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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길 Aug 04. 2022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 태어난 생명

악기란 애초에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 태어난 생명이다. 이 악기들이 숨을 쉼으로써 그 자극이 감정이 있는 생명에 전달되어 감정을 조절하는, 자신의 감정 제어가 되지 않을 때도 악기의 숨소리는 늘 우리의 마음을 정화해 준다.   

  

또한, 악기가 내는 음향을 느끼며 감정을 조절하고 희로애락을 함께 할 수도 있지만 직접 연주해 봄으로써 그 안타까운 감정들을 더 가까이에서 접할 수 있다. 원래 사람은 감정에 의해 지배되는 동물이다. 그래서 스스로 감정을 억제할 수 없는 경우도 생기고, 너무 억제되어 괴로움에 지배당하기도 한다.    

  

악기의 기원은 의사소통의 한 방법이었을 것이다. 급한 일이 있으면 모이는 신호로, 음정이 없이 높낮이만으로 전달되는 투박한 소리였을 것이다. 이것을 감정에 따라 운용 방법이 달라졌을 것이고, 만들어져 나오는 소리가 빠르고 느림에 따라 몸이 움직여지고 여기에다 감정의 소리가 함께하게 되어 춤으로 노래로 발전되면서 인류의 감정은 부풀어지고 집단 사회의 유대도 강화되어갔을 것이다. 

    

그래서 악기의 소리는 오히려 인간에게 생명을 불어넣기 시작하여, 사람의 마음을 다잡게 하기도 하고, 전쟁의 신호로도 사용되기도 해왔다. 웅장한 나팔 소리는 진군을 의미하며, 전쟁터에서의 나팔 소리는 공격을 의미하는 소리로 바뀌어 역사를 다르게 흐르게 하기도 하였다. 지금이나 옛날이나 여전히 악기들은 감정에 호소하고 마음을 전달하는 데는 최고의 수단으로 생각된다.  

   

또한, 승리의 대가로써도 악기가 사용되고, 동료의 애잔한 죽음에도 악기가 사용되고 있다. 어떤 때에는 한마디 말보다는 한 곡조의 울림이 보다 큰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이것은 사람들이 음악을 좋아해서라기보다는 음악이 사람의 정서에 녹아들어 사람들과 함께 하는 힘을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의 특성에 따라 악기의 종류는 다 다를 수는 있으며, 그것은 어떤 악기의 울림이 자신의 울림과 공명할지에 달려 있다. 그래서 현대에 사는 우리는 어떤 악기일지라도 한 가지 종류는 연주할 수 있는 여유를 가졌으면 한다.     


때로는 현대 생활의 복잡함에, 직장 생활의 스트레스로부터 자신의 감정을 억제할 수 없을 때, 스스로 만들어 내는 악기의 울림에 젖어 볼 필요가 있다. 이것은 잘하고 못하고가 아니며 그 울림이 자신의 심장에 닿았을 때 흐느끼기보다는 환희로 다가올 수 있기 때문이다.

     

나도 컴퓨터 앞에서 지새우는 날도 많았고, 돌아가지 않는 머리로 새로운 이론을 받아들여야 하고, 이해해야 하며, 다른 연구자가 생각하지도 못하는 새로운 아이디어와 방법으로 헤쳐 나가야 하는 길이 스트레스를 넘어 생활을 유지하지 못할 정도에 이르게 되었다. 나는 왜 사는가를 생각해 보았다. 결국, 내가 살아야 가정이 산다는 것이 먼저 다가왔고, 내가 연구를 잘해서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아야겠다는 것은 한참 후에 나의 뇌리에 다가왔다.


그래서 색소폰을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 대하는 악기라 생소하고 모를 수밖에 없고, 이것을 하다가는 더 큰 스트레스에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다 내가 입김을 넣었을 때 반응하는 심장이 떨리는 소리가 그렇게 좋았다. 그래서 미련하게도 조금이라도 빨리 느껴보기 위해서 무리한 연습을 한다.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고 뼈마디가 아파 소리를 낼 수 없는 지경이었을 때 마비된 부분을 바늘로 찔러 피를 뽑고, 사우나에 가서 마사지하고 냉탕에 들어가 손을 비비어 손가락이 움직이게 될 수 있으면 또 연습했다. “학교 종이 땡땡땡”이 어설프게 되고, “나리 개나리”가 삐끗거리며 타고 나올 때, 이것이 나의 마음의 소리인가 하며 가슴을 두들겨 보았다. 


[마음의 소리(여수), 2019]


지금은, 망치로 치던 심장 소리가 부드러워지기 시작했고, 그 심장을 치는 소리가 듣기 좋아 틈이 날 때면 색소폰을 연주하러 간다. 정말로 심장을 울리고 나를 주저앉게 하는 소리가 어떤 소린가를 누구나 스스로 해볼 수 있었으면 한다. 


답답할 때 신나게 연주하고 싶으면 반음이 없는 우리나라 민요를, 조금은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히고 싶을 때는 마음속 깊이 울릴 수 있는 반음이 많이 들어 있는 팝송이나 대중가요를 연주하면 감정을 추스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나는 나 자신을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 어지럽게 흔들리며 사는 것보다 자신의 마음을 챙겨 줄 수 있는 길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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