이 무질서하게 함께 벌거벗고 몸을 씻는 장소 자체인 남녀혼욕탕이라고 여겼기에 이를 굉장히 부도덕하고 타락한 공간으로 생각했다. 그렇게 중세 시절부터 유럽인들은 로마의 모든 문화들을 그토록 거부한 것이다. 거부를 한 것까지는 좋은데 로마의 모든 장점들마저 거부를 하다 보니 결국 로마의 기술력마저 단절되었고 그로 인해 중세 시절부터 유럽은 철저하게 "암흑기"를 맞이하면서 약소국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어찌됐던 육체를 죄악시한 기독교적 금욕주의로 인해 중세 시절부터 유럽을 지배한 기독교 사상은 목욕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심화시켰다. 초기 기독교 교부들은 육체적 쾌락을 죄악시하고 영혼의 구원을 강조하는 금욕주의를 설파하며 영혼의 구원을 우선으로 여기며 로마에서 자주 일어났던 육체적 쾌락을 경계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목욕은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는 행위는 영적인 성찰을 방해하는 나태하고 사치스러운 쾌락으로 여겨졌다.


"육신은 영혼을 담는 더러운 그릇"이라는 인식이 팽배하면서, 몸을 가꾸고 치장하는 행위는 허영심의 발로이자 신에 대한 불경으로 여겨졌다. 성직자나 경건한 신자들 사이에서는 일부러 몸을 씻지 않는 것을 고행의 일부이자 굳건한 신앙의 증표로 여기는 풍조까지 생겨났다. 예를 들어, 11세기 이탈리아의 성직자 페트루스 다미아니는 따뜻한 물 목욕을 "육욕의 문을 여는 행위"라고 비난까지 했다.


게다가 몸을 가꾸고 치장하는 행위는 영적인 삶을 방해하는 세속적인 허영심으로 치부되었다. 일부 경건한 성직자나 수도사들은 몸을 씻지 않는 것을 신에 대한 헌신과 고행의 증표로 삼기도 했다.


이런 중세 유럽을 지배한 기독교 문화는 목욕 문화가 사라지는 것에 결정적인 영향으로 작용했다.


(3) "미아즈마(Miasma)" 이론


2.jpg 13세기 세계 최강 몽골제국이 유럽을 정복하면서 퍼뜨린 흑사병에 의해 황폐화된 유럽을 그린 1562년 대(大) 피터 뷔르겔의 "죽음의 승리"


"미아즈마(Miasma) 이론"은 쉽게 얘기해서 목욕이 질병을 부른다는 미개했던 의학적 오해에서 비롯된 공포심이다. 13세기 세계 최강 몽골제국이 세계를 지배하면서 유럽까지 정복하였고, 14세기 몽골제국의 킵차크 칸국은 유럽까지 침략하면서 "흑사병(The Black Death)"을 세균 무기로 사용하였다. 그리고 이 흑사병이 유럽 전역을 완전히 휩쓴 이후에는 목욕에 대한 공포가 더욱 커졌다.


당시 의학계를 지배하던 것은 "미아즈마(Miasma)", 즉 "나쁜 공기" 이론이었다. 유럽인들은 질병이 눈에 보이지 않는 독기, 즉 늪지나 썩어가는 시체에서 발생하는 악취를 통해 전파된다고 믿었다.


이 이론에 따르면, 목욕은 매우 위험한 행위였다. 특히 뜨거운 물 목욕은 피부의 모공을 활짝 열어 외부의 "나쁜 공기"가 몸속으로 쉽게 침투하여 무서운 질병을 일으킨다고 생각했기에 매우 위험한 행위였다고 당시의 유럽인들은 믿었다. 심지어 오히려 몸에 낀 때와 더러움, 먼지들이 외부의 질병으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막 역할을 한다고 믿었다. 이러한 의학적 믿음은 어리석게도 의사들의 정식적인 권고 사항이었고, 왕족과 귀족부터 일반 서민에 이르기까지 사회 전반에 깊숙이 뿌리내려 목욕을 기피하는 결정적인 이유가 되었습니다.


(4) 물과 땔감의 부족


하지만 마냥 이런 미신 같은 것들 때문에 목욕을 기피했던 것은 아니다. 물과 땔감이 부족하다는 실질적인 어려움도 있었다.

고대 로마가 꽃피웠던 화려하고 아름다운 상하수도 시설이 완전히 붕괴된 상황에서 깨끗한 물을 구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고, 강이나 우물물은 각종 오물과 쓰레기로 오염되기 일쑤였다. 이런 물로 목욕하는 것은 오히려 피부병을 유발할 수 있었기도 했다. 19~20세기까지 영국과 프랑스의 강들이 악취가 심하게 진동하는 똥물들이었단 점만 봐도 이 시절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으리라.

