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려감에 익숙해지기
얼마 전 예기치 않게 직장에서 승진이 되었다. 이전 팀장분께서 건강 문제로 떠나시면서 딱히 적임자가 없어 팀을 맡게 된 것인데, 능력도 에너지도 없는 이 사람에겐 고난의 길이다.
미팅이 참 많다. 5분만 이야기하면 될 것을 30분, 1시간 넘어 이야기 한다고 무색무취 씨는 종종 생각하였다. 어느덧 스르륵 잠에 빠져들다 깨어날 때마다 열심히 회의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느끼는 경외감, 논쟁과 합의 가운데에서 불타오르는 에고와 에너지를 보며 그는 자신같은 인간이 아직 월급을 받고 있다는 것에 감사하게 되었다.
몇 달 뒤에 회사가 다른 회사에 인수합병이 되었다. 배드엔딩이 될 확률 80%, 현상유지의 확률 20% 라고 그의 지난 경험이 이야기하는 동시에, 그의 팀원들에게 잘 될 수도 있다는 행복회로를 돌려주는 말을 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심히 아름답지 않게 보였다.
아름답지 못한 자신, 그에 걸맞게 흑화된 회사, 하지만 그보다 더 아름답지 못한 것은 회사 밖이다. 올해에만 지인 세 분이 선고를 받으셨다. 지금껏 가장 싫어하던 인터뷰 질문 중 하나에 이젠 다음과 같이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출처 - https://www.reddit.com/r/leetcode/comments/1ot7ohz/tech_industry_in_a_nutshell/ )
떠나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것이 문제다. 용의 꼬리보다는 뱀의 머리가 된 상황, 그러나 그 뱀은 가라앉는 배 안에서 즐거운 모습을 연기하며 바이올린을 연주 중이다.
잠시 올라가나 했더니 다시 내려옴을 준비해야 하는 인생. 역시나 어렵다. 내려가도 꼭 다시 올라갈 수 있을 거라는 그런 헛된 기대를 품으면 10년이 더 힘들어 질 것이 아닌가.
역시 내려감에 익숙해 질 수 밖에 없다. 다른 곳에서 꼬리가 되든지, 지금의 배에서 침몰하든지, 배 안의 구명정을 타고 탈출하든지 결국 내려감을 맛보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인생의 계절이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려는 이 순간, 마치 새로운 마음가짐을 시험이라도 하듯이 내려감을 연습할 기회들이 찾아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