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심이란 자신의 생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정체성이다. 이것이 많이 훼손되면 사는 것 자체의 이유를 찾기 어렵다. 그래서 모든 물체는 물성을 가진다. 산은 산에 대한 물성을 지키기 위하여 산에 갈 때는 계절에 맞는 등산복, 장비, 신발을 갖추고 가야 자신을 지킬 수 있다. 이러한 산의 물성을 지키지 않는다면 사고가 나고 자신이 해를 입는다. 사람 사이도 마찬가지이다. 상대의 물성을 허물면, 물성을 지키지 않으면, 서로 해를 입는다. 우리에게는 자신을 절대로 상하지 않게 하는, 자신이 살 수 있도록 정체성을 지켜주는 기관이 편도체이다. 이는 물질적 정신적으로 절대 손해를 입지 않도록 자신을 지켜 준다.
대부분의 자존심은 실수로 인하여 많이 상한다. 실수란 아주 숙달된 일을 잘 못한 것으로 그 피해가 상대방에게 지워지는 것이다. 이 경우 상대방의 마음과 정신에 심각한 타격을 입혀 상대방에게 알맞은 처신을 할 수 없게 하고, 생명에 위협이 되었을 때는 범죄가 될 수 있다. 이것을 실수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실수를 한 사람은 자존심에 엄청난 손상을 입게 되고, 상대방은 엄청난 위협에 도달된다. 실수는 본인이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생기는 일과, 알고는 있으나, 집중력이 떨어져 인지하지 못하고 수행하는 경우가 있다. 그 이유는 사람에 있어 뇌의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는 시간은 10분 내외이다. 집중하고 있다가도 본인도 모르게 나사가 풀려 집중력을 잃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 몸의 장기 중에서 가장 게으른 곳이 뇌가 아닐까한다. 게으르기도 하지만 집중력이 금방 사라져 사람의 행동을 당황케 한다.
대부분 이런 실수가 큰 결과를 낳는다. ‘아무리 정신 차리고 살아라’고 해도 뇌는 그냥 지나가는 소리로 인지한다. 경험이 있더라도 일어나는 실수가 더 아프고 자존심을 상하게 한다. 잘 알고 있는 것을, 숙달된 일을 잘 못했을 때 이를 실수라고 한다. 모르는 일을 잘 못한 경우를 실수라고 하지 않으며, 이는 미숙한 것이다. 이는 실수라는 말이 그냥 농담처럼 쓰일 수 없다는 말이 된다.
축구를 하다가 자신의 골대에 골을 넣는 것은 실수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아마츄어인 내가 2미터의 높이를 뛰어 넘을 수 없는 것은 실수가 아니다, 즉 연습을 열심히 하지 않은 숙달되지 않은 미숙함 일인 것이다. 실수는 아주 큰일을 만들 수 있다.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아주 중요한 경기가 될 수 있고, 이로 인한 패배는 아주 가슴쓰린, 평생 지워지지 않는 일이 될 수 있다. 또한,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고, 이 실수를 자신의 힘으로는 막을 수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 누구도 실수를 하고 싶어서 하는 실수는 없다. 그리고 꼭 실수는 하면 안 되는 곳에서 일어난다. 그래서 실수라 한다. 그래서 이 실수는 자존심을 엄청 갉아 먹는다.
우주선에 관련하는 사람은 모두가 이 일에 숙달된 사람들이다. 다른 것도 아니고, 길이를 나타내는 단위에는 인치(inch)와 국제단위인 MKS , 즉 미터가 있다. 한 과학자가 미터를 써야할 자리에 인치로 계산한 수치를 적용하여 우주선이 폭발하였다면, 이것은 실수에 해당한다. 이로 인하여 우주비행사와 우주선이 폭발하여 엄청난 해를 입었다면, 그 과학자에게는 실수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유지할 아무런 가치를 갖지 못할 것이다. 그냥 실수였다고 자신에게 둘러대기에는 스스로의 양심이 인정하지 못할 것이다.
“왜, 그랬을까, 하필 이 때에”하는 생각이 육체와 정신을 지배할 것이다. 사람이니까 실수를 한다는 말은 신은 절대로 실수를 하지 않는다는 말이 될 수 있는데, 신도 실수를 하기 때문에 그 자리를 유지 할 수 있을 것이다. 완벽이라는 말을 흔히 쓸 수 없는 이야기는 그 자체로서 울타리, 카테고리를 만들기 때문이다.
즉, 신의 영역을 만든다는 것은, 인간이 있기에 신이 있는 것이고, 인간이 없으면 신의 존재는 무의미하다. 사람이 아니면 그 어떤 생물이 신을 받들겠는가.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신들도 실수를 하지만 밖으로 내색하지 않을 뿐이라고.
신도 인간에 비하여 완벽하다는 말이지, 신들 끼리 모여 있으면 어찌 그게 지낼만한 집단이겠는가. 한 번씩 인간에게 실수를 하게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인간을 다스리는 명분을 만드는 것일 것이다.
사람이 실수를 하면, 어쩌면 돌이킬 수 없는 범죄가 될 수 있고, 신은 웃으며 잘한다고 손뼉을 치면서 재미있게 놀 것이다. 다르게 말하면, 신을 즐겁게 하기 위해 인간을 실수를 해야 한다. 그리고 그 책임을 져야 한다. 그것이 자존심을 지키기 위함이고, 때로는 자존심을 잃어버리는 일이 될 것이다.
그래서, 실수를 하지 말라는 말은 그 논리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본다. 왜냐하면, 나의 의지로,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불가항력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이다.
[ 나의 무게]
어쩌면, 자존심을 지킨다는 말은 나의 의지대로 되기는 어려우나 최소한 나의 살길을 마련하는 것이라서 나만 살면 된다가 아니라 나의 삶의 방향을 지킬 수 있는 힘이 되어야 한다.
자존심을 구겨 내가 살 수 있다면, 다음의 기회를 만드는 의미로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한신이 부랑자의 가랑이로 기어간 것은 그 자존심보다는 다음을 생각하는 대의에서 그렇게 했을 것이다. 즉, 불필요한 여건을 만들고 싶지 않아서 일 것이나, 자신이 성공하기 전까지에는 다른 사람에게 자존심을 던져놓고 살아야 했다.
우리는 최소한의 나를 지키는 뿌리로 자신을 찬바람 앞에 서있을 수 있도록 훈련을 해야 한다. 신의 놀이 감이 되더라도 자신이 흔들리지 않는 감성을 쌓아야 할 것 같다. 자존심은 부끄러움과는 별개의 개념으로 삶을 토닥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