또, 물을 데우는 데 필요한 많은 양의 땔감(장작)은 매우 귀한 자원이었다. 유럽의 각 왕국들은 고대 로마처럼 인구수가 많거나 경제력이 좋은 국가가 아니라 죄다 약소국이었기 때문에 가난한 빈민들로 넘쳐났기도 했던 탓도 있다. 게다가 숲은 지방관의 소유였고, 일반 백성이 마음대로 도끼로 나무를 훼손시켜 땔감을 구했다가는 혼쭐이 났다. 결국 목욕은 엄청난 비용과 노력이 드는 사치 행위가 될 수밖에 없었다.


(5) 중세 유럽 사람들의 대안적 위생


리넨 속옷: 그렇다고 중세 유럽 사람들이 위생을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청결을 유지하려고 애를 썼는데 "씻는 것"이 아니라 "갈아입는 것"으로 이 위생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이 시대 위생의 핵심은 리넨(Linen)으로 만든 속옷에 있었다. 부유층은 피부에 직접 닿는 "리넨(Linen) 속옷"을 자주 갈아입음으로써 땀과 노폐물을 빨아들이려고 했던 것이다. 이렇게 되면서 겉옷은 거의 빨지 않았지만, 깨끗한 리넨 속옷은 부와 청결의 상징이 됐다.


부분 세척: 따뜻한 물 목욕 대신 손, 얼굴, 목 등 노출되는 부위만 물로 씻는 "아블루션(Ablution)"이 보편적이었다. 이는 고대 중국 한족의 대안적 위생법과 일치한다. 식사 전후 손을 씻는 것은 중요한 예절이었다.


향수와 허브: 악취를 숨기고자 부유층을 중심으로 향수, 포푸리, 향기로운 허브 주머니를 애용했다. 이는 냄새를 더 강한 향으로 숨기는 방식이었다. 이는 영화 "향수"에서도 자세히 볼 수 있다.








2) 중앙아시아의 북방 유목민(몽골족, 튀르크족): 극강의 추운 대초원을 지배한 군인들



국가 유사성 지수.jpg 중앙아시아의 몽골계 유목민 기병 군단들


(1) 혹한의 대설원



몽골족 유목민과 튀르크족 유목민들로 대표되는 중앙아시아의 북방 유목민들이 목욕을 사실상 금기지했던 것은 불결해서가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추운 혹한의 땅이라는 기후적 요인이 가장 강했다.


"몽골대초원(스텝) 지대"는 세계에서 가장 추운 혹한의 기후를 가진 지역인데 시베리아와 바로 연결되어 있어 사실상 "북시베리아" 그 자체라고 봐도 무방하다. 또한, 세계적으로도 강수량이 가장 적고 건조하며, 겨울은 혹독하게 추워서 영하 70도까지도 내려갈 정도로 극강의 추위를 달린다. 문제는 몽골대초원은 이런 겨울이 1년의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영하 70도까지 내려가는 이런 세계에서 가장 추운 기후에서 자칫 씻기라도 했다간 저체온증으로 바로 동사(凍死)할 수도 있는 치명적인 결과로 직결되기에 사실상 중앙아시아의 몽골족과 튀르크족 유목민들은 혹한의 기후를 이겨내기 위해 씻는 행위를 금지한 것이다.


게다가 겨울이 아닌 계절에도 사실상 영하의 기후를 계속 유지하고 있기에 야생동물들도 얼어죽을 정도로 혹한의 땅으로 악명 높은 지역이 바로 "몽골"이다. 비록 호수가 있어도 쉽게 얼어버리는 데다


그나마 남아있는 바이칼 호수나 오아시스는 말들과 양떼의 생존을 위한 절대적인 자원이었기에 함부로 낭비하거나 더럽히는 것은 말들와 양떼들의 양성을 위협하는 행위였기에 목욕을 금지했다.


(2) 세계 패권국 대원제국의 "자사크" 군법령


1번의 연장선으로, 세계 패권국 대원제국의 군법령인 "자사크"에는 "흐르는 물이나 고인 물에 일부러 더럽히거나 몸을 씻는 자는 참수형에 처한다"는 조항이 있었다. 이는 깨끗한 호수나 오아시스의 물은 군마(軍馬)의 양성을 위해 반드시 유지해야 될 자원이기에 추가한 군법 조항이었다.


(3) 중앙아시아 몽골족, 튀르크족 유목민의 대안적 위생법


늑대 가죽 털옷: 늑대 가죽과 늑대털, 양털로 만든 의복은 보온성이 뛰어나고 내구성이 강해 중앙아시아의 혹독하고 추운 유목 생활에 적합했다. 그렇기에 의복을 자주 갈아입거나 세탁하는 대신, 털어서 관리했다.


