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가리 한 마리 빈 돛 위에 졸고 있고
물길은 긴 내 따라 초점없이 흐르는데
저녁 놀 담은 이 가슴 노을빛에 젖어드네
버들강아지 아슬아슬 눈을 뜨는 냇가에
얼음이 울부짖어 새봄을 부르는데
언 손등 갈라터진 피, 그 옛날 추억인데
가마솥 끓인 여물로 묶은 때 벗겨내고
어미 소 따순 콧김 송아지 숨결 부드럽고
고운 정 흐르는 소리 이 마음 밝아오네
버드나무 뽀얀 연기 저녁을 불러올 제
밤하늘 기적 소리, 별들을 깨우는데
날 새면 정든 벌 떠나 도회로 가야 하네
울 엄마 손바닥에 맺혔던 피못 자욱
얼른얼른 베어내고 엄마 얼굴 펼랫더니
빗나간 덧없는 세월 이 통곡 어이할꼬
산다는 게 무어라고, 첩첩산중 아픈 길을
똬리 하나 걷어차면 태산이 틀어막고
숨 한번 돌려 쉬어도 빠져나올 틈 없었네
가는 세월 등에 타고 회초리로 다그치니
푸른 초록 어디 가고 누런 낙엽 찾아왔네
그 누가 세월을 보았던가, 억새 산을 보았던가
아니오 그 세월 내 손바닥에 있더이다
펼치면 달아날까 피로 물든 기억들이
언젠가 어여쁜 석양 찾아들면 미련 없이 풀려했오
그래도 돌아보면 무엇 하나 잡힐까나
빈 손엔 찬 바람만, 마음엔 흰구름만
이 보소 뭇사람들아, 나 있어야 세월이 보이지
지금도 늦지 않았네, 나를 찾아 보시게나
욕심내는 것 아니오 나를 낮추어 보시자고
그러다 세월 보이거든 고마웠다, 깊은 인사 어떨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