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들을 위한 삶을 가르치는 방식
수년 전.
그때의 나는 '유아교육'이라는 학문에 열중하던 풋내기 교육 실습생이었다.
감사하게도 내가 실습했던 유치원은 현재까지도 ' 좋은 유치원'에 속하는 기관이었다.
어린이집 실습도 마친 터라 그래도 나름의 자신감을 가지고, 실습생에 불과하지만 좋은 기관에서 실습한다는 자부심으로 실습하는 중이었다.
지금은 누리과정(3~5세를 대상으로 하는 교육과정)이 개정되면서 '아동중심', '놀이중심'을 표방하고 있지만 그때는 생활주제 중심의 교육과정이었다.
생활주제 중심이라고 해서 아동중심이 아니거나 놀이중심이 아닌 것은 아니었다.
큰 차이는 유아들이 흥미 있어할 만한 주제를 미리 선정하느냐 사후에 선정하느냐이다.
물론 현재 누리과정도 사전에 포괄적으로 주제를 선정하고 있지만 어린이들이 흥미를 보이지 않는다면 그 주제는 언제든 사장될 수 있다는 점이 다르다.
그리고 어린이들이 흥미 있어하는 놀이 주제로 주제가 바뀌기도 한다.
이전 교육과정은 미리 어린이들이 관심을 보일 만한 내용으로, 예를 들면 3월엔 유치원에 처음 오고 여러 동급생들을 만나게 되니 생활주제는 유치원과 친구가 된다.
그 속에서 유치원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환경을 탐색하고 이용하는 방법을 익히고, 함께 지내는 사람들을 알아보며 공공질서와 규칙을 배워나가는 형식이다.
놀이를 통해서 말이다. 대집단이나 소집단 활동이라고 해서 대개 어린이들이 교사를 중심으로 모여 앉아 설명식, 강의식으로 지식을 나누고, 공유하기도 하지만 이것도
노래나 동화, 게임 등을 통해서 전달이 되니 부모님과 가정통신문을 살피고 대화를 하지 않는다면 보통 어린이들은 주제를 알아차리기 어렵다.
이전 교육과정이 가르쳐야 할 내용을 놀이를 통해 배운다고 한다면 개정된 교육과정은 놀이 속에서 어린이 개개인이 갖는 고유한 특성을 찾아 그에 맞게 지원해 나가며
어린이의 강점을 길러나간다는 점이 다르다고 나는 생각한다.
어떤 교육과정이 더 옳고 그른가 보다 나는 본디 유아교육이 가지는 어린이들을 위한 그 지향점을 높이 사고 싶다.
다시 돌아와 그때를 회기 하자면, 그날도 역시 어린이들은 생활주제에 따라 교사가 준비한 큰 그림 안에서 열심히 놀고 있었다.
그 사이로 혼자만 배회하던 아이는 불현듯 교사에게 다가와 물었다.
“선생님 우리 공부는 언제 해요?”
6살 어린이들이 모인 토끼반 교실, 타 기관에서 5살을 보내고 온 아이는 1년의 경험 끝에 ‘공부’라는 어떤 개념이 잡힌 듯했다.
당시는 깍두기공책에 낱말을 따라 쓰고 베껴 쓰거나 수학 문제집의 장수를 정해주고 다 풀면 놀 수 있게 해주는 기관이 많았으니 아이는 그걸 ‘공부’라 여겼는지 모르겠다.
어린이의 남다른 질문에 적당한 답을 고르기 어려워 “우린 놀면서 배우는 중이란다.” 하고 답했다는 선생님.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나는 왜 이 에피소드가 잊히지 않는 걸까.
정말 아이들은 놀면서 배우니 놀기만 해도 되는 걸까?
아이들에게 공부가 필요하지 않을까?
아이를 잘 기른다는 건 뭘까?
나 역시 내가 만난 아이들을 떠올려 보며 이곳에 글로 생각을 정리해보고자 한다.