세계에서 가장 추운 북방 중앙아시아 유목 전쟁과 동물성 기름: 말의 기름(마유)나 양의 기름 등을 전신에 발라 혹독한 극강의 동장군 추위와 건조한 칼바람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하고 이겨냈다. 이 동물성 기름층은 강력한 보온 효과와 함께 먼지나 이물질이 피부에 직접 닿는 것을 막아주는 막강한 이중 갑옷의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3) 중동 사막의 유목민(베두인, 투아레그 등): 물보다 소중한 것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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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극한의 물 부족 환경


중앙아시아의 몽골대초원과 마찬가지로, 중동 사막도 극한의 물 부족 환경이었다. 전자가 세계에서 가장 추운 혹독한 기후 탓에 물이 부족하다면 후자는 더운 사막 기후인 탓에 물이 부족하다. 두 지역의 공통점이라면 매우 건조하다는 점.

사막에서 물 한 방울은 인간과 가축의 생명을 유지하는 데 사용되어야 될 가장 귀한 자원이었다. 마시는 것 외의 용도로 물을 사용한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할 수 있었다. 따라서 물로 몸을 씻는다는 개념 자체가 성립하기 어려웠다.


따라서 사하라 사막의 투아레그족이나 아라비아 사막의 베두인족과 같은 유목민들에게 물은 생명 그 자체였다. 이들에게 목욕은 상상할 수 없는 사치였다.


(2) 대안적 위생법들


하지만 고대~중세 몽골족 유목민과 중세 유럽인과 마찬가지로 중동 사막의 유목민들 또한 대안적 위생법들을 고안해냈으니 아래와 같다.


모래 목욕: 물 없이 청결을 유지하기 위해 사막의 유목민들은 자연에서 대체재를 찾았다. 그들은 뜨겁고 건조한 모래를 이용해 몸을 문질렀다. 고운 모래 입자는 연마제 역할을 하여 피부의 각질과 이물질을 제거해주었고, 뜨거운 태양열에 달궈진 모래는 살균 효과도 있었다. 이는 피부의 땀과 유분을 흡수하여 끈적임을 없애주는 효과적인 방식이었다.


햇볕 소독: 강렬한 사막의 태양, 특히 자외선은 강력한 천연 살균제 역할을 했다.


종교적 정결 의식: 이슬람의 "타얌뭄"


다른 동남아시아 지역이나 중동, 서아시아의 많은 사막 민족들이 믿는 "이슬람교"에서는 하루 5번 기도를 드리기 전에 몸을 깨끗이 하는 "우두"라는 정결 의식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물이 없는 사막 환경에서는 이를 실천하기 불가능하다. 이슬람 율법은 이러한 특수한 상황을 고려하여 "타얌뭄"이라는 대체 의식을 허용합니다. 타얌뭄은 깨끗한 흙이나 모래, 돌에 양손을 짚은 뒤 얼굴과 손을 씻는 시늉을 하는 것으로, 물을 사용한 것과 동일한 종교적 정결 효과를 인정받는다. 이는 물이 없는 환경에서도 "청결"이라는 정신적 가치를 지키려는 노력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슬람교는 목욕을 기피했던 기독교와는 완전히 차이점이 드러나는 정반대의 종교다.


의복을 통한 위생 유지:


사막 유목민들의 치마처럼 헐렁하고 긴 옷차림은 단순한 전통 의상이 아니라, 위생과 생존을 위한 최적의 디자인이다.


헐렁한 옷은 통풍과 체온 조절에 적합해 몸과 옷 사이에 공기층을 만들어 외부의 뜨거운 열기를 차단하고, 땀이 빠르게 증발하도록 도와 체온을 낮춰준다.


온몸을 감싸는 옷은 강렬한 태양과 모래바람으로부터 피부를 직접적으로 보호한다. 투아레그족 남성들이 얼굴에 두르는 푸른색 터번 "타겔무스트"는 모래바람을 막는 동시에, 옷감의 인디고 염료가 피부에 묻어나 일종의 보호막 역할을 한다고도 알려져 있다.







4) 고대 중국 한족: 금욕주의와 문명으로 중무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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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중국 한족의 목욕 문화는 "전혀 안 씻었다"기보다는, 목욕을 일상적인 쾌락이나 위생 행위가 아닌, 건강을 위한 신중한 생존 행위로 접근했다는 점에서 다른 문화권과 차이를 보인다. 물론 금욕주의라던가, 목욕을 자주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중세 유럽인과 비슷하다.


(1) 유교적 금욕주의


첫 번째는 유교의 강력한 금욕주의 때문이었다. 이는 기독교와 동일한데, 그렇다면 왜 금욕주의가 강했던 조선은 이에 대해서 만큼은 자유로웠을까? 이를 생각해본다면, 조선의 경우는 옛부터 목욕 전통이 끊기질 않고 계승되어 왔기 때문으로 본다.


하지만 중국은 고대시대부터 조선이나 이슬람, 그리고 중세 시대의 유럽 못지않게 굉장히 보수적이고 성을 억압하고 탄압했으며 매우 금욕주의가 강했고, 그 탓에 목욕 문화는 애당초 원래부터 존재하질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한민족들은 중국 한족들을 목욕을 하지 않아서 지저분하다고 표현하는 기록이 자주 등장하며, 이는 조선시대도 마찬가지였는데 조선이 명나라를 종주국으로 떠받들며 섬겼어도 이 목욕을 기피하는 문화만큼은 도저히 따르지 않았던 것만 봐도 답이 나온다.


