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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색무취 Aug 04. 2022

성실하게 살아야 할 이유

1) 성실함의 가치

     아직 브런치를 시작한 지 한 달도 채 안되었지만, 글을 읽어 주시는 분들 중 해외에 취업하여 나와 계시는 분들이 꽤 많았다. 나의 경우만 보아도 고등학교 및 대학 친구들 상당수가 미국, 캐나다, 싱가폴, 베트남 등 해외 각지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다. 상황만 허락한다면 지구 어디든지 쉽게 다닐 수 있고 경험해 볼 수 있는 시대인 만큼 앞으로 이런 추세는 계속 될 것으로 보인다.   


     해외 취업에 도전하는 이들 대다수가 자신이 꿈꾸는 출중한 능력(?)을 바탕으로 일찍 경제적 자유를 이루거나 이후 승진 및 타 회사에서 고 연봉으로 스카웃 제의를 받는 것을 꿈꾸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은 녹록치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좌절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우리 대부분은 평범한 사람들이고, 누구나 평범함 속에 자신만의 독특함을 갖고 있기에 큰 욕심을 부리지만 않는다면 소소한 행복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앞으로 몇 편의 글들을 통해 나와 같은 보통 사람이 해외 취업을 했을 때 현실적으로 어떻게 잘 적응하고 뿌리를 내릴 수 있을지에 대한 생각을 나누어 보고 싶다. 이 이야기들은 어디까지나 나의 제한된 경험을 바탕으로 하기에 각자의 상황에 따라 주어진 현실과 잘 맞지 않을 수도 있음을 미리 말씀드린다. 


     오늘 이야기하고 싶은 첫 번째 주제는 '성실함' 이다. 


     최근 우리 사회는 '열심' 또는 '성실' 이라는 가치에 대해 냉소적 분위기가 있는 것 같다. '열심히 하는 것보다 잘 해야 한다' 라는 말을 필두로 '근로 소득으로는 절대로 부자가 될 수 없다' 라는 저금리 시대 직장인들의 좌절까지 합쳐지며 빨리 시드머니를 모아 직장에서 탈출해야 한다는 일종의 '탈출 강박증' 이 생긴 것 같다. 마치 '성실한 사람' = '회사의 노예' 로 여겨지는 듯하다. 각자의 일터에서 주인공이 될 수 있었던 베이비부머 세대와 달리 현 세대는 조직의 부속품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니 일이 재미있을 리 없다. 재미없으니 자유를 갈구하고 속박에서 벗어나고 싶어한다. 당연한 일이다.  


     그렇지만 이 속박에서 진정으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짧은 답은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의 저자인 로버트 기요사키 씨의 말처럼 '돈을 벌어야 하고 돈이 나를 위해 일하게 해야 한다' 일 것이다. 하지만 말로는 쉬우나 실천이 매우 어렵다. 저금리와 폭등한 자산 가격으로 '돈이 나를 위해 일하게 하는 것' 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부동산을 살 수 없게 된 수많은 사람들이 주식/가상화폐와 같은 위험한 투자에 뛰어들지만 성공하는 사람은 이들 중 소수인 것을 먼저 냉정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경제적 자유의 꿈을 버리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지속적으로 소신을 갖고 투자하되 다만, 투자수익을 얻기 어려운 현 시대에서 지속적인 현금흐름을 제공해 주는 직장의 가치는 오히려 증가했다는 측면 또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무작정으로 투자를 종용하거나 퇴사를 권유하는 SNS 속의 꿈 같은 이야기들은 잠시 기분을 좋게 해 줄지는 몰라도 조심해서 들을 필요가 있다. 그들 역시 다른 사람들에게 '돈을 버는 방법' 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돈을 벌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적/개인적 측면에서 보면 '성실함' 을 갖추는 것은 회사의 노예가 되는 것이 아니라, 결국 자유를 얻기 위해 필요한 '현금흐름의 안정화' 를 위해 쏟아붙는 노력이라 생각하는 것이 더 바람직해 보인다. 직장은 언젠가는 그만두어야 할 곳이지만, 내 파이프라인을 구축하기 전까지는 꼭 필요한 곳이기도 하다. 


     해외 취업인의 시선에서 보았을 때, 우선적으로 나 개인의 존재가치를 확고히 하기 위해서 성실함은 필요하다. 한국에서 직장 생활을 할 당시에는 주로 타인의 관점에서 내가 동료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성실히 노력했다면 외국 회사에서는 좀 더 나 자신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발전하기 위해 스스로를 채찍질하게 되는 것 같다. 동료간의 원활한 팀웍도 물론 중요하지만 기본적으로 내가 1인분의 몫을 확실히 할 수 있는지 - 위기 상황에서 얼마나 강한지 그리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며 성장할 수 있는 존재인지 - 를 성실함을 통해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물을 주거나 가꾸지 않아도 때가 되면 성실히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우리 집 선인장)


     보통 외국 회사에 새로 고용되면 정규직이라 하더라도 초기 3개월 - 6개월 사이의 관찰 기간인 Probationary Period 를 거친다. 이 기간 동안은 매니저 및 동료들이 겉으로는 편하게 대하며 무엇이든지 다 도와 줄 것처럼 이야기 하지만, 사실 상당히 몸가짐을 조심해야 하는 기간이다. 매니저급은 이 시기를 통해 나의 일 처리 방식, 책임감, 문제 해결 능력, 의사 소통 및 발표 능력, 등등 다양한 부분을 체크하고 나라는 사람과 앞으로 계속 갈 것인지 아닌지를 평가한다. 립 서비스에 속지 말고 '성실함'을 보여주어야 하는 기간이라 할 수 있다. 


