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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길 Jan 07. 2024

동백(冬柏)꽃


삶을 항해 하면서 맑은 날이 있어 아주 순조롭게 여행을 할 수 있는 날은 누구나 말은 하지 않을지라도 행복과 함께 있음을 감사하며, 또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가득하다. 

우리의 바람과는 달리 맑은 날 출발하여 조금 항해하다보면, 구름이 끼고, 세찬 바람이 불고 폭풍도 몰아쳐 온다. 그나마 봄, 여름, 가을 정도에는 그 파고가 높다할 지라도 견디며 피해가기 위하여 노력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겨울에 한파와 폭풍을 만나면 상황은 전혀 달라진다. 이때는 무엇을 해도, 어떻게 해도 살아남기가 아주 어렵다. 칼바람, 폭풍, 파도는 더 이상의 전진을 어렵게 할 것이다. 지극히 좋은 운을 타고난 사람이 아니면 그 삶은 그치게 된다. 그래서 삶의 항로에서 꽃다운 꽃도 피워보지 못하게 될 것이다.     


겨울, 특히 우리 삶에 있어서 겨울은 참으로 잔혹하다. 그렇지만 이 겨울을 건너 뛸 수는 없다. 누구나 삶에 있어서 겨울을 만날 수밖에 없다. 누구는 직장을 잃을 수 있고, 부모도 잃을 수 있으며, 내가 살면서 집을 마련하기 위하여 꼼꼼히 모아 두었던 재산이 사기를 당하거나 다른 일로 잃어버렸을 때, 아기가 잘 못되었을 때 등등, 이 혹한기에는 상상조차하기 힘든 일들이 일어난다.


 이 때 우리는 이런 혹한기에도 꽃이 필 날은  손꼽아 기다릴 수밖에 없다, 사람은 자연 앞에서 아주 미미한 존재여서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생각과 이 일들의 아픔이 빨리 끝날 수 있기를 기도할 것이다, 즉, 한파 속에서도 꽃을 피워야하는 생각을 할 것이다.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있다면, 나의 삶의 한파 한가운데에서도 꽃을 피울 수 있다면 무얼 더 바라겠는가.     


이 한파 속에서도 인내하며 어두운 상황을 이겨내는 꽃이 있으니 이를 동백꽃이라 한다. 동백은 그대로 기다림의 뜻을 가지고 있으며, 다른 꽃들은 벌과 나비에 의하여 수정되어 열매를 맺으나, 혹독한 겨울에는 곤충들이 없어 새가 수정을 한다. 이렇게 새들에 의하여 수정되는 꽃을 조매화라고 한다. 특히 동백은 동박새가 꿀을 빨며 수정을 한다.     


동백꽃은 흰색, 분홍색, 붉은 꽃을 피운다. 대부분은 붉은 색의 꽃을 피운다. 그래서 애타는 사랑을 나타내는, 기다리다 지치면 자신을 모두 소멸하여, 임금을 기다리다 쓰러져간 능소화와 같이, 꽃이 툭하고 떨어진다. 그 속에는 애잔한 기다림과 님에 대한 굳건한 믿음이 스며들어 있어 변절보다는 자신의 삶을 영원한 기다림으로 이어갈 삶을 맹세한다.      


기다림이란 셀 수도 없는 많은 기다림이 있지만, 다른 것은 접어두고라도 몇 가지만 챙겨보면, 남녀 간의 사랑이 담긴 기다림, 지금보다 나아지려는 혼신의 힘을 다하는 한 서린 기다림과, 씨앗을 심은 뒤 꽃이 피기를 기다리는 성장 통을 가지는 기다림으로 이는 씨앗을 심은 뒤의 희망을 나타내는 기다림이며, 일어나지 않은 미래에 자신이 설 자리를 기다리는 것이다. 


