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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지운 Nov 03. 2022

가장 낯선 곳을 이야기하는 방법

드라마 <수리남>

 “수리남이라는 곳을 아는가?”라고 물으며 이야기는 시작한다. 한국의 많은 사람들에게 생소한 이 국가를 무대로 삼은 드라마는 사람들에게 호기심을 자극하며 시작한다. 하지만 1화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극도로 친숙한 모습이다. 주인공 ‘강인구’의 일생은 마치 영화 <국제시장> 에서 고군분투했던 주인공을 연상시킨다. 어느 일도 마다하지 않으며 자라왔고 처음에는 아버지를 대신해서, 나중에는 자신의 부인과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이 낯선 곳을 친숙한 인물과 연결하며 익숙함을 덧칠한다. 이 듣도 보지도 못한 아프리카를 우리와 연결해주는 매개체는 다름아닌 ‘홍어’다. 홍어는 다른 국가에서는 거의 먹지 않은 한국만의 토종 음식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그 삭히고 찡한 그 맛은 젊은 사람들보다 나이 많고 풍파를 견딘 세대를 상징하는 음식이라고 말할 수 있다. ‘강인구’에게 자신이 먹고 있는 홍어가 큰 돈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어느 것보다 매력적이었을 것이다. 처음 그의 사업은 성공을 달리는 듯했으나, 그를 소용돌이로 모는 사건이 있었다. 하얀 가루, ‘마약’이었다. 마약이라는 키워드는 범죄, 그리고 부의 상징과 같다. 특히 한국에서는 절대적인 악으로 인식되고 있고, 그만큼 고가치를 상징한다. 최근 펜타닐 이슈가 늘고 있기 때문에 우연치 않게 더 부각되는 이 마약은 강인구를 나락으로 빠트렸다. 그렇게 타국에서 빨간줄을 긋게 된 그에게 찾아온 것은 국정원 요원 ‘최창호’, 공동의 적으로 그의 홍어에 마약을 숨긴 ‘전요한’을 지목한다. 여기서부터 마약을 소재로 하는 끝없는 심리전으로 이어져 어떻게 ‘강인구’라는 인물이 국정원과 수리남의 왕 사이에서 어떻게 살아남는가를 보여주며 계속 심장을 쥐었다 놓았다 한다.

