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색무취 May 22. 2023

Bursera Trail

5월의 피닉스 남산

    언제나처럼 하루 30분 달리기를 마친 후 퇴근하려던 찰나, 팀 리드 분이 잠시 자리에 오시더니 한여름 이전까지 토요일 아침 6시에 몇몇 동료들과 같이 등산을 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을 하셨다. 평안한 회사 생활을 위해 답은 당연히 'Yes'로 정해져 있을 테지만 순간 '아니 이 사람들은 어떻게 이 날씨에 산에 오를 생각을 하는 것인가'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하지만 나 역시 이미 미국 생활에 적응이 되어서인지, 그래도 할만 하니까 가는 것이 아니겠느냐는 생각으로 마음을 짧게 정리하고 기계처럼 토요일 오전 5시에 일어나 무작정 동네 남산 (South Mountain) 으로 출발했다.

      

남산 그리고 Bursera Trail - 출처: Google Maps


    남산은 메트로 피닉스 지역 도시들 (피닉스, 템피, 메사, 챈들러, 길버트) 에서 제법 가까운 편이어서 등산을 좋아하시는 분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봄철에는 꽃이 피고 때 맞추어 피어나는 야생식물들을 볼 수 있어서 제법 풍경이 좋지만, 여름이 오면 선인장 외에는 별로 볼 것이 없는 돌산이 된다. 그래도 산에 가 본지 오랜만이어서 기분은 괜찮았다.


    Bursera Trail에는 남산에서 비교적 쉽게 왕복 3시간 정도로 마칠 수 있는 등산 코스들이 여러 개 모여있고 경사가 가파르지 않은 코스도 있어 아이들과 애완동물을 데려오기에 좋은 곳이다. 하지만 울창한 수풀과 약수터가 있는 한국의 동네 뒷산에 비할 바는 아니다. 돌산에 군데군데 있는 선인장과 팔로버디 같은 나무들. 대략 이런 느낌이다.

나무 많고 물 좋은 한국의 산이 그리워진다


    애리조나의 상징과도 같은 사와로 선인장은 산 입구부터 정상에 이르기까지 빠지지 않고 찾을 수 있다. 서부 영화를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사진 찍기에 좋은 곳인 것 같다. 산 아래에 내려다 보이는 타운들은 대체로 90년대 이후에 개발이 된 곳들이라고 한다. 불더위로 유명한 피닉스가 대도시로 거듭나게 된 데에는 에어컨의 보급이 절대적이었으니... 타 도시들에 비해 개발이 늦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사와로 (Saguaro) 선인장의 모습. 팔로버디 (Palo Verde) 와 함께 애리조나에서 자주 볼 수 있다.


    더위 먹는 게 아닌가 궁금했는데, 막상 해 보니 생각 이상으로 날씨가 괜찮았다. 사막지역의 일교차 덕분에 오전 9시 이전까지 등산을 끝내고 나니 기온이 화씨 90도를 넘지 않아 별로 더위를 느끼지 못했고 제법 몸도 마음도 상쾌해졌던 좋은 경험이었다. 만발한 사와로 선인장의 꽃을 자세히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던 것 같다.  

꽃이 만발한 사와로 선인장의 모습. 벌들이 쉴새없이 일하고 있었다.


    끊임없이 펼쳐지는 돌산과 타버릴 듯한 나무와 선인장 뿐이라서 제법 지루하기도 하지만, 속세에 지쳐 고독한 여행길을 찾는 분들에게는 버려진 듯한 황량한 느낌이 매력적일 수도 있어 보인다. 세도나, 그랜드 캐니언 같은 화려한 빛깔은 없지만 사막지역 특유의 느낌은 잘 느낄 수 있는 곳이다.  

황량한 느낌이 남산의 매력이다.


    그냥 돌과 모래 뿐인 산인듯 하면서도 간혹 대리석 느낌이 나는 돌들도 찾아볼 수 있어 느낌이 신선했다. 팀 리드 분 말씀에 의하면 예전에 금광도 몇 개 있었다고 하는데 다음에 기회가 되면 가 보기로 했다. 어린 시절 MS-DOS + 흑백 컴퓨터로 '금광을 찾아서 (Lost Dutchman Mine)' 라는 게임을 참 재미있게 했었는데 그 무대가 되는 장소가 Mesa 시 동쪽 Apache Junction 이라는 곳에 있어서 예전에 가족들과 함께 다녀왔었다. 비슷한 느낌을 여기서도 느낄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     


    짧은 산행이었지만 잠시 머리를 비우고 동료들과 이야기하며 이 곳의 정취를 느낄 수 있었던 재미있는 시간이었다. 울창한 산을 좋아하는 한국인의 정서와 잘 맞지는 않지만 이국적인 느낌을 좋아하시는 분들에게는 좋은 산행 코스인 것 같다. 산을 오르는 내내 약수터 생각이 많이 나서 다음에 한국에 들어가면 꼭 산에 올라가봐야겠다는 다짐 또한 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봄이 오는 풍경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