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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길 Sep 25. 2022

뭐 그리 바뻐~

요즈음 날씨가 참으로 참기도 힘들고 견디기도 힘들고 왕짜증이 많이 난다. 특히 누가 스트레스를 먹이는 것도 아닌데, 몸이 찌뿌둥하고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견뎌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일인데도, 머리를 싸잡고 이건 아니야를 외쳐야 하는 이 마음도 답답하기 이를 데 없다. 우리 선조들은 기다리고 견디는 것에는 이골이 난 듯하다.     


꼭 더운 날이 아니라 추운 날씨에도 전혀 바쁠 것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를 보면 금방이라도 얼어 죽을 것 같은 기세인데도 평안해 보인다. 조금은 외로워 보여서 그렇지, 영 버티지 못할 것은 아닌듯하다. 갓도 마찬가지의 내력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갓끈을 메지 않으면 덜렁거려서 움직이는 데 아주 불편할 것이고, 빨리 움직이지 못할 것이다. 이러한 환경이 사람의 성격을 느긋하게 만들지 않았느냐고 생각된다.


농경사회에서도 소처럼 느긋해야 논, 밭을 갈 수 있었을 것 같다. 소가 말처럼 파닥거리며 빨리 움직이면 전혀 따라갈 수 없어 농사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놈의 소 보소, 급한 것이 전혀 없고, 주인이랑 소랑 그렇게 닮았을 수가 없다. ‘이랴~’ 한마디 하면 이랑 끝까지 가고 한 번  더 ‘이랴~’ 하면 다음 이랑까지는 별말 없어도 간다. 얼마나 친화적으로 살아왔는가를 보면 가히 감탄이 나올 정도이다. 모심기 써레질하면 주인의 발이 질퍽한 논에서 잘 빠지지 않으면 이놈의 소 또 기다려 준다. 정말 목가적인 풍경이다. 소 풀을 먹일 때도 애타게 따라다니지 않는다. 그늘에 앉아 곰방대 물고 흰 연기 쭉 내뿜어내고 있으면 저놈의 소는 군말 없이 풀을 뜯다가 주인이 잠들어 있으면 혼자 느긋하게 집에 돌아와 안주인을 놀라게 하기도 한다.      


무슨 일을 해도 서두르는 기색이 전혀 없는 걸 보면, 참으로 여기가 천국이구나 하는 것도 스스로 느꼈을 만도 하다. 무슨 일이 내키지 않으면 ‘내비둬~’ 하는 말로 집안을 조용하게 만들어버린다. 언제 해도 하면 될 것을 왜 그렇게 죄냐는 말일 것이다. 참으로 낭만적이고 전원적이라. 그래도 집안에서 가장 빨리 움직이는 것이 견공이고 보니 이놈은 귀찮다 할 정도로 식구들을 따라다니며 일을 거들어 주는 걸 보면, 이 집은 견공 때문에 입에 풀칠이라도 하는가 봐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이때는 충청도에서만 ‘돌 내려 가유~’하는 것이 아니라 아마도 전국적으로 그랬을 것 같다. 이것이 여유인지 게으름인지는 굳이 따질 필요가 없을 것 같다. 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고 오늘 하나 내일 하나 그렇게 큰 차이가 나지 않을 것에야 더 서두를 필요가 없지 않겠는가.

또, 논매는 것도 그렇게 박자가 맞다. 얼굴에 볏닢이 항칠을 해도 천천히 천천히 풀을 뽑아 묻어가면서 간다. 빨리 갈라치면, ‘뭐 그리 바뻐~’ 하면 또 진도가 맞아진다. 참으로 평화스러운 농촌이었다.     

이놈의 날씨가 간을 빼먹을 정도로 덥고 땀을 질질 흘려도, 뭐 그러다가 그만두겠지 뭐 하는 여유로 징한 여름을 지내오고 견디어 왔다. 곰방대 연기 나는 것처럼이나 꼬물꼬물 천천히 여유롭게 지내왔다.     


근데 이렇게 느긋하던 세상이 어찌 이렇게 빨리 빨리로 바뀌었는지 이해가 통 되지 않더라고. 그때나 지금이나 소의 발걸음은 변함없는데 왜 이제 사람들이 소를 앞서간다고 난리인지 모르겠단 말이지. 말 그대로 소가 웃을 일이 아닌감? 지금 곰곰이 생각해 봐도 어디서부터 달라졌는지 알 수가 있어야지. 아마도 그놈의 새벽종이 울고 나서부터인가? 느긋하게 잠 좀 더 자볼라치면 그놈의 확성기에 ‘너도나도 일어나 새 아침을 일구세~’ 이럴 때부터인가.     

아버지가 ‘야! 일어나, 돼지죽 주어야지, 여물 끓여야지, 소 먹이러 가야지, 길 넓히러 가야지, 풀베어 퇴비 만들어야지...’ 이틀에 걸쳐서 하던 일들이 하루가 단축되고, 또 반나절이 단축되고, 그것도 기다리지 못하여 빨리 빨리가 나오지 않았겠냐고.


                                                [간 빼어 먹을 태양(싱가포르), 2020]


요즈음의 꾸리무리한 날씨에도 선조 님의 덕을 이어받아 이렇게 궁둥이 꾹 붙이고 앉아서 땀 흘리며 일한다는 그 자체가 지금 우리에게 대물림이 되지 않은가 싶다. 요즈음 날씨 정말 너무 한 것 같다. 비가 오려면 콱 와 버리든지, 아니면 쫙 햇볕을 뿌려서 사람들을 잡아먹든지, 화이고,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것이 신경질만 돋우고 있네. 옛날 사람들은 ‘왜 그려~’ 할 것 같은데 쬐끔 빠른 시대에 살았다고 견딜 수 없다 난리를 치는 이 몸을 보면 참 역사가 이래서 재미있구나 하는 것을 느껴본다. 

    

이런 꾸리 무리한 날이 계속되고, 좋은 말을 하더라도 툭 튀어나올 것만 같은 날, 마음을 다스리기가 쉽지 않다. 차라리 일과가 빨리 끝나면 소주에 고춧가루 타서 확 마셔버리고, 화끈하게 웃통 벗고 달리기나 해볼까. 청명하고 더운 날의 매미 소리는 참으로 노래하는 것으로 들리는데, 이러한 날씨의 매미 소리는 떠날 날이 되어가는 아주 애절한 눈물 소리로 들린다. 


이런 날을 맞으려고 땅속에서 7년을 버텼냐고 한탄하는 소리 같다. 좀 상큼해졌으면 한다. 정말 상큼하다는 말은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고추잠자리가 짝을 지어 유영하다 잠시 쉬러 내려앉은 코스모스의 미소를 보는 것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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