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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은 Dec 24. 2020

양평으로 이사를 오다.

40년 동안 도시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사람이 도시를 벗어나다.

#1. 우여곡절 끝에 살게된 집.

2016년 3월 1일. 휴일인 그날 양평으로 이사를 왔다.

당장 내일부터 아이들이 학교를 가야 했기에 더 늦출 수가 없었다.

파주에서 양평으로... 어찌 보면 우리나라 서쪽 끝에서 동쪽 끄트머리로의 이사.

게다가 이사 갈 집은 허름하기 짝이 없었다.

늘 아파트에서만 살던 내가, 아니 아이들이 과연 이런 집에서 살 수 있을까?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우린 아이가 셋이다.

현재 큰아이가 고1, 중1, 초5로 초중고생이 다 있는 셈이다.

큰아이와 둘째는 딸인데 처음부터 일반학교를 입학하지 않고 대안학교를 다녔다. 한 6년을 그럭저럭 잘 다녔고 큰아이는 초등 대안을 졸업했다.(파주의 대안학교는 초등 5학년이 졸업이다.)

  그런데 큰아이가 중등이 될 무렵, 셋째가 초등 입학할 무렵 우리는 고민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이 셋을 대안학교에 보내기에는 경제적으로 무리가 있기도 하고, 무엇보다 새로 취임하시는 교장선생님의 교육관과 우리 부부의 교육관이 다소 맞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만약 보낸다면 우리는 아이 셋을 고스란히 졸업을 시킬 생각이었고, 아니라면 지금이 타이밍이었다.

 고민 끝에 다른 학교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아이가 적응할 수 있도록 작은 학교로...

먼저 파주 근처를 찾아봤다. 파주삼성초등학교, 그리고 탄현중학교가 괜찮아 보였다.

규모도 적어서 대안학교와 비슷한 분위기에 집에서도 그리 멀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가 걸어갈 수는 없었고, 학군 때문에 이사를 가야 했다. 그래서 땅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아파트를 팔고 근처에 땅을 사서 집을 지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파주 땅값이 만만치가 않았다. 가만 생각해보니 굳이 파주를 고집할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좀 더 싼 강화도의 교동도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곳도 다리가 놓여 그런지 이미 땅값이 올라 있었다.

  그러다 11월 중순 어느 날, 양평 조현초등학교와 지평중학교가 혁신학교로 성공한 사례로 꼽히고 있는 기사를 보게 되었고 무심히 그곳 땅값을 한번 알아보게 되었다.

  웬걸, 그곳의 땅값은 아직 오르기 전이었는지 우리가 알아보던 땅값의 반값이었다. 그래서 고민 없이 양평으로 가기로 결정을 했다.

우선은 지평중과 조현초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둘은 학군이 달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평초등학교를 알아보니, 우리가 가는 그 해에 혁신학교로 지정될 예정이었고, 무엇보다 초, 중, 고가 함께 있었다.

  우린 우선 살 곳을 지평으로 정하고 양평으로 가서 부동산을 알아보았다. 마침 일요일 저녁에도 불이 켜진 집이 있어서 들어가서 우리가 인터넷으로 살펴본 마을의 시세를 물었다. 그런데 거기보다 더 학교와 가깝고 양지바르며 심지어 평당 10만 원이나 더 싼 곳을 보여주었다. 다만 땅의 덩어리가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조금 컸다.

우리는 150평 정도 생각했지만, 180평짜리 땅이었다.

  그래도 갑작스러운 일이라 고민을 해보겠다고 하고 일주일을 고민한 후 계약을 했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땅만 샀기 때문에 당장 들어가서 살집이 없었고, 서울로 출근하는 아이들 아빠의 출퇴근도 문제였다. 그리고 고양시에 직장을 둔 나도 문제였다.

  나는 양평으로 옮겨가기 위해 우선 휴직을 신청했고, 남편은  양평 근처 그나마 제일 가까운 곳으로의 전보를 신청했고, 집은 부동산에서 급하게 월세를 얻어 주었다.

그런데 그 집이 열 평 남짓 되는데, 새시는 깨져서 테이프로 붙여놨고, 화장실과 세면기는 안 쓴 지 오래되어 땟국물도 지워지지 않고 싱크대와 벽지, 장판은 엉망이었다. 현관 등은 떨어져서 덜렁거리고 있었다.

집주인과 협의하에 세면기와 변기는 갈아주기로 하고, 새시도 바꿔주기로 하고, 도배장판도 새로 해주기로 했다.

  또 다른 문제는 그곳은 열 평남 짓 되었기 때문에 서른세 평 아파트의 짐이 다 들어갈 수가 없어서 포장이사를 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하는 수 없이 꼭 필요한 짐, 가져가도 될만한 짐 외에 나머지는 버리거나 남동생 집에 맡겨두고, 짐을 하나하나 박스에 싸서 1톤 이삿짐 트럭 두대를 불러 이사를 하기로 했다.

   이사하는 날이 다가와서 집주인에게 준비가 되었는지 전화를 해보았는데 전화를 받지 않았다.

부동산에 전화를 해보니... 글쎄 집주인이 쓰러져서 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것이다. 이사는 3일 남았는데....

부동산을 통해 어떻게 해봐 달라고 조르기 시작했다. 그래서 부동산에서 위임을 받아서 세면대와 변기를 겨우 바꿔주고, 벽지를 발라주었다. 장판과 새시는 바꾸지 못한 채 우여곡절 끝에 이사가 시작되었다..

이런 집은 처음 이었다.
새시는 깨어져 테이프가 붙어 있었다
세면대는 오래되어 너무 더러웠다
이곳이 주방이라고?
벽에는 곰팡이가 피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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