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세 시기인 16세기 후엽쯤에 스코틀랜드 왕국의 동쪽의 "이스트 로디언(East Lothian)" 지방에서 소니 빈은 태어났어요. 그는 하수구를 청소하거나 농사를 짓는 흔하디 흔한 서구의 하층민 부모님 밑에서 태어났지요. 아버지의 뒤를 이어 평범한 농민이나 노동자의 삶을 살 수도 있었지만, 소니 빈은 젊은 시절부터 정직한 노동의 땀방울보다는 손쉬운 노략질과 성폭력에 더 큰 매력을 느꼈다고 하네요. 결국 그는 고향을 등지고 정처 없는 방랑길에 오릅니다.
그의 방황은 스코틀랜드 왕국의 남서부 해안의 에어셔(Ayrshire) 지방에서 운명적인 전환점을 맞이해요. 그곳에서 그는 자기만큼이나 뒤틀린 "아그네스 더글라스('Black' Agnes Douglas)"라는 여인을 만나거든요. 아그네스는 훗날 마녀로 불리는 기괴하고 꼬인 심정의 여자였어요. 서로의 야릇한 본성을 알아본 두 사람은 곧바로 불같은 사랑에 빠졌고, 문명사회를 등지고 둘만의 왕국을 건설하기로 결심해요.
소니 빈 부부가 선택한 보금자리는 바로 밸런뜨래(Ballantrae) 해변가의 깊고 음습한 동굴이었어요. 밀물 시간이 되면 동굴 입구가 물에 잠겨 외부에서는 그 존재조차 알기 힘든 고립된 곳이었지요. 이 습하고 무덥고 축축한 동굴 속에서 소니 빈과 아그네스 부부는 원시인처럼 사회로부터 완전히 고립된 채 그들만의 끔찍한 성생활을 즐기기 시작했어요.
외부 사회와의 단절은 부부의 도덕 관념을 완전히 마비시켰어요. 소니 빈 부부에게는 더 이상 사회의 규범이나 사회적인 도덕 계율이 중요하지 않게 됐거든요. 오직 생존과 원초적인 번식 욕망만이 둘을 지배했어요. 이러한 환경 속에서 부부는 끝없는 번식을 시작했어요. 외부와의 교류가 없었기에 번식은 근친상간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어요. 아들과 딸, 손자와 손녀가 서로 뒤섞여 아기들을 마구 낳았고, 그 결과 25년이라는 세월 동안 소니 빈 가족은 8명의 아들, 6명의 딸, 그리고 그와 그녀들 사이에서 태어난 18명의 손자와 14명의 손녀를 포함하여 총 48명에 이르는 거대한 대가족으로 불어났어요.
식인종 소니 빈 가족을 그린 그림
이 가족이 이토록 번식에 집착한 이유는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몇 가지 추측이 가능해요. 첫째,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숫자를 늘리는 것은 가장 원시적이면서도 효과적인 방법이었어요.
둘째, 근친상간을 통해 기형적인 유대감을 형성하고, 가족 외에는 아무도 믿지 못하는 폐쇄적인 공동체를 더욱 공고히 하려 했을 것이지요. 그들에게 가족은 생존 공동체이자 범죄 집단이었고, 그들의 비밀을 지키고 범죄를 이어가는 데 필수적인 요소였어요.
이 소니 빈 가족이 스코틀랜드 왕국을 오줌지리게 해버린 이유는 바로 그들의 끔찍한 식인 행위였습니다. 동굴에 숨어 지내던 그들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인근 지역을 여행하는 여행자들을 노리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단순히 먹을 것들을 빼앗기 위한 도둑질이었지만, 곧 그들의 범죄는 식인으로 변질되었어요.
그렇다면 돼지고기나 다른 음식 등 먹을 것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굳이 인육을 고집했을까요? 여기에도 몇 가지 해석이 존재해요.
1) 시신을 먹어치우는 것은 그들의 범죄를 완벽하게 은폐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으니까요. 희생자의 흔적을 남기지 않음으로써 그들은 오랫동안 왕이 보낸 관리의 추적을 피할 수 있었어요.
2) 사람을 먹는 행위는 그들에게 있어 다른 인간을 지배하고 통제한다는 뒤틀린 쾌락과 성욕, 식욕, 권력욕을 충족시켜 주었을 것이에요. 이는 단순한 생존을 넘어선, 뒤틀린 성욕이나 다름없어요.
3) 외부 사회와 완전히 단절된 채 어둡고 비위생적인 동굴에서 근친상간을 반복하며 살아온 그들의 정신은 이미 정상적인 범주를 벗어났을 가능성이 높어요. 사회적 금기(taboo)를 깨는 것에 대한 죄책감은 사라지고, 식인 행위는 그저 일상적인 식사 준비 과정의 일부가 되었을 것이기에 그들에게 인육은 다른 고기와 다를 바 없는,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고기"에 불과했을지도 몰라요.
