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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색무취 Feb 13. 2023

중년에 읽는 톨스토이 인생론 (4)

2. 학자들과 바리새인들의 거짓 (1) 

     세상이 어지럽다. 하루가 다르게 물가는 치솟고 매일 들리는 뉴스는 어딘가에서 수백명 아니 수천명의 사람들을 Layoff 했다는 어두운 소식뿐이다. 어지러운 세상 한 가운데 마음을 붙잡고 걸어가는 것이 갈수록 어려워짐을 느낀다. 고통의 강도보다는 더 나아질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막막함 때문일 것이다. 


       팍팍한 현실에서 감히 인생에 대한 논의를 한다는 것 자체가 사치스럽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이렇게 매일 돈만 바라보며 일하다 사라지는 것이 태어난 이유가 될 수는 없을 것만 같아 다시금 용기를 내어 인생론 중 다음의 글을 옮겨 본다...


        '인생이란 - 인류의 행복을 위하여 하늘로부터 그들 속으로 광명이 남김없이 비치는 일이다 [공자]

        인생이란 - 끊임없이 더욱 큰 행복에 이르고자 하는 영혼의 순례이며 완성이다 [바라문]

        인생이란 - 행복한 열반에 이르기 위한 자기 부정이다 [석가모니] 

        인생이란 - 행복에 이르기 위한 온량 겸허의 도이다 [노자]

        인생이란 - 인간에게 행복을 주는 이성에 따르는 일이다 [스토아 학파]

        인생이란 - 인간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신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다 [예수] 

 ... 그러나 이와 같이 인류의 위대한 계발자들에 의해서 계시된 인생의 정의를 이해하고, 그것에 의하여 살아가는 사람들 밖에도 일생의 어느 기간, 때로는 전 생애를 통해서 그저 동물적인 생활에만 그치고 ... 그러한 모순을 알아차리기 조차도 못하고 사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언제나 있었으며, 또 지금도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러한 사람들 사이에는 또 자기의 외적 지위로 자신을 인류의 지도자인 양 생각하고, 스스로는 인간생활의 뜻조차 모르는 주제에 자신도 모르는 인생을, 인생이란 개인적 존재에 불과한 것이라고 남에게 가르쳐 왔고, 또 가르치고 있는 자들이 과거에도 있었으며 또 현재에도 있는 것이다.' 


         고객사 1차 샘플을 설계하기 위해 지난 두 달간 노예처럼 일만 했다. 먹고 자고 일하고 운동하고 아이들을 돌보며 그렇게 또 하루는 지나간다. 남는 것은 늘어나는 은행계좌의 액수와 오늘도 잘리지 않았다는 안도감 뿐, 내일의 일상을 위해 다시 아무 생각도 하지 않기로 하며 잠에 든다. 

 

        지금의 나에게 있어 인생이란 무엇인가. 아이들이 다 자랄 때까지 빚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계속 돈을 번다는 목적 외에 다른 것이 남아있지 않은 듯하다. 어릴 적 일하기를 꿈꾸었던 직장과 얼마 전 인터뷰 할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시원한 탈락. 수백 차례 받아본 리젝 메일은 이제 즐거운 일상 중 하나가 되었지만 이번의 인터뷰 결과는 준비를 포기한, 내 스스로 선택한 것이었다는 점이 조금 마음을 심란하게 했다. 꿈을 쫓던 소년과 연봉을 떨어뜨리기 싫은 중년 아저씨와의 대결에서 보기좋게 중년 아저씨가 승리한 것이다. 나 스스로의 가치관이 변했다는 것, 그리고 앞으로 미래의 내 모습은 지금의 중년 아저씨인 내가 살아가며 만들어 갈 결과물일 것이란 생각이 들며 좀처럼 마음이 가라앉지 않는다. 


        연말에 가진 술자리에서 지인에게 '제 2의 사춘기를 겪고 있다' 라고 이야기 했다. 도저히 인생에 대해 알 수 없다라는 것이 솔직한 마음이었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아직 잘 모르는데, 나에게서 무언가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제대로 대답을 할 수 있을 리 없다. 20대에 톨스토이 인생론을 읽으며 인생의 의미를 발견했다고 생각했던 소년은 이제 동물적인 생활에만 그치고 마는 40대의 중년 아저씨가 되어 있다. 이제 곧 사춘기 나이에 접어드는 큰 아이는 서서히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인생의 의미에 대해 물어오기 시작한다. 인생이란 개인적 존재 그 이상의 가치를 품고 있다고 아름답게 이야기해 보지만 별로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당연하다. 지금의 나는 그런 인생을 살고 있지 못하니까. 


        나에게 있어 열반에 이르기 위한 자기 부정의 노력은 문제없이 계속 일을 하며 돈을 벌 수 있도록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으로 사용 되었으며, 무위 자연의 도는 험악한 조직 생활에서 내 자아를 억누르는 방법으로 받아들여졌고, 신과 이웃에 대한 사랑은 갈등을 피하기 위한 형식적인 친절함과 거짓 웃음으로 잘 포장되어 있다. 본질은 사라지고 다른 목적을 위해 변질된, 톨스토이가 이야기하는 바리새인의 모습이 바로 이것이다. 


        그렇기에 중년 아저씨의 눈으로 바라본 톨스토이 인생론은 더 어렵다. 지금껏 쌓아온 것들이 나의 또 다른 자아가 되어 순수한 변화를 갈망하는 마음을 짓누르기 때문이다. 한 단락 한 문장마다 지금껏 내가 살아왔던 모습이 비쳐 오고 이전의 나에게 사과를 하는 긴 여정을 걸어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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