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맛집에서 얻은 즐거운 망상

일상의 실패

by failit

누나랑 갈 뻔했던 맛없집 BEST 10♥ *광고아님주의*


네이버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던 한 음식점을 다녀온 후 떠올렸던 아이디어를 공개하고자 한다. 한창 허튼 일을 하고 싶다는 욕심만 가득하던 시절이었기에 가능했던 생각이지만, 누군가가 하지 않는다면 언젠가 반드시 내 손으로 해야 할 사명감이 있는 일이기에 조심스레 이야기를 시작해보려 한다.




어느 지친 오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설계실에 멍청하게 앉아 있던 날이었다. 날은 좋은데 골방에서 컴퓨터만 보고 있는 내가 안쓰러워 친구와 처음이자 마지막 사치를 즐기자며 귀빈 어르신들의 집단 주거촌, 단돈 26만 원으로도 살 수 있는 연희동으로 가게 되었다.

없는 살림에 한 번 하는 일탈, 제대로 먹기 위해 생전 하지도 않던 맛집을 검색했고 자타공인 연희동 공식 맛집을 찾을 수 있었다.

블로그를 절대 믿지 않았어야 했는데.



그렇게 기대하는 마음으로, 내 혀에게 주는 단 한 번의 유흥을 위해 연희동 공식 맛집에 입성하게 되었다. 네이버에서 본 믿음직한 선각자가 ‘누나랑 시켰다는 A세트’를 야심 차게 주문한 후, 두근대는 마음을 진정시키고자 물을 마셨다. 물에서 나는 라임의 상큼함마저 그날의 성공을 예견하는 듯했다.


그렇게 나온 소중한 보물들의 완벽한 플레이팅. 기대했던 첫 술을 드는 순간 느끼게 되었다.


"아. 시망인데."


포르투칼 축구선수, 시망



맛없집 데이터 베이스


당시 나는 입맛이 까다로운 편은 아니었다. 매일매일 학교 앞 가성비 중심의 음식들을 먹고살던 덕택에 대중없이 음식을 먹을 수 있으며, 유달리 싫은 몇 가지를 제외하고는 대충 있는 대로 먹고자 노력한다. 사실 어지간하면 조미료 맛에도 감복할 정도의 낙천적인 혀를 가지고 있다. 결국 이런 나에게 음식점을 고를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엄청난 맛집이냐 아니냐’ 보다 ‘맛이 없느냐 아니냐’였다.



그런 나에게 ‘시망’을 떠올리게 했다는 것은 정말 저 수많은 후기들이 다 거짓이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 지옥의 맛과, 네이버에 대한 배신감이 나를 잠식하던 찰나 불현듯 이상한 상상이 시작되었다.

바로 이름하여 “맛없집 데이터 베이스”


한 때 유행하던 맛집 데이터베이스와 같은 원리로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의 데이터와 후기를 바탕으로 맛없집을 평가하고 공유할 수 있도록 만드는 시스템이었다.

포지션도 간단했다. 최악의 맛없집들을 모아 입구에 들어가기 전 간단히 확인하는 확인 어플인 것이다. 만약 맛없집 데이터 베이스에 이름을 올렸다면, “그 집은 정말 들어가서는 안 된다”를 내포하도록 포지셔닝을 시켰다.


그리고 엄격한 선정기준과 논리로 무장했다.

개인적 취향에 맞지 않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소수의 무미(無味)로는 맛없집으로 선정될 수 있다. 그것은 기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수의 데이터만이 존재하는 맛없집들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냥 그런 집에 가는 것은 도전일 뿐이다. 하지만, 네이버 등 많은 사람들이 방문 후기를 남긴 집의 경우 그만큼 맛없집으로 등극할 빈도도 높아진다. 따라서, 자연스레 내가 검색한 집들에 대한 반대 후기를 얻을 수 있는 어플인 것이다.

요리왕 비룡도 울고 갈 요리 솜씨를 찾아주는 맛없집 데이터 베이스


망상의 끝, 그리고 망상들이 가져다준 것

당시 이 두 가지 단계를 거치며, 기대감과 설렘에 부풀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사실 나는 실패했다. 우선, 아무것도 시작을 하지 못했다. 대부분의 시간을 망상으로 보내던 나로서는 이런 생각을 실행할 틈이 없었다. 맛없대를 비롯한 망상들은 한번 술자리의 안주거리가 되어 사라지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당시의 나는 이런 일들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감각도 없었고, 실행할 용기는 당연히 없었다. 사실 그냥 술안주이자 우스갯소리였지만, 어느새 맛없집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망상들은 당시의 나의 나약함의 상징이 되어 있었다. 당시의 나는 취업을 해야 했으며, 인생의 다음 단계를 위해 양보해야 할 지금들이 너무 많았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때의 다음 단계에 도달한 지금은 그때 해보지 못한 뻘짓들이 너무 아쉽다. 그래도, 이 속상함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수많은 잡념들의 용기가 되어주고 있어서 다행이다. 여전히 무엇을 할 방법은 모르지만, 일단 생각나는 건 해야겠다는 용기는 생긴 거니까.


지금 나는 머릿속에 떠오른 일들은 우선 저지르고 본다. 신기한 점은 우선 저지르다 보면 어떻게 우격다짐으로 진행되는 일들이 있다는 것이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FAIL IT: 하자, 실패 프로젝트를 비롯한 일들도 우선 저지르고 나니 즐겁게 진행되고 있다.

*주석 1: 프로젝트 동료들한테 업혀 가는 처지인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주석 2: '맛없데'와 마찬가지로 수많은 망상들은 단순한 망상으로 끝난다.



어쨌든,
세상은 넓고 맛없는 집은 많다.
그리고 나는 할 일은 많지만 해보고 싶은 뻘 짓도 많다



여전히, 나는 망상들이 가득하고 맛없집 데이터 베이스에 대한 미련은 버리지 못했다. 내 인생의 숙원 사업이라고 생각하고 살고 있다.


누군가 이 글을 읽고 나에게 하자는 제안을 하자면 당당히 말할 준비가 되어 있다.


“콜”



글: 검
이미지: Daum / google
이미지편집: 검
https://blog.naver.com/failorm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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