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물길 Jul 31. 2022

세뇌(洗腦)

사람은 삶을 영위하면서 누구나 방아쇠를 가지고 있고, 스스로의 판단에서 격발을 할 수 있다. 격발 후의 심정이 밖으로 드러나 고함을 지르던가, 무언가 잘못되었다, 억울하다는 쪽으로 발산하는 경우와, 그 격발로 인하여 자기의 생각이 너무 옳았다는 생각으로 슬쩍 미소를 띠며 속으로 가라앉는 경우가 있다.     


격발은 꼭 상대방을 해치기 위해서 하는 것은 아니다. 무언가 중요한 시기가 왔을 때, 그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하여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던져 격발하여 그 기회를 잡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격발은 자신이 제시하거나 무의식 속에 잠겨 있는 그 바람을 잡는 것이다. 특히, 사랑에 있어서는 이러한 격발이 자신을 자신답게 일으켜 세우는 역할을 한다. 딱 맞은 시간에 격발을 함으로써 여태껏 이루지 못했던 갈등을 소거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자기가 원하고 있는 것을, 또는 자신이 하고 싶으나 행하지 못하는 일을 다른 사람이 행하여 주고 있을 때, 은근히 기분 좋고 마음이 열리는 경우가 있다. 이때에는 자신이 격발하지 않아도 생각하는 바가 이루어지고 있는 기쁨으로 다가온다. 울고 싶을 때 뺨을 때려 주는 것과 같은 심리이지 싶다. 그런데, 참 묘하게도 그렇게 시기가 잘 맞는다. 울고 싶을 때마다 뺨을 때려 주는 것에, 스스로가 너무도 감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왜 이렇게 세상이 나만을 생각하고 돌아가고 있을까 하는, 요술 램프의 지니처럼 어떻게 생각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자기 자신의 개발이나 자아를 찾아서 신중하게 격발의 시간을 찾을 필요도 없이 너무도 스스로의 행복에 빠져간다.


                                                 [벗어나기 어려운 곳(여수), 2021]


필요한 때에 필요한 일들이 일어나기 때문에 스스로는 이런 곳으로부터 빠져나올 아무런 이유가 없어진다. 누구에게도 자신에게 필요한 일들이 주위의 관심으로 돌아가고, 주위는 이 사람을 위해 모든 것을 아끼지 않는 것이다. 차츰 우리의 편도체도 타인들과 싸움할 필요도 없이 스스로 자신을 지키는데 힘들이지 않고 안주하게 된다.


곁에서 보면 무엇엔가 흘린 것이 분명해 보이는데, 자신은 너무도 편안하여 다른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이고 저 사람들은 왜 저렇게 살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때에는 스스로가 이 상태에서 빠져나오는 것을 거부하게 되고, 자신이 여태껏 들어오고 행동한 것들이 스스로의 몸에 배어있기 때문에 빠져나오질 못하게 된다.    

 

이성은 감성의 노예이기 때문에 같은 것을 여러 번 수용하게 되면 이성도 그것이 옳은 것으로 판단하게 되어 새로운 이성을 찾기는 어려워진다. 특히, 사람들이 위험하게 되는 것은 듣고 싶은 것만 듣고 싶고,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싶고, 믿고 싶은 것만 믿고 싶은 생각이 강하기 때문에 자신의 성향과 다른 경우에는 거부감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태에서는 서로의 의견을 개진하기에는 무척 어렵고 너무 틀어져 있어서 각도를 조정할 수 없다. ‘너 왜 그러니’라고 이야기하면 상대방은 자리를 박차고 ‘너나 잘해라, 너는 왜 그 모양이야’ 하고 도저히 서로의 말이 통하지 못한다.  

   

어디에서부터 해결할 수 있을까? 당사자끼리는 절대 해결할 수 없다. 부모와 자식 간의 일이라면 서로의 인연을 끊거나, 가출하거나, 생겨서는 안 될 일들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상대의 뜻을 깊이 이해하면서, 전문가와 상담하는 것이 최고의 해결책이며, 당사자 두 사람으로는 절대로 해결할 수가 없다.     


생각지도 않았던 일들이 주위 사람들 덕분에 너무 잘 풀리고, 그 사람들이 너무도 좋을 때, 그런 시간이 일정 기간 동안만 일어날 때, 이 길이 맞는 길인가를 한 번 정도는 생각해 보아야 한다. 또 사람들의 생각에 ‘이 길이 아니면 나중에 안 가면 되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스스로의 생각이지, 그동안 가랑비에 옷이 젖는 줄도 모르게 스며들었기 때문에 박차고 나오는 일은 스스로는 불가능하다. 


     

세뇌는 생명도 아깝지 않음을 이 세상은 말하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 술, 주인을 섬기지 않고 세상을 섬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