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실패: 좌충우돌 직장생활
끈기 없고 나약한 자의 최후
나의 첫 직장은 세종시 외곽에 자리 잡은 ‘공사장’이었다.
건축학을 전공한 내게, 졸업 무렵 두 개의 선택지가 주어졌다. 한 개의 설계사무소, 한 개의 대형 건설사. 무려 8년 동안 오직 건축설계*만을 공부했던 나에게 큰 고민거리는 아닐 줄 알았다. 하지만, 어느새 나는 8년을 고민해본 적도 없는 대형 건설사의 신입사원이 되어 있었다.
*주석: 설계사무소는 도면을 그리고, 대형 건설사(시공)는 도면을 보고 건물을 직접 짓는다. (단순하게 보면)
처음 선택은, 나름 논리적이었다. 내 곁에는 어느새 예순보다, 칠순에 가까워진 은퇴한 아버지와 항상 아낌없이 날 후원해주신 환갑을 목전에 둔 어머니가 계셨다. 내게 더 많은 돈을 주는 직업을 선택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게다가, 내 눈으로 시공현장을 볼 수 있다는 약간의 설렘도 한몫했으니.
그렇게 딱 3년만 버티자는 다짐과 함께 난 설레는 첫 직장을 얻게 되었다. 훗날 알게 된 점이지만, 그때 내가 간과하고 있던 것이 있었다.
1) 난 항상 내 기대의 33%만 충족시킬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2) 그리고, 나의 성격과 신체능력을 내가 전혀 몰랐다는 것까지.
당시 나는 평생을 끈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인간이었던 것을 잊었다. 대부분 빠르게 포기하는 성격덕에, 직업에 대한 깊게 고민하는 것도 빠르게 포기했던 것이다.
그리고 나의 나약한 정신력과 몸뚱이로 건설현장의 타이트한 하루하루와 거친 일들에 대한 도전은 무리였다. 거기에 수많은 가치관의 충돌은 덤. 나는 내가 입지 못할 옷을 입었던 것이다.
실패의 아이콘: 건설현장의 꽃, 건축기사
그래도 실패 가운데 얻은 것은 있었다.
감히 짧았던 건설현장에서의 1년을 묘사해보자면, 온갖 실패들이 넘실대는 참 교육의 장이었다.
그곳에서는 아침에 눈을 뜬 순간부터, 눈을 감는 순간까지의 하루 속에 수십 번의 실패들이 있었다. 그리고 더욱이, 큰 실패 없이 살아왔던 나를 감싸게 되는 수많은 실패들은 충격의 연속이었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내 손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것들 투성이었다.
매일매일 아침 조회부터, 퇴근까지 수많은 문제들 속에 놓였다.
그리고 문제가 벌어지면 항상 울리는 무전은 언제나 내 심장을 벌렁거리게 했다.
*주석: 현장에서는 막내들에게 건축기사는 건설현장의 꽃이라는 칭호를 준 뒤, 온갖 핍박과 설움 속에 자라는 억센 잡초(雜草)를 만들고자 한다.
‘아니 이렇게 문제가 많아서 나더러 어떻게 하라는 거야,’ 라며 내 실패들을 합리화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매일매일 반복되는 실패들에 마음까지 아작 나고 있었다. 합리화도 하루 이틀이지.
으르신들은 내가 힘들어할 때마다 도종환의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을 얘기하며 “길동아 여러 가지 일들에 치이지만 건축기사는 건설현장의 꽃이야, 다 피가 되고 살이 된다”라는 위로만 남길 뿐이었다.
흔들리며 피는 꽃 / 도종환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실패가 안겨준 교훈
하지만 나는 그렇게 몇 번(몇 백, 몇 천 번)의 실패 끝에 건설현장에서의 진리를 깨우치게 되었다.
한 번은 25m짜리 물건을 심어야 하는 곳에 23m짜리를 심어놓고 하루 종일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욕을 들은 적이 있었다. (세상에는 많은 욕이 있다.)
그때 처음으로 '으르신'들이 수많은 실패들을 태연하게 받아들이던 이유를 체감하게 되었다.
이미 앞서 일어난 실패들 덕분에 대부분의 사고는 미연에 방지되고 있었으며, 건축물은 지어질 때, 이미 시공자의 실패를 대비해 안전율*이라는 숫자를 통해 설계되어 있었고, 문제가 일어난 후 이를 보충하기 위한 수많은 보강방법이 있었다. 그리고, 수많은 실패의 데이터들이 더 효율적으로 공사를 할 수 있게 돕기까지 했다.
*주석: 시공상의 오류를 커버하기 위해, 기본적인 안전보다 더 안전하게 만들도록 함
막무가내일 거라는 인식과 달리 많은 선배들의 실패들이 남겨준 수습 방법들이 체계화되어 있던 것이다. 그렇게 축적된 자료들은 수많은 실패의 산물이자 미래의 실패를 줄여주는 보물들이 되어 전해지고 있다.
결국 매일매일 직접 실패를 하고, 실패를 바라보며 배운 것이 있었다
실패는 진짜 성공의 어머니였다.
실패들이 모이게 되면 다음에 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더 좋은 방법을 찾아낼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결국 실패 자체를 바라보는 시선은 달라질 수 있었다.
+하지만, 없죠
이렇게 돌이켜보면 깨달음 이후 순탄했을 것 같지만, 사실 당시 현실은 달랐다.
실패를 통해 성장하기 전에 나는 나의 실패를 시인할 수밖에 없었다.
실패를 수습하는 데는 모두 돈이 들었다. 나의 실패는 결국 손해로 연결될 수밖에 없었다.
결국에 교훈을 얻고 좋아진 점이라곤, 수습은 될 거라는 믿음만 생겼을 뿐. 크게 바뀌는 것은 없었다, 매일매일 일어나는 수많은 실패들 덕분에 나는 항상 무전기를 통해 이름이 불리게 되었다.
“홍길동 기사 송신”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 아니 건축기사가 현장의 꽃인 이유는 사실 김춘수 시인의 『꽃』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결국 나의 실패의 몸짓들은 그 해, 꽃밭을 만들었다.
꽃 /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글: 검
이미지: google
이미지편집: 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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