이렇게 소니 빈 가족의 범죄 방식은 지독히도 체계적이었어요. 밤이 되면 남자들은 동굴 밖으로 나가 숨어 있다가 홀로 또는 소수로 여행하는 사람들을 덮쳤는데 희생자들을 무참히 살해한 뒤, 시신을 동굴로 끌고 와 마치 정육점의 고기처럼 해체해서 발라먹었어요. 마치 정육점에서 일하는 사람처럼 시체를 부위별로 잘라내어 일부는 소금에 절여 저장하고 일부는 불에 구워 먹었다네요. 동굴 속은 희생자들의 절단된 사지와 뼈, 그리고 소금에 절여진 인육이 천장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생지옥과도 같은 풍경이었어요.
수년에 걸쳐 수많은 여행자들이 실종되자 스코틀랜드 남서부 지역은 흉흉한 소문과 괴담이 생겨났어요. 사람들은 마녀나 귀신의 소행이라며 가길 꺼려했고 실종된 사람들의 시체 일부가 인근 해안으로 떠밀려 오기도 했지만, 범인의 정체는 오리무중이었어요. 수많은 여관 주인들이 억울하게 범인으로 몰려 마녀사냥되었지만, 실종 사건은 멈추지 않았어요.
소니 빈 가족의 25년에 걸친 식인 범죄는 어느 날 밤, 어느 부부를 급습하면서 막을 내리게 되요. 남녀끼리의 질펀한 축제를 즐기고 집으로 돌아가던 부부는 소니 빈 가족의 급습을 받았어요. 남편이 필사적으로 저항하는 사이 아내가 끌어내려져 눈앞에서 살해되어 내장이 파헤쳐지는 끔찍한 광경을 목격하게 되거든요. 남편은 마침 총을 가지고 있어 총으로 맹렬히 저항했지만 소니 빈의 무식한 힘에는 소용이 없었어요. 그러다가 마침 그곳을 지나던 20여 명의 다른 나그네들이 그걸 보고 도와주면서 소니 빈 가족은 처음으로 식인 범죄에 실패하고 동굴로 도망쳤어요.
다행히 다치지 않은 남편이었지만 아내가 결국 이승을 뜨게 되자 그는 즉시 글래스고(Glasgow)의 관리에게 허겁지겁 가서 자기가 겪은 끔찍한 사건을 얘기했어요. 그의 얘기는 그동안 발생했던 수많은 실종 사건의 실마리를 푸는 결정적인 것이 되었지요. 그리고 입에서 입으로 귀동냥을 통해 소식을 전해 들은 스코틀랜드의 임금님이었던 제임스 1세(James 1)는 직접 400여 명의 포졸들을 보내 범인 토벌에 보냈어요.
그렇게 계속해서 찾던 끝에 포졸들은 밀물 때에만 드러나는 해안 동굴의 입구를 발견했고, 횃불을 들고 동굴 속으로 들어선 그들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끔찍한 광경과 냄새에 마주해야 했어요. 동굴 벽에는 희생자들의 잘려나간 팔,다리가 걸려 있었고, 한쪽에는 소금에 절인 인육 덩어리들이 쌓여 있었거든요. 그리고 다른 한쪽에는 희생자들에게서 빼앗은 옷가지와 보석, 돈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어요.
그렇게 포졸들에 의해 소니 빈 가족 48명은 단 1명의 저항도 없이 모두 생포되었지요.
소니 빈 가족의 범죄는 사람의 짓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끔찍했기에, 그들에게는 정식 재판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어요. 임금님의 얘기에 따라 소니 빈 가족은 결국 사형을 선고받았어요. 남자들은 사지가 절단되는 끔찍한 형벌을 받았고, 여자들과 아기들은 남자들이 고통 속에서 죽어가는 모습을 강제로 지켜본 뒤 화형에 처해졌어요. 민담이나 우설, 설화에 의하면 가족은 죽는 순간까지도 자기들의 죄를 뉘우치기는커녕, 온갖 욕설들을 내뱉으며 숨을 거두었다고 하네요.
이렇게 스코틀랜드 왕국을 25년간 괴담에 쌓이게 했던 식인종 가족의 시간은 막을 내렸지만 소니 빈의 이야기는 그 특이성과 끔찍성 때문에 오랫동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다가 오늘날에는 수많은 책과 영화, 드라마의 인기 소재가 되었으며 에든버러에 갈 경우엔 꼭 가봐야할 필수 관광지로 선정될 정도로 인기가 높으며 소니 빈의 동굴을 찾는 외국인이나 자국민 관광객들도 계속 늘어나는 추세라니 자본주의란 건 정말이지 대단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