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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색무취 Aug 11. 2022

비밀을 지켜야 할 이유

2) 불신 사회 그리고 비밀 유지의 중요성


     한국에서 나고 자랐던 사람들이 다른 나라 사람들의 생각하는 방식을 이해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 비록 많이 변했다고는 하지만 신뢰에 기반한 공동체 중심의 사회를 어린 시절 겪어 왔던 한국 분들이 해외에 나오셔서 많이 힘들어 하시는 이유 중 하나는 타인에 대한 '불신' 에 기반한 서구권의 사고 방식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내용을 제대로 알아보고 가지 않으면 언제든지 바가지를 쓸 수 있고, 이를 당연시하는 사회에서 '나' 외의 다른 존재를 쉽게 믿을 수 없고 비판적인 시선으로 먼저 바라보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로 보인다. 


     불신 사회에서의 조직 생활 또는 개인 관계에서 특히 금기시 되는 것은 비밀에 대한 누설이다. 일하고 있는 회사의 업무에 대한 내용이나 개인의 사생활에 대한 내용을 당사자의 동의 없이 발설할 경우 큰 불이익을 받게 된다. 


     해외 취업 인터뷰 시 구직자는 이 부분을 늘 의식적으로 조심해야 하는데, 좋은 기회를 잡고 싶은 구직자의 열정이 지나치게 되면 때때로 자신이 보여주어서는 안 될 정보까지 이야기하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고 산전수전 다 겪은 매니저에게 이는 큰 감점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해고나 재취업이 자유로운 환경인 만큼, 오늘의 친구가 내일의 적이 되는 상황이 자주 나오기에 비밀 유지를 지키는 행동은 매우 중요하다. 실제로 지금 다니는 회사의 이전 디렉터였던 F 씨가 한 말을 인용해보고자 한다. 


     '조금 더 멋진 모습을 보이고자, 현재 몸 담고 있는 회사의 업무 내용/비밀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절대로 고용하지 말아라. 그는 얼마 후 똑같은 방법으로 다른 회사에 우리의 비밀을 이야기 할 것이다." 


     상당히 일리있는 말이며 많은 매니저들은 이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있다. 이전 회사에 있을 때 마케팅 엔지니어를 채용하기 위해 인터뷰 과정에 종종 참여할 일이 있었는데. 이 중 우리 팀이 눈여겨 보던 지원자가 있었다. 20년 이상의 경력에 업계에 오래 있었고 실적도 우수했다. 인터뷰 및 프리젠테이션 능력도 괜찮아서 오퍼를 곧 낼 분위기였는데, 안타깝게도 한 번의 실수로 그는 이 기회를 날려 버렸다. 프리젠테이션 끝무렵에 그는 자신의 실적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지금껏 자신이 한 일들을 정리한 소책자를 나누어 주었는데, 이 책자에 이전 회사에서 했던 일들이 제품 정보를 포함해서 너무도 상세하게 적혀 있었고 매의 눈을 가진 매니저는 이를 놓치지 않았다. 차라리 열심히 준비하지 않았다면 무난히 얻을 수 있었던 기회를 의욕이 앞서다보니 더 중요한 비밀 유지를 신경쓰지 않게 되어 스스로 차버리게 된 셈이다. 


     여러 번 이런 인터뷰들을 경험하고 나서는 나 또한 인터뷰 시 이 부분을 우선적으로 신경쓰게 되었다. 예를 들어 현재 다니고 있는 회사의 인터뷰를 볼 때, 나는 공개적으로 내가 발표했던 내용이나 일반적인 정보 외에는 인터뷰 프리젠테이션 시 이전 회사에서 하던 일에 관련하여 민감한 정보를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인터뷰 도중 좀 더 구체적인 이야기들이 오가면서, 이전 회사의 고객 정보와 관련된 질문 또한 있었는데 나는 여기에서도 '이 부분은 현 회사의 고객 정보에 대한 내용이니 미안하지만 말할 수 없다. 내가 당신 회사에 오더라도 난 앞으로 이렇게 이야기할 것이다.' 라고 답을 했다. 듣는 사람에 따라선 기분 나쁠 수 있는 답변일 수도 있겠지만 결과적으로 볼 때 이 인터뷰는 좋게 마무리 되었고 바로 오퍼 이야기가 나왔다. 개인적으로 이 때 매니저는 분명히 이 질문을 통해 내가 비밀 유지를 할 수 있는지를 테스트 한 것이라 생각한다.        

 

     회사 생활 이외에 개인의 사적 영역에서도 비밀 유지는 중요하다. 한국 사회도 이전과는 많이 달라지긴 했지만 서구인들의 경우 친밀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개인의 정보 - 가족 사항, 혼인 관계, 나이, 전화번호 - 등의 정보를 공유하는 것을 극히 꺼리는 경향이 있다. Small talk 시에 이를 특히 조심해야 하는데, 타인의 정보를 함부로 묻거나 제 3자 앞에서 이야기하는 행동을 하게 되면 손절 당할 수 있으므로 입조심이 필요하다. 직장 생활과 마찬가지로 타인은 언제나 돌변하여 나에게 위해를 가할 수 있다는 생각을 기본적으로 하게 되는 것이 불신 사회에서의 인간 관계의 특징이기 때문이다. 


     이전 직장 동료였던 J 씨의 사례이다. J 씨는 이전에 오레곤 주 포틀랜드에 살며 남편과 같은 회사에 다니다가 안타깝게도 남편의 알콜/약물 중독 증세에 시달리다 이혼을 했다. 이혼 후에도 J 씨의 남편은 회사에 있는 자신의 친구들을 통해 J 씨와 컨택을 시도했고 위협을 가하기도 하는 등 지속적으로 J 씨의 인생을 불편하게 했다. 결국 견디다 못한 J 씨는 고향을 떠나 애리조나 오피스로 옮겨 왔고 우리 팀에서 일하게 되었다. 


     J 씨의 업무능력은 상당히 뛰어났기에 포틀랜드 근처에 있는 공장과 협업 시에는 J 씨가 출장을 가는 일이 잦았으며 나는 종종 J씨와 함께 출장에 동행하였다. J 씨가 나와 함께 출장을 가고자 했던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내가 '말을 거의 하지 않는' 무색무취의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사실은 영어도 한국어도 불편하고 말 하는 것도 힘들어서 말을 하지 않을 뿐이다... 


     전 남편의 행동으로 트라우마를 갖고 있던 J 씨는 혼자 출장을 갈 경우 예기치 않게 일어날 수도 있는 불상사에 대비해 나와 함께 팀으로 다니려 했고, 자신의 사적인 이야기를 다 듣고도 발설하지 않을 사람 + 적당히 주변을 불편하게 해 거리를 유지하게 해 줄 수 있는 사람으로서 나를 적임자로 본 것이다. 이 사례에서 보듯 인간은 각자에 맞는 쓰임새가 있는 것 같다.  


     말이 적거나 자신을 적극적으로 표현하지 않는 것이 꼭 불리한 것만은 아니다. 불신 사회일수록 외로워진 사람들은 자신을 배신하지 않으면서 있는 그대로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있기에 입을 조심하면서 잘 들어주는 것 만으로 충분히 좋은 관계를 가져갈 수 있는 경우도 있다.   


(Portland 내 Rose Garden 사진. 사진 출처: https://www.onlyinyourstate.com/oregon/peninsula-park-roses-or/) 


     J 씨가 출장 끝무렵마다 구경시켜 준 Portland 근교 Rose Garden 의 사진 중 하나이다. 푸르름이 있고 물도 많은, 풍경이 참 예쁜 도시여서 기회가 된다면 또 가보고 싶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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