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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길 Sep 17. 2022

통학 열차

우리의 한을 기적 소리로 달래 온 증기기관차는 나의 중, 고등학교 시절에 친구가 되었다. 진해선(진해-창원-마산)은 나를 용원역으로 부터 마산까지 무등 태워 주는 의리 있는 친구였으며, 기적 소리는 조그만 시골을 흔들어 깨우는 정겨운 자명종이기도 하였다.   

   

이때의 대부분 학생의 춘하복은 흰색이었고, 이 증기 기관차를 만나게 되면, 금방 새카매져서 매일 빨아 입지 않으면 창피할 정도였다. 특히나, 여학생들의 옷깃은 분가루를 먹여 빳빳이 다림질하여 증기 기관차를 만나기 전에는 그렇게 설렐 수가 없었다. 하얀 윗저고리에 까만 치마, 스타킹에 단발머리를 한 여학생들은 그냥 상냥했고 예뻤으며, 차 시간이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매일 만날 수밖에 없는 사이였다.


아침의 통학 열차는 비단 우리 역에서 타는 학생들뿐만 아니라 출발역에서 우리 역을 거쳐 종착역인 마산까지 가기 때문에 대부분의 선후배는 잘 알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었다.

그래서 참 아름답고도 슬픈 이야기들이 많았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일반인들과 같이 타고 다녔기 때문에 같은 역에서 타는 학생이 누구 집, 몇 째라는 것도 훤히 알 수 있는 일이라서, 서로 마음만 조이고 지났던 일이 많았다.     


                                                    [통학열차(물금), 1976] 


한 여학생이 누구를 좋아하더라 하면 말이 떨어지게 무섭게 온 사람들이 다 알게 되어 부모님의 손아귀를 벗어나자 못하여 학교를 그만두게 되는 일도 허다했다. 어쩌면 말은 없어도 매일 같은 칸에 타는 것 보면 서로의 묵시적인 감정 교환이 있었거나, ‘거기에 가면 그 학생을 만날 것이다’라는 기대감 속에 그 칸에 타게 되는 것이다.


그때만 해도 교육의 평준화가 되지 않아서 그 지방에서 알아주는 중. 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적잖은 고통(?)이 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기차에 타면 그 비좁은 사람들의 틈을 비집고 목적하는 바의 칸으로 옮겨 간다. 눈으로 훑어보고 그 사람이 거기에 있으면 그냥 마음이 편하고 먼저 내리면 아쉬워하면서도 표현을 잘하지 못했던 시기였다.


아침에 탄 학생들은 저녁에도 같이 탈 수밖에 없는 처지였기에 서로 좋아하는 마음이 생길 수밖에 없었으리라. 혹시라도 기차를 놓치면 그야말로 큰일이 난다. 잘 곳도 없었을 뿐 아니라 전화기도 없던 시절이라 친구의 입으로 통하여 연락이 알려져야 하기 때문에 기차를 놓친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할 바가 아니었다. 그래서 좋아하는 학생이 보이지 않으면 벽걸이의 시계를 쳐다보며 오도록 눈이 빠지게 기다리다가 차가 출발할라치면 차장한테 달려가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하소연하기도 하여 같이 태워 가는 일이 많았다.


서로 상부상조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을 배우게 하는 부분이 되었다. 어쩌다가, 고등학교 다니는 형이 편지를 주면서 저기 여학생에게 갖다주라는 부탁을 받기도 하여 얻어먹기도 하고 소문도 내기도 하여 머리통도 까이기도 하고 참으로 재미있는 일들이 많이 일어났다.


겨울에는 기차의 객실에 조개탄을 때는 난로를 피웠었는데, 앞선 역에서 탄 친구가 다음에 탈 친구와 따스하게 가기 위해서 난로 근처의 자리를 잡아주기도 하고, 가끔씩 누나들과 이야기를 하기도 하면서 마음에 드는 학생이 있으면 얼굴을 붉히면서 은근히 부탁도 하곤 했었다. 난로에 옷을 태운 학생들도 있고 여학생일 경우는 누구 할 것 없이 도움을 주려고 나서곤 했다.    

  

나에게도 그러한 일이 일어났다. 같은 또래의 여학생이 출발역에서 내 앞에 앉았다. 대부분 남학생은 남학생끼리, 여학생은 여학생끼리 자릴 잡고 가는데 이 여학생은 나와 마주 보고 앉았다. 가슴이 쿵 하고 말을 걸어올까 봐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데다, 다른 학생들은 쳐다보고 웃고 있어 붉어지는 얼굴을 감당할 수 없었다. 한마디 말도 못 하고 다음 역이 되자 많은 학생들이 타고 나의 옆 자석에도 앞자리의 여학생의 옆에도 다른 사람이 앉았다. 그리고 말없이 내가 먼저 내리고 그 학생은 다음 역을 향하여 갔다.


다음 날부터는 그 여학생이 보고 싶어졌다. 남학생은 명찰을 달고 다녔지만 여학생은 달고 다니지 않아 이름도 보지 못했다. 하기야 이때는 이름을 알 필요가 없고, 그냥 기차간을 누비며 찾으면 되는 것이었다. 저어기 보였다. 다가가지도 못하고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그렇게 시간이 지나갔다. 그 애도 나를 좋아했는지는 모르지만 내가 찾아가서 먼 거리에서 보이면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보곤 하였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고, 고3 때는 대학 준비하느라 학교 가까운 곳에서 자취를 하여, 증기 기관차와는 멀어졌고, 그 예쁘던 학생도 흘러갔다. 아마도 나보다 나은 서울로 갔을 것이다. 참 바보 같았다. 대학을 간 후 같은 기차를 타고 다녔던 친구에게 물어보았지만 이름조차 몰라서, 내 눈에 최고였던 그 학생은 찾을 수 없었다. 그러하든 멍청함은 지금도 벗어나지 못하고 꿈속에서 증기 기관차의 기적 소리만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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