 플롯은 단순하다. 강인구는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고, 전요한과 수리남 속 주변 인물들은 점점 옥죄어 온다. 그의 언더커버가 들킬지 아닐지, 그리고 그가 던진 돌이 어떻게 결과를 낳을지 두근대며 긴장감을 유지한다. 거기에 복잡한 갈등은 넣지 않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서로를 믿지 않고 살기위해 움직이는 모습은 영화 <범죄와의 도시>를 쓴 감독의 작품 다운 모습이었다. 윤종빈 감독의 작품에는 독특한 점이 많이 있다. 우선 주제 선정에 있어서는 사회의 뒷면, 폭력과 부정적인 면을 비추려고 노력한다. 그의 작품은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고발하고, 주인공에게 밀착된 카메라는 그들의 행보로 세상의 어두움을 비추려고 한다. 그는 어두운 이야기를 설명하는데 조명을 삭막하고, 건조하게 담는다. 흔히 이야기하는 하드 보일드의 감각이 화면 전체를 뒤덮고 수리남의 건조한 대지, 맑은 하늘은 시청자들의 마음도 바싹 타게 만든다. 그의 기존 작품에 가까운 연출은 처음 강인구의 생애를 보여주는 장면에서 느껴진다. 살짝 탁한 풍의 화면 아래서 절제된 조명 아래 소시민들을 비추는 그의 방식은 잔인하리 만치 현실에 가까워 보인다. 하지만 윤종빈 감독은 그저 삭막함만으로 분위기를 밀어붙이지 않고 이런 범죄의 현장을 시청자와 가깝게 만드는데 특화되어 있다. 그의 가장 큰 힘은 ‘대사’ 라고 할 수 있다. <비스티 보이즈>부터 시작된 그의 각본 디테일은 많은 명대사를 만들었다. 그가 적은 각본의 대사 하나하나는 헛으로 내뱉는 것이 없다.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범죄와의 전쟁> 의 주인공 ‘최익현’의 대사는 사투리와 장면의 상황 때문에 인기가 많기도 하겠지만, 그의 대사가 그를 상징하는데 사용되기 때문이다. <수리남> 역시 굳이 긴 부연 설명 없이 등장인물들이 어떠한 감정선, 그리고 성격을 가지고 있는지 대사로 표현했다. 특히 빌런인 전요한의 대사는 그의 안하무인한 태도를 잘 표현했다. 강인구를 처음 만났을 때는 두팔 벌려 돕는 신부의 목소리, 친숙한 동포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다시 만난 강인구에게 보인 본성은 바로 악귀 그 자체, 수리남을 지배하는 지배자였다. 존대를 하다가 반말을 하면서 진심을 보여주는 행위, 그리고 신부가 아닌 사탄과 같이 강인구를 자신의 수족으로 유혹하는 모습은 그가 어떤 인물이고 어떤 행보를 해왔는지 보여준다. 전요한 아래에 있는 수하들도 목소리 하나하나, 그리고 대사 하나하나로 어떠한 인물인지 잘 표현했지만, 국정원의 요원을 맡고 있는 최창호야 말로 ‘일부러’ 대사를 이렇게 만들었다는 느낌을 주게 한다. 그는 국정원의 요원으로써 전요한을 속이기 위해 일부러 ‘구상만’이라는 역할을 만들어 그를 대면해 전요한을 밀어붙인다. 최창호 일 때 목소리와 대사는 한없이 딱딱하고 공식에 맞춰서 이야기하는 듯하다. 하지만 ‘구상만’일 때만큼은 뒷골목 한자리 하는 아저씨 같으면서도 어설픈 연기를 보여주며 정말 드라마 속 인물이 ‘연기’ 한다는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기억에 남는 대사는 ‘밥은 잡쉈어?” 였다. 밥을 먹었냐 만큼 한국적인 말을 찾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안녕하세요 보다 더욱 친숙하고 구수한 이 말은 어느 시간대에 말해도 손색이 없는 말일뿐더러, ‘자연스러움’을 표방하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그저 대사를 만드는 것이 아닌 캐릭터 하나를 한마디로 창조해내서 드라마가 끝나도 계속 기억에 남게 하는 것, 그것이 윤종빈 감독의 특기라고 할 만하다.

 <수리남>에서 또 주목할 만한 점은 소재의 사용이라 할 수 있다. 마약이라는 물건은 수리남의 배경을 차지하는 중요한 물건이지만, 마약은 하나의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수리남에서 싸우는 모든 인물의 이유, 전요한의 권력을 의미하지만, 주제를 담고 있지는 않다. 마약은 강인구가 전요한과 연결되는 매개체의 역할일 뿐 오히려 큰 주제를 담고 있는것은 돈이라고 생각한다. 윤종빈 감독은 유명 마약 관련 드라마, <나르코스>처럼 마약을 주제로 한 작품이기 보다 인물간의 갈등, 범죄와 관련된 긴장감을 강조한 느와르 물로 봐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던 것 처럼 마약은 작품을 관통하는 매개체인 것이다. 눈에 보이는 또다른 소재는 ‘담배' 였다. 극중 인물들은 제각각 다른 담배를 문다. 강인구는 평범한 담배를, 전요한은 시가, 그리고 최창호는 구상만을 연기할 때 담배를 문다. 담배란 욕망과 생존을 상징한다 할 수 있다. 작중 인물들이 마약을 유통하려 할 때, 돈 이야기를 할 때면 담배를 물고 방 안을 연기로 뒤덮는다. 어쩌면 더러워지고 탁한 현재 순간을 표시하는 수단일지도 모른다.

