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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색무취 Jul 12. 2022

운명처럼 다가온 첫 직장

2014년 어느 여름

    바야흐르 공급 과잉의 시대다. 하루를 충실히 살아가는 청년들은 많은데, 그들을 수용할 일자리는 너무나 적다. 굳이 말하자면 공급 과잉과 수요 부족이 맞물린 상황이라 보는 게 더 적합할 것 같다. 무한 경쟁의 시대, 구직자들은 자신을 차별화 하기 위해 스펙에 몰두한다. 

        

    첫 번째 직장에 들어가는 것은 특히나 어렵다. 주는 월급은 신입인데 경력이 없이 들어가기는 너무나 힘든 현실이다. 공채가 있었던 예전 시절과 대비되는 현 20-30 대의 상황이 참으로 안타깝다. 어차피 모두를 채용할 수 없겠지만, 돌려보낼 때 따뜻한 말 한 마디와 면접비를 쥐어 주는 곳이 많아졌으면 한다.   


    정확히 8년 전, 2014년의 나 역시 미국에서의 첫 취업을 위해 노력 중이었다. 수년 간 노력했던 인턴 장소에서는 더 훌륭한 경력의 사람이 채용 되었고, 외국인을 채용할 수 있는 회사는 내 세부 전공을 좋아하지 않았다. 졸업과 함께 비자 만료는 서서히 다가오는 상황, 이미 수 많은 유학생들이 겪어 왔던 난관에 나 또한 부딪히고 있었다. 


    동부의 한 회사에 면접을 보러 갔다. 절박한 심정으로 면접을 보았고, 결과는 불합격. 지금 생각해 보면 당연한 결과다. 안타까운 이야기이지만 절박한 마음으로 면접을 보게 되면, 본인도 모르는 실수를 하게 되고 여유와 자신감이 묻어나오지 않는 지원자를 보통 회사는 좋아하지 않는다. 최종 면접 후 감사 편지를 보내야 한다는 기본적인 상식도 이 때의 실패를 통해 알게 되었다.


(사진: Thank you Letter Sample. 면접 본 날 보내는 걸 잊지 마세요.)


    중부의 다른 회사에 면접을 보러 갔다. 이전보다 잘 했다고 느꼈으나 역시나 불합격. 후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미 확률 높은 내부 지원자가 있었다고 한다. 이 또한 나의 운이니 어쩔 수 없다. 내 실력이 그리 뛰어난 편도 아니었고 나를 뽑아야 할 이유를 설득시키지도 못했다. 다만 이번엔 마음을 추스르기 쉽지 않았다. 기대가 클수록 실망도 큰 법, 바라는 게 없어야 했는데 아직 나는 원하는 것이 많았었나 보다. 


    이후 수차례의 실패 속에, 나를 뽑아 준 첫 번째 직장과 조우하게 되었다. 전공과 매치가 안 되는, 한마디로 Fit 이 전혀 맞지 않는 상황이었는데 어떻게든 취업은 하고 싶었으니 기대없이 지원했다. 예상대로 연락은 안 왔고, 그 포지션은 아무 일도 없었던 듯 검색창에서 사라졌다. 아 이제 정말 돌아가야 되는구나 생각하던 시점에...


    전화가 왔다. 이전에 지원한 그 부서가 아닌 다른 부서에서 자리가 나서 해당 부서의 매니저가 인터뷰를 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먹고 살고 싶으니 당연히 인터뷰를 보고, 다음 단계인 온사이트 면접으로 넘어 갔다. 면접 일시 및 장소는 7월의 애리조나 피닉스... 이 때만 해도 나는 이 곳이 어떤 장소인지 개념이 없었고, 매니저 및 HR 담당자의 몸 조심하라는 멘트를 친절한 립 서비스로 이해하고 있었다. 면접 전날 피닉스에 도착 후, 나는 이것이 진심을 담은 Warning Message 임을 이해하게 되었고 건널목 하나 건너 있는 식당으로 햇빛 아래에 걸어가는 것이 두려워, 생전 처음으로 호텔에서 룸 서비스로 저녁을 시켜 먹는 만행을 저질렀다.  

