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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색무취 May 04. 2023

지인의 해고

계속되는 감원 바람

    별다른 느낌 없이 회사에 출근해 일을 하던 오전 중, 모르는 번호로 몇 통의 전화가 와 있었다. 쉴새없이 걸려오는 광고 또는 사기 전화겠거니 하며 무시하던 찰나, 지인의 이름이 적힌 문자가 도착했다. '아 전화번호가 바뀐 건가' 라고 생각하며 반갑게 전화를 받았다.


    '무색무취 씨, 나 Layoff 당했어요.'


    분위기가 바뀌기까지는 채 몇 초가 걸리지 않았다. 같은 회사, 같은 사무실에 근무하시는 분이었는데 정말 예상하지도 못한 상황에서 일을 당한 것이다. 현재 내가 속한 부서는 다행히 주 고객사의 신규 프로젝트가 계속되고 있어 오히려 사람을 충원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안타깝게도 이 분이 계신 곳은 사정이 좋지 않았던 모양이다.
      

    늘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고 살아가는 직장 생활 중 그래도 투명하게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해 주시고 때로는 업무상의 조언도 기꺼이 해 주시던 고마운 분이었는데, 참으로 기분이 좋지 않았다. 사람 내치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미국의 해고 문화에 이젠 적응이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친하게 지내던 분이 이런 일을 당하는 것을 보니 다시금 마음 속에서 거친 말이 뿜어져 나왔다.         

 

     첫 번째로 급히 물어 보았던 것은 이 분의 영주권 진행 상태였다. 대략 2년 전부터 고용주 스폰으로 영주권 신청을 진행 중이셨는데, 이 과정 중 해고를 당하는 것은 보통 시간 및 정신적으로 큰 상처를 남기기 때문이다.


    보통 고용주가 스폰하는 영주권 진행은 다음의 3단계로 이루어진다.

1) Permanent Labor Certification (PERM)

2) Immigration Petition for Alien Worker (I-140)

3) Application to Register Permanent Residence (I-485)


(고용주 스폰 영주권 진행 프로세스: 출처: https://cbkimmigration.com)


    1단계 (PERM) 및 2단계 (I-140) 의 경우 스폰서인 고용주가 과정에 관여하게 되므로 이 단계에서 해고를 당하게 된다면 지금까지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고, 다른 직장을 찾은 후 동일 프로세스를 다시 거쳐야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1-2단계를 마친 이후, 3 단계 (I-485) 부터는 고용주가 아닌 개인의 청원이므로 고용이 중단되더라도 영주권 심사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미국에 합법적인 체류가 가능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이 분의 경우 다행히 3단계까지 넘어간 상태였기에 현재 소지한 취업비자 (H1B) 의 Grace Period 동안 다른 직장을 찾으면서 영주권이 나오기 이전까지 H1B를 유지하거나, 설령 빠른 시일 내에 직장을 찾지 못하더라도 우선 I-485 심사기간 동안 미국에 체류할 수 있고 이후 I-485 진행 중 발급되는 EAD 를 통해 취업을 할 수 있는 등 여러 옵션이 있는 것으로 짐작된다.


    해고라는 우울한 상황 하에서도 그나마 영주권 진행 3단계까지 온 상태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것에 위안을 삼으며 비교적 차분한 감정 상태로 그 분과 대화를 마쳤다.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이민자에게 미국은 참 터프한 나라다. 아이들이 아직 어릴 때, 나의 영주권 프로세스 중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난 참 운이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금 느끼며 씁쓸하게 하루를 마무리했다.


    매일마다 들려오는 수백, 수천명의 해고 뉴스는 별 느낌 없이 받아들여졌지만 실제 내 눈 앞에서 지인에게 이런 일이 닥친 것을 보니 마음이 좋지 않다. 매일마다 직장을 잃는 수백, 수천명의 사람들은 각각 어떤 마음으로 내일을 맞이하게 될까. 영주권이 없어 당장 직장을 구하지 못하면 귀국해야 하는 사람들은?


    주주가치 실현만을 위해 운영되는 회사의 모습에 다시금 심한 구토감을 느낀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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