(2) 한의학(韓醫學)적 관점


기원전부터 발명된 중국 전통 의학에서는 신체를 외부의 악기(惡氣), 즉 악한 기운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 건강의 핵심이라고 보았다. 목욕재계 후에는 신체의 기(氣)가 허해지고 피부의 모공(현부, 腠理)이 열려 "풍한(風寒, 바람과 찬 기운)"이 쉽게 침투하여 병을 일으킨다고 생각했다. 이 점에서도 고대 중국의 한의학은 중세 유럽의 "미아즈마(Miasma)" 이론과 굉장히 비슷하다. 아니 사실상 주체와 이름만 바뀌었을 뿐 동일하다고 해도 무방하다.

이 때문에 특히 겨울철이나 신체이 허약할 때 목욕하는 것을 매우 금기시했다. 목욕재계 후에는 즉시 신체를 잘 말리고 보온하여 외부의 찬 기운을 막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기도 했다.


(3) 중국 대륙의 건조한 기후


같은 유교 국가임에도 중국은 목욕을 금기시하고 조선은 목욕을 자주 했던 이유는 기후 탓도 있다. 중국 명나라, 조선 두 국가 다 겨울철에는 엄청나게 혹한으로 추운 국가로 악명 높지만, 조선의 한반도는 산악지형이 많아 여름철에는 습한 기후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와는 정반대로 중국 대륙은 초원 평야가 대부분이고 나머지는 사막 지대라서 엄청나게 건조한 기후를 가지고 있다. 건조한 기후의 특성상 아무리 여름철이라도 쉽게 추워지는 기후이기도 하다.

특히 중국 문명의 근간을 이룬 황하 문명 지역은 건조한 기후대에 속하며, 물이 항상 풍족하지는 않았다. 따라서 대다수 인구를 차지하는 자유민들에게 땔감을 구해 물을 데워 매일 목욕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사치였다. 게다가 중국은 고대시대부터 세계에서 가장 발전한 문명국가였기에 전국민들이 하나씩 체계적으로 직업을 가지고 돈을 버는 산업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현대 시대처럼 바쁘게 일했기도 하거니와 물의 경우에는 대부분 개인의 직업에 필요에 따라 사용하는 경우들이 많았다.


예를 들면 물시계 같은 것만 제작한다 해도 물이 굉장히 많이 소모됐다. 따라서 개인이 목욕하는 데 쓰기보단 이렇게 저마다 필요에 따른 영역들에 물을 사용했기에 물이 항상 부족했다.


농민의 경우에는 물은 중국이 인류 역사상 최초로 발명한 지렛대의 원리로 작동한 기계 동력 수력 해머에 쓰기 위해 농업 용수로 사용하는 것이 최우선이었고, 목욕은 여름철 더위를 식히기 위해 손, 발을 잠깐 씻는 정도가 한계치였다.








5) 티베트 고원 민족: 혹독한 자연에 적응한 인간 승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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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후와 지리적 특성: 고산지대의 추위와 건조함


고대시대의 막강한 군인제국이었던 토번제국의 후예인 티베트인들이 전통적으로 목욕을 거의 하지 않았던 것은 비위생적인 관념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살아가는 혹독한 자연환경에 완벽하게 적응한 인간 승리의 결과였기 때문이다.


티베트 고원은 평균 해발고도가 4,000m 이상인 "세계의 중심이자 지붕"이다. 이곳의 환경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진다.


혹독한 추위: 연중 기온이 낮고 겨울은 길고 춥다. 물이 쉽게 얼어붙고, 젖은 몸으로 추위에 노출되는 것은 저체온증으로 직결될 수 있는 치명적인 행위다.


희박하고 건조한 공기: 고도가 높아 공기가 희박하고 매우 건조하며, 강렬한 자외선과 거센 바람이 연중 계속된다.


부족한 자원: 티베트 고원은 강철검을 제작할 때 쓰는 철광은 많지만 그외 자원은 턱없이 부족하다. 특히 난방과 취사에 사용되는 연료는 주로 야크의 배설물을 말린 "야크 의 배설물"인데, 이는 매우 귀한 자원이다. 목욕물을 데우기 위해 이 소중한 연료를 소모하는 것은 큰 낭비였다.



(2) 추위로부터 생존하기 위한 지혜: 피부 보호와 체온 유지


이러한 환경에서 잦은 목욕은 추운 혹한 기후의 생존에 불리하게 작용한다.


천연 보호막: 우리 신체의 피부에서 자연적으로 분비되는 유분(피지)은 보습막 역할을 하여 건조한 공기로부터 피부 수분이 증발하는 것을 막아준다. 또한, 이 유분층은 춥고 거센 칼바람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하는 기능도 한다. 목욕으로 이 보호막을 씻어내면 피부가 쉽게 갈라지고 동상에 걸릴 위험이 커진다.