남녀 간의 사랑이 혹한 겨울에 이루어지려면 서로 인내하며 기다리는 것이다. 기다리면 이해와 배려가 생기고 분명히 돌아올 텐데 하며 자신의 성장을 위하여 많은 노력을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한 발짝도 벗어 날 수 없는 어머님의 한을 챙겨보아야 한다. 그렇게 멀지 않은 옛날, 아니, 지금 우리 주위에서 한을 숨으로 삼키며 동백꽃이 피는 날을 기다리는 어머님들이다. 한 알의 씨앗으로 생을 시작하여 자신의 안위를 바람 속에 재워 두고 해가 뜨나 달이 뜨나 한곳에서 자식들의 삶을 뼈 속에 심어 고된 한파를 견뎌오면서, 어떤 기다림으로 생명보다도 붉은 석양을 맞이하며 기도 하였을까, 그래도 아쉬워 밤이면 별이 되어 자식들의 밤길을 지키는 어머님의 눈길이, 발자욱을 내며 걸어가는 눈길 위에서 자신을 밝고라도 일어서 갔으면하는 긴 마음을 우리는 잠시라도 읽을 수 있으련가. 


흰 눈속에 싸이고 쌓여 있는 동백꽃의 굳건한 모습을 보면, 대지의 신을 왜 엄마가 맡고 있을까하는 것도, 자식을 보살피려는 엄마의 뜻이 아닐까라고도 생각한다.      


동백꽃의 한은 섬으로부터 불어온다. 이 꽃은 사람들과 같이 살아 왔다기보다는 기다림에 익숙한 꽃이다. 동백은 유독 섬에 자생하며 임을 기다려 왔다. 비바람 부는 혹한 날에도, 섬이 흔들릴 격동의 계절에도 섬에서 온갖 한파를 몸으로 맞으며 기다려 왔다.     


어쩌면 동백은 태고 때부터 기다림을 명받고 아무도 없는 섬에서 살아 온 것 같다. 그래서 붉은 꽃으로 애타는 사랑을 표현해 왔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한(恨)은 서울에 이르는, 어쩌면 삶이 서울로 가면 한을 극복할 수 있는 것으로 보였나 보다. 출발은 제주도의 카멜리아 힐에서 여수의 오동도, 통영의 장사도, 거제의 지심도, 부산 해운대의 동백섬, 그리고 내륙 지방으로 존재한다. 많은 님들은 이렇게 뭍으로 떠나면서 그리움만 섬에 심어두고 떠난 모양이다. 

누구라도 동백의 정신이 자신을 살리며, 발전하는데 많은 기여를 했을 것이다. 또한 동백은 녹차와 같은 과에 속하여, 그 학명이 -Camellia japonica(동백),  Camellia sinensis(녹차)- 녹차도 사람의 관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듯이, 동백도 사람과는 아주 동떨어지게 지낸 꽃은 아닐 것 같다. 우리 할머니 젊은 시절에 동백기름으로 곱게 머리 빗으시고 비녀를 꽂는 모습은 그렇게 고울 수가 없었다. 햇빛을 받으면 빛나는 머리카락에 빗질의 자취가 숨어 있었다.   


  

                                            [동백-그 애타는 사랑과 기다림]


그리고 내가 살고 있는 여수에서는 “여순 사건”의 한을 동백이 짊어졌다. “동백, 사람꽃 피우다“라는 슬로건으로 기념하는 것을 보면 동백의 한이 얼마나 붉을지도 알 수 있다.     


그렇게 동백은 우리 주위에 많다. 단지 사람들이 관심을 갖지 않기 때문에 그저 그런 꽃이 있다는 정도로 지나가는 것 같다.     


동백(冬柏)은 말 그대로 겨울 꽃이다. 사람들은 겨울을 싫어할지라도 겨울을 겪고 나면 자신들이 훨씬 성장하여 있는 모습을  인지 할 수 있을 것이다.     


동백은 겉으로 드러나는 것 보다 속에 감추고 있는 마음이 우리를 더 닮아 있다.     


힘들 때 동백을 보면 겉으로는 겨울이지만 속에는 따스하고도 정열적인 붉은 꽃을 피워 자신을 훨씬 성숙하게 만들어 줄 것으로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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