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 산티아고 셰프-Killington

사람들과 이야기

by 각다귀

탐 산티아고는 CIA를 졸업한 셰프였다. 스페인계 아버지와 푸에르토리코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2003년 당시 40대 초반의 중년이었다. 아메리카 대륙 곳곳을 떠돌며 요리하는 유랑 셰프였고, 어쩌다 버몬트주 킬링턴까지 흘러들어왔는지는 알 수 없었다. 내가 ‘피크 클리닝(PEAK CLEANING)’의 사장 데비 홈즈의 소개로 킬링턴의 한 레스토랑에 세컨드잡으로 들어갔을 때, 그는 그곳의 주방을 지휘하고 있었다.

당시 나는 함께 숙소를 쓰던 한국인 친구 헌치와 주방 보조로 일하게 되었다. 탐은 처음 만난 날부터 친절했다. 차분히 일의 순서를 알려주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세심히 배분했다. 먼저 칼질을 시켜보겠다고 했을 때, 예전에 요리학원에서 배운 경험이 있어 요구하는 칼질을 금세 따라 할 수 있었다. 덕분에 설거지 일을 면할 수 있었다. 설거지는 어디서나 회피 1순위 업무였다. 그는 “시간이 지나면 교대하자”고 약속했지만, 그럴 여유는 결국 오지 않았다.

주방은 전형적인 중소형 레스토랑 구조였다. 오른쪽에는 여섯 개의 화구와 스테이크 그릴, 오븐, 작은 싱크대가 있었고, 뒤편에는 냉장고와 워크인 냉장고가 자리했다. 중앙엔 커다란 조리대와 식기 선반이 있었고, 아래에는 테이블형 냉장고가 위치해 있었다. 왼쪽엔 설거지용 대형 싱크와 식기세척기, 식재료 적재대, 그리고 외부 통로가 이어졌다. 문 옆의 작은 책상은 셰프의 자리였다.

탐은 요리를 하지 않을 때는 유쾌했다. 크지 않은 체구지만 다부졌고, 농담을 던질 때마다 웃음이 터졌다. 종종 안경을 쓰고 페이퍼워크를 할 때면 지적인 인상마저 풍겼다. 쉬는 시간엔 미국 각지를 떠돌며 겪은 일들, 중남미의 풍경과 사람들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기타를 함께 연주한다는 공통점도 있어 금세 가까워졌다. 활달하고 호탕한 그에게선 이국의 낯섦보다 익숙한 친근함이 느껴졌다.

하지만 전쟁이 시작되면 그는 돌변했다. 손님이 몰리고 주문이 꼬이면, 그의 목소리가 주방을 울렸다. “Somebody kill me!!” 그의 입버릇이었다.

주방에는 셰프 한 명과 외국인 보조 둘, 미숙한 웨이터와 웨이트리스가 전부였다. 손님이 아주 많진 않았지만, 그에게는 언제나 세 배의 일이 쏟아졌다.

어느 날, 그는 나를 불렀다. “Hey, Steve.” 당시 내 영어 이름이었다. “Do me a big favor.” 진지한 얼굴이었다. “What can I do for you?” “Grab that knife, and kill me.” “Shut up.” 서로 웃었다. 그는 농담으로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비수기였던 9월의 킬링턴은 한산했지만, 주말이면 손님이 몰렸다. 사장은 인원을 충원할 생각이 없었고, 탐의 스트레스는 한계에 다다랐다. “Fuxx!”이란 단어가 항상 주방을 채웠다. 그가 화를 낼 때면 나와 헌치는 불안해져 어깨를 으쓱하며 서로를 쳐다보곤 했다.

주문 실수는 계속됐고, 헌치가 내 뒤를 지나가다 “Behind you.” 한마디를 잊어버린 탓에, 내가 팬을 들고 돌아서는 순간 그가 뒤통수를 맞았다. 탐은 즉시 냉정하게 말했다. “그건 네 잘못이야. 주방에서는 뒤에서 ‘Behind you.’라고 반드시 말해야 해.” 또 내가 급히 팬을 꺼내다 맨손으로 잡아 화상을 입자, 찬물에 손을 담그고 있는 내게 화를 냈다. “그럴 시간 없어! 다음 주문 들어온다. Be a man!” 그때는 억울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도 벼랑 끝이었다.

사실 나는 주방 일이 즐거웠다. 돈이 크게 필요해서가 아니라, 요리사의 세계가 새로웠다. 정식 셰프 밑에서 일한다는 자부심도 있었다. 탐의 고함을 견디면서도 내심 배우는 재미가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작은 실수를 하나 했다. 그가 외쳤다. “F~uxx!!” 순간, 나도 폭발했다. 앞치마를 벗어 집어던졌다. “Shut up!!” 정적이 흘렀다. 그는 냉정하게 말했다. “Walk out.”

나는 조용히 주방을 나갔다. 밖에서 분을 삭이며 앉아 있었다. 얼마 후, 그는 나를 불렀다. 페이퍼워크 책상 앞에 마주 앉은 그는 차분했다. “아까 화를 낸 건 네가 아니라, 이 말도 안 되는 상황 때문이야. 초보자인 네게 그 일을 맡길 수밖에 없었던 건 사장의 잘못이지.” 그는 나를 계속 함께 일하고 싶다고 했다. “남자대 남자로, 방금 일은 잊자. 하지만 다시는 주방에서 소리 지르거나 앞치마를 던지진 말자.”

그날의 탐은 정말 어른스러웠다. 나는 사과했고, 우리는 악수했다. 하지만 그 후로 오래 함께하지 못했다. 탐은 레스토랑을 떠났고, 새 셰프 밑에서 일하던 우리는 곧 일을 그만두었다.

버몬트의 외노자 생활이 끝난 뒤, 나는 한 달간 미국 각지를 여행했다. 유학 중인 친구들과 친척을 만나며 그들의 삶을 보았다. 성공적으로 정착한 사촌형, 진로를 정하지 못한 친구, 마이애미의 자유로운 유학생. 그들을 보며 한국에 돌아가면 취업하리라던 나의 결심이 흔들렸다. ‘그래, 대학을 가야겠다.’ 일 년을 돌아간 것 같았지만, 방황 끝에 얻은 결심이었다.

한국으로 돌아와 어머니께 말씀드리자, “잘 생각했다”고 하셨다. 얼마 뒤, 탐에게서 이메일이 왔다. 그는 캘리포니아의 한 레스토랑에서 책임 셰프로 일하고 있었다. “비자 문제는 해결해 줄 수 있어. 나랑 다시 일하지 않겠어?” 그는 그렇게 제안했다.

나는 결국 대학 진학을 택했다. 가끔 생각한다.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지금 나는 어디에 있을까. 탐처럼 세계를 떠돌며 요리하고 있었을까? 아니면 이미 지쳐 돌아왔을까?

그와의 연락은 hotmail 서비스가 종료되며 끊겼다. SNS에서도 그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가끔 그를 떠올린다. 그때 화를 냈던 일을 사과하고, 함께 와인을 마시며 그 시절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그가 내게 준 제안이 얼마나 오랫동안 내 마음속을 맴돌았는지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이렇게 전하고 싶다. “가끔 당신을 생각하며, 당신과 함께 떠돌이 요리사가 되어 사는 꿈을 꿉니다. 그리고 당신과의 추억은 여전히 내 안에서 숨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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