체온 유지: 몸에 낀 때와 유분층은 미미하게나마 단열 효과를 제공하여 체온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준다. 춥고 바람 부는 고원에서 체온을 1도라도 더 유지하는 것은 생존과 직결된 문제다.


(3) 종교적 이유


티베트의 종교적 신앙 또한 목욕을 자주 하지 않는 문화에 영향을 미쳤다. 티베트의 토속 신앙과 불교적 세계관은 기독교, 이슬람교 못지않게 금욕주의가 대단히 강하고 자연과의 연합을 중시한다.


(4) 해결책


티베트인들은 물 목욕 대신 자신들의 환경에 맞는 방식으로 청결을 유지했다. 그들은 야크 젖으로 만든 "버터"를 신체에 발랐다. 버터는 보습제 역할을 하여 건조한 바람과 햇볕으로부터 피부가 트는 것을 막아주었고, 동시에 때와 먼지가 피부에 직접 달라붙는 것을 방지했다. 시간이 지나 버터가 산화하면서 생긴 독특한 냄새는 그들 문화의 일부가 되었다. 이는 춥고 혹독한 기후 환경 속에서 생존하기 위한 그들만의 생존 전략인 셈이다.









6) 대항해시대의 스페인인: 이슬람의 지배를 오랫동안 받아온 반발과 정체성 확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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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유럽의 목욕 기피 문화는 근세~근대로 넘어오면서 새로운 양상과 결합하여 이어졌다. 특히 부유한 왕국을 건설했던 스페인 왕국에서 이러한 경향이 두드러졌다.


근세 시절인 15세기 후엽쯤, 스페인 왕국은 수백 년간 이베리아 반도의 스페인을 식민 지배했던 이슬람 세력으로부터 독립운동인 "레콩키스타(Reconquista)"를 했다. 당시 이슬람(무어인) 문화는 "함맘"으로 대표되는 발달된 목욕 문화를 가지고 있었는데, 스페인의 가톨릭 여왕들에게 이슬람의 깨끗한 목욕 습관은 벗어나야 할 스페인과는 완전히 다른 이교도의 악습으로 비춰졌다.


따라서 목욕을 멀리하는 것은 수백 년간 이슬람에게 식민 지배를 당해온 스페인인들이 이슬람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했고, 자기들의 독실한 가톨릭 교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는데 중요한 정치적, 종교적 행위였다.


"내 평생 목욕은 태어날 때와 결혼할 때 단 2번뿐이었다"고 기분 좋게 얘기했다는 이사벨 1세 여왕의 일화(사실 여부와 관계없이)는 당시의 스페인 왕국의 사회적 분위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또, 이런 스페인인들의 목욕 기피 문화는 잉카 문명, 아즈텍 문명을 먹으면서 더 심해졌는데 스페인인들이 보기에 구석기 시대인 잉카 문명, 아즈텍 문명, 브라질 아마존 원주민들은 남녀가 알몸으로 생활하면서 열대 정글의 강물에서 하루 종일 목욕을 했다. 물론 이는 남아메리카가 지구상에서 가장 습하고 무더운 열대 지방이기 때문에 잉카인, 아즈텍인, 브라질 아마존 원주민들은 남녀 할 것 없이 알몸으로 생활하도록 된 것이고 그런 무더위 탓에 하루 종일 열대 정글 강물에 목욕을 했던 것인데 이를 보고 스페인 사람들은 목욕을 더욱 더 미개인들의 행위라면서 목욕을 기피하게 된 것이다.








7) 근대시대의 영국인: 근대시대라고 뭐든지 발전한 건 아니다.



영화 "마이 페어 레이디"의 장면. 출처 : 직썰(https://www.ziksir.com)



근대시대의 영국인들이 목욕을 잘 안했다는 점은 산업혁명의 역설을 보여주는 예다.

해양 패권국이라고 할 만큼 주로 배에서 생활을 많이 한 영국인들은 선상 생활의 특성상 목욕을 잘 안했던 점도 있다.


근대 시절인 19세기 영국, 특히 빅토리아 시대는 위생 관념의 전환기였다. 한편으로는 산업화의 "문명화 사명"의 일환으로 비누(Pears' Soap 등)를 속지에 수출하며 청결을 전파하려 했는데, 그러나 정작 영국 본토의 대도시는 산업혁명으로 인한 인구 집중과 열악한 위생 시설로 몸살을 앓았다. 특히 영국의 강물들은 똥물로 악취가 진동하는 걸로 유명했다.


이런 런던과 같은 대도시는 상하수도 시설이 미비하여 공장 폐수와 생활 오물이 템스강으로 그대로 흘러 들어갔고, 강은 거대한 시궁창과 다름없었다. 노동자 계층이 거주하는 지역은 깨끗한 물을 구하기조차 어려웠다.