     이전 회사에서 같이 일했던 미국인 B 씨의 이야기를 공유하고자 한다. B씨는 20대 중반부터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 지역 Motorola 사에서 30년 근무 후 Layoff 되어 은퇴했던 시니어이다. 베이비 부머 세대이고 집값이 저렴했던 시절 지역 부동산에 투자하여 몇 채의 주택을 통해 임대수익을 올리며 살다가, 우리 부서의 서포트 직군 자리가 나자 지원하여 재 입사하였다. 이 B 씨가 보여주었던 성실함과 자기 관리는 실로 대단한 것이었는데, 몇 가지 예를 들어 보겠다.


   - 초기 6개월 간 내내 오전 7시 출근 - 저녁 7시 퇴근 

   - 긴급 업무 처리 시 저녁 10시 - 11시 퇴근 / 주말 근무 및 자신의 인적 네트워크를 사용하여 문제 해결

   - 젊은 엔지니어들보다 훨씬 낮은 연봉임에도 불만을 토로하거나 팀웍에 저해가 되는 행동을 하지 않음


     이전에 공장의 매니저 역할까지도 했었던 그의 화려한 경력은 잠시 제쳐두고, 서포트 직무에 만족하며 묵묵히 꾸준한 업무력을 보여주었던 그의 존재는 위기 상황 때마다 팀원들 모두가 그를 의지하게 만들었고 매니저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의 연봉을 더 올려주고자 HR 과 Senior Management에게 지속적으로 어필을 하였다. 


     도대체 왜 은퇴가 가능한 상황임에도 나와서 힘들게 일을 하는지 그의 동기가 궁금했던 나는 이후 사석에서 이유를 물어 보았다. 그가 복귀한 주 이유는 와이프의 건강 문제 때문이었는데, 아직 연금 수령 나이인 65세에 도달하려면 수 년을 기다려야 하고 개인적으로 구매하던 사 보험은 와이프의 병 치료 및 진단을 위한 의료 항목을 커버해주지 않아 비교적 보험 커버가 좋고 집에서 가까운 회사로 복귀한 것이라 했다. 


     그의 말을 듣고 보니, 왜 그가 그렇게 묵묵히 6개월간의 Probationary period 를 그만의 방식으로 견뎌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의 주 목표는 연봉 그 자체보다도 보장성이 좋은 의료 보험을 오래도록 유지하는 것이었고 이를 위해 직장을 꾸준히 다닐 필요가 있었다. 그는 나이 많은 근로자, 특히 서포트 직군일 경우 이후 회사의 Layoff 1 순위 타겟이 되는 것을 익히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현 조직 내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고히 할 필요가 있었고, 시니어임에도 권위 의식 하나 없이 인내력과 성실함으로 젊은 동료들이 그에게 의지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이후 수년간의 Layoff 에서 그는 계속 살아남을 수 있었다. 


     자신의 현실에 대한 그의 냉정한 상황 판단과 성실한 태도는 이후 내게 이직 후 Probationary Period 를 어떻게 잘 넘어가야 하는지를 알려 주는 살아있는 교본과도 같았다. 이 기간 동안의 목표는 단지 업무 능력을 향상시켜서 일을 잘 할 수 있게 노력하는 정도의 수준이 아니다.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내가 한계 상황을 이겨낼 수 있는, 1인분을 확실히 할 수 있는 강력함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과 내가 변수가 아닌 상수로서 팀에 기여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지속적인 성실함으로 인지시켜 주는 것이다. 언어 소통이 완전치 않은 외국인일수록 더욱 필요한 부분이라 할 수 있겠다.


     성실함이 주는 가치는 내가 특출할 사람이 아닌 평범한 사람일수록 더욱 빛을 낼 수 있다. 한 사람의 인간을 의지하게 되는 것은 단지 몇 번의 업무 결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오래도록 지켜보고 위기 상황을 겪었을 때 이를 함께 넘어 온 사람에 대한 신뢰에 기반하는 것 같다. 언어적으로 불완전 하더라도, 상황 판단을 현지인들처럼 빨리 하지 못하더라도, 성실하게 함께 일해온 외국인을 한 순간에 내치는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니다. 개인주의 사회에 익숙한 그들이라도 똑같은 사람이며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결국 인간적 가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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