(사진: 불타오르는 피닉스의 위엄,      출처: 위키피디아)


    면접 당일, HR 담당자를 시작으로 사업부장, 매니저 및 동료들을 차례로 만나며 심층 면접이 시작되었다.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채용의 1차적 권한은 매니저 (Hiring Manager) 에게 있다. 대답하기 어려운, 고민을 하게 하는 질문들은 대체로 매니저에게서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를 통해 부하 직원의 자질을 평가해야 하므로. 대학원 시절 내 세부 전공은 현 회사에서 하는 일과 현저히 달랐으므로, 나는 대부분의 질문에 1차적으로 바로 대답을 하기 힘들었고 매니저가 힌트를 준 후에야 간신히 나의 생각과 함께 대답을 할 수 있었다. 함께 면접 장소에 있던 기술 리드 역할의 한 수석 엔지니어는 내가 해당 분야 내의 기본적인 질문조차 바로 대답을 못 하는 것을 보고 걱정하기 시작했다. 


    면접이 끝나고 매니저와의 마지막 면담 시간에 내 마음은 이미 무너져 있었다. 당연히 불합격일 것이라 생각 하면서 어차피 안 되면 짐 싸서 돌아가야 할 상황에 마지막으로 꼭 기회를 잡고 싶다는 진심을 보여야 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매니저가 오늘 면접에서 네가 얼마나 잘 한 것 같냐고 물어 보았을때 솔직히 이야기 했다. 

'나는 정말 잘하지 못했고 많은 것을 배웠다. 보여준 것은 없지만 여기서 꼭 일하고 싶고 당신에게서 계속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달라' 라고. 자신이 약하더라도 늘 강한 척 해야 하는 미국의 문화에서 스스로 '잘하지 못했다' 라고 이야기 하는 것은 자살행위 일 수 있었다. 이 날 이후의 어떤 인터뷰에서도 나는 이렇게 이야기한 적은 없다. 

           

    놀랍게도 그 순간, 매니저가 나에게 되물어 왔다. 내가 널 뽑으면 너 정말 여기 올 거냐고.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Yes' 라 대답했다. 상식과 반대되는 답변을 했는데 예상외의 결과를 얻은 것이었다. 이후에 안 사실이지만, 나를 채용한 매니저는 예전 해당 포지션을 채우기 위해 인턴을 먼저 채용했는데 이 인턴이 실수를 하자 이를 덮고자 매니저에게 거짓말을 했고 그 때의 경험 때문에 첫 번째 채용 기준으로 '좋지 않은 결과'를 가감 없이 보고할 수 있는 투명함을 원하던 사람이었다. 내가 실제로 잘 못한 면접을 그대로 '잘 못했다' 라고 얘기했으니 이 점에서 코드가 맞았던 것이다. 이는 해당 회사의 업종인 반도체 제조 (Foundry) 의 특성과도 연관되는데, 반도체 제조 과정 중 수많은 변수 및 불량이 발생하므로 고객과 소통 시 이를 정확히 가감없이 이야기 해 줄 수 있어야만 고객이 미리 계획을 세우고 Plan B 를 가동할 수 있으므로, 고객 중심의 반도체 Foundry 사업에서는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라 생각된다.


    이후 예상대로 오퍼를 받았고, HR 제시 조건보다 한 직급 높게 받을 수 있도록 매니저가 힘을 써 주었다. 
이후 영주권 수속 과정까지 참 많은 도움을 받았으니, 나와 내 가족에게 미국 생활 최고의 은인이라 할 수 있겠다. 그렇게 나의 미국 첫 직장은 시작 되었다.

      

    취업에는 운이 크게 작용한다. 때로는 스펙보다도 훨씬 더. 해당 직무의 요구사항과 맞지 않는 내 스펙과 경력을 고려했을 때 50명이 넘는 지원자들 중 똑같은 기준으로 지원서를 평가했다면 내가 선택될 이유가 없었다. 매니저가 채용을 하고자 하는 타이밍에 정확히 내 지원서가 들어 갔기에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최종 면접 시의 마지막 질문에서도 서로가 원하는 코드가 일치했기에 좋은 결과가 나온 것이다. 


   지금껏 이 곳에 있으면서 정말 탁월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아 미국을 떠나게 되는 분들을 많이 보았다. 역으로 노력을 거의 하지 않음에도 순탄히 인생이 풀리는 분들 역시 자주 보았다. 40대에 접어든 난, 이제 누군가에게 함부로 노력하면 잘 될거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내 삶이 지금 순탄하다면 현재의 행운에 감사하면서 이 또한 지나가게 될 거라는 마음을 갖게 되고, 내 현실이 지금 암울하다면 이 불안한 상황도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작은 기대를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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