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연작
나는 좀처럼 남을 부러워하지 않는 줄 알았다. 스스로 생각해도 조금은 이상한 특징이다. 아마도 열등감을 갖지 않기 위해 노력하다 보니 생긴 결과가 아닌가 싶다. 어릴 때부터 나는 스스로 부정적이라고 생각하는 성격을 제거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데, 깊은 사유와 공부 없이 행한 섣부른 이 노력이 몇 가지 치명적인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부러움을 잘 느끼지 않는다고 여기는 것이 대표적인데, 그렇기에 최근에 느낀 이 ‘부러움’이 내게는 꽤 신선하게 다가왔다.
큰 고모부는 독일의 한 대학에서 물리학을 가르치는 교수였다. 한국에 자주 오시지는 않았지만, 오시게 되면 보통 시골에 머무르시거나 학회에 나가 강의를 하시곤 했다. 오랜 시간 타국에서 지내시다 보니 아무래도 한국에서 보게 되는 다른 친척 어른들과는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고모부는 집에서는 항상 로브를 입고 생활하셨고, 늘 책을 읽거나 산책하며 무언가 골똘히 생각에 잠겨 계셨다. 고향이 이북이라서인지 쓰는 말씨도 다른 친척 어른들과는 조금 달랐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시골에서 나는 테니스공을 던지며 놀고 있었다. 그러다 공이 덤불 속으로 들어가는 걸 분명히 봤는데도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한참을 씩씩거리며 덤불을 뒤졌지만 보이지 않아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그때 로브를 입고 슬리퍼를 신은 채 뒷짐을 진 고모부가 다가와 무슨 일이냐고 물으셨다. 나는 공이 여기로 들어간 것을 분명히 봤는데 아무리 찾아도 안 보인다고 상기된 목소리로 말씀드렸다. 고모부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한 마디 하셨다. 한국말이 아닌 것은 눈치로 알 수 있어서 그게 무슨 말이냐고 여쭸다. 고모부는 ‘차분히 찾으면 반드시 찾을 수 있게 된다’는 뜻의 라틴어 속담이라고 일러주셨다.
어린 나는 그냥 ‘아, 그렇군요.’ 하고 대답하고 다시 공을 찾았다. 신기하게도 마음이 조금 가라앉은 덕분인지 오래지 않아 공을 찾을 수 있었다. 산책하는 고모부에게 공을 찾았다고 하니 나를 보고 빙그레 웃으셨다.
20대가 되어 유럽 여행을 갈 일이 있었다. 고모와 고모부가 계시는 벨기에에 가려면 꽤 많은 시간과 이동 거리를 감당해야 했기에 끝내 찾아뵙지 못했다. 그리고 고모부는 그 이듬해에 돌아가셨다. 유럽까지 가서 찾아뵙지 못한 것이 너무도 아쉬웠다. 그리고 작년에 고모마저 돌아가셨다.
얼마 전 사촌 형이 한국에 올 일이 있어 만나 식사를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형이 사진을 하나 보여주었다. 젊은 고모부의 사진이었다. 유품을 정리하다 발견한 흑백사진 속 젊은 고모부의 눈빛은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사진을 뚫고 나올 것만 같았다.
그 사진은 어떤 서양인과 함께 찍은 것이었는데 형이 내게 물었다.
“이 사람이 누군지 알겠니?”
그렇게 묻는 것을 보니 유명한 사람인 것은 알겠는데 나로선 알 수 없었다. 형이 말했다.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야.”
나는 깜짝 놀라 입을 벌리고 형을 한참이나 쳐다보았다. 형도 그런 사진이 있는지 모르고 있다가 이번에 벨기에 집을 정리하면서 처음 발견했다고 했다. 고모부가 젊었을 때 하이젠베르크의 연구실에서 공부한 적이 있다는 것만 들었을 뿐, 이런 사진이 있는 줄은 몰랐기에 본인도 놀랐다고 했다. 물리학을 전공한 형이라 아마도 더 뿌듯했던 모양이다.
정말 드물게도 부러움을 느꼈다. 이런 감정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받아들인 것도 정말 오랜만이었다. 몇 번 뵌 적 없는 고모부였고 그 덕에 나는 그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 않다. 종종 어머니와 친가 어른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알게 된 몇 가지 에피소드가 전부인 것이다. 이 글에는 다 쓸 수 없는 그의 개인사를 토대로 생각할 때, 고모부는 보통 사람들이 겪어낼 수 없는 고통을 겪으며 그것을 뛰어난 학문적 성취로 승화시켰다는 것만은 알 것 같았다. 나는 그런 부분을 특히나 자랑스럽게 여긴다.
피천득 선생이 말한 ‘반사적 광영’이 이런 것일까? 가끔씩 시골을 회상하고 그곳에서 있었던 일, 만났던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나를 이루는 많은 것들을 하나하나 반추하며 내면 깊은 곳을 들여다보게 된다.
그리고 문득 내가 지금껏 선명히 의식하지 못하던 것들을 깨닫게 된다. 윤리관, 가치관, 세계관, 가족관 등 나를 형성하고 온전히 나의 것이라 믿었던 모든 것들이 사실은 이런 경험과 기억들에서 비롯되었음을. 그리고 이는 사실 ‘표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 확신하고 살아왔다는 것. 그럼에도 나는 그것들과 함께 살아가야 하고, 그것들을 통해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서서히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