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실패
‘거북목 증후군인가.’
차갑게 공기가 가라앉은 밤. 아니 밤인지 새벽인지 모를 지금, 야근이 끝났다. 하지만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생각보다 가볍지 않다. 뒷목이 계속해서 당겨오는 탓에 걸음을 멈추고 어깻죽지를 주무르기를 반복한다. ‘너무 오래 앉아있어서 그런가.’ 라며 한숨을 쉬다가 문득, 생각해본다. 거북목이라는 육체적 실패는 어디서 기인했을까.
‘장시간 바르지 못한 자세로 의자에 앉아있어서 그래’. 이건 답변이 될 수 없다. ‘일을 오래 하니까 그렇지’. 이것도 근본적인 답변은 아니다. 바른 자세를 위한 개인만의 노력이나, 업무량에 대한 한탄을 말하자는 게 아니다. 나는 좀 더 근본적인, 인간의 ‘앉음’ 행위를 들여다보고 싶은 것이다. 그러던 중 아, 탄식을 뱉는다. 무언가 답 비슷한 것을 찾은 것 같다. 내 추측은 이러하다.
4개의 다리에 평평한 판을 얹고, 등받이를 붙인다.
‘이런 구조라면, 인간은 자연스레 무릎을 굽히고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겠지?’ 최초의 의자 설계자는 ‘인체공학적’이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간과한 것이 있다. 처리할 일이나 읽어야 할 책, 다듬어야 할 재료 등, 모든 것은 뒤가 아닌 앞에 있다. 때문에 우리는 몸을 앞으로 기울여야만 한다. 앞으로 기울일 때면 언제나 등보다 목이 앞선다. 그렇게 우리는 거북목 증후군을 얻는다.
그나마 보통의 의자는 좀 나은 편이다. 사무실의 의자를 보면 가관이다. 열에 아홉이 회전 의자이기 때문이다. 옆쪽의 동료에게 물건을 건네고 뒤쪽의 물건을 짚기 위해 척추와 근육을 쓸 필요가 없다. 앉은 그 자세 그대로 발길질 두어 번이면 스르르 움직이고 회전한다. ‘일하는 데 있어서 인간의 상체에 그 이상의 움직임은 필요 없어!’라고 강요당하는 기분이다. 뭐, 약간의 피해의식과 조금의 과장을 더하자면 그렇다는 얘기다.
‘의자의 설계는 실패했다’는 추측이 점점 확신으로 변해간다.
아뿔싸
생각이 커져갈 때쯤 깨달았다. 인간 삶의 많은 순간 속에서 의자는 노동보다 휴식과 함께할 때 의미가 있었다. 제왕이 평안한 국민을 내려다보며 미소를 지을 때. 오랜만에 찾아온 반가운 손님께 차를 대접할 때. 사랑하는 가족들과 식사하며 서로의 얼굴을 매만질 때. 그럴 때마다 항상 의자는 그곳에 있었다. 애초부터 의자에게 중요했던 건 작업의 효율성이 아니었던 것. 그리 생각하니 허탈해졌다.
생각의 꼬리물기가 끝났다. 뒷맛이 씁쓸하다. 의자는 실패한 적이 없었다. 실패한 건 의자를 업무 효율성으로만 따져보았던 나 자신이었다. 앉아서 좀 쉴 걸 그랬다. 의자는 조금 서운했을 거다.
고개를 들어보니 어느새 집 앞 골목이다. 보이는 건 잠자는 도시를 지키는 밤의 야근러, 가로등뿐이다. 불을 밝힌 채 고개를 구부린 그 모습이 나와 닮아있다. 하지만 가로등씨는 의자조차도 없이 일을 하고 있다.
가로등씨 거북목 오셨네. 너무 무리하지 마시길. fin.
글: 말하는 개
그림/사진 : 김지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