물론 부유층은 개인 집에 개인 욕실을 설치하기 시작했지만, 대다수 노동자 계층에게 목욕은 일주일에 1번, 부엌에서 온 가족이 돌려쓰는 작은 양철 욕조에 물을 데워 씻는 것이 고작인 힘든 연례행사였다. 바로 이 시절 위생 상태가 불량했던 노동자 계층을 경멸적으로 지칭하던 단어들도 많이 탄생했다.


앞서 얘기했듯이 대항해시대나 근대 시대의 장기간 항해는 목욕을 거의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배에서 가장 귀한 자원은 마실 물이었으며, 몸을 씻는 데 물을 쓴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낭비였다. 이러한 환경은 유럽인들의 비목욕 습관을 더욱 고착화시켰다.











하지만 이와는 정반대로, 역사상 목욕을 위생과 건강을 넘어 사회, 문화, 풍습, 관습, 종교의 중심축으로 삼았던 민족들도 있다. 이들은 발달된 문화, 풍부한 자원, 그리고 청결을 중시하는 신념을 바탕으로 독창적이고 화려한 목욕 문화를 꽃피웠다.





목욕을 자주 한 문화권들(목욕을 삶의 중심으로 삼은 민족들)



1) 고대 로마인: 목욕, 문명과 사랑의 중심



"목욕하고, 술 마시고, 남녀끼리 사랑하라"는 고대 로마의 유적에서 발견된 낙서는 당시 로마 사람들의 삶에서 목욕이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로마인에게 목욕은 단순한 세정 행위를 훨씬 뛰어넘는 문명 그 자체였다.



수도교(Aqueduct): 로마 사람들은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산악 지대의 깨끗한 수원지에서부터 도시까지 물을 운반하는 거대한 수로, 즉 수도교를 건설했다. 이 경이로운 건축물 덕분에 로마 시내에는 매일 막대한 양의 신선한 물이 끊임없이 공급될 수 있었다.



테르마이(Thermae): 풍부한 물을 바탕으로 로마 사람들은 도시 곳곳에 "테르마이"라 불리는 거대한 규모의 공중목욕탕, 남녀혼욕탕들을 지었다. 이는 단순한 목욕 시설이 아니라 오늘날의 복지 시설이자 종합 문화 센터와 같은 곳이었습니다. 여기에는 여가와 오락의 기능도 많아서 목욕 시설 외에도 음식점, 상점, 책방, 상담실 등 다양한 놀거리들을 제공하고 있어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으로 그야말로 "불야성"을 이루었기에 고대 로마 문명의 번영의 가장 핵심을 보여준 것이 바로 이 "테르마이"였다.


2.jpg 로마의 목욕 문화를 보여준 일본 만화(?) 원작 영화


그리고 로마의 지도자가 자기의 권위를 과시하고 시민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직접 건설하기도 했는데, 카라칼라 욕장이나 디오클레티아누스 욕장은 수천 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을 만큼 거대했다. 입장료도 매우 저렴하거나 공짜여서, 노예를 제외하면 거의 모든 시민이 매일같이 이용할 수 있었다. 로마인들은 이곳에서 친구를 만나고, 사업을 논하고, 음식을 먹고, 지식을 쌓으며 하루를 보냈다. 그렇기에 목욕탕은 고대 로마의 모든 사회 활동이 이루어지는 중심 무대였다. 고대 로마는 목욕에서 시작되어 목욕에서 끝난다고 해도 거짓이 아닌 셈이다. 로마야말로 목욕 민족 그 자체가 아닐까 싶다. 그야말로 고대 로마의 복지의 결정체라 할만하다.


게다가 테르마이에는 이러한 문화회관을 합쳐놓은 것 외에도 온탕, 냉탕, 한증실 같은 다양한 목욕 시설과 심지어는 성매매까지 이뤄졌기에 창녀(매춘부)들도 굉장히 많았는데 고대 로마는 성매매가 합법인 걸 넘어서 당시에 유흥업소, 성매매가 지구상에서 가장 발달했던 곳이 고대 로마였기에 가능한 일이다. 물론 이런 난잡하기 짝이없는 고대 로마의 성매매는 후대에 유럽이 보수적으로 가게되는 계기가 됐지만 말이다.


여하튼 로마인들에게 목욕은 단순한 세정 행위를 넘어, 로마 문명의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종합 예술이자 사회 시스템이었던 것이다.


재밌는 점은 고대 로마에도 때밀이 수건 같은 게 있었다는 점이다. 로마인의 목욕은 주로 이러했는데 먼저 온몸에 올리브유를 바른다. 그 후 미온수실, 온탕, 한증실을 차례로 거치며 땀을 내고 때를 불린다. 마지막으로 "스트리기스(Strigilis)"라는 청동으로 만든 갈퀴 모양의 도구로 기름, 땀, 때를 함께 긁어낸 후 냉탕에서 몸을 식히며 마무리했다. 마치 오늘날 한국인의 때미는 과정과 별반 다를 게 없어서 나름 신기하고 동질감이 든다. 로마인들은 서쪽의 한국인이었단 말인가.






