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은 인간의 됨됨이를 가르치기 위하여 이 땅에 태어났다. 이에 사람들은 자기의 그릇에 맞게 술과 인연을 맺고 나름의 소리를 지르며 살아왔을 것이다. 술이 동물에서 사람으로 전파된 뒤부터 역사는 거의 춤을 추다시피 변화해왔다. 이것은 술을 자신의 발전으로 닦기 위한 것은 아니었고 현재 우리가 말하는 객기 위주로 술을 대했기 때문이다.
술은 인류의 역사에 거대한 물결을 가져왔다. 술은 그 목적과 달리 기분을 좋게 한다는 뜻으로 전쟁에 관여하게 된다. 전쟁에서 이기게 되면 전쟁의 승리에 대한 보답으로 술이 하사품으로 주어지고 그간의 노력을 술로 무마하려고 하는 통치자들의 뜻이 술의 의미를 일그러지게 만들어 왔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술은 그 역사를 변천시켜왔으며, 중국 은나라 주왕은 애첩 달기를 기쁘게 해 주려고 연못에 술을 채우고 나무에는 고기를 매달아 놓고 수시로 잔치를 벌였다. 이는 주지육림으로 알려져 있으며, 결국 술이 역사를 변화시키고야 만다. 신라 경애왕은 927년 포석정에서 술잔치를 벌이느라 견훤이 이끄는 후백제 군대가 경주를 침략한 사실을 눈치채지 못하다가 최후를 맞은 경우도 우리는 알고 있다.
나폴레옹은 전 유럽을 상대로 전쟁을 할 때에는 술을 먹여 전쟁했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이는 공포를 이기기 위한 전술로 생각되고, 또한 질병이 퍼지는 것을 예방하려는 뜻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하사품으로 내린 술 맛은 아주 맛이 없고 텁텁하여 부하들은 장교들만 맛있는 술을 마시는 것으로 생각하여 소동이 일어나기도 한다. 이 이후에 프랑스의 세계적인 미생물학자인 파스퇴르는 술이 왜 떫고 맛이 없는가를 밝혀내었다. 그때만 하더라도 모든 생물은 산소가 있어야 살 수 있다고 생각하였고, 술을 제조할 때도 공기가 있는 상황에서 발효를 시행하였다. 현대적인 관점에서 보면 막걸리가 식초로 되는 것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파스퇴르는 공기를 싫어하는 세균이 있다는 것을 밝혔고, 그중에 알코올 발효에 관여하는 효모도 공기를 싫어한다는 것을 알아내어, 혐기성 발효를 함으로써 현재의 술맛으로 탄생하게 된다.
역사는 주로 밤에 바뀌고 그 자리에는 항상 술이 있었던 것을 우리의 예를 보아도 알 수 있다. 박정희 정권의 말에도 술이 있었고 이 술자리로 인하여 역사가 바뀌는 것을 실감하였다.
전 세계의 어느 경우에서 보더라도 술은 역사를 진화시켜 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만큼 술은 주인을 섬기지 않고 세상을 섬긴다. 이것은 비단 세계 역사의 변화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작은 사회인 가정에서도 같은 일들은 일어난다. 모든 것은 자기 일과 연계되어 있고 자기 행동에 의하여 자신의 역사가 바뀌는 것들도 여기에 속한다.
술은 물성을 존중해야 한다. 술은 액체이기 때문에 마시면 들어가는 특성이 있다. 술이 고체라서 깨어 씹어 먹는다면 또, 사람들은 다른 방향을 택할지도 모르겠다. 술은 물을 바탕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 고향의 느낌으로 잘 거부하지 못한다는 의미도 들어 있다. 술을 마시는 데는 술에 대한 예의, 즉 주도를 지켜야 한다. 술은 물이라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즉 직위가 높은 곳으로부터 낮은 곳으로 흐르게 되어있다. 이것을 거슬러 올라가려면 일이 생기게 된다.
[술, 주인을 섬기지 않고 세상을 섬긴다(뉴욕), 2003]
술은 같은 의미로 존중을 명한다. 술자리는 계급장을 떼고 마시는 자리라고 하면 술의 의미는 달라질 것이다. 고여 있는 물, 즉 같은 위치에 있는 사람, 친구들은 아래위가 없기 때문에 편하게 마실 수 있는 자리가 된다. 그러나 존중의 의미가 퇴색되고 장난이 시작되면 벗을 잃어버리기는 불문가지이다. 술은 예(禮)로 시작되어야 하기 때문에 자신보다 위에 있는 사람, 즉, 할아버지, 아버지, 사장님, 부장 등의 윗선이 존재하면 반드시 예의를 갖추는 것이 술의 물성이라 벗어나면 술의 의미를 잃어버리게 된다.
술의 물성 중의 하나는 대해주는 것만큼 돌아오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함께 갈 수 있는 길을 택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다르게 말하면 성질을 죽일 필요가 있다는 말이 된다. 술은 절대로 혼자 움직이지는 않는다. 그 내용에는 마음이 들어 있고, 생각이 들어 있고, 믿음이 들어 있기 때문에 술을 마신다는 경우에는 반드시 그 물성을 존중해 주어야 한다.
우리나라 대표적인 술을 사랑한 사람으로는 “명정 40년”의 저자 수주 변 영로를 들 수 있다. 이 수주의 곁에는 당대의 우리나라 문인, 정치가, 수필가 등 많은 사람들이 함께하였다.
공초 이 상순, 성재 이 관구, 횡보 염 상섭, 고하 송 진우, 홍 난파, 황 석우, 담재 정 재원, 인촌 김 성수, 심농 김 찬영, 최 린, 박 승빈, 하몽 이 상협, 이 영학, 금계 박 찬희, 동암 서 상일, 남궁 벽, 김 준영, 윤 치영, 장 택상, 반산자 장 석태 등 당시에는 우리나라에서 큰일들을 하는 사람이었는데 수주의 음주 변은 이러했다.
“하여간 나는 이유를 불계(不計)하고 술잔만 대하면 자연히 수미(愁眉: 근심에 잠겨 찌푸린 눈썹)가 피어지는 것이다. 나는 주주야야(晝晝夜夜) 술만 있으면 마시는데, 책임상 내가 맡은 사무를 전폐하고 마시기커녕, 보기만 하여도 마시기 전부터도 열락(悅樂: 기뻐하고 즐거워함)하여지도록 ---때로는 술의 양이 지나치면 도리어 “우리의 태양”인 술에게 “대광(貸光)‘을 하게끔 되었다”
천하의 술꾼 변 영로도 자신의 사무는 꼭 지켰다는 것을 보아도 그는 술의 물성을 지키기 위하여 부단한 노력을 한 것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