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과 이야기
성북동에서 10년을 살았다.
그곳에 사는 동안 사람들을 만나면 종종 “죽을 때까지 성북동에 살고 싶다”고 말하곤 했다. 오래된 음식점에서는 정직하고 좋은 음식을 먹을 수 있었고, 조금만 걸어가면 서울 한복판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고요하고 아름다운 산길이 펼쳐져 있었다. 가끔 길상사에 들러 하릴없이 절을 구경하고, 마음이 답답하면 오토바이를 타고 창덕궁이나 경복궁을 걷다 오기도 했다. 북악스카이웨이를 타고 부암동으로 넘어가 치킨을 사 오거나, 팔각정에 올라 평창동을 내려다보며 시끄러운 마음을 달랜 적도 많았다.
그곳에서 다닌 체육관에서는 많은 사람들과 좋은 인연을 맺었고, 친구들을 불러 성북동 특유의 정취를 함께 즐기기도 했다.
지금은 성북동을 떠나 2년이 지났지만, 가끔 옛 동네가 그리워질 때면 꼭 생각나는 분이 있다.
두 번째 살던 집의 이웃이었던 아주머니다.
이사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차를 빼다가 화분 하나를 깬 적이 있었다. 출근길이라 사과드릴 틈이 없어, 화분 주인의 것으로 추정되는 집 문 앞에 메모를 남겼다.
이번에 새로 이사 온 000호 사람입니다. 차를 빼다가 화분을 깬 것 같습니다. 변상해 드릴 테니 이 번호로 연락 주세요. 번거롭게 해 드려 죄송합니다. 000-0000-0000
찝찝한 마음으로 출근했는데, 점심 무렵 모르는 번호로 문자가 도착했다.
화분을 거기에 둔 제 잘못도 있습니다. 괜찮으니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웃이 되신 걸 환영합니다.
‘이웃이 되신 걸 환영합니다’라는 문장을 보는 순간, 소름이 돋았다.
세상에, 이렇게 따뜻한 인사를 받다니.
감사 인사를 장문의 문자로 보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변상을 거절하셨으니 화분을 새로 사드릴 수는 없고, 대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직접 로스팅한 원두커피 한 봉지를 준비했다.
며칠 뒤 퇴근길에 들러 초인종을 눌렀다.
문을 연 아주머니는 내 말을 다 듣기도 전에 웃으며 말씀하셨다.
“아유, 뭐 이런 걸 다… 커피는 없어서 못 마시죠.”
그날 이후, 우리는 마주치면 인사하는 좋은 이웃이 되었다.
어느 날, 주차장에서 그분이 내게 말을 걸었다.
“재활용 쓰레기는 이렇게 버리면 안 되고 저쪽에 두셔야 해요.”
“아, 죄송합니다. 잘 몰랐네요. 다음부터는 제대로 버리겠습니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여태까지는 제가 대신 버렸는데, 마침 뵈어서 말씀드리는 거예요.”
그 말에 괜히 울컥했다.
자신이 해야 할 일도 아닌데, 불평 한마디 없이 대신해주시던 그 마음이 고마웠다.
그날도 원두 한 봉지를 들고 찾아뵈었다.
이후로 그분과 마주치면 늘 짧은 인사를 나눴고, 덕분에 성북동은 내게 더욱 따뜻한 동네로 남았다.
살다 보면 별로인 사람도 만나지만, 이렇게 좋은 사람도 만나게 된다.
살다 보면 어둠이 쌓이기 마련이지만, 이런 사람을 만나면 그 어둠이 순식간에 걷히기도 한다.
우리의 삶을 움직이는 것은 차가운 이성이 아니라 따뜻한 감정의 힘인지도 모른다.
그 아주머니의 한마디와 미소가 내 안의 어둠을 걷어냈던 그 순간처럼,
나를 계속 따스한 정서로 이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