2) 한민족(韓民族): 전신과 정신을 훈련하는 수양(修養)의 문화


2.jpg 조선시대의 이슬람 함맘같은 습식 사우나 "한증소"


(1) 고대시대부터 시작된 역사 속 목욕재계 기록


한민족의 목욕 문화는 역사적으로 전신을 깨끗이 하는 것을 넘어 정신을 수양하는 과정으로 여기는 독특한 정신문화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고대 신라의 목욕재계부터 근세~근대 조선의 온천욕까지 한민족의 목욕 문화는 오랜 역사를 가진다. 삼국시대 신라의 왕족들이 온양온천 등에서 병을 치료하고 휴양을 즐겼다는 기록도 있다. 여름철에는 차갑고 맑은 계곡의 시냇물에 손과 발을 씻거나 머리를 감는 "머리 감기"가 중요한 피서 여행이었다.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에 이르면 목욕은 유교적 예법과 결합하여 다양한 변화를 가지게 된다.

(2) 조선의 청결 관념


조선시대를 지배한 성리학 사상에서 청결은 "예(禮)"의 기본이라고 할 정도로 고대 로마와 비슷했다. 물론 조선의 성리학을 "신성리학" 또는 "조선식 성리학"이라고 부를 정도로 조선의 성리학은 원류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기 때문에 조선식 유교 성리학과 실제 고대 중국의 유교 성리학은 "완전히 다른 사상"이라고 봐야 된다.


어찌됐건 단정한 의복과 정갈한 신체는 내면의 수양이 외부로 드러난 결과물로 여겨졌다. 특히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거나 중요한 의례를 앞두고 반드시 행하는 "목욕재계(沐浴齋戒)"는 단순히 몸을 씻는 것을 넘어, 몸과 마음을 함께 정화하여 경건함을 표현하는 신성한 의식이었다. 이는 목욕을 쾌락이 아닌 정신적 수양의 과정으로 보았던 한민족의 독특한 관점을 잘 보여준다. 그렇다. 한민족은 목욕을 쾌락의 수단이 아니라 정신적 수양의 과정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그 금욕주의가 강했던 보수적인 조선시대 때에도 목욕은 죽지 않고 명맥을 이어나갈 수 있던 것이다.


또, 한반도는 사계절이 뚜렷하며, 특히 여름철은 고온다습하여 잦은 목욕이 자연스럽게 요구되었다. 이는 북시베리아나 중앙아시아 몽골대초원, 티베트 고원처럼 세계적으로도 가장 춥고 건조한 기후대는 그 추운 기후 때문에 목욕이 사실상 불가능한 것과는 완전히 대비된다.


이러한 역사적 전통은 현대에 이르러 대중목욕탕인 "목욕탕"과 복합 휴식 공간인 "찜질방" 문화로 계승, 발전했습니다. 찜질방은 온 가족이 함께 목욕, 사우나, 휴식, 오락을 즐기는 독특한 한국형 사교 공간으로, 가히 고대 로마의 테르마이와 비견될 만하다.

어찌보면 고대 로마를 진정으로 계승한 건 신성로마제국이 아니라 "대한민국"이 아닐까 다소 장난스러운 생각마저 들 정도다.

여하튼 특히 목욕탕 문화의 핵심에는 전문적으로 때를 밀어주는 "세신(洗身)"이 있다. 이는 피부의 묵은 각질을 완전히 벗겨내야 비로소 제대로 된 목욕을 했다고 여기는, 청결에 대한 한민족의 철저한 관념이 만들어낸 독특한 문화다.










3) 이슬람 문화권: 신앙이 곧 청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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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앙의 의무: "타하라" 정결함의 중요성


동북아시아(중세시대때까지), 동남아시아나 중동, 서아시아로 대표되는 이슬람 문화권에서 목욕은 신앙을 실천하는 경건한 행위이자 일상의 필수적인 부분이었다. 이슬람교의 가르침은 세계에서 가장 발달된 목욕 문화 중 하나를 탄생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이는 목욕을 기피하는 기독교와는 완전히 정반대의 모습이다.


예언자 무함마드는 "청결은 신앙의 절반"이라고 가르쳤다. 이슬람 경전인 쿠란과 예언자 무함마드의 언행록(하디스)은 "청결"을 매우 중요한 가치로 강조한다. 무슬림은 하루 5번 기도 전에 반드시 얼굴과 손, 발 등을 씻는 작은 정결 예식 "우두"를 행해야 하며, 특정한 상황(성관계 후, 월경 후 등)에서는 전신을 씻는 큰 정결 예식 "구슬"을 의무적으로 해야 한다. 이러한 종교적 규율은 목욕을 모든 무슬림의 일상적인 습관으로 만들었다.


