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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길 Jun 29. 2022

흙 묻은 울 엄마 치마

나의 연구실은 5층 건물의 5층에 자리 잡고 있다. 오전에는 등 뒤에서 햇빛이 들어오고, 오후엔 나를 버리고 님 찾아 가버린다. 이 건물의 측면 입구에 엘리베이터가 붙어 있고 햇빛을 바로 보지 못하는, 엘리베이터의 왼쪽에 동백꽃과 자목련이 서 있다.     

언제부턴가 목련 속에 어머님이 보여, 그 뒤로는 항상 봄이 되면, 어디에 있는 목련이 피었을까 하고 주위를 살펴보고, 목련화가 핀 곳을 소문으로 듣고 가서 사진을 찍어 오곤 했다. 올해는 캠퍼스 내에서도 목련이 있는 곳을 챙겨보고, 매일 인사하듯 들러 꽃이 피기를 기다려 왔다.       

               

                                               [어머니의 봄(제주), 2019]


참으로도 정신없이, 꼭 다니는 길로만 출퇴근하니깐 그 근처의 풍경을 쉽게 지나쳐 버리는 경우가 많은데 내 기억에는 목련이 피어 있는 곳이 없어, 그날따라 다른 길로 가고 싶었다. 참으로 고정관념은 나를 또 이렇게 교육을 했다. 


내가 다니는 길의 반대 방향으로 조금 갔을 때, 하얀 목련이 그리도 예쁘게, 큰 키에 봄바람에 살랑거리고 있었다. 기뻤다기보다는 바보 같은 삶에 화가 나기도 한다. 꼭 한 길밖에 모르고 살아온 것이 이런 곳에도 적용이 되는구나 하는 푸념이 밀려왔다. 도로변이라 정차를 할 수 없어 다시 집으로 가 차를 세워두고 망원 렌즈를 장착한 뒤 걸어서 갔다.  


주변의 겹동백이 저렇게 예쁜가 하는 것을 처음 보았고, 알았다. 어쩌면 장미와도 같은 꽃이 진한 녹색의 잎사귀 틈에 총총 피어 있는 모습이 그렇게 마음을 사로잡았다. 녹색과 빨간색은 서로 보색 관계이어서 더 눈에 띄게 나타났을 것 같다. 


그렇지, 항상 반대 측면은 보지도 못하고 달려온 사람들에겐 반대쪽이 그렇게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것도 이제야 알았다.  

   

하얀 목련은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곱디곱게도, 꼭 하늘에 닿아 있어야 고울 수 있다고 말이라도 하듯이 웃고 있다. 겉으로 볼 땐 같은 꽃이라 생각이 들었는데 파인더 안에 들어 있는 모습은 다 각각 다른 모습이었다. 웃고 있으면서도 마음을 찡하게 하는 꽃잎, 어디 아픈 듯 하소연하는 꽃잎, 임 떠난 뒤를 쳐다보며 울 듯 말 듯 한 모습, 자신의 향에 취해 눈물짓는 모습, 포근히 안아 줄 듯 꽃잎을 펴고 있는 모습, 또 지금 가면 언제 올까 하는 아쉬움으로 덮인 모습, 울 엄마 나를 보며 반기는 모습들을 하고 있어 잠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시각들이었다. 눈부시게도 역광으로 꽃을 보니 꼭 유토피아 속의 행복을 느끼는 것 같았고, 빛이 꽃잎 사이로 비쳐 들어올 때는 역광 속의 찬란한 빛이 그려내는 꽃잎의 모습은 가히 내가 표현할 수 있는 수준을 저만치 앞서가 있었다.    

   

사물을 볼 때는 역시, 순광과 역광을 보아야만 진정하고도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우리의 삶과도 꼭 같은 공식을 제공한다. 공식은 단순한데 우리가 풀지 않으려는 고정관념 때문에 곁에 있는 소중한 것들을 그냥 흘려버리고 산다.     


여전히 엘리베이터 옆의 목련은 잎을 열려고 생각하지도 않고 있었다. 참으로 기다린다는 것은 그 대상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것도 이번에 배운 것 중의 하나이다. 기다리는 것은 그 대상이 무엇이든 자신의 자유이나, 그 대상이 허락하지 않는다면 기다림은 지겨움으로 바뀔 수 있다는 말이 된다. 기약 없는 기다림, 말로써는 가능할 것 같은데 실제로 기약 없이 기다려 보면 그 아픔은 헤아릴 수 없다. 꽃이 피기를 기다리는 것은 참 아름다운데, 그 마음을 전할 수 없음이 가슴 아프고 아린다. 

   

내가 기다리던 자목련은 그 위치가 음지인 까닭인지, 하얀 목련이 피고 난 뒤에도 무슨 기다림이 그렇게 큰지 마음을 열 생각을 도저히 하지 않고 있었다. 캠퍼스의 하얀 목련이 핀지 일주일이 지났는데도 마음을 열지 않는 것을 보면, 평소에 마음을 주지 못한 것이 그렇게 마음을 졸여왔다. 이제 보초 서기가 한 달 정도 지났다. 봉오리가 터지기 시작하고도, 꽤 긴 시간을 기다리게 만들더니, 내일은 활짝 피겠다고 기쁜 마음을 정한 뒤 고맙고 반갑다고 머리 숙여 인사를 했다.      


그날 밤, 그렇게도, 역사에도 없었던 바람이, 간판을 떨어뜨리더니, 어쩔꼬 내 사랑, 우리 엄마, 흙 묻은 울 엄마 치마가 갈래갈래 찢어져 그 영혼조차 맞을 길 없어져 버렸다.

울 엄마같이, 내일이면 한번 떵떵거리며 예쁜 꽃을 피울 수 있을 텐데, 그 고운 날을 앞두고, 울고 간 울 엄마, 지금은 온 세상을 겪으며, 사는 게 그렇지 뭐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울 엄마, 한 번도 떵떵거리며 살지는 못했지만, 떠나가신 뒤 그 마음이 오롯이 남아 지금의 나를 만들어 주셨으니 그렇게 슬퍼할 일만은 아니라고 스스로 위로는 해보지만, 홍수가 나서 모든 것을 물 위에 떠내려 버리고 난 후의 벌근 눈으로 안아주던 그 눈동자만큼은 그렇게도 애달파 지금도 내 눈이 빠질 것 같다.      


찢어진 자목련, 오히려 내가 맑게 웃으며 맞으려는데, 말라붙은 내 마음에도 언젠가 흘려보았던 눈물이 속으로 타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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