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이란 새로운 벽을 말하는지도 모르겠다. 날이 바뀌어 새날이 되면 이 벽을 넘어야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기에 새벽이라는 말을 쓰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새로운 벽을 넘는다는 것은 어느 정도는 귀찮은 일임은 틀림없다. 한참 잠이 맛있을 때이고, 뒤치락거리기 좋은 시간이며, 그렇다고 따스한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기에는 아쉬움이 가득한 시간이다. 등이 딱 달라붙은 침대에서 등을 떼어 내기도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새벽 5:30분에 여지없이 알람이 울고 더 누워있을까, 뛰쳐나갈까 하는 갈등 속에 그래도 일어나야지 하며 눈을 쓱 비비고 거실로 나가 찬 바닥에 누워 다리와 윗몸을 “V”자로 만들어 1분간 버티기를 여섯 번 정도 하고 나면 번민은 사라지고 투덜거림 없이 일어설 수 있다.
요즈음은 코로나 때문에 헬스장에 갈 수 없어 조깅으로 심신을 달래고 있다. 앞이 잘 보이지 않는 길을 기억이나 아파트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에 의존하여 십여 분쯤 달리다 보면 길가의 가로수가 웃는 모습이 보이고, 숨이 차서 헉헉거리는 장단이 추위를 쓱쓱 밀어내고 있다.
세상에는 새로운 벽을 깨고 나서는 사람이, 부지런한 사람들이, 자신과의 싸움에서 지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그래도 많다는 생각이 든다. 반대쪽에서 달려오는 사람들을 보고 꺼벅 인사를 하면서 지나가다 보면 나보다 더 앞서가는 사람들이 참 많다.
6.5 Km 거리의 절반을 넘고 보면 동쪽은 새칩게도 발그스레한 신부의 얼굴처럼 다가오다가,이윽고 달걀의 껍데기를 벗고 나오는 햇병아리처럼, 어제와 다른 밝은 얼굴이 반가이 미소 지으며 다가온다. 오늘은 또 다른 껍데기를 깨어야지 하는 생각으로 길을 다그쳐 본다.
사람과 자연의 다른 것이 있다면, 사람은 조금이라도 자신의 핑계로 투덜거리거나, 다른 빗나가는 생각으로 조금은 자유스럽게 자신을 위로할 수 있으나, 자연은 그러한 여유 없이 자신의 길을 가는 것이다. 자연에 허용된 자유는 얼마나 될까, 그 자유를 누리면 자연의 질서는 유지되어 갈 수 있을까, 자신을 지키는 그 노력으로 인간이 살아가는데도 인간은 그 고마움을 알기나 할까.
우리는 자유가 형벌이라는 것을 잘 모르고 산다. 그냥 자유는 자유롭다고만 생각할지 모른다. 자유는 간단하지 않다. 그 자유를 위해서는 목숨을 바쳐 지켜야 하며, 자신의 자유에 책임을 다하지 못하면 그 누구도 살아남기 힘들다. 그래서 자유는 겁이 나는 것이다.
찬바람을 가르며 피부에 와 닿는 것은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보다는 얼마나 많은 주위에 감사하며 살아야 하는가를 알게 해 준다. 이제 모든 사물은 태양의 빛 아래에서 자기 뜻대로 움직이고 있다. 나를 가두었던 어둠이 가시어지고, 태양이 솟아 나의 위치를 알려주며, 마스크 속의 뜨거운 공기가 폐부로 들어가 나를 더욱 가동하고 있다.
이제 저 오르막만 오르면 출발점에 다다를 수 있다. 태양의 힘이 뒤에서 나의 어깨를 밀어주고, 열을 받은 나의 엔진은 더욱 씩씩거리고 있으며, 설정해둔 스톱워치는 33분 20초를 가리키고 있다. 이것이 클라이맥스가 될 것이다. 더없이 숨차지만, 더없이 가벼워진다.
결승점까지의 엔진은 터져버릴 것 같기도 하다가, 도착 후엔 온몸에 카타르시스가 울려 퍼지고, 숨을 고르면서 이렇게 새로운 벽을 허물고 하루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