함맘은 한국의 사우나와 유사하게 여러 개의 방으로 구성되었지만, 물에 몸을 담그는 "탕" 중심이 아니라 뜨거운 증기를 이용한 "습식 사우나" 형태에 더 가깝다.


이런 함맘은 일반적으로 탈의실(차가운 방), 미온의 방, 뜨거운 증기가 가득한 열탕(혹은 중앙의 뜨거운 대리석 단상) 순서로 구성된다.


목욕 방식은 이용객들은 뜨거운 증기로 땀을 내고 모공을 연 뒤, 한국의 전문 세신사 같은 텔락에게 때를 밀거나 비누 거품 마사지를 받는다.


함맘 역시 한국의 사우나처럼 중요한 사교 공간이었다. 특히 여성들에게 함맘은 집 밖에서 자유롭게 다른 여성들과 교류하고 정보를 교환하며 유대감을 형성하는 거의 유일한 해방구 역할을 했다. 결혼을 앞둔 신부를 위한 축하연이나 출산 후의 축하 모임 등 중요한 인생의례가 함맘에서 열리기도 했다.


함맘은 남녀가 사용하는 공간이나 시간이 엄격히 분리되었다. 특히 조선시대처럼 외부 활동에 제약이 많았던 이슬람 여성들에게 함맘은 집 밖에서 자유롭게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고 정보를 교환하는 중요한 해방구이자 사교의 장이었다. 결혼, 출산 등 인생의 중요한 행사를 기념하는 연회가 함맘에서 열리기도 했다.









4) 일본인: 정화(淨化)의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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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종교적 관념: 신토(神道)의 "하라이(祓)"


일본의 고유 종교인 신토(神道)에서는 "더러움(穢れ, Kegare)"을 씻어내고 심신을 깨끗한 상태로 되돌리는 정화 의식인 "하라이(祓)"를 중시한다. 물은 이 "더러움"을 씻어내는 강력하고 신성한 매개체로 여겨진다. 신사에 들어가기 전에 손과 입을 씻는 "테미즈(手水)" 의식은 이러한 정화 관념을 잘 보여준다.






5) 고대 인도인: 영혼을 씻는 신성한 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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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린도인"들을 생각하면 전혀 이해가 안 되겠지만, 사실 인도인들은 고대시대부터 굉장히 목욕을 많이 하고 청결한 민족이었다. 인도의 목욕 문화는 그 역사가 매우 깊으며, 단순한 신체적 청결을 넘어 깊은 종교적, 정신적 의미를 담고 있다.


(1) 문명의 시작과 함께한 목욕: 모헨조다로의 대욕장


세계사 교과서에서 누구나 배우는 "세계 4대 문명의 발상지" 중 하나인 기원전 2500년경에 번성했던 인더스 문명의 유적지 모헨조다로에서는 "대욕장(The Great Bath)"이라 불리는 거대한 공중목욕탕 유적이 발견되었다. 정교한 벽돌 구조와 방수 처리, 배수 시설까지 갖춘 이 대욕장은 당시 사람들이 물을 이용한 정결 의식이나 집단 목욕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이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욕 문화의 흔적 중 하나로 꼽힌다.


(2) 기후적 요인과 종교적 신념의 결합


인도 아대륙의 덥고 습한 기후는 자연스럽게 잦은 목욕을 필요로 한다. 땀과 먼지를 씻어내고 더위를 식히는 것은 쾌적한 생활을 위한 필수적인 활동이다. 이러한 자연적 요구는 인도의 주요 종교인 힌두교의 가르침과 결합하여 독특한 목욕 문화를 형성했다.


(3) 힌두교의 정화 사상: 강물 목욕의 의미


힌두교에서 물, 특히 강물은 모든 죄와 부정(不淨)을 씻어내는 신성한 힘을 가진 것으로 여겨진다. 그중에서도 갠지스강은 시바 신의 머리카락에서 흘러나온 성스러운 강으로 신격화된다. 수많은 힌두교도들은 평생에 한 번 갠지스강에서 목욕하는 것을 가장 큰 소원으로 여기며, 이를 통해 현세의 모든 죄를 씻고 영적인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다. 바라나시와 같은 갠지스강 유역의 성지에서는 매일 새벽 수많은 순례자가 강물에 몸을 담그고 기도를 올리는 장엄한 광경이 펼쳐진다.


(4) 일상과 종교를 아우르는 목욕 문화


인도인들에게 목욕은 하루를 시작하는 중요한 의식이다. 전통적으로 많은 힌두교도는 아침에 일어나 가장 먼저 목욕으로 몸을 정갈히 한 뒤에야 사원에서 기도를 드리거나 식사를 한다. 이는 육체적 청결뿐만 아니라 정신적, 영적 순수성을 회복하는 과정으로 인식된다. 또한, 조선의 한의학이 있다면 인도에는 아유르베다가 있다고 할 정도로 이 인도의 전통 의학에서는 목욕을 건강을 유지하는 중요한 방법으로 강조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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