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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색무취 Dec 13. 2022

꿈속의 작은 기억


     꿈을 꾸었다. 나는 과거의 공간과 시간에 갇혀 있었다. 작은 5층 주공 아파트 그리고 오솔길을 따라 걷던 어린 시절의 나. 나무에서 떨어져내린 벌레를 밟으며 뒷골목에 들어서면 생선을 파는 할아버지가 계셨다. 할아버지는 할머니와 자주 싸우셨다. 그 길을 더 걸어 학교로 가면 아버지와 형 이렇게 셋이 함께 야구를 했었던 작은 공터가 있었다. 나는 좀처럼 형이 던지는 공을 칠 수 없어 짜증을 냈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상가에는 한 그릇에 500원 하던, 한 조각의 오뎅과 국물을 늘 챙겨 주시던 떡볶이집이 있었고 바로 옆에는 구수한 냄새가 나는 방앗간과 이불 가게가 있었다. 

    꿈에서 깨고 나서 눈을 뜰 수가 없었다. 다시 한 번만이라도 그 곳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여름에 한국에 다녀왔다. 현재 부모님이 사시는 곳은 다른 동네의 25층 아파트. 더 이상 사람들은 서로 반갑게 인사하지 않는다. 사방으로 둘러싸인 아파트 한가운데에 울타리로 둘러싸진 놀이터에선 자유가 느껴지지 않는다. 아이들은 자유롭게 놀고 있을지 모르나 내 눈은 이미 어른의 눈이 되어 울타리가 마치 감옥처럼 느껴진다. 미국의 학교들을 둘러싸고 있는 철문처럼. 얼른 뛰어가 '너희들은 자유 없이 갇혀 있어' 라고 이야기해주고만 싶으나 어른이 된 나의 마음은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학교 전체를 둘러싼 울타리.     이미지 출처: https://campuslifesecurity.com/)


     친구들은 이미 떠나고 없다. 지금 만나면 다시 친구가 되기도 어려울 것이다. 몇몇은 인생이 풀리지 않아 조용히 자취를 감췄다. 몇몇은 빛나는 성공 스토리를 SNS를 통해 부지런히 알리고 있다. 고등학교 졸업식 날 텅 빈 눈동자로 교실 안에서 홀로 담배를 피우던 친구의 얼굴이 생각난다. 대학에 떨어졌었던 것 같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갑자기 그 친구가 다시 보고 싶다.

     바로 지금 이 순간만 생각하고 살아왔다. 잊고 싶은 기억들이 많았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내가 얼마나 왜곡되고 뒤틀린 자아를 가졌는지를 알아차리는 과정이었다. 상처 준 이들에게 용서를 구하고 싶지만 이미 그들은 어딘가로 흩어져 버렸다. 나에게 상처 준 사람들을 저주했었다. 이제는 그들이 누구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기쁨과 슬픔이 교차했던 사람들과의 만남의 선 그 한가운데에 꿈에서 나온 그 동네가 점과 같은 하나의 작은 기억으로 찍혀 있었다. 이미 그 곳은 변했고 내가 살았던 아파트도 없어진 지 오래이다. 다시 그 곳에 가볼 생각은 없다. 나만의 그 장소에 흠집을 내고 싶지는 않다. 시간이 지나며 만남의 선은 모두 없어져 버렸을지라도 가슴 속 깊이 찍힌 그 점과 같은 기억은 좀처럼 사라질 생각이 없다. 나의 시간과 공간은 그 점 속에 갇혀 있다. 지금 이 순간만을 생각하며 살아가는 나의 모진 마음에 참으로 존재하는 나의 생명의 모습은 따뜻했던그 시절의 기억 뿐이다.
 
     10년만에 가족이 함께 갔던 노래방에서 아버지는 남일해 씨의 '첫사랑 마도로스' 를 부르셨다. 경북 청도군의 지금은 댐 공사로 수몰된 한 작은 마을과 함께 아버지의 시간은 그 곳에서 멈춰 있다. 나는 아직도 아버지에 대해 잘 모른다. 무엇을 정말 원하셨는지, 그리고 싫어하셨는지. 아버지가 나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내가 그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아마 평생토록 이해하지 못하다가 뒤늦게 때늦은 후회를 할 것이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이해를 바라지 않는다. 다만 각자가 품고 있는 작은 기억들이 따뜻한 것이기를 바랄 뿐이다. 이 각박한 시대에 꿈 속에서조차 돌아갈 곳이 없다면, 각자의 생명의 증거를 찾을 수 없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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