 수리남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수리남에서 마약을 유통하고 있던 조봉행과, 국정원의 요청에 따라 아래로 들어간 K 씨의 이야기를 각색해서 만든 드라마가 <수리남>이다. 물론 실화와는 많은 차이가 존재한다. 실제 마약을 유통하던 조봉행의 직업은 선박유통업이었다. 하지만 그 직업을 그대로 유지한다면, 강인구와의 극적인 연결이 되지 않을 것 같아. 이중성을 강조하기 위해 신부로 직업을 각색시켰다. 중국 마피아와의 연결은 드라마보다 더 치열했다. 오히려 중국 마피아와 척을 지고 직접 싸워가며 K 씨는 조봉행의 신뢰를 얻고자 했다고 한다. 하지만 드라마에서는 중국 마피아와 전요한을 오가며 서로 갈등을 불붙여 점점 전요한을 밀어 붙히게 만들었다는 차이가 존재한다. 이렇게 극적인 연출과 내용을 늘리기 위해 많은 부분이 바뀌었지만 하나만큼은 공통점이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바로 ‘부성애'. 강인구의 행동 원동력은 다름 아닌 가족이었다. 가장 뻔하고, 신파는 진물이 난다고 해도 부성애는 누구나 공감가는 원동력이다. 강인구는 처음부터 끝까지 가족을 위하는 인물, 선이다 악이다를 넘어 가족을 위해 뛰는 아버지 같은 모습을 비춘다. 결국 타지에 가더라도 한국인, 사람을 움직이는 원동력은 모두 공감가는 이유라는 사실이 인상적이다. 강인구는 처음부터 끝까지 가족을 놓치 않았다. 돈을 벌려는 이유도 부, 명예가 아닌 아들 딸에게 좋은 집, 좋은 교육을 주기 위한 것이었고 자신의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데도 아이들의 숙제를 신경쓰는 모습을 보이며, ‘그도 한명의 아버지' 라는 사실을 계속 비춰준다. 어쩌면 전요한이 선을 넘고, 강인구는 끝까지 선을 넘지 않았던 이유가 ‘애국심' 같은 것이 아니라 ‘부성애' 라는 점에서 더 납득하고 와닿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처럼 보편적인 감정을 가장 ‘한국적'이게 꾸몄지만 이것이 ‘세계적'으로 보여지는 것, 그것이 <수리남>의 세계적 성공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넷플릭스에서 한국 드라마가 몇 번이고 연타석을 날렸다. 넷플릭스의 돈으로 만들면서 지상파에서 내지 못하는 매력과 자극을 보여주는 것도 있지만, 짧고 강렬하게 끝내는 작품이 많아서 보는데 피로감이 덜하다. 윤종빈 감독 역시 계약할 당시 8화로 할까 하다 6화로 끝내는 것으로 계약해 긴장감을 계속 유지하면서도 피로도는 적은 채 끝낼 수 있게 제작했다 한다. 현재 세대들, 서양 동양 통틀어서 너무 긴 시나리오는 오히려 루즈하게 느껴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건담 애니메이션이나 기존 드라마 작품들은 파일럿 시나리오, 즉 1화를 잘 내서 한번 시청자를 휘어잡은 다음 질질 끄는 경우가 많았지만, <오징어 게임>과 <수리남>은 쳐낼 건 쳐내고 빠르게 템포를 잡아서 한번 보는데 계속 봐도 무리 없을 정도의 분량을 가졌다. 하지만 그렇게 가지치기를 하면서 내용을 알차게 준비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감독의 역량이라고 할 수 있다. 윤종빈 감독이 매번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첫 드라마가 이정도의 성과를 보여줬다는 것은 매우 고무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의 장점을 모두 드러내고 어두운 상황 속 빛나는 아버지의 재치와 강단을 보여주며 단순한 플롯에 강력한 긴장감을 남겨두었다. 비록 말끔히 끝나서 후속작을 기대할 수는 없겠지만, 그의 행보가 영화만이 아닌 계속 드라마에도 남겨줬으면 좋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에게 낯선 곳을 이야기하려면, 낯익은 것부터 시작하자. 그것이 <수리남>이 남긴 재치있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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