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과의 전쟁: 글쓰기

일상의 실패 #01

by failit

원고 하나를 급히 써야 할 일이 있었다. A4 1-2매 정도의 분량만 작성하면 되는 일이었다. 글을 안 써봤던 것도 아니고 흥미로운 주제니 한두 시간이면 끝낼 줄 알았다. 그런데, 생전 겪지 못한 일을 경험했다. 글을 쓸 수가 없었다. 수준 낮은 글을 완성할 까 봐 두려웠다. 내가 쓴 글을 보고 사람들이 이게 뭐냐고 비판하면 어쩌지, 창피하다는 생각을 하니 한 글자도 쓸 수가 없었다.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생각이 잘 떠오르는 편이니까, 시간이 있으니 괜찮을 거라며 나를 다독였다. 하지만, 글감이 떠오르지 않았다. 약속한 시각은 다가오는데 초조했다. 마감기한은 애초에 넉넉했기에 시간이 없다는 핑계를 댈 수 없었다. 책을 읽고, 안 하던 책상 청소를 하고, 빨래를 했다. 꼭 기말고사 전날의 고등학생으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그냥 공부할 책을 펴면 끝인데, 엉뚱한데 시간을 쏟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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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이틀이 지나고 더 이상 청소할 곳이 없어진 나는 그제야 노트북을 켰다. 숨 막히는 두려움이 목을 졸랐다. 깜빡이는 커서가 이렇게 공포스럽게 느껴질 줄 이야, 쟤가 날 죽이지도 못할 텐데, 잘 써야겠다는 부담감이 나를 짓눌렀다. ‘공간이 문제인가?’싶어 노트북을 들고 카페로 향했다.


커피를 시키고, 다시 노트북을 켰다. 이제는 소음 때문에 집중이 안 된다. 내가 좋아하는 Andry day의 Rise up의 재생 버튼을 누르고 음악 감상에 빠졌다.


아, 음악 너무 좋잖아, 가사에 빠져든다. 그렇게 또 30분이 훌쩍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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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드 파일을 켜고 오래도록 앉아 있었다. 아무래도 나는 이번 생에 글쓰기는 글렀어. 못쓰겠다고 연락할까? 시간을 보니 이제 도망갈 수 없다. 포기할 것인가, 도전할 것 인가. 기로에 섰다. 아니 누가 보면 웃겠지만, 실제 나는 엄청난 고뇌에 빠져있었다. 여기서 접으면 앞으로 글쓰기 영영 힘들고, 평생 커서에 쫓기며 살아갈 것 같았다.


‘그래, 10분만, 한 문장이라도 좋으니 뭐라도 써보자.’ 여름방학 때 개학 3일 남겨둔 학생처럼, ‘선생님한테 혼나지만 말자’하는 마음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엉덩이를 의자에 딱 10분만 붙이는 거야! 별거 없어! 생각의 나열일 뿐이야~ 마음을 내려놓는 순간 신기하게도 깜빡이던 커서가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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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이 아닌 것처럼 써내려 갔다. 아무 말 대잔치였다. 상관없다. 시작이 반이다. 어차피 글은 초안이고, 퇴고할 거니깐 글의 완성은 얼마만큼의 퇴고 과정을 거치냐에 있지, 초고가 훌륭한가에 있지 않다. 1시간 동안 작성한 글에 9시간의 퇴고 시간이 합쳐져 글은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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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0일의 시간이 있었음에도 시도하지 않고 두려움에 떨었다. 9일의 시간을 한 글자도 쓰지 않고, 이상한 생각들만 했다. ‘글을 쓰지 않으면 창피할 일이 없다. 평가받을 글이 없으니깐. 그래 그러면 쓰지 말까?’ 안다. 정말 개똥 논리라는 거, 이런 생각을 했다니 정말 창피한데, 사실이다. 저러고 9일을 보냈다.


훗날, 누가 물어보면, 아무것도 쓰지 않았으면서 사람들에게 이런 소리를 했을 것이다. ‘몸이 너무 안 좋아서요.’ ‘일이 바빠서요.’ 핑곗거리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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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에서도 제일 끔찍한 것은 ‘내가 그거 해봤는데 글쓰기는 재능이야, 일반인은 안돼’ 이딴 소리 하고 앉아 있을 나의 모습이다. 아, 정말 최악이다. 접는 건 쉽다. 아무것도 안 하면 된다. 시도하고 도전하는 것은 힘들다. 안다. 노력에는 힘이 드니깐 하기 싫은 게 당연하다.


이 작은 일화를 통해 실패가 무엇인가에 대해 곱씹게 되었다. 컴퓨터에서 작동을 하지 않는 것을 ‘Fail’이라고 한다. 나는 이게 실패라고 생각한다.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는 행위. ‘못’ 하는 게 실패가 아니라 ‘안’하는 게 실패다. ‘넘어지는 것’이 실패가 아니고 ‘일어나지 않는 것’이 실패다.


주저앉아만 있는 것, 본인은 더 이상 할 수 없다고 여기는 것. 온갖 핑계와 변명거리를 가져다 놓고 자기의 행동을 정당화하며 시도하지 않고 고민만 하는 것 이게 내가 생각하는 실패다.






https://youtu.be/udkrTgTMucQ

Gray - 하기나 해 (Feat. Loco)


하기나 해
그냥 하기나 해
뭐든지 걱정만 많으면
잘 될 것도 되다가 안 되니까
그냥 그냥 하기나 해


하기나 해
그냥 하기나 해
어차피 생각대로
되는 것도 아니니깐

재밌게 즐기자구



글: FAILURES
그림: GOOGLE/NAVER
영상: YOUTUBE
https://blog.naver.com/failormoon/2214320472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